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3일 전환 ‘한 사람의 생명이 온 세상보다 소중합니다.’ 어느 수녀원 현관 벽에 붙어 있던 글이다. 3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걸 보면 수도 생활을 막 시작한 나에게 그 내용이 충격이었던 같다. 그 수녀님들은 미혼모와 매춘 여성들의 복지를 위해 일하고 있었다. 아흔아홉 마리는 그대로 놓아둔 채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착한 목자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작지만 아주 강력한 주장이다. 그 한 마리 양에게는 당연하지만 아흔아홉 마리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일 거다.
예수님은 군대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수의 더러운 영에게 사로잡혀 있는 이를 자유롭게 해주셨다. 그런데 그 대가가 수천 마리 돼지를 잃는 거였다. 지금 시세로 약 10억 원어치다. 쇠사슬로도 묶어 둘 수 없었던 동네 골칫거리 그 사람을 구하는 대가였다. 평소 사람들 세상살이에 관심이 많으셨던 예수님이 그곳이 아무리 이방인 지역이어도 돼지 한 마리 가격 정도는 대충 알고 계셨을 거다. 그분에게는 10억 원보다 그 골칫거리 한 사람이 더 소중했다. 예수님은 그래서 그 동네에 들어가실 수 없었다. 거기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맞아들일 수 없었다(마르 5,17).
어느 앵커 말마따나 그 조그만 가방이 왜 수백만 원이나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내 눈에는 그게 그건데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명품이라고 부르고 외국에서는 사치품이라고 부른다. 최고급 재료로 명인이 정성 들여 만들었으니 질기고 오래 가겠지만 그래봐야 가방이다. 수녀나 비구니는 천으로 만든 가방을 들고 다닌다. 오늘 히브리서는 하느님 때문에 박해받고 기꺼이 목숨을 내놓은 이들에게 세상이 어떤 것이었는지 아주 간단히 말한다. “그들에게는 세상이 가치 없는 곳이었습니다(히브 11,38).” 예수님에게는 사치품 가방이나 천 가방이나 그저 다 같은 가방일 거다. 그분에게 소중했던 건 한 사람 한 사람이었다. 그들은 모두 당신이 손수 빚어 만드신 당신 소유이고 그들을 되돌려 받으려고 목숨까지 내놓으신다. 그중에 단 하나도 잃지 않으려 하신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마태 18,14).”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 예수님 제자로 살아가는 건 참 큰 도전이다. 그것이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이라서도 그렇지만, 나의 가치체계가 완전히 뒤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치와 실용을 구분하는 정도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공리(公利), 공공의 이익을 위해 소외되는 소수의 작은 이들을 기억하고 그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건 쉽지 않다. 선진국일수록 그런 이들의 복지를 챙기는 제도가 있다. 그 국가의 경제적 능력보다는 대중의 마음이고 가치체계다. 그건 비행기나 대중 시설에서 우는 아기를 달래느라 마음고생하는 젊은 엄마에게 다가와 위로하는 마음 같은 거다. 그런 공동체, 그런 나라에서 산다는 건 정말 자랑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언젠가는 나도 그 소수의 무리에 속하게 될 거니까.
예수님, 오늘도 회개하고 복음을 믿습니다. 생각과 마음을 바꾸고 회개한 그 마음으로 세상을 대합니다. 주님께는 자연스러운 일이 제게는 도전이고 고통입니다. 그럴 때마다 은총으로 도와주셔서 주님 마음과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한 사람도 빠뜨리거나 가려지는 일 없게 눈과 마음을 열게 도와주소서. 아멘. |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