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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크' 관리의 첫 걸음은 한-러 간 '진지한 물밑 대화'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ㆍ전 주러시아 공사
10월 중순 우크라이나 측이 북한군의 파병을 주장하자 한국 정부는 바로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하였고 이후 러시아에 대해 북한군의 즉각적인 철수 요구,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 지원 검토, 북한군 포로 심문을 위한 참관단 또는 분석관 파견, 나토와의 공조 강화 등 대응 방안이 나왔다. 현재로서는 러시아 영토에 들어간 일단의 북한 병력의 임무가 무엇인지 드러나지 않았지만, 우크라이나 정부는 나토의 추가 지원을 이끌어내고 한국으로부터는 살상무기 지원을 기대하며 북한의 파병을 부각시키고 있다. 한국 정부는 북한군 파병을 지난 6월 체결된 ‘러-북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 조약’이 규정하고 있는 군사협력이 본격화하는 조짐으로 보고 동시에 러시아가 파병의 대가로 북한에 핵무기와 미사일 관련 고도 기술을 넘겨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5일 크렘린궁 집무실에서 화상으로 러시아 안보협의회 상임 위원들과 화상 회의를 갖고 있다. 2024.10.25. TASS 연합뉴스
방어용이든 공격용이든 살상 무기를 지원한다고 해도 한국의 지원만 갖고는 러시아군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된다. 물론 우크라이나군의 전력은 증강될 것이나, 이른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무기 지원이 러시아의 행동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다. 그리고 무기를 일단 한번 지원하면 전쟁 상황인 만큼 우크라이나 측은 계속 지원을 요청할 것이고 한국이 그러한 요청에 응하면 한러 관계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게다가 러시아는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이 무기를 지원하는 경우 보복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는데 보복의 내용이 어떤 것일지 예단할 수 없으나 한국으로서는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무기 지원에 대한 국민 여론에도 귀를 기울어야 하지 않을까? 지난 22~23일 한국 갤럽이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내 반러시아 의견이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에 대해서 82%가 반대하였다.
북한군 포로의 심문을 위해 분석관을 보내겠다는 것도 현재 실제로 북한군이 전투에 참여하였는지 확인되지도 않았는데 우리가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적절한지 모르겠다. 우크라이나 측의 요청이 있는 경우 검토하면 될 것이다. 또한 소수의 비전투원이라 할지라도 전쟁 상황인 만큼 ‘파병’에 해당될 수 있고 그렇다면 헌법상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2023년 5월 18일 러시아 국방부 언론 서비스가 공개한 영상. 러시아 152mm 자주포가 우크라이나 진지를 향해 포탄을 발사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키예프의 예비군과 군수품을 고갈시키기 위해 우크라이나의 여러 곳을 공격했다. 2023.5.18. AP, 연합뉴스
한국이 가장 우려하는 바는 러시아가 북한에 핵무기와 미사일 관련 고도 기술을 이전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막는 것이 대러 외교의 최우선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래 2023년 9월 김정일의 극동 러시아 방문, 2024년 6월 푸틴의 평양 방문 및 러-북 조약 체결에 이어 최근 크렘린 대변인에 따르면 내년에 김정일의 모스크바 방문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등 러-북 양국이 급속도로 밀착하는 동안에 한국은 수수방관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 그간 한국은 지속해서 러시아의 침략을 규탄하면서 각종 제재를 부과하였다. 또한 고위 인사 교류가 전무하였으며 그 결과 양국 간 심도 있는 대화가 거의 없었다. 그간 때때로 양국 외교부 대변인들이 거친 언사를 주고받은 것이 전부이고 지난해 가을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 직후로 예정되었다가 올 초에야 성사된 러시아 외교 차관의 방한도 실질적으로 대화의 물꼬를 트지 못하였다. 한마디로 말해 지난 약 3년간 한-러 양국 사이에는 외교가 실종되었다.
어차피 국가란 도덕이 아니라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이다. 어떤 명분도 국익보다 우선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한국의 안보 이익이 큰 타격을 입어서는 안 된다. 현 단계에서 결과를 낙관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제라도 러시아와의 진지하고도 솔직한 물밑 대화를 통해 러-북 군사협력이 한국의 안보를 저해하게 되는 것을 한국으로서는 결코 묵과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히고 러시아의 그러한 조치를 차단시켜야 한다. 지난 6월 체결된 러-북 조약에 대해서도 조항별로 상세하고도 분명한 해명을 요구하여야 할 것이다. 물론 협의 과정에서 양측 간에 타협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의 국익 관점에서 북한에 고도 군사 기술을 이전하는 것이 결코 불가피한 선택은 아닐 것이며 그간 러 측으로부터 양국 관계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이 여러 차례 있었음을 생각하면 그러한 물밑 대화를 일단 시도해 볼 만하다. 지금이야말로 외교의 복원이 절실한 시점이다.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교 차관이 28일 유엔 총회장에서 열린 러시아 외교부 기자회견장에 참석해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 장관의 말을 듣고 있다. 2024.9.28. TASS 연합뉴스
출처 :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