사 회 우리는 우리생활과 직결되지도 않은 정치인들의 문제나 빈부격차와 같이 남과 나를 비교하는 문제에 대하여는 대단히 민감합니다. 그러나 자신과 가족, 일상을 함께 하는 이웃의 삶에 직결되는 문제에는 정작 눈을 감고 있습니다.
TV는 우리와 우리 이웃의 언어습관과 행동양식, 심지어 표정까지도 바꿔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와 이웃의 언어습관이나 행동거지가 하루를 행복하게도 하고 불행하게도 만듭니다. 매일 평균 3시간 이상을 빼앗기고 있는 TV에 대해 이제 심각히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가정에서는 TV를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요.
박양임 저는 이른 아침 시간을 유용하게 보내고 싶은데요, 남편은 눈 뜨자마자 리모콘을 듭니다. 하루 종일 TV를 보다가 방송이 끝나는 한밤중에야 꺼요.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덩달아 보게 되어 시간만 빼앗기고 여러모로 피해를 봅니다. TV 1시간 안 보면 그 시간에 굉장히 많은 일을 할수 있어요. 저도 ‘대장금’은 잘 보는데 다른 요일 그 시간에 일을 해보니까 반찬을 네 가지 이상 만들게 되더라고요.
조인애 저는 성당에서 교리교사를 하고 있습니다. 교리교안과 행사계획을 세우자는 취지로 MT를 갔었는데요, 숙소에 TV가 있었거든요. 2박3일 내내 모두 TV만 보고 있었어요. 돌아오는 길에도 TV 본 얘기만 하는 거예요. 평가회 때 “TV 있었던 방을 잡았던 게 잘못이다. TV 때문에 우리가 아무것도 못했다.” 그러면서 TV 탓만 무지 했답니다.
저도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저녁시간에 꼭 TV 시청을 합니다. 아버지는 기도와 성서쓰기를 거의 하루 종일 하시는 분인데 못마땅해 하시다가 어머니와 싸움을 하시고 결국 방을 나가시고 맙니다.
박수아 지방에 사는 어떤 젊은 남자분이 몹시 뵙고 싶었던 은사님 댁을 십 몇 년 만에 찾았어요. 감격의 포옹을 하고 즐겁게 얘기를 나누다가 TV를 켜더니 그 순간부터 은사님 부부는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묻는 말도 건성건성 대답도 건성건성 하시며 자정이 가깝도록 TV를 보시더래요. 은사님과 나누고 싶은 얘기가 많아서 벼르고 별러 찾아뵈었던 자리였는데 결국 아무 얘기도 못 나누고 은사님 부부의 TV 보는 모습만 지켜보다가 다음날 집으로 내려가면서 너무너무 화가 났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TV 때문에 우리가 정말 하고 싶은 얘기, 나누고 싶은 얘기들을 못하고 마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미경 TV는 조지오웰의 ‘빅브라더’ 이미지와 굉장히 닮았어요. 저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저희 집에 TV가 없는 걸 보고 누가 불쌍하다고 큰 TV를 선물하면서 문제가 생겼어요. 고화질 TV라서 케이블을 연결해야 선명한 화질이 나온다더라고요. 4개 공중파 채널만 있을 때도 통제가 안됐는데 78개나 되는 케이블 채널을 어떻게 통제하겠냐 싶어 케이블이 없는 상태에서 한 두 달 정도 TV를 보았습니다. 남편이 “케이블 설치하면 기독교방송을 보겠다” 애들은 “EBS만 보겠다” 그러더라고요.
케이블을 설치하고 보니 24시간 동안 78개의 채널이 나오는데, 제가 우려했던 남편이나 애들이 문제가 아니고 집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제가 제일 문제가 되는 거예요. 아침에 잠시 시간 나면 커피 한 잔 들고 와서 리모콘 딱 누르면 78개의 채널에서 너무나 재미있는 것들이 나오는데다가, 제가 쇼핑을 안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밤 1~2시까지 홈쇼핑 채널을 보고 있는 거예요.
제가 아들을 불러 카드를 주면서 “아무개야. 너 저것 좀 신청해라” 그랬더니 아들이 걱정스런 얼굴로 “엄마, 저거 살 거예요?” 하고 묻는 거예요. 사고 보니까 집에 있는 소형 믹서기하고 똑같은 것이더라구요. 또 TV 시청시간이 엄청나게 늘어나 버린 거예요. 저는 소설 쓰는 사람인데 집안일 하며 글을 쓰다 보니까 늘 ‘시간이 없다. 시간이 있으면 내가 좋은 글을 쓸 수 있는데…’라고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TV가 생기면서는 TV보는 시간이 무궁무진 늘어나 밤 1~2시까지 보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TV를 쭉 보니까 지식과 정보는 엄청나게 많아요. ‘아, 저런 것은 소설에서 표현 못할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도 하면서 봤는데 두 달 정도 보고 났더니 오히려 사고가 엄청나게 단순화되어서 어휘가 생각이 안 나요. 남편도 처음엔 기독교방송을 보겠다 그래 놓고선 3~4분 정도 기독교방송을 보다가 나머지는 일반방송을 시청하는 거예요. 경제학 용어에 보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그런 말이 있잖아요. TV에 좋은 프로그램도 참 많은데 좋은 프로그램보다는 안 좋은 프로그램에 오래 머물러요. 말초적인 즐거움이 있으면, 또 현란한 조명의 상품 정보를 접하면 눈을 뗄 수가 없어요. 그런 것을 경험하면서 어른도 외적인 강제성이 좀 있어야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 회 어떤 보고서에 의하면 TV 보며 계속 앉아서 먹다 보니까 비만이 늘어나고 가족간의 대화를 단절시켜 마음을 거칠게 만든다고 합니다. TV가 우리가정에 어떤 영향을 끼친다고 보시는지요.
김종기 TV매체는 앞으로 계속 성장할 수밖에 없고 많은 영향력을 끼칠 것이라고 봐요.
저는 큰 아픔과 상처를 갖고 사는 사람인데요, 95년도에 아들이 자살을 했습니다. 학교에서 친구들로부터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었는데 제가 해외에 있을 때여서 아무런 도움을 못 줬어요. 집사람 얘기는 당시 ‘모래시계’라는 드라마 영향을 아이들이 너무 받았다는 거예요. 그 드라마가 방영되는 저녁시간은 거리가 한산할 정도로 시청률이 높았죠. 남자 주인공이 여자 친구를 사랑하지만 죽음으로 마무리하고 러시아 음악을 배경으로 깔아서 그것을 미화했어요.
그때부터 우리 TV나 영화가 굉장히 폭력적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친구’니, ‘조폭마누라’니, ‘신라의 달밤’, ‘말죽거리 잔혹사’… 전부 두들겨 패고 패거리가 되어야만 당연한 듯 그렇게 됐어요. 죄의식도 없고 잘못됐다고 비판하는 세력도 거의 없는 게 아닌가 싶어요.
김학순 청소년들은 일단 눈으로 보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민감해요. 아직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아이들이 생각을 계발시켜야 할 나이에 너무 많은 시간을 TV 앞에 있어요. 작년에 한참 유행했던 ‘옥탑방 고양이’라는 드라마는 아이들이 ‘혼전동거’에 대하여 아무 비판없이 그냥 동조하게 만들더군요.
박수아 저는 딸과 학교생활 얘기도 하고 또 제가 만났던 좋은 분들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하는데 TV만 켜면 대화의 질이 180도 달라져 버립니다. 자신과 주위에 대해 의견을 나누던 아이가 갑자기 “비, 춤 너무 잘 추지 않아, 저 사람 너무 멋있다. 너무 좋다.”고 계속 같은 얘기만 반복하는 거예요. 대화의 질이 낮아진다고나 할까요. 자신은 잊어버리고 TV에 나오는 사람에게만 몰입하는 딸의 모습을 보면서 ‘아, TV를 보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신형범 저희 집에는 TV가 켜져 있는 시간이 1주일에 한 시간도 채 안될 겁니다. TV를 안 보게 된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애들 때문에 그렇습니다. 두 번째는 집에 친구들이 놀러와서 밥 먹고 차 마시면서 그냥 멀뚱히 TV를 보고 있는 거예요. 대화가 자연히 줄어들잖아요. 이야기 하고 서로 같이 나누고자 만나는 것인데, TV만 볼 바엔 집에서 각자 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죠. TV를 거실에서 방으로 옮겨놨어요.
차원석 저희 성당에서는 ‘TV 안 보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TV시청으로 보내는 시간을 보다 소중한 일에 사용하겠습니다’라고 적힌 홍보물을 TV 모니터에 붙일 수 있게 만들어 각 가정에 나누어주었습니다. TV를 켜려다 그만두게 되어 조금 덜 보게 된데요. TV의 폭력성, 선정성, 어린아이들의 사고력을 마비시키는 것은 이미 알려진 문제입니다. 저는 신자들을 만나면서 더 큰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 이혼문제, 카드 빚 문제 등을 많이 상담하게 되는데 대부분 부모 자식 간, 부부 간 대화가 있었더라면 초기에 다 해결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왜 대화를 못할까 살펴봤더니 TV가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TV시청은 중독성이 굉장히 강합니다. 요즘 직장 없는 남자들 집에 많은데 눈뜨면 리모콘 딱 잡고 채널 계속 돌려가면서 보다가 새벽 1~2시가 되면 인터넷으로 가지요. 새벽 3~4시까지 하다가 오전 11시쯤 일어난답니다. TV 한 달 동안 안 보겠다고 약속하는 교우에게 내가 1백만원 주겠다고 공표했거든요. 그런데 TV보고 있는 교우 중에서 “나 1백만원 받고 TV 안보겠다.” 라고 나서는 교우가 한 분도 없었어요.
사 회 TV가 유익한 면도 있지 않습니까? 사실 그런 순기능 때문에 “TV를 아예 보지 말자. 끄자.” 고 주장하는데 어려움이 있지요.
오윤현 저도 TV의 역기능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일주일에 2~3시간 TV를 시청하지요. 어제는 ‘TV 책을 말하다’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했습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 상당히 인상 깊게 읽어서 어제 그 프로를 눈이 빠져라 봤는데, 저는 상당히 좋았어요. 제가 상상했던 조르바를 거기서 만나고 직접 확인하는 체험을 했거든요.
강선옥 작년 연말에 학생들을 데리고 국립 현대미술관에 갔는데 미술관에 가본 학생이 손으로 꼽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EBS에서는 이런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어요. 애들이 그런 프로그램을 통해서라도 안목을 넓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차원석 TV를 통해 지식의 영역은 넓어질지 모르지만 사고의 영역은 오히려 좁아집니다. 라디오는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에 두뇌발달에 도움이 된다는데 TV는 눈하고 귀를 완전히 뺐어가기 때문에 두뇌를 마비시킵니다. TV는 한번 보면 자꾸 빨려들어 가게 되어 있어요. 나도 뉴스만 보겠다고 하고는 딱 뉴스만 보고 TV 끄는 게 안 됩니다.
송성근 저는 주로 토론 프로그램이나 뉴스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세계를 움직이는 사람들’과 같은 KBS다운 프로그램도 만들었어요. KBS 사람들은 ‘어느 선을 넘어서면 절대 안 된다.’라는 인식이 상당히 강한 반면 ‘야, 이거 재미있게 전달해야 되는데, 이거 제대로 만들어야 되는데…’ 하는 시청률에 대한 강박관념도 갖고 있어요.
예를 들어 토론 주제가 FTA 문제인데 국회의원들은 안 나오고 학자들만 나온다고 하니까 담당 PD가 “야, 학자들만 나오면 재미가 없는데 이거 어떡하지? 시청률 떨어지겠는데…” 라고 말할 정도로 현실적인 고민도 합니다. 메시지도 던져야 되지만 재미있어야 된다는 것이지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사람들이 안 보면 소용이 없으니까 사람을 끌기 위해서 무엇인가 재미있게 만들려다 보니 악영향도 끼치게 되는 것이지요.
저는 3월7일에 나갈 심야토론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1월17일, ‘18일 KBS 대토론’을 통해서 ‘정치개혁법안’을 4당 간사들을 불러놓고 합의를 할 것이냐, 안할 것이냐 하는 토론을 했고 마무리로 정치개혁 법안이 통과되면 상당히 의미가 큰 정치개혁법안을 방송을 통해서 알려주자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정치개혁법안이라는게 재미없지 않습니까. 고민하다가 오늘도 오락·코미디 담당 PD에게 ‘9시 언저리뉴스’ ‘봉숭아학당’ 출연진들 좀 참여시키면 어떻겠느냐 상의하다 왔습니다.
김우종 저는 텔레비전에 많이 출연한 사람들 중 한 사람일겁니다. TV는 하나의 매체로써 그것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무시할 수 없지요. 또 반대로 나쁜 것도 많이 있는데 결국은 선택의 문제고, 또 ‘하루에 몇 시간 정도를 보느냐.’ 이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번 보기 시작하면 자꾸 끊지 못한단 말이에요. 재미 때문이라고 하는데 ‘재미는 도대체 무엇이냐.’ 생각을 해보지요.
제가 몇 사람과 같이 작년에 바이칼 호를 갔는데 경치가 참 좋아 첫날은 참 좋았어요. 그러나 전기가 제대로 들어오기를 하나, 전화는 물론 없고, 신문도 없고, 그 다음날 되니까 다들 “야, TV가 있으면 좋겠다.” 그 얘기부터 꺼내는 거에요.
“아, 오늘 ○○ 하는 날인데…” 이렇게 시작해서 완전히 TV에 화제가 쏠립니다. TV가 담배 끊기 만큼이나 어려워 보입니다.
TV드라마에서 주인공이 구박받는 설정이 되어 있으면 그 드라마 끝나는 날까지 그 구박이 이어집니다. 인간이 아무리 악독해도 그렇게까지 싸우며 살지는 않죠. 그런데 그게 매일 되풀이되기 때문에 그것이 지극히 정상인 것처럼 돼요. 교육 못 받은 사람이건 교육 제대로 받은 사람이건, 또 부유한 사람이건 가난한 사람이건 다 그렇게 싸우는 것으로 되어 있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물이 들지요.
이게 폭력의 문제만은 아니에요. 가치관의 문제에요. TV드라마는 인간의 사고 기능을 완전히 정지시켜버립니다. 우리가 장편소설을 한 편 읽기는 어려운데 이것을 TV드라마로는 등장인물 다 나오니까 편하게 볼 수 있다고 참 좋아해요. 영상으로 보여줄 것을 다 보여주니까요.
그런데 글은 아무리 훌륭한 언어 감각을 갖고 잘 썼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을 다 보여 주지 않습니다. 독자가 머리 속에서 상상을 해야 합니다. 독자로 하여금 자기가 상상을 하게하고, 사색을 하게해서 주제를 스스로 캐내고, 스스로 결론에 도달하도록 유도하는 장치만 만들어 주는 것이 문학이에요. TV는 정반대입니다.
TV는 사고기능을 키워주고 상상력을 키워주는 게 안 됩니다. 그런데 왜 자꾸 그런 것을 만드는가. 쉽게 볼 수가 있고 재미가 있어서 돈이 벌리니까요. 대개 방송드라마 작가로 이력이 나있는 인기작가의 그 인기비결이 뭐냐? 나는 재미라고만 보지 않아요. 시청자가 도저히 빠져나가지 못할 장치를 해놔요. 인물들이 타당한 이유도 없이 계속 싸워요. 이것을 1년 동안 끕니다. 그러면 시청자들은 여기서 도무지 벗어나지를 못해요. ‘그 다음에 어떻게 됐나, 그 다음에 어떻게 됐나’ 이것 때문에. 그렇게 시청자의 눈길을 끌어 광고료를 벌어들입니다. 낚시 줄에 물려있듯이 도저히 빠져나오지를 못하게 만들어 가고 있어요. 그래서 내가 TV 보지 말라고 얘기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런 것도 봐야 요즘 여자들이 무슨 옷을 입고 다니는지 볼 수 있고 유행도 알 수 있어, 그것 못 보면 시대에 뒤 떨어진다.” 고 해요.
나는 TV시청을 극단적으로는 우리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쓸데없는 프로그램에 매달려서 하루 3시간을 헤어나지 못했다면 하루 3시간 혼을 빼앗긴 것이니 생명을 잃은 것이고 큰 죄악이다 이런 얘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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