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이탈리아 여행기 3부 중에 폼페이에 대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가. 폼페이
로마에서 폼페이까지는 버스로 2시간 정도 소요되는 것 같다. 이동거리를 생각해서 가이드는 아침 7시에 버스를 출발시켜서 우리는 호텔에서 일찍 조식을 마치고 차에 탑승하였다.
지도를 보면 로마는 이탈리아 중서부에 있고 폼페이는 중남부 지역이다. 이탈리아는 부유층은 북부에 있고 남부는 비교적으로 서민층이 거주하는 곳이라고 가이드가 말했다.
폼페이(이탈리아어: Pompeii)는 고대 로마의 도시이다.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주 나폴리 인근으로, 현재 행정 구역으로는 나폴리 광역시 폼페이 코무네에 속한다. 서기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산 분화로 인근의 헤르쿨라네움 등과 함께 화산재와 분석에 묻혀 파괴되었다. 농업과 상업의 중심지이자, 로마 귀족들의 휴양지였다.
서기 79년 8월 24일 오후 1시,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연안에 우뚝 솟아 있는 베수비오 화산이 돌연 폭발하는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거대한 폭발하고 함께 검은 구름이 분출되면서 화산이 분화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화산은 엄청난 양의 화산재와 화산분출물을 뿜어내면서 인근 도시로 쏟아져내렸다. 나폴리 남동부에 자리잡고 있던 폼페이는 이 화산 폭발로 커다란 피해를 입고 소멸한 도시 중 하나다. 하늘에서 비오듯 쏟아져내리는 엄청난 양의 흙과 돌은 순식간에 폼페이를 뒤덮어버렸다. 운 좋게 도망친 사람들도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늦은 사람들은 피할 겨를도 없이 지상을 뒤덮은 고온 가스와 열구름에 질식하거나 뜨거운 열에 의해 타죽고 말았다.
이 폭발로 당시 폼페이 인구의 약 10퍼센트인 약 2,000명이 도시와 운명을 함께 했다고 한다. 폼페이는 B.C. 89년에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간 이후 철저하게 로마화가 진행된 도시였으며, 로마의 상류계급, 즉 특권층 사람들이 호화 별장을 건설했던 휴양지로, 지금의 베벌리힐스에 버금갈 정도였다. 화산이 폭발하기 전인 63년 2월에 대지진이 일어났음에도 도시는 착실하게 재건되고 있었지만, 그로부터 16년 뒤 도시 전체는 화산재 밑에 묻혀버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완전히 잊혀졌다. 폼페이 멸망의 참극에 대해서는 로마의 정치가 소(小)플리니우스가 역사가 타키투스에서 보낸 편지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소플리니우스는 베수비오 화산에서 4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나폴리만 입구 미네눔에 머물고 있었는데, 폭발 당일 소플리니우스의 어머니가 베수비오 화산 상공에 이상한 모양의 거대한 구름이 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소(小)플리니우스에게 알려주었다. 소(小)플리니우스는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고 재빨리 어머니와 함께 먼 곳으로 피난을 떠났다. 후에 그는 편지 속에서 그때의 모습을 상세하게 묘사했다.
그리고 그의 숙부인 플리니우스는 함대의 제독으로 군함을 타고 나가 구조 활동을 펼쳤지만 독성이 강한 화산 가스에 질식해 그만 죽고 말았다.
로마 황제 티투스는 폼페이 참극에 대해 보고를 받고 곧바로 구제 조치를 취했지만, 피해 규모가 너무나 커서 화산 분출물에 의해 도시는 완전히 파묻혀버리고 말았다. 로마 황제 티투스까지 나서서 폼페이의 몰락을 막아보려 했지만 폼페이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역사에 퇴장했던 폼페이가 다시 역사에 등장한 것은 1592년이었다. 폼페이 위를 가로지르는 운하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건물과 회화 작품들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이런 우연한 계기로 폼페이의 소재가 밝혀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는 본격적인 발굴을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1748년에는 당시 이탈리아를 지배하고 있던 프랑스의 부르봉 왕조가 독점 사업으로 폼페이에 대한 발굴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의 발굴은 약탈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아름다운 출토품만이 중요하게 취급될 뿐 나머지 유물들은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사장되고 말았다. 또 모자이크나 벽화 같은 폼페이 양식을 보여주는 미술품들도 충분한 조사도 없이 모조리 프랑스 왕궁으로 실려가버렸다.
1861년 이탈리아가 통일되면서 폼페이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국왕 빅토르 에마뉴엘 2세는 고고학자 주세페 피오렐리를 발굴대장으로 임명하고, 조직적인 발굴을 지시했다. 이렇게 해서 유적에 대한 구획 정리와 함께 본격적인 수리와 보존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발굴단은 유적들이 층층이 쌓여 있는 빈 공간에 석고를 부어넣어 당시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재현하는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하기도 했다.
그 후에도 폼페이 발굴은 계속되어 현재는 도시의 약 4/5가 모습을 드러낸 상태이다. 이곳에서 나온 많은 출토품들은 현재 나폴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폼페이의 내역은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화보로 보자.
아직 채 동이 트기 전에 별을 보고 출발하였더니 약 30분 정도 버스가 달리고 나서야 일출이 되었다. 역시 여행은 부지런해야 할 수 있다. 폼페이시는 면적 172.2㎢, 인구는 25,311명이다(2020년 추계).
폼페이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려보니 폼페이 화산이 눈에 들어온다. 베수비오 화산이다.
유적지를 관람하기 위해서 매표소로 이동하는 도중에 고가다리 및 굴다리를 지나는데 굴다리 앞에 선인장과 아취형 다리, 그리고 파인지 마늘인지 밭에 심어놓은 채소와 어울어져 제법 괜찮은 그림을 제공해 주고 있길래 카메라에 담았다.
굴다리를 지나니 이번엔 돌담이 나타나고 돌담을 덮은 나팔꽃, 어릴 때 보았던 나팔꽃은 붉은색이었는데 그날은 청자색 나팔꽃을 보았다.
가이드가 대표로 표를 구입하고 우리는 줄을 서서 들어갔다.
약 2000년 전의 집들이 이렇게 건축되었다니 얼마나 놀라운 건축기술인가? 집은 물론이고 도로와 관개수로도 요즘 아스팔트 도로보다 더 튼튼하게 닦아 놓았으니 로마인들의 건축술이 오늘날에도 앞서고 있다.
사진에서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는 바닥이 관개수로이다. 이 수로를 이용하여 식수와 농사를 해결했다고 추정된다.
이곳은 신을 모시던 신전이다.
당시 정치, 경제의 중심이 된 곳이 포럼이다. 뒤의 배경으로 베수비오 화산이 자리잡고 있어서 한국의 무당이나 풍수장이들이 보면 이곳이 명당이라고 할 것 같다.
유적지 투어를 마치고 근처에 폼페이 박물관에 들러 발굴된 예술품들과 화산재에 덮혀 죽은 사람들을 석고로 재현한 작품을 관람하였다.
약 2000년 전의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색상이 살아 있다.
화산재와 분석에 덮혀 사람과 가축이 묻혀 죽은 것이 세월이 지나며 살과 뼈가 없어지고 화석처럼 빈 공간에 석고를 불어넣어 본을 떠낸 것이 박물관에 전시된 것이다.
화산 폭발로 아마 일가족이 참변을 당한 것 같다.
저 화산이 또 언제 터질지 모른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음 편에서 나폴리와 카프리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첫댓글 읽는 사람도 한참 걸리는데 쓰는 사람은?
얼마나 걸렸을까요.
사진도 잘 찍으시니 디카시도 한번 써보시기를요.
https://cafe.daum.net/sihanull/9o0Z/2206?svc=cafeapi
ㅎㅎ자작시방도 못채우고 있는 걸요.
@겨울등대/이종곤
자작시와 또 다른 재미가 있습니다. ㅎㅎㅎ
사진도 찍고 시도 쓰고
일석이조 아닌가요. 아,
재미도 있으니 일석삼조로군요.
@흐르는 물/정호순 자작시 방에 올린 시도 그 곳에 올려도 됩니까?
@겨울등대/이종곤 사진 풍경과 같이 올리시면 되지요.
여행에서 찍은 사진 중 마음에 드는 걸로
사진을 위에 시를 아래에 배치하면 포토시가 되고요...
포토시 중에 사진 속에 시를 넣는 것도 풍경시의 일종이고요.
풍경시가 있고요. 사진 시가 있고
또 디카시가 있는데요.
@흐르는 물/정호순 디카시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습니다.
제목을 제일 위에다 쓰고
다음 사진 이미지
아래에 이미지에 맞는 언술(진술)을 하면 되는데요.
한 줄도 좋고 두 줄을 써도 되지만
단 5행을 넘겨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 디카시에 있습니다.
@흐르는 물/정호순 풍경시, 사진시, 디카시가 어떻게 다릅니까?
@흐르는 물/정호순 제가 풍경 시방에 올려놓은 디카시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https://cafe.daum.net/sihanull/9o0Z/2210?svc=cafeapi
@겨울등대/이종곤 풍경시는 시의 내용과 맞아도 되고 안 맞아도 되고
내가 마음에 드는 사진에 시를 넣으면 되고요...
사진 시는 찍은 사진을 보고 사진의 이미지를 시화한 것이고요.
디카시는 위에 제가 설명한 대로 입니다.
디카시는 이미지를 찍고 순간으로 떠오른 생각을 언술하면 되는 것인데
사진 이미지를 보고 그대로 쓰는 게 아니라 사진 이미지 그 너머를 보는 것이지요.
꼭 지켜야 할 규칙 중 반드시 자신이 찍은 사진으로 쓴 시를 써야
디카시 입니다. 남이 찍은 사진을 가져와서 쓰면 안 된다고 합니다.
@흐르는 물/정호순 지금 올리고 있는 여행기가 9부까지 있는데 3부가 분량이 많아 2회로 나눠 게재되니 10회에 걸쳐 올리게 됩니다. 이 여행기가 끝나는 대로 디카시나 풍경시 또는 사진시를 시도해 보겠습니다.^^
@겨울등대/이종곤 출판사의 생존전략.꼬드김인지는 몰라도 요즘 너도 나도 전자책이니 뭐니 책을 많이 내던데 이 시인님의 여행기를 책으로 내면 허접한 어떤 책보다 알차겠습니다.
전자책으로 한번 내보시지요.
@흐르는 물/정호순 자료를 모으고 있는데 다 모으면 전자책에 대해서 다시 문의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