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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10.08 |
휴브글로벌 구미공장 불산 누출사고로 현재까지 노동자 5명이 목숨을 잃었다. 불산은 반도체 산업 등 다양한 산업현장에서 세정제로 사용된다. 치명적인 독극물로 쥐약과 살충제의 주성분이자 화학무기인 신경 독가스의 주성분이다. 이번 사고에서 7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불산을 액체 상태로 뒤집어써서 화상과 독성으로 사망했다. 방호복도 입지 않은 상태였다.
본인이 다루는 물질이 무엇인지, 얼마나 위험한지 알려 주지도 않고, 알 수도 없는 상태에서 일하다가 유명을 달리한 노동자 5명과 그 가족의 인생은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비참한 노동자의 현실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사고 발생 이후 전면적이고 즉각적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아 공단 내 조업중단이 사업장마다 제각각이었고, 건강진단도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개인돈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구미공단 노동자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이번 사고는 안전보건의 총체적인 부실을 여지없이 보여 줬다.
첫째, 현장의 유해위험요소에 대한 복잡한 법과 관리 책임이다. 화학산업의 유해위험 요소와 관련해서는 7개 부처와 14개의 법률이 적용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사고에서 드러났듯이 환경부의 유해화학물질 관리법은 30인 이하 사업장이어서 적용되지 않았다. 지자체는 사업 인·허가권을 갖고 있지만 그뿐이었다.
둘째, 고용노동부의 관리·감독 부실이다. 산업단지의 산재예방을 위해 2005년부터 전국에 중대 산업 사고 예방센터가 세워졌다. 사고가 발생한 휴브글로벌은 구미공단의 중대 산업사고 예방센터에서 6킬로미터 안에 있었다. 해당 사업장은 3년 전에 5인 이상이 돼 관리·감독 대상이었다. 그러나 노동부는 관리·감독 대상이 된 것조차 몰랐다. 당연히 지난 3년 동안 아무런 관리·감독을 하지 않았다. 산개해 있는 소규모 사업장이 아니라 국가 산업단지에 밀집해 있는 사업장이 이렇게 방치돼 있었던 것이다.
셋째, 동일한 유형의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화학산업의 사고는 대형사고일 뿐 아니라 유독성 물질 때문에 2·3차 사고로 이어지는 특성이 있다. 이에 울산·여수·대산·인천 등 화학사업장이 많은 산업단지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울산 미포 온산공단은 471개 업체가 유독물을 취급하고 전국 유통량의 33.6%를 취급한다. 액체 위험물은 전국 저장량의 35%에 이른다.
그런데 지난 5년간 울산 국가산단에서 화재 폭발사고만 188건이 발생했다. 열흘에 한 번꼴로 사고가 난 셈이다. 지난해 8월에도 울산 현대 EP공장 유증기 폭발로 3명이 사망했다. GS칼텍스·여천NCC·LG화학 등 석유화학업체 60여개가 밀집해 있는 여수 산단의 경우 2005년 염화수소 노출사고로 65명이 중독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올해 6월에도 금호 미쓰이 화학공장에서 군사용 독가스인 포스겐 노출사고가 발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가장 최근에는 올해 8월에 LG화학 청주공장에서 다이옥신 폭발사고로 8명이 숨지고, 10명이 전신화상을 입는 대형사고가 터졌다.
한국의 노동현장에서 벌어지는 사고는 반복성 사고다. 10만원짜리 안전펜스가 없어서 죽은 용광로 청년 사망사고가 2년 만에 다시 재연되고, 벽체에 고정하지 않아 타워크레인이 무너지는 사고가 태풍 때마다 발생한다. 그래도 산재예방대책은 철옹성같이 요지부동이다. 오늘도 내일도 노동자는 현장에서 죽어 나간다.
노동부는 이번 사고의 대책으로 산재보상·건강진단·역학조사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너무도 안일한 대책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에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었다면 노동부는 사고 발생 즉시 공단의 조업을 전면중단하고, 건강진단을 실시했어야 했다. 그리고 동일한 조건에 처해 있는 울산·여수·대산 등 주요 화학산업단지의 예방대책과 시스템에 문제가 없는 것인지 점검하고, 대책 수립을 지시했어야 한다. 또한 국가산업단지·지방산업단지의 영세사업장 노동자에게는 화학물질 관련 문제가 없는 것인지 전국적인 점검·감독 계획을 수립하고 제시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노동부의 대응은 이번 사건만 어서 끝나기를, 언론에서 잊히기를, 환경부만 얻어맞고 이 문제가 산재문제였다는 사실이 덮히기를 기다리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노동부는 이번 사고로 인해 사망한 노동자와 가족, 그리고 산재사고로 인해 지역주민에까지 피해를 입게 한 주무부처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피해자에게 사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