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ere The Days(메리홉킨)'란 곡을 아시나요?
버터링 비스킷과 아메리칸 커피 한 잔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합니다. 긴긴 신명기를 끝내고 사도행전을 시작해서 그런지 뭔가 기대되는 5월입니다. 자동차 보험 만기가 5.7일이라는 것 빼놓고는 재다 쓸데 없는 쓰레기 정보를임을 확인했고 소피를 뺀 다음 가볍게 푸시업 100회 아령 36회를 했어요. 감기는 물러갔고 모가지는 10% 정도가 아직 버퍼링 상태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내일 아침 예주 픽업에 모든 스케줄을 맞추고 스텐 바이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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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남겨 놓고 물갈이를 했는지 업로드된 사진이 없어 아비를 안타깝게 합니다. 메주야 힘을 내! 가여운 지고. 강아지 고생했어요. 이젠 시집가도 되겠네요. 물론 시집살이는 이보다 훨씬 고될 것입니다. 잊어버릴까 봐 미리 말하는데 입국 비행기표 사진 찍어서 보내 주시라. 영국사 마지막 회입니다. 테마를 '엘리자베스 1세의 남자들'로 해도 엘리자베스 2세가 걸리고 '메리 vs 엘리자베스' 엮어도 엘리자베스 2세가 걸리긴 합니다만 어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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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1542-1587)는 스코틀랜드 스튜어트 왕조의 8대 여왕이자 프랑스의 왕비입니다. 동시에 같은 여왕이자 잉글랜드의 전성기를 이끈 엘리자베스1세와는 숙명의 라이벌입니다. 메리가 당대에는 미모로 사람을 홀리고 권력을 탐한 악녀'라는 혹평을 받았지만 어째됐든 나라면 메리를 데리고 살겠어요. 그녀는 예쁘고 섹시했을 것입니다. 그런 그녀는 왜 도끼로 처형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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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앙뜨아네트 처형 때 울었는데 메리처형 장면은 도저히 못 보겠더라고요. 메리는 제임스 5세와 마리 사이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금수저입니다. 오빠들이 어린 나이에 사망하고 아버지 마저 잉글랜드와 전쟁 중 지병으로 요절하면서 메리는 생후 6일 만에 스코틀랜드 후계자가 되었고 9개월 만에 왕위에 등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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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가 테너 날 무렵인 16세기의 영국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두 개의 왕국이 대립하고 있었어요. 잉글랜드의 헨리 8세(1491-1547)는 궁지에 몰린 스코틀랜드를 그냥 먹으려고 자신의 아들 에드워드 6세와 메리를 결혼시킨다는 혼인 협정(그리니치조약)을 맺어요. 당시 꼬마였던 메리를 아예 잉글랜드로 데려와 키워서 며느리를 삼겠다는 심산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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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메리 엄마 마리 드기즈와 스코틀랜드 쪽 가톨릭 세력들은 노발대발 조약을 파기합니다. 헨리 8세가 전쟁으로 응수하면서 스코틀랜드만 막대한 피해를 입어요. 그러다가 돌연 헨리 8세가 사망(1547) 하면서 양국의 갈등은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됩니다. 마리는 모국 프랑스에 도움을 요청했고 그 조건으로 프랑스 국왕 앙리 2세의 아들 프랑수아 2세와 메리의 혼인 조약을 맺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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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8세가 찜 해놓았는데 죽 쒀서 개 준 셈입니다. 스코틀랜드가 전쟁 중이라 메리는 안전을 명분 삼아 성인이 될 때까지 지내는 조건으로 6세에 모국을 떠나 프랑스에 건너갑니다. 쯔쯧, 가여운 것. 볼모나 다름 없는 생활이었지만 메리는 잘 적응했고 프랑스의 궁전 문화를 배우며 성장합니다. 성장한 메리는 흰피부와 넓은 이마, 밤색 눈동자, 우아하고 기품 있는 자태를 지녔으며 시인들이 극찬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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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은 가장 아름다운 광채를 그녀의 눈에서 빌어오고 그녀의 모습에서 색채를 빌려와서 그토록 아름답게 빛났다." 이 죽여주는 시를 로페 데 베가가 썼다는 것 아닙니까? 메리의 시아버지인 앙리 2세 조차도 "스코틀랜드의 어린 여왕은 짐이 지금까지 본 아이들 중에 가장 완벽하다"고 감탄했대요. 실제로 자신의 친딸인 공주들을 메리보다 앞서서 걷지 못하게 할만큼 그녀를 존중했고 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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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어머니인 카테리나드 메디치와 스코틀랜드 개신교 세력은 메리를 몹시 싫어했어요. 그들은 가톨릭 국가인 프랑스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경계한 나머지 메리를 암살하려고 해요. 15살이 된 메리는 프랑수아 2세와 혼인을 올리고 스코틀랜드의 여왕이자 프랑스의 왕세자비가 되었는데(1558) 잉글랜드에서는 엘리자베스 1세가 여왕으로 즉위(18세)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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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 앤 브린은 남편 헨리 8세와 갈등을 빚다가 아들을 못 낳는다는 이유로 누명을 쓰고 처형당합니다. 본래 엘리자베스 1세는 반역자의 사생아 취급을 받으며 평생을 살아갈 운명이었지만, 이복 언니 메리 1세와 동생 에드워드 6세가 모두 요절하면서 왕위를 물려 받은 것이니 천운을 타고 났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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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의 고난의 시간이자 메리의 꽃길은 패스합니다. 메리의 시아버지 앙리가 '마상창 시합' 도중 창에 눈이 찔려 실명합니다. 메리가 스코틀랜드의 여왕-프랑스의 왕비가 되지만 앙리가 사망하면서 전세가 역전된 것 같아요. 엘리자베스 1세는 메리를 견제하기 위하여 존 녹스가 이끄는 스코틀랜드의 개신교 세력을 후원하여 내전을 일으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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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잉글랜드-스코틀랜드-프랑스 삼국은 종교전쟁을 끝내기 위해 '에든버러'조약을 맺습니다. 이 조약의 핵심은 엘리자베스 1세가 메리에게 잉글랜드의 왕위 계승권을 공식적으로 포기할 것을 압박하는 데 있었어요. 스코틀랜드 내전이 종료되고 그해 7월, 메리의 이복 오빠 제임스가 섭정의 자리에 오르면서 개신교 세력이 스코틀랜드를 장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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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의 불행은 산 넘어 산입니다. 시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에 이어 남편 프랑수아2세도 16세의 젊은 나이에(1560)에 요절하자, 메리를 싫어하던 시어머니 카타리나는 메리와 그 지지세력을 변방으로 쫓아내 버렸어요. 프랑스 내에서도 고립된 메리는 결국 13년 만에 모국 스코틀랜드로 귀환을 선택합니다. 메리는 스코틀랜드로 돌아오자 마자 종교 갈등의 중심에 서야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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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는 컴백 홈 했고 국민들 개개인의 신앙의 자유는 존중하되 자신은 가톨릭 신자로 남겠다는 타협안을 제시하지만 개신교 세력은 이에 강하게 반발해요. 메리가 존 녹스를 불러 협조를 구했으나 존 녹스는 "로마 가톨릭은 하나님의 신부가 될 수 없는 매춘부"라는 폭언을 퍼붓습니다. 아, 열받아. 필자는 그동안 개신교는 가톨릭에게 마녀사냥을 당한 희생양으로 알고 있었는데 존 녹스 같은 잉간들은 가톨릭의 만행보다 더 한 짓을 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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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을 넘으니 저 산이 기다리고 있다고 메리가 자신의 불안한 입지를 극복하기 위해 재혼으로 돌파구를 모색했을 때 이번에는 엘리자베스1세가 아가리를 벌리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국왕과 결혼하는 것은 적대 행위로 간주하겠다"라며 메리를 압박해요. 심지어 엘리자베스는 왕족도 아니고 자신의 내연남이었던 로버트 더들리를 메리의 재혼 남으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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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의 제안에 메리가 어떻게 했을까요? 메리는 더들리를 거절하고 단리(스튜어트, 사촌 오빠)와 만난지 5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립니다. 당연히 단리는 좋은 남편이 아니었어요. 그는 우유부단 한 놈이 자존심만 세고 허영심이 강했어요. 꼴에 메리를 무시했고 스코틀랜드의 공동 통치권을 요구했어요. 부부의 불화를 개신교 세력이 가만 두고 보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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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세력의 음모에 넘어간 단리는 메리가 총애하는 궁중 악사 다베데리치오를 내연남으로 의심하여 임신한 아내 앞에서 잔혹하게 살해하는 만행을 저지르자 메리는 이 일로 왕권을 박탈 당하고 유배당합니다. 메리가 단리를 설득해 측근 보스웰 백작의 도음으로 유배지를 탈출 하였고 반역자들을 진압한 후 왕권을 회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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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와 단리 사이에서 제임스6세가 출생하는 호사 뒤에 단리가 머물던 숙소에서 의문의 폭발 사고가 발생했는데 단리가 옷이 벗기고 목이 졸린 상태로 시체가 되어 발견 됩니다. 호사다마일까요? 미망인이 된 메리는 3개월 후에 보스엘 백작과 결혼식을 올립니다. 까마귀 날자 배떨어진다고 메리가 보스웰과 결혼하기 위해 단리를 죽였다는 소문이 일파만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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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가 그 와중에 보스웰과 결혼을 한 걸 보면 충분히 의심받을 만 합니다. 정황으로만 보면 메리가 보스웰의 아이를 임신했기 때문에 개연성은 충분합니다. 지지리도 복이 없던 메리는 이 아이마저 유산을 했고 개신교세력들은 메리의 남성편력을 빌미로 '불결한 매춘부'라고 맹비난을 했을 것입니다. 개신교 세력은 메리와 단리의 아들인 제임스 6세를 새 국왕으로 추대했고 메리는 다시 로크레벤성에 감금당하는 수모를 겪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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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웰은 개신교 세력과의 전쟁에서 패한 후 도주했고 해적 생활로 연명하다가 덴마크 군대에게 잡혀 끝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이처럼 메리의 세 번의 결혼 파트너들은 모두 불행한 결망로 끝을 맺습니다. 메리는 마지막으로 유배지에서 탈출하여 제임스6세 파와 '랭사이드전투'를 하지만 패배하여 더 이상 스코틀랜드에서 설자리를 잃어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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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택한 최후의 도피처는 놀랍게도 엘리자베스1세가 있는 잉글랜드로의 망명이었어요. 엘리자베스는 고민 끝에 메리를 자신의 밑에 두면서 가톨릭 세력을 견제하려는 정치적 계산으로 그녀의 망명을 받아들입니다. 메리는 전남편 단리 살인사건의 재판을 받는다는 조건을 수용하여 잉글랜드로 건너갔고 몇 주간의 재판을 받았으나 결백을 증명하지 못해 잉글랜드 성에 다시 수감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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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숙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초기에 메리에 대한 엘리자베스의 대우는 예상보다 나쁘지 않았다고 해요. 성을 바꿔가며 감금하긴 했어도 풍족하고 화려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줬다고 해요. 팩트는 예쁜 메리를 곰보 엘리자베스가 질투한 게 맞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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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는 겉으로 당근을 주면서 실제로는 메리의 남성 편력을 이용하여 스캔들을 퍼트렸고, 천상 여자인 메리도 로버트 더들리와의 관계를 편지로 써서 대응한 걸로 보입니다. 엘리자베스는 무려 18년 동안이나 메리를 감금했고 기나긴 시간이 흐르면서 메리의 찬란했던 미모도 빛을 잃어갔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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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이 맺힌 메리는 앤서시배빙턴(24세, 가톨릭)과 결탁하여 엘리자베스를 암살할 모의를 계획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을 간자를 통해 알게 된 엘리자베스는 관련자들을 역모 죄로 사형시켰고 스코틀랜드와 '버익조약.을 비밀리에 맺는 등 주도면밀함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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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메리는 반란 죄로 끝내 단두대에서 도끼로 처형 됩니다(1578.2.8). 사형 당한 날 메리는 순교를 상징하는 붉은 색 드레스를 입고 자신이 가톨릭 순교자인 것을 표현하려고 했어요. "주여! 당신에게 내 영혼을 맡깁니다" 이렇게 아까운 메리는 45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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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가 처형되고 16년 후 엘리자베스도 세상을 떠났고(1603), 제임스 6세는 영국 영사상 잉글랜드-스코틀랜드-아링랜드-웨일스를 통합한 최초의 왕이 됩니다. 개신교 신자였던 제임스 6세의 통치 아래서 영국은 완전한 개신교 국가가 되었고 스튜어스-하노버-윈저왕국을 거쳐 그 바통을 엘리자베스 2세가 이어받았으며 그 역시 2022년에 영욕의 세월을 뒤로하고 흙으로 돌아가 웨스트민스터성당에 묻혔습니다. 메리의 마지막 어록인 "나의 끝이 곧 시작이다"는 무슨 의미일까요?
2024.5.2.thu.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