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歲慕에 붓을 세우다
(梅軒 윤봉길의사의 詩 《春雪甚寒 춘설 심한 <춘설에 몹시 추워서>》의 화답 시)
인묵 김형식
새벽 찬
봄기운에
깨어나는 여 여명
아직도
동면인가
고목도 꽃을 내는데
세모에
붓을 세우니
홍안이 분분하도다
冬至가
지났으니
이 땅에 봄은 온다
조국은
꽃샘추위
임산부는 산통 중
기다리고
있습니다
呱呱의 그 울음소리
국토는
남북으로
국론은 좌와 우로
풍랑 속
일엽편주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대로는
안 됩니다
백 년을 내다봅시다
침묵하는 자
수수방관하는 자는
부역자요 부역자의 후손 들인가
껍데기 벗어 던지고
빛을 향해 조국을 위하여
다시 태어나자
풍랑 속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설원에
붓을 세우니
梅軒이 현현하였도다
(2025년,乙巳年 세밑 정문골 토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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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春雪甚寒 [춘설 심한]
(춘설에 몹시 추워서)
매헌 윤봉길
酷冷侵肥臘沍添 [혹랭침비랍호 첨]
好生天理是何嚴 [호생천리시하엄]
살을 에는 혹한에 섣달 추위가 더하니
천리는 호생이라더니 왜 이리 매서운고
堅氷己作琉璃界 [견빙기작유리계]
積雪洽如水晶鹽 [적설흡여수정염]
견고한 얼음은 이미 유리 세계 만들고
쌓인 눈은 흡사 수정 소금처럼 보이네
老嫌寒氣封門戸 [노혐한기봉문호]
我厭孤唫退筆尖 [아염고금퇴필첨]
노인들은 찬 기운을 싫어해 문을 닫는데
나는 혼자 읊는 게 싫어서 붓대를 치웠네
未解春陰雖慄烈 [피해춘음수율 열]
固持本色叟蒼髥 [고지본색수창염]
봄의 음기 아직 풀리지 않아 추위 매서워도
소나무는 본래 색을 굳건히 지키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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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헌의 약력 요약
윤봉길( 1908.6.21 ~ 1932.12.19) 의사는
충청남도 예산에서 아버지 윤황(尹璜)과 어머니 김원상(金元祥)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파평(坡平) 호는 매헌(梅軒)이다. 10세 되던 해인 1918년 덕산(德山) 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다음 해에 3·1 운동이 일어나자 민족정신의 영향으로 식민지 교육을 거부하고 자퇴한다. 동생인 윤성의(尹聖儀)와 함께 한학을 공부하였고, 1921년부터는 오치서숙(烏峙書塾)에서 사서삼경 등 한문학을 계속한다. 한문학 공부를 마치고, 1926년부터는 농민계몽·독서회운동ㆍ 문학가로 농촌사회운동을 펴나간다.
남기신 시문집으로 「한시집(漢詩集)」·「임추壬)」·「명추鳴)」·「옥타(玉)」가 있다
「한시집」은 칠언율시 202수, 칠언절구 5수 등 210수의 한시와 산문 4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임추」에 칠언율시 43수, 오언율시 13 수로 56수의 시가 실려 있다.
「명추」에 칠언율시 16수, 육언율시 1수 등 20수가 실려 있다. 시 春雪甚寒 (춘설 심한) <춘설에 몹시 추워서>은 명추鳴推에 실려있다.
ㅡ. 1930년 3월 6일 윤봉길 의사 출사표 “장부출가 생불환”(丈夫出家 生不還·사내대장부 집을 떠나노니, 살아서 돌아오지는 않겠노라)
ㅡ.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날 행사장에 폭탄을 던져 일본 상하이파견군 대장 등을 즉사시키는 거사를 치르고 현장에서 체포
ㅡ. 동년 12월 19일 아침 7시 27분경 일본 이시카와현 (石川県) 가니자와(金澤) 교외 미츠코지산(三小牛山) 육군 작업장에서 십자가 형틀에 묶인 채 양미간 인당(印堂)에 정사수가 쏜 1발 총알을 맞고 절명(絕命),
향년 24년 6개월, 날수로는 8천948일, 순국(5초 침묵), 직후 일본군이 시신을 이시카와현 가나자와 '노다야마 전몰자 묘원'(野田山 戦没者 墓苑) 인근 공동묘지 내 통로에 평장으로 암매장
ㅡ. 1946년 김구선생의 주선으로
효창공원 삼의사 묘에
조국광복을 위해 몸 바친 이봉창ㆍ윤봉길ㆍ백정기 의사 안장하다.
묘 왼편에는 중국 뤼순감옥에서 순국한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으면 안장하고자 마련한 빈 무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