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네(3)
- 전수일 감독의 인디영화 <엘 콘드르 파사> 촬영
지난 2월 초순에 대연 성당에서 전수일 감독의 여덟 번 째 인디 영화 <엘 콘드로 파사> 영화 촬영을 했다. '인디' 영화란 '독립영화'로 상업영화에 대비되는 용어로, 상업 자본에 휘둘려 작가의식보다는 관객의 재미 충족 욕구에 맞춰 찍는 일반 영화가 아니라, 작가의 영화 철학이나 주제의식을 선명하게 나타내는 영화로 상업자본에 휘둘리지 않는 영화를 말한다. 그래서 '저예산 독립영화' 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화 제작비 총 금액이 3억 원 정보밖에 되지 않는데, 일반 상업영화(평균제작비 40억)의 일개 주연 배우 한 사람의 개런티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영화 촬영 출연자 대기실로 이용되고 있는 대연 성당 사제관 안의 어느 신부님 방안>
이 영화의 감독인 전수일 선생은 현재 경성대학교 연극영화과의 영화 학부 교수이다. 그는 경성대학교 연극영화과 제1기(1980년 창설) 졸업생으로 파리 7대학에 유학하여 영화 석사 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현재는 모교의 대학교수로 재직 중이다. 첫번 째 영화는 <새는 페곡선을 그린다>(2002)라는 작품으로 영화배우 설경구가 무명시절에 찍은 영화이다. 그의 작품으로는 <영도다리>(2009), <핑크>(2011),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2008), <검은 땅의 소녀와>(2007) 등의 작품을 남겼다. 이번 영화에는 그의경성대학교 연극영화과 두 해 후배인 조재현이 노 개런티로 출연하고 있다. 조재현 정도면 일반 상업영화에서는 개런티로 3억 정도를 받는다. 그는 주인공 박신부 역할을 맡고 있는데 육체적 관계인 성적 접촉과 정신적인 종교적 순결성 사이에서 갈등하고 번민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는 곧 국내 촬영을 끝내고 혼자사 스탭과 함께 페루의 쿠스코에 있는 마추픽추에서 촬영 예정이다.
<노신부 역할로 분장을 끝낸 뒤 촬영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필자. 로만 칼라가 인상적이다.>
필자인 나는 이번 영화인<엘 콘도르 파사>에서 조재현이 맡고 있는 박신부의 상대역을 맡고 있다. '엘 콘도르 파사'는 '철새는 날아가고'라는 말로 번역되는데 1970년대에 사이먼 앤 가펑클이 불러 히트했던 곡이다. 이 노래는 페루의 민요곡으로 '콘도르'는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남미의 큰 독수리인 콘도르는 잉카인들에게 신성시되어온 안데스 산맥의 바위산에 서식하는 독수리이다. 잉카인들은 그들의 영웅이 죽으면 콘도르로 부활한다고 믿고 있다 한다. 내가 역할을 맡고 있는 노신부는 치매 기운이 있는 천진난만한 신부로 수하에 있는 박신부의 내면적인 모습을 상징하고 있는 인물인 것 같다. 전수일 감독은 나의 연기보다는 나의 이미지가 작중인물인 노신부와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조감독을 통해 섭외가 들어 왔었다. 나는 또 내 막내 딸이 경성대학교 연극영화과에서 영화를 전공했기에 츨연료와는 아무 상관없이 출연하기로 마음 먹고 흔쾌히 수락했다.
<사제관 신부 숙소의 벽에 붙어 있는 그리스도 고상의 십자가와 교황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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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32. 성당 안 실내. 새벽(5 cut)
C1. F.S (박신부 뒷모습) 어두운 성당 안에 홀로 앉아 있는 박신부. 새벽빛이 성당 내부를 비친다.
C2.W.S(박신부 뒷모습) 노신부가 성당 안으로 들어와 박신부에게 다가가 옆에 선다. 노신부를 올려 보는 박신부.
C3. B.S (노신부 정면) 노신부가 슬픈 얼굴이다.
노신부 : 신부님. 제 고해성사 좀 들어주세요. 저는 죄를 너무 많이 졌어요. 신부님, 고해하게 해 주세요.
C4. B.S (박신부 정면) 박신부 놀라서
박신부 : 신부님, 왜 이러세요?
C5. F.S 박신부가 노신부를 데리고 성당 밖으로 나간다.
노신부 : 저는 고해 해야 해요. 신부님, 도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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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 째 촬영은 밤 9시 가까이 되자 시작되었다. 밤 미사가 오후 8시에 끝나고 다시 조명과 녹음, 그리고 반사판 설치와 촬영 장비 설치하는데 30분이나 걸렸다. 나는 첫 장면 촬영 때부터 계속 제지를 당했다. 연기와 동작은 무난한데 대사가 너무 글을 읽는 것 같아 어색하다는 것이다. 조감독은 다시 땀을 뻘뻘 흘리며 나의 대사 지도에 여념이 없다. 나중에 감독은 몇 번 계속해도 대사가 안 된다면 따로 더빙 하는 수밖에 없다고 엄포를 놓는다. 상대역인 조재현은 내가 나이도 훨씬 많고 연극계 선배이기 때문에 말은 못하고 연신 대사를 친다. 속은 아마 울화통이 터져 화가 치밀어 오를지도 모른다. 겨우 촬영이 끝나고 나는 분장도 지우지 못하고, 신부복도 그대로 입은 채 운전하여 집으로 향했다. 중간에 대연 로터리를 지나 음주 단속에 걸렸다. 경찰들은 신부고 뭐고 간에 음주 측정기를 들이댄다. 허기야 신부도 술을 마시지 않는가. 경찰관이 음주 측정기를 들이대며 로만 칼라를 확인하고 겸연쩍에 웃는다. 나도 웃는다.
<사제관 복도 오른편에 있는 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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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41. 사제관 식당. 실내. 밤(2cut)
C1. B.S (박신부 시선) 음식을 앞에 두고 식당에 앉아 있는 노신부가 졸고 있다. 잠시 후 깨어 나서 국을 한 숟가락 떠 먹고 다시 잠에 빠져든다. 아이 같은 모습이다.
C2. M.S (박신부 정면. 노신부 뒷면) 노신부와 조금 떨어져 식사를 하던 박신부가 졸고 있는 노신부의 모습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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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도 역시 대연성당 사제관 식당과 뜰, 그리고 신부 숙소에서 촬영되었다. 오후에 두 장면을 촬영하고 저녁 식사를 했다. 그리고 밤에 사제관 식사 장면을 촬영했다. 이제는 대사 발성에 클레임이 걸리지 않아 물 흐르듯 촬영에 임한다. 'B.S'(바스트 샷)는 카메라 촬영의 용어로 인물의 가슴 이상을 찍는다고 말이고, 'M. S'(미디엄 샷)는 인물의 허리 이상의 상반신 촬영이고, 'F. S'(풀 샷)는 인물의 발끝에서 머리 끝 이상의 전체를 찍는다는 용어이다. 영화는 연극과 달리 카메라로 하나 하나씩 끊어서 촬영을 하고 연기하기 때문에 연극처럼 감정과 정서가 잘 잡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그리고 영화 촬영 역시 연극과 달리 끊임없이 기다리는 일에 익숙해야 한다. 한두명의 연기를 위해 몇 십 명의 스탭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협동성은 연극이나 영화나 매양 같다. 그런데 근본적인 차이는 연극은 살아있는 배우가 무대 위에서 살아 있는 '지금 이곳'의 관객 앞에서 연기하는 직접적이고 현장성이 강한 쌍 방향의 예술이라면, 영화는 살아있는 관객이 스크린 앞에서 일방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일방적인 특색이 있다.
<이틀간의 영화 촬영을 끝내고 돌아오던 날 밤에 본 적막한 달의 모습>
공간 소극장에서 희곡창작 교실 제7기 강의를 하던 중에 영화 촬영 강행군을 했다. 영화 촬영을 끝내고 난 며칠 뒤 출연료로 50만 원이 입금되었다. 사실은 받지 말아야 할 눈물 어리고 어려운 돈인지라 눈시울이 시큰해 왔다. 출연료를 받은 기념으로 다음 날 희곡창작 교실 수강생들에게 점심 한 끼를 대접했다. <엘 콘도르 파사>는 페루 촬영이 끝나면 후반 작업에 들어간다. 아마 2012년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때에 선을 보일 것이다. 나도 내가 기다려진다. 김문홍은 김문홍이라는 사람이 스크린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지금 나는 마지막 작품이라는 각오로 장편 아동소설 <임금님의 귀는 크지 않다>라는 작품 창작을 준비하고 있다. 첫 번째 소제목은 '대숲에 봄이 왔다'로 정해 놓았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그 작품을 꼭 한번 봐야겠네요~ ^^
와, 멋집니다. 노신부 분장이 잘 어울립니다. 선생님, 먼저 축하드리구요. 딸이 선생님 싸인 받아 오랍니다ㅋㅋ
몇 해 전에 엘콘도파사를 통기타 반주에 맞춰 오카리나 연주한 게 생각납니다. 아마, 영화에도 이 곡이 나오겠지요? 제목과 내용이 어떻게 어우러질지 기대됩니다.
대단하십니다.
훌륭한 배우느낌이 옵니다,
와! 멋져요. 신부님으로 분장하니 넘 어울리십니다.
이 영화음악은 젊은 날 많이 들었어요.
이제 영화계까지 접수하시다니..
ㅎㅎ 사인 받아두어야겠습니다.
노신부님의 모습 상상이상입니다.^^*
<임금님의 귀는 크지 않다>가 필생의 대작이 되길 기원합니다.
김형의 역할이 많이 나오면 더 좋을 텐데.. 영화가 기대됩니다.
우리 동네에서 촬영하셨네요. 대연성당 앞을 지나다가 영화촬영하는 차가 대연성당 안으로 들어가는걸 보았어요.
김문홍 신부님 멋지십니다. 출연작을 선보이는 부산국제영화제가 벌써 기다려집니다.
우와~!
올해 국제영화제를 기다리는 즐거움이 하나 더 늘었습니다. ^^
선생님이 어떻게 나올지 너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