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 증
김 귀 선
(요양병원 병실, 두 할머니가 마주 보며 이야기에 한창이다. 오른손을 침대 난간대에 묶인 채 누운 할머니는 두툼하게 괸 이불로 몸이 활처럼 휘었다. 말을 할 때마다 펌프로 조절하듯 배가 불룩 불룩거린다. 접어놓은 간이 식탁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죽 편, 마주 앉은 분은 옆 침대에서 건너온 할머니이다.)
누운 할머니 엊지녁에는요 내가 쇅이 상해 죽을 삔 했심더. 울 어매가 자아 무시를 팔러 갔는데 고마 무시를 수
북이 쌓아놓은 구디에 빠져뿐기라요. 그래가 내가 울 아부지를 찾아가가 ‘와 우리 어매를 이래 고
생시 키노. 효부상 타고 혼자 사는 시숙 뒷바라지하고 그캤으머 댔지.’ 카미 길길이 뛰믄서 내질러
뿌랬심더. 보소. 어제 일도 청명하게 생각이 나는데 와 자꾸 내보고 정신없다꼬 카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듣던 앉은 할머니가 금방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전혀 엉뚱한 말을 한다.)
앉은 할머니 말도 마이소. 노으까내 딸이고 노으까내 딸이고. 그카이 영감이 날 잡아묵을라꼬 캤심더.
누운 할머니 울 오빠가 둘이나 있어도 낸장 마지래 그때는 어데 갔던동. 내가 어구 야꼬 퍼부까내 할 수
없이 울 아부지가 따라 와가 울 어매를 이짝저짝 어깨를 쪼매씩 땡기며 무시 구디서 빼내 주데요.
모양도 읎는 어매를 보이까내 속이 휘떡 디비질라 캐서 또 막 퍼부었심더.
(열을 올리며 속을 먼저 널어놓던 할머니가 잠시 숨을 고르자 앉은 할머니는 다리가 저린지 펴고 있던 오른 다리를 세워 발로 침대 시트를 슥슥 문지른다. 그러면서 한숨을 한 번 푹 쉰다.)
앉은 할머니 아들 나아줄 안들을 두 번이나 들났다 아잉교. 동새도 그 안들하고 한 패가 돼가 나를 업신여기대요. 장
날 되믄 무다이 첩사이 안들을 장에 가자고 꼬시샀코 그카면 안들이 장에 갈라꼬 생 지랄을 떨어사서
할수 없이 보리쌀 한 말 퍼내주면 호호 하하 거리며 어불리가 장에 가디더.
누운 할머니 울아부지가요 집은 뒷전이었심더. 저 아랫각단 그년하고 내에둘 붙어가 안있었능교. 울아부지한테
‘고년 같으머 그케 비 오고 치븐 날에 자아(장에) 내보내겠나. 야시 같은 년한테는 안시킬꺼 아이
가. 한 분만 더 어매한테 돈 벌어 오라카머 내가 고년 달구지를 확 뿌직어뿔끼라’ 카미 고래고래 막
퍼댔지요.
(두 할머니의 대화는 계속 평행선이다.)
앉은 할머니 그때는 “범골 어른인기요.” 라꼬 안해줬심더. 아들이 있어야 어른이라고 불러줬니더. 자꾸 딸만 노으까
내 영감이 한 분은 보따리 하나 마당에 툭 던지면서 집을 나가라고 카대예. 하늘이 캄캄했심더. 그래
가 내가 막내이 딸을 업고 아들 나아줄 안들을 구하러 벅달(동네이름)에 안 갔던기요
(앉은 할머니가 숨 한 번 고르고 다음 말을 이으려 하자 누운 할머니가 흥분된 음성으로 가로막는다.)
누운 할머니 언날 그늠이 안들 하나를 델꼬 와가 내한테 ‘너거 적은엄마다’ 그카능그라요. ‘이기 무신 소리고. 적은
아부지하고 사는 사람이 적은엄마지. 그 적은엄마는 얼마 전에 죽었는데 뭔 말이고’ 카이까내 그래
도 그케 불러야 댄다 카능그라요. 그카는데 가마 있을 사람이 어데 있겠능교. 절딴을 냈심더. 그늠
한테 막 달라들었지요.
앉은 할머니 아들 나아줄라꼬 했는 년한테 말잉기요.
누운 할머니 그늠이 울 아부지아잉교.
(그 말에 뒤로 기대어 앉았던 할머니가 상체를 앞으로 쑤욱 당기더니 합죽이 입을 다시 움직인다. 발음에 용쓰다 보니 말보다 침이 먼저 밖으로 나온다.)
앉은 할머니 아들을 몬 나아가 설움 받은 거 생각하므 억장이 무너지니더. 막내이 아들 놓기 전에는 내가 푹 삶깄디
더. 이 속을 누가 알겠능기요.
(그러면서 주먹 진 왼손으로 가슴을 툭툭 친다. 잠시 서로 말이 없다. 청소 아줌마가 바닥을 골고루 밀대로 밀며 지나간다. 락스 냄새가 코 속으로 스며든다. 그 바람에 대각선 쪽 침대 위의 할머니가 잠을 깼는지 뭐라고 중얼거린다. 그러자 지금껏 누워서 얘기하던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 앉으며 잠깬 할머니를 향해 쩌렁쩌렁 울리도록 고함을 지른다.)
누운 할머니 이 년 어디 처 죽깨고 있노. 니 년을 내가 가만 둘 줄 아나. 저 야시 같은 년, 저 년 때문에 울 어매가
평생을 고생했는데 저 년을 우째뿔꼬.
(앉은 할머니가 고개를 돌려 혼자 중얼거리는 할머니를 향해 턱짓하며 누웠던 할머니에게 묻는다.)
앉은 할머니 와 아들 몬 나았다꼬 카능기요.
누운 할머니 저 년이 그 년 아잉기요. 우리 집구직을 분탕지기 놓고 울 어매 자리 뺏어 간 년 아잉교. 어제는 내가
얼매나 울었는지 모르니더. 저 년이 울 어매를 똥갈똥가리 내 가지고는 박스에 넣어서 울 집으로
부치왔대요. 내가 논두렁에 퍼질고 앉아서 대성통곡을 했심더. 울 어매가 불쌍해서 자꾸자꾸 눈물
이 쏟아져서 감당이 불감당이었니더.
앉은 할머니 그케 아들만 하나 나아뿔면 댈 낀데.
간호사가 들어와 차트에 체크를 하며 약을 나누어 준다. 앉은 할머니께는 저녁 먹을 때가 되었으니 제자리로 돌아갈 것을 권한다. 어머니의 침대에 걸터앉아 졸고 있던 나는 간호사의 말에 얼른 간이 식탁을 올려놓고 어머니를 달래어 천천히 모셔온다. 밥 먹을 시간도 모르는지 TV가 혼자 조잘대고 있다.
첫댓글 이 글은 "희곡"
까페에는 몇 가지 한정된 서체만 있어
ㅎ여기에 옮기는 게 쉽지를 않았어요~~~^^*
@수선화(김귀선) 이런 방식을 시도하는 실험정신을 높이 평가합니다.
무형식의 형식이 수필이니까 시의 형식, 소설이나 꽁트의 형식, 희곡의 형식, 평론의 형식 등등
다양한 형식을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