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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한강 작가는 중간 중간에 공백 형식으로 독자에게 쉴 수 있는 체크포인트들을 자주 만들어 두어서 상기한 어려움을 독자는 극복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어디까지나 한강 작가의 글 방식을 보면 언뜻 보면 세련됐음에도 현대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앞섭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적으로 빈티지한 것이 좋은지라 이러한 한강 작가의 특징이 반가웠습니다.
3. 소설의 내용
제주 4.3 사건이 주제라더니 그건 아닌 것 같은데?(앵무새가 주제인듯) 하고 의구심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소설은 서론에 해당하는 첫 챕터에서부터 엄청난 흡입력과 표현력을 발휘합니다. 그리고 본론에 해당할 다음 챕터에서 제주 사건이 다뤄지기 시작하는데, 서론에서 주인공이 겪는 일을 현실로 묘사하는 것과는 달리 본론에서의 내용은 결국엔 주인공이 '꿈인가 생시인가' 확정지을 수 없는 일을 묘사합니다. 즉, 제주 사건을 설명하지만 그 정보가 헛것일 수도 있을 가능성을 남겨둡니다. 더 나아가 소설 속의 등장인물은 제주 사건이 불의한 사건임을 피알한다거나 피해자가 억울하게 죽었음을 알리려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진 않습니다. 그리고 결론에선 제주 사건의 기억이나 증거물들이 사실은 모두 꿈 속의 것들이라고 인을 쳐버리는 듯한 분위기로 오픈엔딩스런 엔딩을 냅니다.
그래서 제가 느끼기에 해당 작품에서 제주 4.3 사건은 "사람의 연약함"을 묘사하는 한 도구에 그칠 수도 있습니다. 서론은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이 겪는 연약함, 본론은 역사적 사건을 조명하면서 더 추악한 상황에 놓인 인간이 겪는 연약함을 묘사한 셈이죠. 그리고 그것의 여파가 현실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가게 만들 정도의 그 무언가임을 결론이 묘사한 것이고요.
이게 아닐 수도 있지만, 제가 느낀 인상은 이러했습니다.
따라서 해당 소설은 정치적이거나 사회 운동을 위한 작품으로 분류되기 힘든 감이 강합니다. 만약 이런게 정치적 의도가 담긴 작품이라면 웬만한 사극들은 물론 픽션 사극들도 모두 정치적 의도의 작품으로 여겨져야 할 겁니다.
4. 노벨상 수상자의 작품으로서 충분한가?
작품이 흡입력만 해도 무척 뛰어난 건 사실이며, 이는 제가 읽어본 정말 몇 안되는 타 노벨상 작품들과 비교해봐도 그 수준이 결코 쉽겐 밀리지 못할 정도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겐 서론에 해당하는 현재 일반인이 겪는 고통과 본론에 해당하는 역사적 인간이 겪는 고통의 연관성에 대한 설득력을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느끼진 못했습니다. 또한 다 읽고 나서 제게 감정적인 뒷맛같은 게 남겨지거나 생각해볼 거리를 제공받진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또 읽어 봐야지'라고 생각이 들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노벨상을 한강 작가가 탈 수 있게 된 배경엔 그 분이 좌파 및 개인주의 성향의 주제를 다룬 아시아 여성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은 완전 부정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애초에 아시아 여류 작가가 후보군이라는 얘기가 있었고, 노벨상을 정하는 서구계 사회는 '동성애', '여성주의', '채식주의'같은 좌파 및 개인주의 성향을 신성시(?)하는 경향이 분명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점은 한강 작가가 서구 사회의 눈길을 끌게 했을 뿐이지 '노벨상'을 그 분에게 쥐어지게 한 결정적인 요인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사실 넘치고 넘치며, 정작 한강 작가의 작품에서 '좌파 이야기를 하는 힘 없는 아시아 여성'은 어디까지나 한강 작가에게 다루기 익숙한 도구이지 정의의 잣대도 본래 주제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제겐 한강 작가의 작품의 주제는 아마도 어디까지나 '인간의 연약함'에 머물지 '정치'나 '사회'는 커녕 '역사'도 주요 도구일지언정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론적으로, 비록 저 한 개인을 만족시키진 못했으나 한강 작가의 해당 소설은 확실히 뛰어난 작품임엔 분명하며, 한강이란 작가가 다른 시대 다른 나라에 태어났더라도 이 정도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5. 마치며
제주도 방언이 꽤 나옵니다. 해외 살이를 길게 한 저로선 감당하기 어려워 오히려 영어 번역본을 읽어봐야 하겠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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