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세 기사의 완전 무장한 모습>
우선적으로 중세기사의 강함은 개개인의 전투 능력보다는 집단을 이룰 때 있다.
철갑으로 무장된 기사단의 돌격은 가히 공포감 마저 조성할 정도로 막강하여 말그대로 말을 타고 빠른 속도로 진격 적진을 말로 짓밟고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아가는 것이다.
흔히 창을 이용하여 기마부대의 직격을 막는 장면을 영화나 소설에서 접할수가 있는데 이는 거의 불가능 한것이라고 볼수 있다. 말을 탄 기마병의 돌격 속도는 가히 막강한것이였고, 이를 가느다란 창으로 막다가는 창이 말을 뚫지 못하고 부러져 버릴 것이다. 그리고 창병은 보병에게 취약점을 보이는 동시에 다수가 모이지 않으면 그 위력을 발휘 할수 없다는 단점이 있어 실제로 대규모의 창병을 보유한다는 자체가 불가능해 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사단은 무적이며 이를 상대할 수 없는가? 그것도아니다. 기사단의 최대 약점은 바로 통제이다. 옛 기사단의 전술을 표현하는 말로 마치 쏘아버린 화살과도 같다라는 말이 있는데. 즉 강력한 돌격으로 적진을 무너뜨리기는 하지만 정작 그 이후의 통제는 쉽지 않다는 것이고 기사들이 통제력을 잃고 개개인으로 행동할수 있다는것이다. 따라서 이 당시의 명장수는 다름이 아니라 얼마나 더 오랫동안 기사단의 정렬을 흐트리지 않고 유지할수 있느냐가 중요한 관건이였다.
또한 이러한 중갑기사는 그 비용면에서 일반 병사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이 들기 때문에 그 구성 역시 소수를 이룰 수 밖에 없었고 서양과 이슬람의 대전투였던 십자군 전쟁에서도 대규모 군의 동원이 아닌 수백명이나 백명 미만의 기사단의 연합으로 이슬람과 대적하였다.
그리고 무기에 있어서도 나타나는 중갑기사의 취약점은 이들이 말을 타고 있을 때는 모르나 일단 말에서 떨어지거나 내리게 되면 한없이 약한 면모를 보여준다. 기사의 중갑은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해주기는 하나 움직임의 제약이 심하여 제대로된 거동조차 하기 힘들정도이다. 이로 인해서 기사와 기사의 싸움에 흔히 영화에서 자주 보는 장창이 나타나게 되었고 말에서 떨어진 기사는 말탄 기사에게 내려찍혀 전사하는 방식이였다. 다른 방법으로는 적 기사를 말에서 떨어뜨린 후 적 기사가 말에서 떨어진 충격으로 일어서지 못할 때 접근하여 말에서 내려 적 기사의 투구를 벗기고 칼로 목을 베는 방식이 있다. 이러한 방식은 비단 중세 기사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동양에서도 잘 나타나는데 고구려의 경우에도 참부도라 하여 벽화로 묘사가 되었는데 말에서 내려 적 장수의 목을 잡고 베는 것이 묘사가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제련 기술은 그리 크게 발달한 것이 아니라 칼의 제련도에 따라 승패가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흔히 알려진 전설의 명검 같은 경우 그 검에 정말 마법이 부여되었다는 것보다 좋은 철과 오랜 제련으로 인하여 생긴 강철검으로 이러한 검에 다른 검이 부딪히면 일반 검의 경우 쉽게 부서지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에 의해 검이 마법검으로 불려지게 되는 것이다.
석궁에 의해 기사도의 황혼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지만 사실상 그렇지 않다. 석궁은 인류 역사상 오래 전부터 등장하였고 당시 중세에서도 많이 존재했고 특히 강력했던 석궁을 보유하고 있었던 곳이 스위스의 제노바 석궁이다
기사들이 수난을 겪게 된 시기는 백년 전쟁 당시 영국의 장궁병에 의한 것이고 먼거리에서 요격 당해 기사들이 쓰러진 것은 아니다. 롱보우에 의해 연사력이 비교적 낮은 석궁단이 당하게 되고 이에 기사단을 내보내게 되었고 상대적으로 위치 선정을 잘못한 프랑스 군이 롱보우의 공격을 받게 되고 일부 접근한 기사들은 다시 영국의 기사들에게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상의 기사도의 황혼은 백년 전쟁 말에 잔다르크에 의해 시작이 되었고 이 당시 잔다르크는 기사 위주의 전투 방식이 아닌 포병 위주의 전투와 더불어 보병 위주의 전술을 구사하였다. 포병의 포격 소음에 의해 말의 통제가 불가능해져 기사들의 위력은 크게 줄게 되었고 이제껏 국가를 위하는 애국심 자체가 빈약해 있던 평민들에게 그녀를 기점으로 하여 애국심을 가지고 싸우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포와 통제 불능의 기사들은 다수를 이룬 보병군에게 패하게 되었고 기사들은 몰락하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