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두
편___고훈실
벨루가* 외 1편
고훈실
외투를
건넨다 여자의 눈과 손이 번호표를 내준다 받아 쥐는 내 손, 철갑상어 주둥이에 찔린다 외투를 벗을 때마다
상어 떼의 공격을 받는다 네모를 오래 잡아둔 까닭에 깊게 주름진 눈, 붉게 칠한 입술이 붉은 광장을
토막낸다 마린스키 극장에 오페라가 시작되고 외투 사이에서 졸고 있는 상어 떼, 세 시간의 공연이 포악한
꿈과 조악한 의자를 묶는다 행거에 아가리를 건 상어는 심해의 침묵을 씹을 수 없다 높은 방에서 감시의 눈이 번득일 때 비상구를 잃은 뾰족 꼬리만
기이하게 자랐다 무뚝뚝한 극야를 관통하는 힘은 어디서건 가라앉는 어둠을 갖는 것, 부유하는 것들은 검은
테두리에 가두고 헹거에 건다 공연 사이사이 박수가 터져나오고 이중문 너머의 객석은 상어의 주둥이 밖이다 애먼 외투만 툭 찌르다 깊은 바다로 가라앉는다
지나다니는
버스도
깊게 어는 심야 상어의 붉은 루즈가 흐려지고 눈이 감긴다 세빌랴의 이발사는 늦은 밤에 영업을 마친다 행거마다 가득찬 외투, 난 금이 간 손으로 번호표를 내민다 선잠을 부순 상어들 뾰족하게 옷을 건네고 하루치의 노동이 늙은 젖가슴에서
출렁인다 러시아의 세 번째 밤, 나를 통째로 씹어먹는 철갑상어 꿈이 철야를 한다
*러시아 보드카 이름, 철갑상어란 뜻을 갖고 있다.
개기월식
꽃 필
날
지퍼처럼
올리고 있군요
손가락과
발가락이
썩어
들어가고
칠흑이란
말 그 위에 한 겹
덮이네요
어디서부터
야식을 해야 하나요
붙박이
별이 보낸 겨울 잠 끝을
둥글게
한 입 물어요
속이
텅 비어 달그닥거리는
노거수가지
끝
향내
잃은 열매, 엄마는
아직도
누렇게 걸려 있어요
내가
숱하게 파먹었던 얼굴
파먹어도
아침이면 그득 차오르던
수수께끼의
밤
잿빛
그릇을 밤새 닦던
엄마의
잔등이 흐리게 지워져요
이제
내가
알전구처럼
엄마를 다시 걸어줘야 해요
어딘가에
널부러진
눈[目]들을 모아
슬픔이
환히 차오르게 말이에요
수피樹皮
꺼칠해지며
기다리는
꽃 필
날
고훈실 / 2010년 『시문학』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