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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내가 아는 카페 Mon~Sun, am12:00~am12:00 원문보기 글쓴이: 내자산맡길수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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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한강, 뜻밖의 여정
운동화끈을 고쳐매고 나온 시각은 오후 2시 반. 잡념을 좀 털어내기 위해서였다.
사실 따지고보면 '잡념'이 아니라 언젠간 매듭을 지어야할 중대 사안이었지만,
집안에만 박혀있으려니 핵심을 교묘하게 비껴나간 잡음들만 실속없이 쫓고있는 실정이라
기분이나 좀 환기시키는 차원으로 보라매 공원을 찾았다.
몸이 나태해지면 덩달아 정신도 느슨해지기때문에 생각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적당히 몸을 혹사시키거나,
또는 아예 생각따위 할 수 없을 정도로 체력을 방전시키는 편이 나을 듯 했다.
[보라매 공원]
워킹트랙이 아닌 공원 전체를 크게 한바퀴 돌면 약 15분 정도 소요되는데 가볍게 10번만 채우고 돌아가기로 했다.
.....................................어지간히 생각하기 귀찮았던 모양이다.
체력고갈을 목표로 두고 본격 움직이기 전, 즐겨듣는 노래를 재생 목록에 세팅하고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그리곤 순서를 랜덤모드로 선택하고 ▶ 버튼을 눌렀다.
뽑기의 첫 주자는 자이언티의 '양화대교'였다.
[
보라매 공원 → 안양천 진입로]
그리고 내 걸음은 자연스럽게 보라매 공원을 벗어나 안양천 자전거 진입도로로 향했다.
'양화대교'의 도입부를 듣는 순간 문득 양화대교를 보고와야겠다는 극심한 충동이 일었다.
지금이 아니면 안될 것 같다는 초조함마저 들었는데, 며칠전 얌전히 자다가 갑자기 식혜 먹고싶다는 충동에
지갑챙겨 일어난 것보다 배는 더 강렬하고 절실한 느낌이었다.
두어달 전에는 자이언티의 '꺼내먹어요'에 꽂혀서 술만 마시면 집에서 냉장고 붙잡고 오열을 해댔는데
(꺼내 먹을게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때에 비하면 이번 일탈은 건전한 축에 들지않나 싶다.
여튼 선곡이 '양화대교'라 다행이지 '임진강' 나왔으면 파주 찍고 북파했을지도 모른다.
[신대방역]
한길만을 고집하겠다는 장인정신으로 랜덤모드에서 한곡반복으로 재설정하곤 '양화대교'만 듣고 또 들었다.
내가!! 내 아이폰으로!! 양화대교 가는길에!! '양화대교'를 듣겠다는데 뭐가 대수랴~~
한강 진입시까지 '양화대교'를 행진곡으로 낙점하고 홀로 양화~양화~거리며 부지런히 발을 놀렸다.
감성 후비는 멜로디와 애절한 보이스에 걷는 내내 괜히 눈꼬리를 울먹울먹하게 만들고는
저 먼.................빗물펌프장을 바라보며 처연한 표정을 지어댔다..............................나날이 농익어가는 정신질환.
[대림역 부근]
아침이면 머리맡에 놓인
별사탕에 라면땅에
새벽마다 퇴근하신 아버지
주머니를 기다리던
어린 날의 나를 기억하네
가사속 인물의 어린시절은 참 순수하고 올곧았구나. 고작 별사탕과 라면땅에 만족하는 처지라니.
난 기다림을 견디지 못해 아빠 주머니를 직접 내 손으로 털었었지.
천원짜리 서너장 슬쩍해서 장난감 무전기와 줄팽이 세트를 사들였지. 장래가 기대되는 꼬마 절도범이었어.
집구석 오함마에 피가 마를 날이 없었지.
[신도림역]
전화가 오네, 내 어머니네
뚜루루루 "아들 잘 지내니"
어디냐고 물어보는 말에
나 양화대교 "양화대교"
생각난김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보기로 했다.
연락처 즐겨찾기를 누르면 가장 상단에 링크되어 있는 애칭 - '내 미모의 원천' (※아빠 : 내 두뇌의 근간)
입으로 소리내어 부를때는 아무렇지 않은데
희한하게 일상에서 '엄마'라는 글자를 보면 괜시리 가슴이 먹먹해지고 찡해지는 기분이 들어
부러 연락처에는 '엄마'가 아닌 엄마를 연상케하는 단어의 조합으로 지정해두었다.
언젠가 넷서핑을 하다 본 한장의 사진과 그 아래에 달린 글귀도 한몫하였다.
사진 - 휴대폰 액정에 뜬 [엄마].
글귀 - 30~40년 뒤에는 볼수 없는 화면.
[엄마]로 설정해놓으면 그 단어가 아주 먼 훗날, 잠재적이고 장기적인 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았다.
[신정교-도림천 합수부]
엄마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좀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그래 그래
연결음이 6번째로 접어들때쯤 반대편에서 조금은 억세지만 정겨운 음성이 들려왔다.
밥은? 회사는? 운동은? 으레 주고받는 안부인사를 서두로 여느때와 같은 패턴의 잔소리 폭격을 맞고 있는데,
문득.....아주 당연하고 일상적인 이 대화가 30~40년 뒤 어느 한날을 기점으로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못견디게 사무치는 그리움과 설움이 몰아쳤다.
느닷없이 소녀가장 빙의되어 젖은 목소리로 '엄마, 아프지말고'의 '엄~'이라고 막 입을 떼려는 순간
마을버스 왔다고 서둘러 전화를 끊으셨다.
폴더 때려접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릴 정도로 단호함이 느껴지는 종료였다.
자이언티의 특유의 애절하면서 간들어지는 창법이 돋보이는 곡을
본인 특유의 염소 바이브레이션으로 변질시키며 부지런히 걸었더니 중간 지점인 신정교-도림천 합수부에 당도했다.
보라매공원서부터 근 한시간을 걸은셈이었다.
앞으로 지나온 만큼만 더 걸으면 안양천과 한강이 만나는 안양천 합수부에 도착하는데,
벌써부터 허벅지가 뻐근해지고 눈알에 모래가 섞인듯 꺼끌꺼끌한 피로함이 느껴졌다.
그때 마침 신정교 아래서 영업중인 이동식차량카페를 발견했다.
블랙보드에 투박한 문체로 휘갈긴 수박쥬스를 보니 없던 갈증이 격하게 일면서 입안에 침이 고였다.
반색을 표하며 빠르게 접근하다 이내 속도를 늦추고 자리에 멈춰섰다.
목적지에 아직 도달도 전인데 벌써부터 축배를 드는건 너무 성급하지 않을까.
이제 겨우 절반에 이르렀을 뿐인데 이 이른 성취감에 취해 남은 여정 토끼처럼 자만하지는 않을까.
이왕 참은거 조금만 더 참았다가 나중 목표를 달성하고 보상받는 것이 더 보람차고 의미있을거라는 생각에
과감히 걸음을 물리고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주머니에 현금이 없어서 그런건 결코 아니었다. 아니었다. 아니었.
스스로가 그어놓은 허접한 신념을 따르고자 수박쥬스를 뒤로하고 신정교를 벗어나려는데
뒷쪽에서 요란한 싸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한곳을 향해 몇몇 사람들이 모여들고 지나던 자전거들이 하나 둘 멈춰서더니 곧 주황색 유니폼의 구급대원들이
사고지점으로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낯선 광경은 아니었다.
자전거 도로에서 사고가 난 것 같았는데, 사고자 입장에서는 결코 유쾌한 기분이 아닐것 같아서
차마 다가가진 못하고 멀찍이 서서 바라보다 이내 걸음을 옮겼다.
큰 부상은 아니길 빌며, 오래전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양평교]
지금으로부터 6~7년 전, 한동안 안양에서 신림 왕복 50키로 구간을 16인치 스트라이다로 출퇴근을 한적이 있었다.
스트라이다는 일반 자전거와 달리 무게중심축이 안장쪽에 쏠려있어서 초보유저에게는 핸들링이 어려운 편인데
나 역시 초반에는 약간의 힘으로도 휙휙 돌아가는 핸들의 방정맞음에 애를 먹으며 걸핏하면 바닥에 나동그라지곤 했다.
허나 출퇴근을 하면서 안장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자연스럽게 핸들 조작에 익숙해졌고
그 능숙함은 곧 안정감 있는 라이딩으로, 속도에 대한 자신감으로, 밑도 끝도없는 우쭐함으로 발전해갔다.
사고는 그렇게 봄날의 햇살처럼 성큼 다가왔다.
예기치 않게 발생되는 것이 사고라고 하지만,
까놓고보면 그 예기치 않은 상황의 초석을 세우는 것은 항상 안전의식에 무딘 스스로고
그 밑밥이론(?)에 자만까지 얹은 난, 그 당시 가히 무서울 것 없는 사고유발자였다.
[이 정도 웅덩이면 배 띄워야 되는거 아냐?]
일반 자전거의 경우 안장과 핸들이 분리되어 있어 돌발상황시 앞으로 내리면 지면에 바로 발이 닿지만
스트는 안장과 핸들이 프레임으로 연결되어 있어 앞으로 하차했다간 새로운 세상을 접할 수 있다.
(남성유저의 경우 야인시대 64화 찍을 수도 있을 정도로 상황에 따라 매우 위험할 수 있는 구조이다.)
언젠가 주행 도중 속도계 체크하다 전방의 비둘기를 늦게 발견하고 급브레이크를 잡았던 적이 있었다.
자전거는 멈췄지만 관성의 법칙에 따라 내 몸은 계속 움직이고자 하였고~
놀란 비둘기는 니미 푸드덕 푸드덕~ 직선 운동의 연장선 상에 있던 나는 곧장 앞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다행히 브레이크와 동시에 꺾은 핸들 덕분에 딱딱한 시멘트 바닥이 아닌 길옆의 갈대밭에 고꾸라져
심각한 부상은 없었지만, 군더더기 없이 깨끗한 비상이었던지라 배로 짜증나고 창피했다.
게다가 가시덤불 같은데에 떨어졌다면 전신이 피투성이가 되었을테니
부상을 핑계로 직장을 하루 쨀 수 있었겠지만,
갈대밭이라 그런지 전신을 감싸는 느낌이 폭신하고 피부에 닿는 감촉이 매우 보드라워 더없이 멀쩡했다.
[안방]
남들은 자전거를 타면 지구력 발달, 심폐기능 향상, 하체근력 강화 등등 전반적으로 체력 증진이 도움이된다는데
난 시떡하면 아스팔트에~ 갈대밭에~ 도랑가에~ 자빠링만 해댔던 통에 낙법 기술만 일취월장하였다.
나중에는 나의 부주의로 자전거가 쓰러지는건지~ 아님 가만있는 날 자전거가 패대기치는건지~
경계가 모호해질 정도로 나자빠져서 종내엔 그냥 서울 길바닥이 다 내 안방 같더라.
[한강-안양천 합수부]
도림천 합수부에서 한시간 좀 못되게 걸었나.
강물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짙어지고 바람이 부쩍 거칠어진다고 느낄때쯤 전방의 시야가 시원해졌다.
하늘엔 조갑경이 떠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있는~♬ 한강 도착이었다.
안양천과 한강이 만나는 합수부 지점에는 항상 수많은 인파들로 북적거리는데,
그 소란스러움에 시선을 빼앗겨 자칫 주의력을 잃게되면 쉼없이 오고가는 자전거에 로드킬 당할 수 있으니
항시 전후좌우를 주시하며 길을 건너야 한다.
속도가 느리다고 해도 자전거는 엄연히 차로 분류된다. 자전거랑 충돌해서 바퀴에 살 찝히면 말도 못하게 아프다.
내 자전거에 많이 찝혀봐서 잘 안다.
[성산대교]
뭔가 사연있는 아낙의 느낌으로 우수에 찬 눈빛을 한강에 던지며 청초하게 걷고 싶었는데
이 미친 강바람이 사람의 꼬라지를 매우 우습게 만들어놓았다. 순간 역풍이 뭔 재난급으로 불어댔다.
누가 내 뒷통수에다가 써큘레이터를 갖다대고 틀어대는것 마냥
머리털이 죄 앞으로 쏠려 지랄맞게 펄럭거리는데 머리카락도 좀 길어야지.
치렁치렁한 머리털이 사방팔방 요란하게 나부끼자 마주오는 자전거들이 흠짓하고 굳는게 느껴질 정도였다.
혼자 국경일이었다. 한글날 태극기도 이만치는 힘차게 나부끼지 않았을거다.
[양화대교]
오늘의 최종 목적지에 당도했다. 합수부에서부터 근 30분 정도를 걸었던것 같다.
그리 오고자했던 '양화대교'는 여느 대교와 비교했을때 크게 다르지도 특별하지도 않는 그냥 평범한 다리였다.
경관이 특출나게 좋은것도 아니었고, 반대로 감수성을 자극할만큼 낡거나 규모가 작은것도 아니었다.
자이언티는 왜 하고 많은 대교 중에 왜 하필 '양화대교'를 넣어 곡을 만들었을까.
'동작대교'나 '한강대교', 좀 더 구수하게 '마포다리'나
아님 '현서, 원효대교 북단 빨리'같이 천만영화의 기운을 빌리는 지명도 있었을텐데, 왜...굳이 양화대교였을까.
무모할지언정 나름 신선했던 충동에 힘을 실어 부지런히 걸어왔건만,
막상 실제를 마주하고나니 2시간 반의 고생이 무색할 정도로 감흥이 없었다.
허무함이 가슴깨를 관통하고 사라졌다.
순간 전신에 맥이 탁 풀리면서 엄청난 피로감이 엄습했다. 나는 왜 살까.
[마포대교]
양화대교에서 얻지 못한 감흥을 다른 것으로 메우고자 좀 더 길을 걷기로 했다.
한걸음 내딛을때마다 골반은 빠질것 같고, 무릎은 삐걱거리고, 발목은 못견디게 시큰거렸지만
의식적으로 걷는 것을 관두고 싶지는 않았다.
자리에 발이 묶여버리면......오는 내내 백번이고 더 곱씹은 사안을 뭐가 되든 매듭지어야 할것 같았다.
그 부담스러운 순간을 최대한 미뤄보고자 만신창이에 가까운 육신을 이끌고 40분을 더 걸어 결국 마포대교까지 흘러들어왔다.
산보나 피크닉을 나온 시민들로 공원은 기분좋은 흥분과 싱그러운 활기를 띄고 있었다.
그 생기 넘치는 현장에 낯빛이 회색에 가까운 산송장이 들어서자 공원 물이 사정없이 격하되는 기분이 들었다. 내심 뿌듯했다.
오늘 내일하고 있는 운신을 이어가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는 듯이 퍼졌다.
근 3시간만의 휴식이었다. 쿠션감이 있는 잔디밭이나 나무벤치가 아닌 딱딱한 시멘트 계단이었지만 더없이 안락하고 편안했다.
노숙을 이맛에 한다
아침 식사 이후 쭉 공복상태라 인근 편의점으로 향했다.
끼니대용으로 빵과 김밥을 집어들었다가 이내 고개를 내젓고 본래 자리에 내려놓았다. 배가 부르면 졸음이 몰려오기 때문에
간단하게 목만 축일 요량으로 맥주와 이온음료, 입가심 대용으로 촤컬릿 한통을 사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마음은 1.6리터 패트를 사고싶었지만 야외에서 혼자 각잡고 따기에는
비쥬얼이 '사업실패'나 '주식폭망'의 극단적인 느낌이 강할 것 같아
가볍게 '카드연체' 정도로만 살리고자 간에 기별도 안가는 500ml로 모셔왔다.
분위기있는 아낙의 버전으로 돌아와 한모금씩 느긋하게 맛을 음미하며 마시겠다며 천천히 풀탭을 꺾었다.
허나 은연중에 봉다리를 또 신나게 휘둘러댔는지 풀탭을 따는 동시에 거품이 용암처럼 솟구치며 피같은 술이 콸콸콸 뿜어져나왔다.
반사적으로 주둥이를 갖다대곤 게걸스럽게 받아마셨다. 이미지 졸렬해지는 거 한순간이었다.
넘실대는 한강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너갱이를 날렸다.
공원 곳곳에 사람들이 포진해있었지만 희한하게 사방이 고요했다.
내가 앉은 곳 반경 10미터 내외로 사람들이 다가오지 않는 것이 이유인것 같았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폴리스라인이 나를 격리시켜 놓은것 마냥 주변이 한적했다.
맥주와 이온음료를 번갈아 들이키며 눈에 익어버린 풍경을 보고 또 바라보았다.
이따금씩 사람을 가득 태운 유람선이 유유히 지나가기도 하고,
어느순간 나타난 연 하나가 정신없이 하늘을 배회하며 알수없는 그림을 그리다 왔던것 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는 중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제트스키 두대가 연신 물살을 가르며 요란한 굉음을 터뜨려댔다.
스릴과 재미를 주고자 부러 과격한 운전으로 파도를 만들어내고 급회전을 하는 등 유쾌한 퍼포먼스를 보여줬는데
정작 뒤에 매달린 이용객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제 돈 내고 벌칙받고 있는 것 같았다.
되게 훈훈하고 좋아보였다.
날이 저물면서 강바람이 더 거세지고 기온이 내려가 서늘했지만
500 한캔도 술이라고 취기에 몸이 홧홧해져 되레 시원하게 느껴졌다.
나는 진지해지는 것이 불편했다. 진지해지면 덩달아 심각해지고, 심각해지면 그것이 순간이든 관계는 뭐가됐든 책임을 져야했다.
적당히 발을 뺄 수 있는 거리가 편했다. 새삼 느끼지만 나는 꽤 비겁하고 이기적이었다.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이어지다 큰 벽에 부딪혀 봉착되다 또 거슬러 올라와 얽혀있는 생각의 끄나풀을 천천히 풀었다.
그렇게 수십의 방법으로 접근해보고, 다양한 노선을 타고 가상의 상황을 체험해보기도 하는 등
갖가지 방안으로 곱씹어보아도 최종적으로 귀결되는 곳은 항상 같은 방이었다.
어쩌면 이미 결론이 난 판이었는데 그 사실을 순순히 인정하기 싫었던걸지도 모른다.
아님 번복을 하고 싶었던걸지도 모르고, 정말로 판을 엎을 요량으로 각오를 다지기위해 오후 내내 시간을 끌어댄걸지도 모른다.
일말의 발악같이 말이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혹시, 어쩌면, 만약에, 가령 등등 각종 부사로 상황을 치장해보아도 답은 하나였다.
여태 고민한 시간이 무의미할 정도로 명료했다.
[성산대교]
결론이 지어진 생각을 대충 갈무리하고 뭉개고 있던 자리를 정리했다. 해는 진작에 져서 한밤이었다.
여의나루역에서 집으로 한번에 가는 버스가 있었지만 나는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걷는 것을 택했다. 괜한 오기였다.
이미 작살난 관절이 '버스 타, 이 미친갱이야' 거칠게 호소했지만 오늘은 왠지 이 고단함을 조금 더 즐기고 싶었다.
발뒷꿈치에서부터 시작된 통증은 무릎과 골반을 지나 척추까지 타고 골을 울려댔다.
걸음걸음마다 수반되는 고통에 괴로울만도 한데 이상하게 고양되는 기분에 전신이 나른해졌다.
돌이킬 수 없는 영역에 눈을 뜬것 같았다. 이 맛에 채찍 맞는갑다.
그렇게 낮과는 비교도 안되게 좁아진 보폭으로 더딘 행군을 이어갔다.
[신도림역]
귀환길에 오른지 세시간 반만에 신도림역에 도착했다.
감각이 없어진 하체때문에 거의 두배에 가까운 시간이 소요된 셈인데 집에 가면 실버보행기 먼저 주문해놔야 할 판이었다.
골반 아래부터는 내 의지가 미치지 않았다. 걷다가 두 다리가 '스돕'하면 나도 꼼짝없이 자리에 서서 '고'하기를 기다려야 했다.
현재 지점에서부터 보라매공원까지는 약 4.5키로.
평소의 컨디션이라면 한시간이면 충분히 찍고도 남는 거리지만 현재의 상태로는 완주를 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기때문에
남은 여정이 더없이 막막하게 느껴졌다.
오늘의 즉흥적인 일탈이 없었다면 지금쯤 또랑이와 나란히 누워 침대 지분율 다툼이나 하며 달콤한 휴식을 즐기고 있었을텐데,
그러고보니 울히 또당이 맘마는.......................................!!
장시간의 외출을 예상못하고 사료 그릇을 절반만 채워놓고 나왔는데 낭패였다.
끼니 부족하면 배식판 죄 엎어놓고 화장실 모래를 거실 바닥에 흩뿌려 사하라사막을 만들어놓는 등
자기주장이 매우 뚜렷한 쉑히인데,
오늘은 또 집구석을 얼마나 난장으로 만들어놨을까~ 기대가 되었다.
[던전]
이 터널 구간은 해 떠있는 낮에 걸어도 으스스한데 인적도 끊긴 야심한 시간대에 홀로 지나가려니
어깨가 잔뜩 곱아지고 절로 걸음이 빨라졌다. 공포에 질린 다리가 내 의지를 따르기 시작했다.
바닥에 삽 같은거 떨어져 있으면 품고 갈 요량으로 주변을 휘휘 둘러보며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데
멀찍이서 뭔가가 굉장한 속도로 다가오는 것이 포착되었다.
자전거인가싶어 반가운 마음에 한시름 놓으려는데 자전거는 어데가고 허공에 뜬 사람 형상이 무서운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무대장치팀에서 드라이아이스만 낭낭하게 깔아주면 그야말로 공포영화의 한장면이었다.
오늘 너무 무리해서 심신이 허해져 내가 헛걸보나 싶어 눈을 힘주어 감았다가 다시 떴다.
염병, 그 감았다 뜨는 찰나의 순간 정체불명의 형상은 내 지척까지 다가왔고, 나는 조금 지릴뻔했다.
헌데 자세히 보니 체구도 나보다 작은 젊은 여성이었고, 쏜살같이 스쳐지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쫓으니
'솔로휠'이라는 전동 외발자전거를 타고 있는 그냥 '사람'이었다.
야간에는 이마에 전조등을 달든가, 아님 도로공사할때 입는 형광조끼라도 좀 입어줬음 좋겠다ㅋㅋㅋㅋ 진심 까무러칠뻔 했다.
놀란 가슴을 추스리고 다시 길을 걸었다.
귀에 꽂은 이어폰을 습관처럼 만지작 거리며 지루한 고행을 이어나갔다.
랜덤설정인데 에미넴의 'stan'이 짧은 주기로 자꾸 선곡되어 재생되었다.
그렇잖아도 이미 한번 죽고 다시 태어난 기분인데 청각적 공포까지 더해지니 염통이 남아나질 않을것 같았다.
신경질적인 손놀림으로 다음곡-다음곡-다음곡을 터치하다 짧은 순간 액정에 뜬 앨범커버보고 심장 뱉을 뻔 했다.
리즈- 그댄 행복에 살텐데.
사실, 살짝 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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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카페 Mon~Sun, am12:00~am12:00
첫댓글 와 진짜 필력 본받고싶네요ㅋㅋㅋㅋㅋ근데 이분 여자분..?
와 어떻게 내가 자전거타고 가는길 그대로...! 보라매공원-도림천- 한강 저 루트까지ㅋㅋㅋㅋㅋㅋ
ㅋㅋㄱㄱㄱㄱㄱㄱㄱㄱ멋지십니다(엄지척!!!!)
ㅋㅋㅋㅋ글 지우지말아주세요
이번주에 떠날건데 참고해봐야겠습니다
아 마지막 앨범 사진 보고 침 튀어나올 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ㅋㅋㅋ 필력 부럽다
와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친듯이 웃으ㅕㄴ서봤네요 필력 굿굿
현서,원효대교북단 빨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여기서터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시촌에서 한번 양화대교까지 걸어볼까요...? 이 글을 보니.. 걷고 싶은 충동이 심하게 일어나네요...
ㅠㅠ화요일날 한강가고싶었는데..비온대요.. 왜저한테 이런 시련을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