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익스피어 희곡의 오페라화
세익스피어의 비극 를 오페라화한 베르디의 말년의 역작은 대본의 완벽함으로 유명하다. 베르디는 평생 세익스피어와 쉴러, 이 두사람을 가장 위대한 극작가로 생각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쉴러의 작품을 오페라로 더 많이 만들었지만 세익스피어를 오페라로 만드는 일은 어찌보면 그에게는 평생의 목표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기초로 한 것은 말년의 역작 <오텔로>와 <팔스타프>, 그리고 비교적 젊은 시절의 <멕베스>, 이렇게 세 작품만 남길 수 있었다. 이는 아마도 그만큼 베르디가
대본에 고심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베르디는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햄릿>에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지만 그의 초창기 작품으로 가장 성공한 <멕베스>와 말년의 <오텔로>말고도 <리어 왕>을 오페라로 만드는 일은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의 꿈이었다. 베르디가 죽은 뒤 그의 서랍 속에서는 <리어 왕>이 나왔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이 비극 작품을 오페라화 하고 싶어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세익스피어의 희곡이 아무리 위대하다고 하더라도 베르디는 원작 그대로를 절대로 오페라화하지 않았고 항상 무대 경험이 많은 피아베 등에게 각색을 부탁했으며 이 <오텔로>도 이탈리아 음악의 심포즘과 오페라의 개량에 노력을 다하였던 아리고 보이토가 쓴 것이었다. <오텔로>가 성공함에 따라 베르디의 세익스피어에 대한 관심은 날로 깊어져 다음 작품으로는 희가극 풍을 작곡하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다시 보이토의 협력을 얻어 <윈저의 명랑한 아낙네들>에 의한 <팔스타프>를 1893년 2월에 스칼라좌에서 초연, 30회나 앙코르를 받았었다. 그래도 베르디의 가장 완숙한 시기의 명작은 역시 <오텔로>일 것이다.
* 작곡 배경
당시 베르디는 58세에 오페라 <아이다>를 써서 이탈리아 오페라계에 새로운 세계를 펼쳐보여 준 뒤, 61세 때 문호 만쪼니의 영혼에 바치기 위해 작곡한 <레퀴엠>을 완성하자 자기가 할 일을 이제는 다했다고 느끼고 오페라에서 손을 뗄 결심을 했다. 40세때부터 고향 근처의 시골에 묻혀 살아온 그는 이곳에서 사랑하는 아내 주세피나와 함께 유유자적한 여생을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본래 농부 출신인 베르디는 땅을 가꾸는 일에 다시없는 기쁨을 맛보고 있었다. 그는 손수 마굿간을 돌보고 땅을 가는 농부가 되었다. 작곡 관계로 찾아오는 사람을 일체 만나지 않았고 피아노에는 먼지가 수북히 내려 앉았으며 5선지는 방구석에 멋대로 쌓인 채
누렇게 바래 있었다. 이런 생활에 젖어 사람들의 방문을 달갑지 않게 여기던 그에게 꼭 한 사람의 예외가 있었는데, 그 사람은 바로 아리고 보이토였다. 아리고 보이토는 베르디보다 29년 젊은 다방면에 능한 작곡가였다. 그는 작곡 뿐 아니라 대본 작가로서도 탁월했으며 대표적인 오페라에는 <메피스토필레>가 있다. 그는 악극적인 작품으로 세익스피어의 비극 <오텔로>를 각색했는데 이 이야기가 베르디의 귀에 전해졌고 베르디는 1879년에 음악 출판인 리코르디의 소개로 보이토를 만났다.
사흘 후에 보이토는 대본의 줄거리를 베르디에게 보였다. 보이토의 치밀한 구성은 이내 베르디의 흥미를 끌었고 대본을 검토하면서 이아고의 묘사에 매혹되기 시작했다. 1884년 겨울부터 이듬해인 1885년 10월까지 작곡의 초고가 완성되었고 다시 1년이 걸려
1886년 11월초, 7년이라는 긴 세월 끝에 완성되었다. 그러나 이때 상연되지 못하고, 1887년 2월 5일 밀라노 스칼라좌에서 초연을 보게 된 것은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을 타파한 이 신작의 상연에는 작곡가 자신의 엄격한 감독 아래 신중한 연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특히 오텔로 역을 맡은 테너 프란체스코 타마뇨에게 완벽한 연기에 도달하도록 끊임없이 연습시켰다. 이는 그가 연기로서의 오페라를 추구했기 때문일 것이다. 드디어 무대에서 초연되었을 때 관객들은 이미 살아있는 전설의 인물이 된 베르디의 또
하나의 작품을 보는 기쁨 뿐 아니라 위대한 걸작의 탄생을 지켜보는 기쁨으로 열광했으며, 오페라가 끝난 뒤 베르디가 묵고 있는 호텔에까지 청중들이 밀려와 밤 늦게까지 그를 발코니로 불러내어 박수갈채를 보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오늘날까지 이태리 오페라의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초연 후 당시의 신문들은 "베르디는 이탈리아 오페라에 대한 전혀 새로운 형식을 창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맥히 흐르고 있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적인 숨결은 이 작품을 접하는 자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고 만다. 구성은 언뜻 보기에 바그너 식 같지만 시도 동기의 모습은 별로 발견되지 않아 어디까지나 이탈리아 오페라로서 일관하고 있다"고 절찬하고 있다.
<오텔로>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레퍼토리 중에서도 가장 음악적이고 또한 힘찬 작품이라고 평가받고 있으며, 유명한 조지 버너드쇼도 이 오페라를 평해서 "<오텔로>는 세익스피어에 의해서 이탈리아 오페라식으로 쓰여진 희곡이다"라고까지 칭찬하였을 정도로 훌륭한 평가를 받았던 작품이다.
* 등장인물: 오텔로 (Otello 무어인으로 베네치아 공화국의 장군) T데스데모나 (Desdemona 그의 아내) S 이아고(Iago 그의 기수) Br 카시오 (Cassio 그의 부관) T 에밀리아 (Emilia 이아고의 아내로 데스데모나의 시녀) Ms 로데리고 (Roderigo 베네치아의 젊은 신사) T 로도비코 (베네치아의 특사) 전령관
* 때와 곳: 15세기 말 키프로스 섬
* 초연: 1887. 2. 5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 제 1 막 -
천둥 소리로 막이 오르자 무대는 키프로스 섬의 해안, 성벽이 보이고 그 앞에 포도원이 있는 술집, 또한 선착장도 있다. 폭풍우가 지난 후의 저녁이다. 베니스의 장군 오텔로를 태운 배가 조난당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무사히 항구에 들어오자 오텔로가 병사들을 따라서 상륙하면서 적군인 터어키 함대가 폭풍우에 침몰되었다는 것을 "기뻐하라, 적의 함대는 섬멸되었다"라는 힘찬 노래로 알린다. 섬 사람들의 승리의 합창이 계속되며, 폭풍우가 점차 사라지자 사람들은 바닷가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승리의 잔치를 벌인다. 그 한편 구석에서 기수인 이아고와 베네치아의 신사 로데리고가 밀담을 나누고 있다. 이아고는 무어 사람인 오텔로가이 섬의 총독으로 임명될 때 젊은 카시오를 부관으로 삼은 데 대해 원한을 품고 있으며, 또 로데리고는 짝사랑하던 베네치아 고관의 딸 데스데모나를 오텔로에게 빼앗긴 것을 원망하고 있다. 둘은 오텔로와 카시오를 모함할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이다. 잔을 들고 일어선 이아고가 '건배의 노래'를 부르고 나서 카시오에게 억지로 술을 권해 흠뻑 취하게 만든다. 카시오는 이아고의 교묘한 술책에 말려 들어 로데리고와 싸움을 벌이고 이들을 말리려는 전 총독 몬타노에게 상처를 입힌다. 법석을 떠는 소리에 놀라 쫓아나온 오텔로는 그것이 이아고의 흉계인 줄 모르고 카시오를 파면해 버린다. 사람들이 모두 가버린 뒤에 남은 오텔로와 데스데모나는 '이젠 밤도 지샜다'는 사랑의 이중창을 부르고 나서 서로 어깨를 꼭 껴안은 채 성안으로 들어간다.
- 제 2 막 -
성 안에 있는 한 방으로, 2막에서는 이아고가 아주 능숙한 솜씨로 데스데모나에 대한 오텔로의 질투심을 유발시키고 있다. 그는 직위 해임당한 카시오에게 한 가지 간교한 제안을 한다. 데스데모나에게 애원하여 오텔로가 그를 용서하도록 진언을 부탁해 보자는
것이었다. 카시오는 좋은 생각이라며 기뻐하여 나가고, 혼자 남은 이아고는 사색적인 어투로 악을 찬미하는 유명한 아리아 '이아고의 신조의 노래: 무자비한 신의 명령 대로'를 부른다. 카시오와 데스데모나가 정원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그는 오텔로를 유인하여 이 장면을 지켜 보도록 만든다. 이아고의 집요하고 교활한 계략에 넘어간 오텔로는 점점 의혹을 품게 되고 질투의 불길을 일으킨다. 데스데모나가 사랑스럽게 자기의 미덕을 자찬하는 사랑의 소곡을 노래하고는 오텔로에게 다가와 카시오에 대한 용서를 부탁하자, 그의 질투심의 불길은 다시 치솟아 오른다. 오텔로는 모두를 물러나게 한 후 피곤하다는 핑계로 그녀를 멀리한다. 데스데모나가 머리에 두르라고 준 손수건을 퉁명스럽게 내던지자 그것을 이아고가 재빨리 줍는다. 사랑의 배신감으로 오텔로는 신세를 한탄하는 노래 '청순한 추억은 저 멀리'를 부르며 사색에 잠기는데, 이아고가 또 등장해 카시오가 데스데모나를 부르며 잠꼬대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는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라도 하는 듯, 카시오에게서 오텔로가 그의 아내에게 처음으로 선사했던 딸기 모양의 손수건을 보았다고 꾸며댄다. 오텔로는 놀람과 질투심에 뒤섞여 거의 이성을 잃고 만다. 오텔로는 아내의 부정을 믿고 이아고와 둘이서 매우 극적인 2중창 '예, 나는 대리석과 같은 하늘 앞에서 맹세하오'를 부르며 복수를 다짐한다.
- 제 3 막 -
성안의 넓은 홀에서, 아무 것도 모르는 데스데모나는 카시오를 용서해 달라면서 오텔로에게 다시 간청하고 있다. 이때 오텔로는 아내에게 자신이 준 손수건을 꺼내 보라고 요구한다. 이아고가 그 손수건을 훔쳐서 카시오의 마당에 던져 놓았기 때문에 그녀는 손수건을 보여줄 수가 없었다. 그러자 오텔로는 난폭하게 그녀의 정숙치 못함을 꾸짖으려 그녀를 힐책한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자기는 아무런 죄가 없다고 항변한다. 견디다 못한 그녀는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달려나가 버린다. 이 때 이아고가 되돌아와서는 카시오가 오고 있으니 오텔로에게 기둥 뒤에 숨어 있으라고 말한다. 그는 카시오가 자백했다는 거짓말 끝에 슬쩍 그의 애인은 비안카라는 의문의 여인이라고 덧붙인다. 그러나 오텔로의 그에 대한 의심에는 변함이 없으며, 카시오가 비록 그 정도로 심하진 않았을 지라도 데스데모나의 매력에 이끌려 유혹했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그의 확신은 이아고의 책략으로 카시오가 지니고 있던 데스데모나의 손수건을 훔쳐보는 순간 더욱 굳어진다. 그 때 베네치아에서 온 대사가 등장한다. 그는 오텔로에게 베네치아의 명예로운 고위 직책을 부여하면서 곧 베네치아로 돌아갈 것을 명한다. 그리고 키프로스는 카시오가 남아서 다스리도록 조처한다. 그러나 오텔로는 대사에게 하는 데스데모나의 공손한 말투 속에서 카시오에 대한 칭찬이 깔린 인상을 받고는 극도로 광폭해지고 만다. 밖의 백성들은 일제히 그의 선정을 환호하며 그를 성 마르코의 사자라고 추켜 세우는데, 그는 매달리는 데스데모나를 바닥에 뿌리친다. 충격을 받은 그녀는 눈물지으며 나가 버린다. 이아고와 함께 남게 된 오텔로는 고함을 지르면서 미친 듯이 떠들어 대다가 이윽고 졸도한다. 이아고는 쓰러진 오텔로를 내려다 보면서 '보라, 그대의 사자를'이라며 조롱한다.
- 제 4 막 -
데스데모나의 침실. 혼례의 날 밤에 입었던 순백의 잠옷을 걸친 데스데모나는 그녀가 어렸을 때 어머니의 시녀였던 바르바라가 그 후 사내에게 버림 받고 불렀다는 유명한 아리아 '버들의 노래'를 부른다. 이윽고 에밀리아가 물러간 뒤 벽에 걸린 마리아 상 앞에 꿇어 앉아 '아베 마리아'를 노래 한다. 더블 베이스가 울리면서 오텔로가 협박할 듯한 태도로 등장한다. 그는 괴로운 듯이 그녀의
잘못을 다그치면서 정직하게 말할 것을 강요한다. 그녀는 불안해하면서도 자신의 결백을 강력히 주장하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그는 그녀의 목을 조르고 만다. 에밀리아는 카시오가 로데리고를 죽였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달려 나오다가 여주인의 시체를 보고 대경실색을 한다. 그녀는 제 정신을 잃은 채 데스데모나가 죽었다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에밀리아는 비록 이아고의 아내였지만 만천하에 남편의 계략을 고발하여 데스데모나와 카시오의 무죄를 변호한다. 뒤늦게 사실을 감지한 오텔로는 후회 가득한 비극적인 모습을 하고는 자기의 칼에 몸을 맡긴다. 그는 선혈이 낭자한 자신의 몸을 침실로 끌고가 데스데모나의 입술에 오래도록 마지막 키스를 되풀이하며 숨을 거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