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로마서 12장 1-2절 이런 사람이 되게 하소서12-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물로 드리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1999년 4월 20일 미국 콜로라도주 콜럼바인에 있는 콜럼바인 고등학교(Columbine High School)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미국에서 가장 끔찍한 교내 총기난사 사건이었습니다. 범인들은 히틀러의 생일날에 이 일을 하기로 계획했습니다.
총 외에도 폭발물들이 사용되었는데 2개는 카페테리아에 놓였는데 폭발하지는 못했지만 식당 내의 모든 사람들을 죽이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힐 수 있을 만큼 강력했던 것입니다. 4개는 각각의 차량에 2개의 프로탄 폭탄과 75L의 석유를 오렌지 플라스틱 통에 담아 배치하여 사건이 끝난 이후 몰려있는 시민, 취재진, 구급요원들을 향해 폭발하도록 시간을 맞춰 살상을 극대화 하려 시도했지만 다행히 폭탄은 터지지 않아서 실패했습니다.
학교와 떨어진 다른 곳에는 폭탄 2개를 시선 끌기용으로 설치했는데 그 중 하나만 부분적으로 폭발했습니다. 사실 그들이 준비한 폭탄은 100여개가 되었고 그것이 가방에 담겨져 있음을 발표했습니다. 이 범행의 동기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해리스와 클리볼드는 무려 약 1년에 걸쳐 대학살을 계획했고, 미국 역사상 가장 사망자를 많이 내기를 바랐다고 했습니다. 미국 언론 USA Today는 콜럼바인 사건을 "웅장하게 계획되었고, 끔찍하게도 만약 그것이 실현되었다면, 총기난사뿐 만이 아닌 폭탄 테러였을 것이다."라고 언급했습니다.
그 학교의 12학년이었던 에릭 해리스(18, Eric Harris)와 딜런 클리볼드(17, Dylan Klebold)에 의해서 13명이 사망했으며 21명이 부상당했습니다. 12명은 학생이었고 1명은 교사였습니다. 사건을 일으킨 후 둘은 출동한 경찰들과 총격전을 벌이다가 도서관에서 자살하였습니다.
오전 11시 19분, 범인들이 서쪽 출입구 옆 잔디밭에 있던 레이첼 스캇(17, Rachel Scott)과 리처드 캐스탈도(17, Richard Castaldo)[8]에게 총격을 가했습니다. 레이첼은 즉사했으나 리처드는 살아남았습니다. 이때 범인 중 하나가 레이첼 스캇에게 총을 쏜 후 아직 숨이 붙어 있던 레이첼의 머리카락을 움켜 잡고 얼굴에 총을 겨눈채 말헀습니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 지금 그 하나님이 어디있지? 그래도 하나님을 믿느냐?” 그러자 레이첼이 말합니다. “그건 너도 잘 알고 있잖아” 그러자 머리채를 잡고 얼굴에 총을 겨눴던 범인이 말합니다. “그럼 네 하나님 있는데로 가!” 그리고는 총을 머리에 대고 쏘았습니다. 그때 레이첼의 나이는 열 일곱이었습니다.
그렇게 이 학교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로 인해 제일 먼저 죽었던 이 레이첼 스캇은 수많은 실의에 빠진 학생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했던 어둠 가운데 빛이었고,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하나님의 산 제물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일기에 주님과 학생들을 더욱 더 사랑하게 되면서 자신의 마음이 왜 그렇게 슬픈지, 그리고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그리고 자기 등에 지워진 무거운 짐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없다고 썼습니다.
그녀는 완벽하지는 못했지만 주님의 마음을 가졌고 주님이 주신 십자가를 등에 지고 학교의 모든 학생들을 친구 삼으면서 그들을 조금씩 변화시켜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고백을 강의실에서 들었던 바로 그 범인 중 하나가 그녀를 총으로 쏴서 죽인 것입니다. 그 범인의 마음에는 하나님과 세상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잘 한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오늘날 자신을 하나님께 진정한 산제물로 드리기 위해 한걸음씩 주님이 인도하시는 곳으로 가고 있는 레이첼 스캇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은 어디에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그런 헌신된 사람을 찾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세상을 크게 변화시킬 사람이 아니라 자기를 보내신 그곳에서 자신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릴 한 사람을 하나님은 찾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그것을 증거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같이 오늘 본문인 로마서 12장 1-2절을 같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여기서 “그러므로”는 앞에서 설명한 모든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것은 로마서 1장-11장까지의 모든 결론입니다. 그러면 로마서 1-11장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 다시 말해서 이방인들이나 유대인들이나 할 것없이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범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이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모두가 사망을 당하는 시한부 인생 속에 있었는데 하나님은 그런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의 구원자로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그 구원의 방법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속죄제물로, 그리고 화목제물로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평을 이루셨습니다. 또한 이 화평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도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님으로 영접하는 모든 자들은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구원의 증거로 성령을 주셨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하게 하시는 믿음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성령이 역사하시는 사람들이 바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과 그 복음을 듣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들려지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전하는 사람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여기서 “그러므로”가 나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이제는 너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드릴 영적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한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로마서 12장-16장 전체에 나오는 믿음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모두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들로써의 거룩한 삶을 삽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이 세대를 본받지 않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벼라별 것을 가지고 죄에 빠지도록 유혹을 해도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시고 하나님께서 보이신 길을 가신 것처럼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의 길을 갑니다. 이것이 바로 산제물로 자신을 드리는 영적인 예배입니다. 그래서 2절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 로마서 12장 2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것이 매우 힘든 과정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알기 위해 여러분들은 세상이 말하는 가치 기준을 따르지 말고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럴 때 어두운 곳에서 빛이 비취듯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과 뜻이 여러분들의 어두웠던 마음들을 아침 햇살같이 비춰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강과 감사가 여러분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구약시대의 제사는 불완전했습니다. 이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께 드리는 번제나 소제를 가지고 갔습니다. 번제는 소, 양, 염소, 비둘기로 드리는 가축 제사고, 소제는 곡식이나 곡식의 가루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드리면서 자신들의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일회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리고자 할 때마다 자신들의 죄를 속하는 속죄제와 속건제를 드리고 갔습니다. 때로는 서원이나 감사를 뜻하는 화목제물도 가지고 갔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또다시 세상 속에서 죄를 범했고 그에 대한 제물과 제사를 드려야만 했습니다. 이것은 죄인들에게는 한 편으로 은혜였지만 매우 힘든 의식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짓는 죄의 수가 너무 많아서 그 죄를 짐승의 제믈로 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또한 자신이 짓는 죄만큼 요구되어지는 드릴 많은 제물도 없었습니다. 설사 자신의 집에 있는 모든 가축을 드리고 돈을 드린다고 할지라도 계속해서 짖는 그런 죄들을 완전하게 없앨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죄는 계속해서 늘어납니다. 마치 엄청난 돈을 빌린 사람의 원금은 고사하고 날마다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듯 인간의 죄는 도저히 상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일만 달란트와 일백 데나리온의 빚을 진 죄인들에 대하여 비유를 하신 것입니다. 한 임금이 자신에게 돈을 빌려간 돈을 되돌려 받기 위해 빌려간 사람들을 불러 놓고 그들이 빌려간 돈에 대한 기록이 담긴 장부를 열어놓고 한 사람씩 개인적으로 묻습니다. “너는 얼마를 빌려갔는데 지금 이자는 얼마가 되었다. 그런데 너는 아직도 이 빚을 갚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는 이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한 것입니다.
그 가운데 일만 달란트를 빌려간 사람이 왕 앞에 섰습니다. 왕이 빚을 세세히 이야기하면서 그 빚을 다 갚으라고 하자 이 사람은 두려워 떨면서 엎드려 빌면서 말합니다. “제가 꼭 갚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마치 고양이 앞의 병아리처럼, 사자 앞에 서있는 새끼 사슴처럼 살아날 가능성도 달아날 가능성도 조금도 없어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는 이 사람이 왕은 너무나 불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돈을 하나도 없이 다 탕감해주었습니다. 죽음에서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그가 그렇게 놀라운 은혜를 받고 밖으로 나와 기뻐하면서 집으로 가다가 자기의 동료 동관 하나를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이 사람에게 일백 데나리온의 빚을 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동료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가면서 빚을 갚으라고 독촉했습니다. 그러자 그 동료는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갚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화를 내면서 그를 자기 집에 있는 감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그것을 다른 임금의 신하들이 보고는 왕에게 가서 이 사실을 이야기 했습니다. 왕은 진노했습니다. 그래서 그 일만 달란트를 탕감했었던 그 종을 다시 잡아 오도록 명령했습니다. 그가 끌려왔을 때 왕은 왜 자신이 자비를 베푼 것처럼 자비를 베풀지 않았는지를 물었습니다. 그 종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 왕은 그를 감옥에 가두고 영원히 나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비유의 내용은 은혜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두 가지 은혜를 말씀하셨습니다. 한 가지 은혜는 임금이 내려주시는 일방적인 은혜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 은혜를 받은 사람이 자기에게 빚진 자에게 베풀어야 할 은혜입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삶이 바로 로마서 12-16장까지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은혜이며 또한 자비이며 긍휼의 삶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사랑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모든 율법의 완성입니다.
거룩한 삶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랑의 삶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교회 밖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 안에서 성령이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물이 되는 예배의 삶이 무엇인지를 잘 압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곧 성령께서 증거하시는 진리의 말씀을 따르는 삶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성경을 펼쳐보기도 하고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깊이 기도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자신이 얼마나 무능하고 무기력한 사람인가가 느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위해 거기에 맞는 능력과 지혜와 힘을 달라고 계속적으로 기도로 구하게 됩니다. 이것이 날마다 거룩한 산제물로 드리는 삶입니다. 레이첼 스캇은 어린 나이에 이것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고백하면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영혼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했습니다. 그리고 작은 변화들이 여기 저기서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어떻게 판단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모든 것을 하나님은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들이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구하고 또 그 뜻을 구해도 하나님께서 일일이 다 설명하지도 않으십니다. 마치 침묵 속에서 지켜보시는 것처럼 가만히 지켜만 보시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또 어떤 때는 하나님이 여러분 곁을 아예 떠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때도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나약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의 믿음이 얼마나 나약한지를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믿음을 자라도록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인도하시고 계십니다. 그로인해 여러분들은 하나님과 성도들과 아직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자신을 산제사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에수님이 침례를 받으시거나 변화산에 올라가셨을 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말씀이 십자가의 길에서는 더 이상 들려지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럴 때가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들은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그것을 포기하고 세상으로 달려가 친구들과 어울리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 많은 유혹들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분명히 나타납니다.
홀로 외로워하며 하나님을 찾고 구할 때 하나님은 놀라운 평안과 해야할 일들을 조금씩 알게 하십니다. 그로인해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이 믿음의 여정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구하면서 십자가의 길을 갔고, 그리고 믿음을 지키면서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받으셨습니다. 그들이 죽기 전에 뿌렸던 수많은 씨앗들이 죽은 후에 많은 열매로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을 히브리서 11장에서는 “그들이 죽었으나 오히려 지금도 그 믿음으로써 말하느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4절입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왜 뒷 세대의 사람들이 앞세대의 사람들의 전기를 읽거나 그들이 쓴 글들을 읽습니까? 그들의 영적인 경험과 고백이 왜 중요합니까? 그들이 지금도 믿음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다가 이 세상을 떠났을 때 여러분들이 믿음으로 한 말과 삶의 증거가 우리 교회와 여러분들의 가정과 여러분들이 계시던 세상에 계속적으로 열매를 맺는 일들이 일어날까요? 그들이 여러분들이 믿고 갔던 산제물의 길인 십자가의 길을 알고자 하며 그 안에서 지켰던 믿음을 본받고자 하는 일이 일어날까요? 지금 그 정도의 신앙이면 그런 일들이 일어날까요? 여러분들이 믿고 행하시는 신앙생활의 정도가 과연 하나님께 기쁨이 될까요?
믿음의 사람들은 계속해서 날마다 이것을 하나님께 물어가면서 날마다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물로 드립니다. 이것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영적 예배며 하나님은 그런 교회와 그런 성도들을 찾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그들의 그 헌신으로 인해 수많은 믿음의 열매들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6장을 보면 믿음으로 자신의 삶을 산제물로 하나님께 드렸던 사람들의 이름과 그들이 행한 일들이 아주 짧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집에 가서 꼭 읽어보면서 여러분들의 삶을 다시 한 번 점검하시면서 이 죄악이 극에 달한 시대에 어떻게 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지를 묵상하면서 성령의 인도를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기뻐하셔서 여러분들을 통해 자신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드러내시며 닫혔던 하나님 나라의 휘장을 걷으시고 명확하게 보게 하시는 은혜가 주어질 것입니다. 이 복이 여러분들 모두에게 넘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