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교육인적자원부는 바쁘다. 연일 교육전문가, 학부모, 교육부 직원 등과 함께 교육개발원이 마련한 사교육비 경감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교육비로 인한 국민들의 고통은 그다지 줄어들 것 같지 않다.
사교육비의 주범인 고교평준화는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이것저것 잔가지만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평준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적어도 교육 당국자들에게는 신성불가침한 것처럼 보인다. 평준화를 보완하기 위해 서울 강북지역에 특목고와 자립형 사립고 등을 세우자는 서울시와 경제부처의 의견에 대해서도 교육청과 교육부는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1973년 정부가 고교평준화 정책을 도입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학생들을 입시지옥에서 풀어줘 학교를 정상화시키고, ‘망국적 과외병을 잡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30년이 흐른 지금 입시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사교육비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으며, 학교는 정상화되기는커녕 ‘학교붕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다.
서울 시내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어떤 선생님은 요즘 학교실정에 대해 이렇게 하소연한다. “현재와 같은 평준화 체제에서는 솔직히 수업할 수 없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교실에 초등학교 5학년 수준의 수학문제도 풀지 못하는 학생과 대학교 수준의 문제까지도 척척 푸는 학생이 함께 앉아 있습니다. 교과서 진도에 맞춰 수업은 하고 있지만, 귀를 기울이는 학생은 거의 없습니다. 상당수의 학생이 이미 학원에서 다 배우고 옵니다.”
최근에 서울시내 20여 곳의 인문계 고등학교를 방문해 본 결과, 아침부터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는 학생들이 한 반에 10여명 가까이 됐다. 나머지 학생들도 수업은 듣지 않고 다른 책을 꺼내놓고 보거나 옆 친구들과 장난치고 있었다. 학교는 더 이상 공부하는 곳이 아니었다. 졸업장을 따기 위해 마지못해 다니고 있을 뿐이다.
그런가 하면 비평준화 지역에 소재하고 있는 어느 인문계 고등학교에는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학교는 자율학교로서 학업 수준이 비슷한 학생들을 전국적으로 모집하고 있다. 학교는 생기가 넘치고, 교사들은 의욕과 자신감에 충만해 있었다. 수업시간에 졸고 있는 학생들은 찾아볼 수 없고, 학생들 모두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학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학생들 각자의 소질과 적성을 파악, 개발시켜 주는 것이다. 과학에 소질과 취미가 있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글쓰기를 아주 좋아하는 학생도 있다. 공부는 잘 못하지만 그림·음악 등을 잘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춤을 잘 추거나 요리를 잘 하는 학생도 있다.
우리의 학교는 평준화라는 제도적 틀로 아이들 속에 내재해 있는 이러한 각자의 소질과 적성을 개발시켜 주지 못하고, 모든 학생들에게 똑같은 종류의 획일적 교육만 강요하고 있다. 마치 하나의 침대를 놓고 길면 자르고, 짧으면 늘려서 사람을 죽였던 프로크루테스처럼 말이다.
학생들 각자의 소질과 능력을 개발해 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다양한 형태의 학교가 있어야 한다. 학생들은 여러 학교들 가운데 자신들의 지적능력·학업수준·흥미·장래희망 등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학교를 선택하여 다닐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공부에 취미가 있는 학생은 자신의 지적 능력과 학업능력에 맞게 공부할 수 있는 학교를 다닐 수 있어야 하고, 공부보다는 요리·춤·그림·만화·컴퓨터 등에 취미가 있는 학생들은 그에 맞는 학교를 다닐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교육인적자원부는 ‘지역 주민 여론에 따라 고교평준화 여부를 결정’하도록 한다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를 헌법처럼 고수하려 하고 있다. 고교평준화는 헌법에 명시된 신성불가침의 규정이 아니다. 교육 당국자들은 이제부터라도 무너져 가는 학교문제의 근원을 올바로 인식하고, 합리적 대책을 세워야 한다. 고교평준화 정책을 대폭적으로 손질하는 것이 바로 그 첫 단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