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oman.chosun.com%2FImageFiles%2FImage%2F2014%2F1403_240_01.jpg)
단순해서 더욱 기품 있는 집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는 ‘인간은 풍요롭게 소유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풍성하게 존재하기 위해 산다’라는 구절이 있다. 홍삼 제조업을 하는 박미라 씨는 집을 통해 좀 더 풍성하게 존재하는 삶을 추구하는 그런 사람이다. 충청도 세종특별시의 한적한 시골 마을, 축사가 모여 이뤄진 마을에 축사 혹은 창고를 똑 닮은 집이 바로 그녀의 집이다 . “제가 충남 금산 태생이에요. 시골에서 살다가 도시로 이사 와 10년 남짓 패션디자이너로 일을 했어요. 그런데 바쁘게 생활하다보니 시골에 대한 향수가 더욱 깊어지더라고요. 보통 20대 때는 주말이 되면 좋은 데 놀러 가고 하는데, 저는 늘 시골 풍경을 보러 다녔어요. 그리고 지난해 6월 드디어 이곳에 터전을 잡고 꿈에 그리던 집을 짓게 됐죠.”
보통 시골에 집을 짓겠다고 하면 전원주택이나 한옥을 선택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녀의 집은 외관상 주택이라고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네모반듯하며 단순하다. 가로로 긴 직사각형 집채에 자잘한 파도 물결 모양의 골강판으로 마감돼 있을 뿐이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문을 찾기도 어렵다. 누가 봐도 영락없는 창고다.
“집을 짓기 위해 오래전부터 마음에 드는 소품이나 인테리어 사진들을 스크랩해왔어요. 그런데 자료를 다 모아놓고 보니 한옥을 지어야겠더라고요. 워낙 정적이고 전통적인 것을 좋아하다보니 한옥이 어울렸죠. 그런데 축사들로 이뤄진 마을에 한옥이 한 채 지어지면 너무 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주변 경관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비용도 절감할 수 있는 창고형 주택을 짓게 됐어요.”
하지만 이 집의 가장 큰 매력은 외관과 달리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맞닥뜨리는 예상 못한 반전이다. 겉모양은 단순한 창고지만 실내는 모던한 분위기 속에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이 곳곳에 묻어 있다. 메인이 되는 거실에는 널찍한 원목 테이블이 놓여 있고 양옆으로는 큰 창이 기분 좋은 햇살과 자연 풍광을 선사한다. 거실 양쪽 끝으로는 박 씨의 침실과 손님방이 각각 위치해 있고 곳곳에 대청, 중정, 다실과 같은 한국적인 공간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oman.chosun.com%2FImageFiles%2FImage%2F2014%2F1403_240_02.jpg) 01 블랙&화이트 컬러가 감각적인 싱크대를 설치해 모던하게 꾸민 주방. 02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고 있는 박미라 씨. 작은 소품 하나하나에도 그녀만의 취향이 물씬 묻어난다. 03 테이블 한쪽에 붉은 천을 멋스럽게 드리우고 유려함이 돋보이는 잔과 초록 줄기를 매치했다. 04 내추럴한 원목 트레이에 그녀가 제일 좋아한다는 임미강 도예가의 식기들로 스타일리시한 테이블 세팅을 선보였다.
두 번의 반전이 기다리는 집
그녀의 집에 들어선 순간, 기자는 외관과 180도 다른 실내의 반전 매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메인 거실에 놓인 원목 테이블에 앉자 그녀는 맞은편 주방에서 취재진을 위해 핸드드립 커피와 케이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두 번째 반전. 그동안 테이블 세팅 솜씨가 뛰어나다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만나봤지만 그녀의 감각은 한 수 위였다.
“어릴 적부터 손맛 나는 그릇을 좋아해 하나하나 모으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도예가 임미강 선생을 알게 되고, 선생의 소개로 목조각 공예가 차수호 선생을 비롯해 많은 분과 연이 닿게 됐어요. 관심사가 비슷하다보니 만나면 그릇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돼요. 이 그릇은 어떤 요리를 담으면 예쁜지, 어떤 그릇끼리 매치하면 잘 어울리는지 등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다보니 자연스레 테이블 세팅 솜씨도 늘어난 거 같아요.”
널찍한 원목 테이블이 있는 메인 거실 맞은편에는 그녀의 주방이 자리하고 있다. 주방은 이 집에서 제일 현대적인 미를 뽐내는 공간이다. 블랙&화이트 컬러의 싱크대를 일자형으로 짜 넣고 그 앞에는 식탁 겸 조리대로 사용하는 아일랜드 식탁을 배치했다. 그릇이 많기 때문에 주방 가구는 최대한 넉넉한 크기로 제작해 겉으로 드러나는 살림살이가 가능한 한 없도록 모두 수납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oman.chosun.com%2FImageFiles%2FImage%2F2014%2F1403_240_03.jpg)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oman.chosun.com%2FImageFiles%2FImage%2F2014%2F1403_240_04.jpg) 05 보면 볼수록 정감이 가는 차수호 작가의 목각 인형을 놓은 거실 창가. 06 거실과 주방 사이에 위치한 고가구 안에는 그녀가 좋아한다는 임미강 도예가의 작품만을 따로 보관해두었다. 07 창밖의 풍경을 보며 요리를 즐길 수 있는 주방. 08 싱크대 앞에 위치한 아일랜드 조리대에는 그녀가 지금껏 모아온 그릇들을 가득 수납해놓았다. 09 후다닥 차려내는 다과상에도 그녀만의 감각적인 테이블 세팅 솜씨가 엿보인다. 10 도자기 등을 전시할 때 사용하는 받침과 나뭇가지를 활용해 그녀만의 감각이 돋보이는 벽 꾸밈을 완성했다. 11 반전의 매력을 선사하는 와촌리 창고 주택 외관.
비움의 공간, 다실
차를 마시는 공간은 자고로 ‘비움’의 미학이 필요하다. 박미라 씨의 2~3평 남짓한 작은 다실은 여백의 미가 뭔지를 보여주는 비움의 공간이다. 잡다한 장식을 배제하고 다도를 위해 꼭 필요한 물건으로만 정갈하게 꾸몄다.
“다도도 그릇을 좋아하다보니 시작하게 됐어요. 제가 원래 성격이 좀 급하고 무언가에 집중할 때는 무척 예민하거든요. 다도를 하면 기분도 한결 차분해지고 특히 잠자기 전 1~2시간 다도를 하며 명상을 즐기면 잠도 잘 오더라고요. 명상을 하지 못한 날은 마무리 못한 일들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아 잠이 잘 안 와요. 다도를 해야 제대로 하루가 잘 마무리된 기분이 들어요.”
그녀의 다실은 좋은 다기와 소품들이 가득 진열된, 보여주기 식 다실이 아니다. 온전히 명상을 위한 공간이며 지인들이 찾아오면 함께 담소를 나누는 소통의 공간이다.
“집에 무얼 채우나 싶어요. 창을 통해 들어오는 풍경도 온전히 품지 못하는데 갖가지 장식까지 있다면 과욕이죠. 저희 집에서 유일하게 부피를 차지하는 물건은 그릇뿐이에요. 가끔은 마음이 어수선할 때 눈에 보이는 모든 물건들을 장에 죄다 집어넣고 명상을 즐길 때도 있어요. 마치 마음이 비워지는 것처럼 편안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단순하고 간결한 삶이 무엇인지를 집을 통해 제대로 보여준 박미라 씨. 그녀가 건넨 따뜻한 차 한 잔처럼 그녀의 집에는 그녀를 닮아 너무 진하지도 그렇다고 맹숭맹숭하지도 않은 딱 적당하게 은은한 차 향기가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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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1~2시간 정도 다도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는 박미라 씨. 02, 03 다실 한쪽에는 그녀가 모아온 찻잔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다. 04 다실에 앉아 바라본 모습. 다다미와 미닫이문으로 전통 느낌을 한껏 살렸다. 05 한지 바른 여닫이창을 열면 집 가운데에 있는 중정을 내다볼 수 있다. 06 다도는 그녀에게 일상이다. 그녀는 다도를 통해 내면의 행복을 되찾고 사람들과 즐겁게 소통한다. 07 광택이 고운 명주를 조각조각 이어 만든 침구에서도 그녀만의 감각을 엿볼 수 있다. 꼭 필요한 것만으로 단출하게 꾸민 침실은 그야말로 무소유를 지향하는 그녀의 삶이 잘 묻어나는 공간이다. 08 주방 옆에 위치한 손님방. 이곳에서 지인들과 자주 모여 담소를 나눈다. 09 침실에 숨어 있는 붙박이장. 책, 작은 화기, 화장품 등이 모두 이곳에 감춰져 있다. 10 집 안 한가운데 자리한 중정.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쉼표를 선사한다. 11 이 집의 첫 시작인 현관. 나뭇가지를 무심히 꽂아둔 항아리와 투박한 돌 화분에 담긴 초 등 소품을 고르고 스타일링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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