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중고로 구입한 자동차 에어컨에 고장이 있다. 지리한 장마가 계속 되어 에어컨이 잘못된걸 알지 못하다가 날이 더워지니 고장이라는걸 확실히 알게 된다. 그런데 중고차의 보증기간은 한달에 불과하여 법적 보상을 받을 수 없다. 그래도 너무 억울한 일인지라 사정을 이야기하니 자기들 전문 거래 카센터에서 한 번 수리를 해보라 한다. 수리비의 반은 자신들이 부담하겠다고... 모든걸 법대로 하려는 비인간적 세상 속에서 정말로 양심적인 중고차 매매 상인이다. 아내는 우리의 과실은 전혀 없으니 전액 보상받아야 한다고 속상해하지만 한 달 안에 차의 모든 기능을 확인하지 못한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설득을 한다.
사실 중고차라는게 고장이 발견되어도 필수적인 운행에 지장이 없으면 감수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게 싫으면 비싼 돈 주고 신차를 뽑으면 되는 일이다. 지난 번 스포티지 구입시에도 사자마자 자동 시동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 것을 발견했지만 꼭 필요한 기능이 아닌지라 아무런 보상도 요청하지 않고 넘어간 사례가 있다.
그런데 그 카센터에서 원인을 찾지 못한다. 할 수 없이 전문 수리센터로 가서 다시 검사를 하니 콘덴서에서 냉매의 유출이 있다고 한다. 교체비는 50만원대 후반! 아내는 더워 죽겠다며 당장 수리해달라고 하는데 나는 그의 설명을 납득할 수가 없다. 중고차 거래 카센터에서 냉매 유출은 확인을 했기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다른 고장의 가능성을 제기하지만 전문가는 냉매 유출의 흔적까지 확인시켜주며 확실하다 한다. 내 눈에는 그게 확실한 냉매의 흔적으로 보이지 아니하여 수리를 거부한다. 아내는 자기가 전문가보다 똑똑하냐며 화가 나서 씩씩 거린다. 전문가도 기분 나쁜 기색이 완연하다.
"나를 믿어! 내가 물리를 전공하여 사물의 이치에 밝고 도를 닦아서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아! 전문가가 비록 그 분야에 대해 나보다 뛰어나나 자기 차가 아니니 소홀히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병원에서도 의사가 하자는대로 수술해서 몸을 더 망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차도 마찬가지야! 콘덴서를 교체한 후 에어컨이 잘 안나와도 저들은 책임을 지지 않아! 또 다른 부분을 고치면서 비용만 눈덩이처럼 불어나지. 그러면 중고차 상인도 우리도 아주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한 단계 수준높은 카센터의 판단을 한 번 더 받아보자!"
그제서야 화가 풀린 아내는 다른 카센터로 발걸음을 돌린다. 예상했던대로 더욱 정밀한 검사를 거친 후에 이곳의 전문가는 컴프레서의 고장이라는 진단을 내린다. 교체 비용은 백십만원대! 무턱대고 전문가를 믿었으면 콘덴서 교체 비용의 반이 허공으로 날아가고 컴프레서 교체 비용은 중고차 상인의 보조를 받지 못하니 순식간에 80만원의 추가 손실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제서야 아내는 남편 만세를 부른다. 그리고 가장 높은 단계인 대기업 A/S 센터의 판단을 한 번 더 받아보기로 한다.
병의 경우에는 돈만의 문제가 아니고 신체의 일부가 수술로 절단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 더더욱 신중하여야 한다. 의사는 환자 자신이 아니다. 치료의 정도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명심하고 명심해야할 경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