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쓰는 표현도 아니고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기 그닥 좋은 표현은 아닙니다만 한 인물을 두고 '싸구려'라던가 '값싸다'라고 표현할 땐 그 인물의 행동거지나 가치관에 존중받을 만한 부분이 없다거나 지탄받을 인물이란 뜻이 내포되어 있을 것입니다. 두 남자의 마음을 모두 유린하는 양다리, 성공을 위해서는 미인계와 거짓말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드라마 '미스리플리'의 주인공 장미리(이다해)에 대한 평가가 '값싼 캐릭터' 혹은 '저질 악녀'입니다. 악녀에 무슨 품질이 있겠습니까만
도무지 이해해주고 싶지 않은 악행이고 거짓말이란 뜻이겠죠.
처음에는 주인공 장미리의 인생이 지나치게 비참해 학력 위조를 하게 되는 과정이설득력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제는 MBC를 제외한 양방송국의 두 거짓말 시리즈,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허영기있는 거짓말과 '동안미녀'의 생존을 위한 거짓말과는 차원이 다른, '값싼' 거짓말로 평가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녀가'리플리 증후군' 환자라도 그녀의 거짓말을 지켜봐야하는 시청자로서 장미리는 도저히 옹호할 수 없는 캐릭터입니다. 감정이입이 되지 않으니 불쌍하단 생각은 들어도 공감이 가지 않습니다.
장미리의 새로운 타겟이 된 남자 송유현
그닥 좋아하지 않는 또다른 표현 중 하나가 '호구'란 단어인데 극중 장명훈(김승우)과 송유현(박유천), 그리고 문희주(강혜정)가 장미리에게는 '호구'같은 인물들입니다. 두 남자는 여자가 양다리를 걸치고 있음에도 사랑하고 친구란 여자는 미리의 범죄를 알고 있음에도 당하기만 합니다. 아무리 장미리의 여우짓이 빼어나다지만 세 사람이 모두 그녀의 장단에 놀아난다는 건 어쩐지 마뜩치 않습니다. 즉
네 명의 주인공 모두가 유쾌한 감정 보단 불쾌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셈입니다.
차라리 실제 모델이 된 인물의 심리를 묘사했다면 '진짜로 일어난 일'이란 이유로 집중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장미리의 삶이 원칙을 벗어난 건 어쩔 수 없다 치지만
웃음을 팔아 성공하겠다는 그녀의 가치관은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극중 히라야마(김정태)가 장미리를 지칭할 때 쓰는 '술집 애'라는 용어 때문에 여성들에 대한 폄하와 편견이 드라마를 지배하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하기까지 합니다. 거짓말과 미인계로 타인의 성공까지 빼앗으려 드는, 그런 존재가 여성이라고 묘사하고 싶은 걸까요.
드라마, 마치 유흥가의 손님 호객하듯
'막장 드라마'와 '재미있는 통속극'은 정말 한끝 차이입니다. 이야기가 재미있고 시청자들의 공감을 살 수 있으면 최소한 막장 드라마라는 비난은 면하는데 같은 소재를 사용하고도 호감을 받지 못하면 '막장'이 되버리는 것이죠. '미스 리플리'에는 흔히 비난받던 코드들이 대거 등장했습니다. 신데렐라, 출생의 비밀, 운명의 신도 울고갈 드라마틱한 인생, 나무랄 곳이 전혀 없는 완벽한 남자, 양다리, 베드신, 악녀 등등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코드를 모두 활용했습니다.
빨간 드레스를 입고
파티장을 활보하며 두 남자 사이를 오가는 장미리는 충분히 화제거리입니다. 호텔 A의 대표가 될 장명훈에게 '꼬리를 치다' 전세계 호텔을 경영하는 몬도그룹 후계자에게 고개를 돌리는 그녀는 '악녀'라며 욕을 먹기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 차지하고 보려는 그녀에게 당연히 악담이 쏟아지기 마련이고 그 때문에 시청률을 잡아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문제는 그녀의 이런 행보가 너무 '싸구려 전단지'를 활용한 호객행위로 여겨진다는 점인데 히라야마가 악행의 이유가 되기엔 미리의 행동은 지나치게 앞서 나갔습니다.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거짓말까지는 이해받을 수 있지만 그 이상의 부와 명예를 위해 끊임없이 날아오르려는 건 설득력을 주지 못합니다. '비난하며 시청하게 된다'는 막장드라마의 법칙처럼 '어떻게 망가지나 두고 보자'는 심정이 아닌 이상 시청률을 확보하긴 힘들겠죠.
흥미로운 건 시청자도 이런 원색적인 '유혹'에 정이 떨어지려 하는데
극중 두 남자는 미리에게 눈을 떼지 못하며 계속 해서 속아넘어가기만 한다는 것입니다. 산전수전 다 겪고 광기어린(?) 아내와 이혼까지 한 장명훈은 의사일을 그만 두고 호텔에 뛰어 들었지만 전문 경영인 못지 않은 수완을 보여준 인물입니다. 일에 관해서는 냉정하지만 어머니를 비롯한 소중한 사람들을 대할 때는 따뜻한 그 남자가 상대방의 감정 변화와 거짓말을 눈치채지 못한다는 게 어쩐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두 남자 모두 놓치고 싶지 않은 장미리의 전략적 연애
호텔 재벌 후계자로 어릴 때는 유괴같은 범죄에 시달렸을 법도 한 송유현이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돈과 상관없이 만난 여자를 만나고 싶어한다는 건 이해가지만
속셈을 가지고 자신에게 접근한 여자를 못 알아볼 정도로 어수룩하다는 것도 희한한 일입니다. 직접 아르바이트를 해 학비를 마련했다는 그가 사람보는 눈이 그리 없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죠. 미리가 정체불명의 인물에게 쫓기는 장면을 보고도 의심하지 않을 만큼 순진한 청년이라는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동안 아무리 신분을 숨겨도 친분을 쌓고 싶어 접근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을텐데 말입니다.
그 두 사람이 그리 맥을 못추는 건 오로지 '장미리'가 너무나 사랑스럽고 매력적이라
두 남자가 사랑에 빠져 콩깍지가 씌웠단 이유 말고는 설명이 안됩니다. 아무리 모든 멜로 드라마가 '사랑'이라는 가정에서 시작한다지만 한 여자 앞에서만 바보가 되는 두 남자를 이해하기 힘들 수 밖에 없겠죠. 마찬가지로 어쩐지 이화(최명길)와 불륜으로 유현의 엄마를 등한시했다는 느낌이 드는 남자 송인수(장용)가 이화의 욕심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도 신기하기만 하네요.
희주의 솔직한 반응 언제 볼 수 있나
극중에서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답답한 인물이 바로 문희주입니다. 아무리 긍정적인 무사태평 성격이라지만 자신 때문에 불행을 뒤집어써야했던 장미리의 불행이 마음 편하지 만은 않을 것은 분명합니다. 길가던 할머니가 힘들어하자 자신의 물건을 흘리면서까지 도와주는 착한 성격의 희주는 자신을 무시하고 가끔 함부로 대하기까지 하는 미리에게 그닥 못된 소릴 하지 않습니다. 누구든 도와줘야하고 착하게 사는 희주는 천사는 아닐지 몰라도 착한 여자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미리에 비해 고생을 덜한 희주의 '인심'이나 '선량함'은 지금까지 그닥 도전을 받지 않았다고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것을 모두 빼앗길 위기나 죽도록 발버둥쳐서 살아나야하는 생존의 위기를 겪어본 적이 없기에 아무리 착하게 살고 싶어도 자신의 모든 걸 빼앗기기 싫은 그런 심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희주가 거짓말을 하며 자신의 명예도, 사랑도 모두 빼앗아가는 미리에게 자연스러운 위기의식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다가 내 인생 전부가 도둑질 당할 수도 있겠다는 그런 심리 말입니다.
위에서도 사용한 '호구'라는 표현처럼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미리의 욕심에 당하고만 있는데 희주가 그런 솔직하고 원초적인 자신의 심리를 드러내는 날 미리에 대한 반격이 시작되지 않을까요. 송유현이 그토록 바라던 여자, 자신이 몬도 그룹 후계자란 걸 모르는 상태에서도 사랑해줄 수 있는 그런 여자는 바로 문희주였습니다. 이건 뭐 인어공주도 아닌데 송유현이 왕자라는 걸 알면서도 접근한 장미리를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다니 답답하기 이를 때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