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의무일 수 있을까?
'당신의 인생 영화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받으면
저는<라스베가스 를떠나며>(1995)를 꼽습니다.
영화 내용은 이렇습니다.
중증 알코올의존증 환자인 벤은
좋아하는 술을 실컷 마시다 죽을 생각으로 라스베이거스를 향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몸을 팔며 살아가는 여자 세라를 우연히 만나는데요,
이후 벤과 세라는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듭니다.
영화는 이 둘을 통해 사랑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듯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기를 원한다면
죽도록 내버려 두어야 할까?
상대가 어떤 모습이든 있는 그대로
사랑해야만 진짜 사랑일까?
어쩌면 사랑만큼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도 없을 겁니다.
우리는 늘 사랑하고 싶어 하고
사랑받고 싶어 합니다.
사랑에 설레고 사랑에 아파하죠.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질문은
조금 낯설고 이상합니다.
'사랑이 의무일 수 있을까?'
'사랑과 전쟁'도 아니고
사랑과 '의무'라니 대체 무슨 말일까요?
질문에 답하기 전 먼저
사랑의 개념을 명확히 정의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이해를 바탕으로 사랑이라는
단어를 바라보며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죠.
사전적으로 사랑에는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2]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3] 남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 또는 그런 일.
[4]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그런 일.
[5] 성적인 매력에 이끌리는 마음. 또는 그런 일.
[6] 열렬히 좋아하는 대상.
여기서는 첫 번째 정의,
즉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 해보겠습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정의는
정의에 비해 상대적으로 깊이가 얕고
네 번째부터 여섯 번째까지 정의는
첫 번째 정의에 일부 포함되는
내용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 범위가 넓은 만큼
우리도 가능한 넓은 정의를 골라
논의를 이어가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다음으로 '의무'라는 말도 골칫거리입니다.
국방의 의무부터 부모의 의무까지
그 범위가 사랑만큼이나 넓고
방대하기 때문이죠.
그중에서 철학적으로 정의하는
의무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도덕적으로 강제력이 있는 규범에 근거하여 인간의 의지나 행위에 부과되는 구속'.
그럼 두 핵심 단어의 의미를 생각하며
오늘의 질문을 다시 한 번 정의해볼까요?
아마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네요.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행위가
강제력 있는 행위로 규정 또는 이해될 수 있을까?'
질문에 답하기 위해
다른 영화를 한 편 더 이야기해보겠습니다.
68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인 <더 랍스터>(2015)는
사랑에 빠지지 않는 사람은
모두 유죄가 되는 가까운 미래의
가상 세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45일간 커플 메이킹 호텔에 머무르면서
이 기간 동안 짝을 찾지 못한 사람은
동물로 변하고 마는데요.
만약 솔로로 살고 싶다면
숲으로 도망쳐 호텔에서와는 반대로
'절대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는
규칙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철저히 이분법적인 이 세계에서
커플이 되려면 서로에게 공통점이 있어야 합니다.
그 때문에 코피를 자주 흘리는 여성과 커플이 되기 위해 머리를
찧어 억지로 코피를 내는 남자가
등장하기도 하죠.
끔직하다고요?
혹시 연애나 결혼이
일종의 사회규범이 되어 버린 지금
세상과 비슷하게 느껴지지는 않나요?
우리도 흔히 사랑에 빠지기 위한 조건으로 같은 음식 취향이나 비슷한 가정환경, 학력 등을 들기도 하니 말입니다.
어쩌면 커플 메이킹 호텔은
현재 한국 사회의 극단적인 형태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과거로 가보죠.
20세기 초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을 대표하는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와
여성해방운동의 선구자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는 1929년 계약 결혼을 시작합니다.
인간은 자유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주체적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믿었던 사르트르와
페미니스트로서 결혼 후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는 사회 관습에 저항했던 보부아르는
사랑은 각자의 주체성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관계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결혼 제도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사랑의 형태를 실험하기로 한 것이죠.
이 계약 결혼에서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다음과 같은 조건에 동의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첫째, 서로 사랑하고 관계를 지키는 동시에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을 허락한다.
둘째, 상대에게 거짓말하지 않으며
어떤 것도 숨기지 않는다.
실제로 계약 결혼 기간 중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러면서 사각 관계에 빠지거나
둘의 관계가 끝날 뻔하는 위기를 맞기도 하죠.
또 문란하고 부도덕하다는
엄청난 비난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계약 결혼은
50년 이상 지속되어 사르트르가
먼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어졌는데요,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와의 관계에 대해 '우리의 삶이 그토록 오랫동안
조화롭게 하나였다는 사실이
그저 아름다울 뿐이다'라고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자,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사랑이 의무로 규정지어지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리고 이는 사랑을 대하는
옳은 방법일까요, 아닐까요?
나를 한 가지 색으로 정의한다면
어떤 색인가요?
검은 색이 떠오르네요.
제게는 세계나 인생은 불행하고
비참하며 개혁이나 진보는
불가능하다고 보는
염세주의적인 면이 있거든요.
하지만 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고 싶습니다.
세계와 인생의 불행과 비참함을 외면하지 않고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검은색이라는 사실로 피하지 않고
더 검어지지 않을 방법을
탐구하고 싶다고 할까요?
기존의 결혼 제도에 저항하면서도
사랑에 실패하지 않았던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처럼 말이죠.
당신은 당신을 어떤 색으로 정의할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