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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살림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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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100만 명이나 오고가는 서울 광화문 지하철 역. 2012년 8월 21일부터 1,000일이 넘도록 날마다 광화문역에서 오가는 시민들을 붙들어 세우고 서명을 받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장애인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외칩니다. “장애인도 사람”이라고. 정부 제도에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가 있습니다. 장애등급제는 손을 얼마나 잘 움직이는지, 다리는 얼마나 마비되었는지, 아이큐는 얼마인지 따위를 가려 등급을 매기는 제도입니다. 따라서 장애를 가진 이들이 도움을 제대로 받으려면 장애를 등록하고 어떻게든 높은 장애등급을 받아야만 합니다. 문제는 현 ‘장애인 복지법’에서 3급 장애인은 다리가 골절되는 사고를 겪어 옴짝달싹할 수 없더라도 활동보조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데 있습니다. 또 외국인 장애인은 장애인등록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 오면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습니다. 1급, 2급, 3급이란 장애등급이 사라진다면 어떨까요? 골절과 같은 잠깐 겪는 장애를 비롯해 이동장애, 시각장애, 성격장애, 약물장애, 적응장애처럼 어떤 불편을 겪는지만 남습니다. 그러면 나라는 이 사람들이 지닌 장애에 맞춰 도움을 주면 됩니다. 중증장애인뿐만 아니라 사고 때문에 빚어지는 일시 장애도, 임신과 출산으로 겪는 장애도, 일자리가 없어서 입에 풀칠하기 어려운 장애도 복지 도움을 받을 수 있게끔. 지금 우리사회에서는 몸이나 넋을 남들처럼 제대로 쓸 수 없어 사회생활을 하는데 겪는 어려움을 어쩔 수 없는 개개인 문제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집 밖을 마음대로 나서지 못하는 것도, 밥집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도, 취직을 못하는 것도, 외진 시설 속에 갇혀 사는 것도, 개개인이 지닌 문제일 뿐이라고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장애인등급제를 없애고 장애인을 일상생활을 해나가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라 했을 때, 청각장애, 시각장애, 지적장애뿐만 아니라 임산부나 약물중독, 말로 뜻을 주고받을 수 없는 외국인도 장애인이 됩니다. 외국이란 ‘환경 변화’로 일어난 장애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을 배울 때까지 통역도우미를 붙여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동장애는 움직이는데 어려움을 겪는 환경을 바꾸면 되지요.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면 됩니다. 장애인 복지라는 관점에서 다가서기보다는 나라사람은 누구나 고르고 가지런히 삶을 누려야 한다는 보편복지 관점에서 아우른다면 장애등급제가 따로 있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당시 ‘장애등급제’를 없애겠다는 공약을 발표했지만, 여태까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 부양의무제는 무엇일까요? 장애를 가진 사람 직계 가족이 세워놓은 기준보다 돈을 더 많이 벌면 정부는 그 장애인 부양에서 손을 떼겠다는 제도입니다. 때문에 장애를 가진 부모는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어 자식과 연락을 끊고, 자식들은 장애인 부모가 버거워 등을 돌릴 수밖에 없는 것이 부양의무제가 지닌 벽입니다. 장애와 가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제도입니다. 이와 함께 근로능력평가제라는 것이 있습니다. 일할 힘이 있는데 없는 듯이 보여 나랏돈을 축내는 사람을 없애겠다는 제도입니다. 이 제도가 지닌 맹점을 보여주는 기사 하나를 먼저 보시죠. “아줌마, 일 하신다면서요?” 김지선씨(가명)는 구청 직원이 윽박지르는 소리에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거 다 불법이에요. 민·형사상 처벌 받을 줄 알고 계세요.” 구청 직원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김씨 사진을 찍으며 말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수급자격이 잃으면 아들과 어떻게 살지? 아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남편이 죽어 홀로 남은 김씨는 몸이 아파 일을 할 수 없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월 80만원 남짓한 나랏돈을 받아 모자가 살았다. 어려운 형편에도 열심히 공부하는 아들이 기특하고, 미안했다. 참고서라도 몇 권 사주고 싶었다. 사정을 잘 아는 동네 식당 주인이 식당이 바쁠 때 나와 설거지나 허드렛일을 해 보겠느냐고 했다. 몸이 아파 여러 시간 일을 할 수 없으니 주말이나 평일 저녁에 잠깐씩 일을 했다. 그렇게 해서 번 돈이 한 달 20만원. 그걸 누군가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를 한 모양이었다. 구청 직원들이 김씨가 일하는 곳을 찾아와 다시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라고 했다. 수급자격은 유지됐으나 수급비는 20만원씩 차감됐다. 김씨가 벌었던 돈만큼 정부는 수급비를 압류해간 것이다. 9월 12일자 ‘묻고 따지고 검열하는 참 야박한 복지’란 제목으로 경향신문에 나온 기사에서 조금만 모셨습니다. 여기서 “부양의무제와 근로능력평가제가 빈곤층 ‘복지 검열’ 두 기둥인데, 박근혜 대통령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국정 과제로 내걸면서 첫 번째 과제로 부정수급 근절을 꼽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국민권익위원회는 신고센터 설립 100일을 맞은 2014년 1월, 100억 원에 이르는 복지 부정 금액을 적발했다고 크게 알렸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100억 원 가운데 97억8000만원은 병원 사무장과 사회복지시설 같은 기관 비리에 따른 것이었다, 빈곤층에서 기초생활수급비를 부정수급으로 적발된 돈은 7000만원에 지나지 않았다.”면서 “부양의무제와 근로능력평가에 걸려 수급 자격을 박탈당한 빈곤층은 삶보다 죽음을 가깝게 여긴다.”고 적바림하고 있습니다. 짚어봅시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조사한 ‘1인 노동자 한 달 생계비’는 155만 원, ‘2인 가구 생계비’는 274만 원입니다. 이와 같은데 아들 교육을 시키는 어머니가 가만히 앉아서 80만원을 가지고 아등바등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조금이라도 움직여 아이 공책이나 연필 살 돈이라도 벌어야 하겠습니까? 세종임금 재위 때인 1430년, 관청에 있는 여자 노비들은 애를 낳은 뒤 이레 휴가를 받게 되는데 출산일에 맞닥뜨려 애를 낳으러 가다가 잘못되어 죽는 일이 많았습니다. 세종임금은 출산휴가를 넉 달 열흘로 늘리되, 한 달은 애를 낳기 전에 쓰게끔 했습니다. 그런데 네 해가 지난 뒤에 조사를 해보니 여전히 관노비 출산 사망률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여자 노비는 아무도 돌보아줄 사람 없는 외톨박이들이 많았는데, 산모 혼자서 조리하고 애를 돌보다가 죽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죠. 이 얘기를 들은 세종임금은 “나라에서 산모에게는 휴가를 주었으나 그 남편에게는 휴가를 주지 않고 날마다 출근하게 하니 산모를 구호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이 때문에 산모가 목숨을 잃는 일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니 남편에게도 산간휴가를 한 달을 주어 부부로 하여금 서로 구원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세종임금은 “임금은 하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 살리는 것이다. 만물이 그 처소를 얻지 못해도 상심할 터인데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랴.”하면서 “백성을 혼란스럽지 않게 하려고 임금을 세웠는데, 억울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다스림이라 할 수 있느냐.”고 다지고 또 다졌습니다. 목숨 살림을 떠난 살림은 없습니다. 다스림은 다살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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