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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전 1: 12 - 17 바울을 향한 주의 은혜 (2) 1: 18 - 20 배도자(背道者)에 대한 경계
딤전 1: 17 홀로 하나이신 -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 )
1] 영원하신 왕
본 절은 바울이 위대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가슴으로부터 나오는 감사의 외침이다.
혹자는 이것을 '유대교의 예배 의식'이라고 주장하지만(Lock) 두 가지 면에서 이 견해는 타당하지 않다.
첫째, 영원하신 왕이라는 표현이 바울 서신의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 엡 2: 7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 엡 3: 9, 11 - 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이 표현이 유대인에게 친숙한 표현이긴 하지만, 바울이 이 말을 사용한 것은 '영원토록' 다스리시는 하나님과, 위대한 왕으로 자칭했으나 단명한 '네로'와의 대조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둘째, 유대 사회에서는 두 세대, 즉 현 세대와 오는 세대를 구분하는 습성이 있었다.
바울은 두 세대 가운데서 공히 지배하시는 왕으로서의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Guthrie).
2]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본문은 '영원하신 왕'과 동격으로 세상의 모든 왕이나 다른 신들을 능가하는 하나님의 유일한 지존성(至尊性)을 강조한다.
썩지 아니하고(*, 아프다르토)는 성경 전체에 언급되는 하나님의 속성이다.
* 시 103: 15-17 - 15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16 그것은 바람이 지나가면 없어지나니 그 있던 자리도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17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니
* 롬 1: 23 -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하나님은 피조물들과 달리 불변성을 지니셨다.
* 시 45: 6 -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 히 13: 8 -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그러므로 성도들의 영생에 대한 보증이 되신다.
보이지 아니하고(*, 아오라토)는 하나님이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여 계신 영이심을 말한다.
* 골 1: 15-16 -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을 볼 수도 알 수도 없으며 다만 믿음을 통해서 가능하다.
* 히 11: 27 -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홀로 하나이신(*, 모노)은 하나님이 다른 신들과 비교할 수 없는 유일(唯一)하시고 초월(超越)적인 신으로서 우리의 유일한 경배의 대상이 되심을 강조한다.
* 요 17: 3 -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 엡 4: 6 -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3]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바울은 이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그는 하나님을 왕이라고 표현한다. 하나님께서는 섭리자 곧 통치자이시다.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그가 모든 일을 행하신다.
그는 영원하신 왕이시다. 그는 존재의 시작과 끝이 없으신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또 그는 썩지 않으신다. 모든 피조물은 다 죽고 썩지만 하나님께서는 죽지 않고 썩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또 보이지 않으신다. 그는 보이지 않으시는 영이시다. 그러나 그는 모든 존재 세계의 근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홀로 하나이시다. 세상에는 한 하나님께서 계시다. 다른 신들은 모두 헛것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다 가짜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지혜로우시다. 그의 지혜는 무한하시다.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속성들을 열거한 후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기를 기원하였다. 그것은 참으로 하나님께 합당한 송영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왕이시다.
창조자 하나님께서는 만세의 왕, 영원하신 왕, 곧 주권적 섭리자이시며 썩지 않으시고 보이지 않으시나 홀로 하나이시며 지혜로우신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그 하나님만 경외하며 섬기며 순종하자.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철학자들이다. 철학은 우주와 인간의 근원과 의미, 죽음과 그 너머 등에 대해 질문하지만, 참된 대답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 믿는 우리는 성경을 통해 참된 대답을 얻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철학적 물음에 대한 대답을 가진 자들이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구주이시다.
그는 구주 예수를 세상에 보내주셨다. 그는 죄인의 괴수 바울을 구원하셨다. 그러므로 그는 그가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어떤 죄인이라도 구원하실 것이다. 주께서는 우리의 과거를 더 이상 묻지 않으시고 구원과 새 삶을 주셨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불러 그의 일꾼을 삼으신다.
하나님께서는 핍박자 사울을 불러 복음 전하는 자가 되게 하셨다. 그는 오늘 우리도 그의 긍휼과 능력으로 구원하셔서 여러 가지 직분을 주셨다.
4. 배도자(背道者)에 대한 경계 ( 1: 18 - 20 )
18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20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딤전 1: 18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
경계는 3절과 5절에서 각각 제시되었는데 그 내용은 3-17절에서 설명되고 있다.
1]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경계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랑겔리안'(*)는 '교훈', '지시', '명령'을 의미한다(instruction, NIV).
이것은 디모데가 사람들에게 율법을 불법하게 사용하지 않고 적법(適法)하게 사용하도록 가르쳐서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도록 하라는 지시이다.
명하노니의 헬라어 '파라티데마이'(*)는 '옆에 두다'를 뜻하는 '파라티데미'(*)의 현재 중간태 직설법으로 중요한 임무를 맡길 때 사용되었다.
* 눅 12: 48 -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 딤후 2: 2 -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그리고 눅 23: 46에서는 예수께서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하실 때 사용되었다.
* 눅 23: 46 -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2]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이것은 디모데가 목회자로서 안수를 받을 때 바울을 통해 내려진 하나님의 예언을 가리킴이 분명하다(Guthrie).
이 예언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복음 사역의 사명을 부여받은 디모데가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하는 말씀들일 것이다.
바울이 전에 무슨 예언으로 디모데를 지도했는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다. 그렇지만 분명 디모데를 에베소 교회의 사역자로 세울 때, 바울은 목회자로서 디모데의 은사를 확증하는 가운데(4: 14)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를 격려하고 세우는 말을 했음에 틀림없다.
3]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그것은 예언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러한 예언들을 힘입어 용감하게 싸울 것을 명하고 있다. 이는 디모데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소명(召命)을 깨달은 자에게 담대한 싸움을 싸울 것을 명하는 것이다.
그것으로라는 말은 그가 전에 그에게 주었던 예언들이라는 뜻이다. 예언들은 하나님의 권위로 주신 교훈들을 말한다.
선한 싸움은 믿음과 진리와 의를 위한 싸움, 교회를 위한 싸움이다. 우리의 몸에 있는 죄악성은 성령의 생각과 대립되며 우리가 싸워야 할 원수이다.
* 갈 5: 17 -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또 우리는 이 세상의 죄악 된 풍조들과도 싸운다. 성도는 세상에서 환난과 핍박도 받는다.
* 요 16: 33 -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 딤후 3: 12 -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더욱이, 사탄과 악령들은 주의 종들과 성도들을 대적한다. 우리가 영적 싸움에서 이기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교훈으로 무장해야 한다. 에베소서 6: 17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인 검이다. 주 예수께서는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을 때 구약성경을 인용하심으로써 마귀를 물리치셨다.
* 마 4: 4, 7, 10 -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딤전 1: 19 믿음과 착한 양심 -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
1]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선한 싸움의 도구는 '믿음과 착한 양심'이다.
엡 6: 10-17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전신 갑주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하였다.
* 엡 6: 10-17 - 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본 절에서는 교리와 행동에 연관된 근본적인 측면만을 언급하고 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은 본 서신 안에서 세 번 언급되고 있다(1: 5. 3: 9).
이로 보아 믿음과 착한 양심이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본문의 믿음은 딤후 2: 17-18에서 기록된 것처럼 '진리'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Hendriksen).
* 딤후 2: 17-18 - 17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18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사람의 양심이 파괴되면 도덕적 부패와 함께 영적 파멸까지 초래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바울 사도는 양심을 버림으로써 오는 믿음의 파멸을 막기 위해 선한 양심, 즉 성령으로 거듭난 양심과 진리인 믿음을 가지라고 권면한다.
선한 싸움은 믿음과 착한 양심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 그 싸움에 지면 불신앙과 죄에 떨어진다. 이 영적 싸움에서의 승리는 믿음과 착한 양심을 지키는 것이다.
2]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선한 양심은 그리스도인들이 안전한 항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만약 양심이 파괴되면 믿음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여기서 바울은 양심을 버림으로써 파멸이 초래됨을 경고하고 있다.
본 절의 버렸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사메노이(*)는 자의적(自意的)으로 거부했음을 뜻한다(have rejected, NIV).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다. 그것은 개인적 배교와 변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속죄 신앙, 복음 신앙, 성경적 신앙을 간직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선한 양심이 무디어지거나 더러워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항상 말씀 묵상과 기도로 깨어 있음으로써 이 선한 싸움에서 승리해야 한다.
딤전 1: 20 사탄에게 내준 것은 -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단에게 내어준 것은 저희로 징계를 받아 훼방하지 말게 하려 함이니라. )
1]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믿음이 파선당한(19절) 대표적인 두 사람이 열거되고 있다.
그들은 에베소 교회에서 극단적인 이단자였다.
후메내오는 딤후 2: 17-18에 의하면 이단 교사로 언급되어 있으며 그는 부활에 관해서 이미 지나갔다고 주장하며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 딤후 2: 17-18 - 17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18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알렉산더의 정체에 대해서는 행 19: 33과 딤후 4: 14에 언급된 두 사람 중 어떤 사람인지는 분명치 않다.
* 행 19: 33 -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변명하려 하나
* 딤후 4: 14 -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혹자는 행 19장의 알렉산더로 주장(Calvin)하나 그가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했다가 다시 이단자가 되었다는 것은 단지 추측일 따름이다.
아무튼 그들은 율법 선생이 되기를 간절히 원했던 자칭 의로운 사람들이었으나 지나친 오류에 빠져 교회를 혼란 속에 빠뜨리고 있었다.
2]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이러한 표현은 고전 5: 5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 고전 5: 5 -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여기 언급된 '징계'는 사도적인 권위만이 아니라, 회중 앞에 제시하여 결의된 것으로 두 가지로 해석된다.
(1) 교회로부터 쫓겨나 사단의 영역(비기독교 세계)으로 추방된 것이다(Robertson, Guthrie, Earle).
(2) 육체적인 고통을 겪게 한 것이다(Hendriksen, Easton).
혹자는 후자의 경우를 반대하나(Lenski) 어떤 경우든지 사단에게 내어준 바 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저들을 징계한 목적은 파멸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에 이르도록 하려는 교정적(敎正的)인 것이다(Hervey,Bernard).
이는 본 절에 하려 함이니라로 번역된 헬라어 '파이듀도신'(*)이 '배우게 하려 함이니라'(may learn, AV)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분명해진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들이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여 더 이상 진리에 대해서 훼방하지 않게 하려는 사도 바울의 사랑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영적 싸움에서의 실패자들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었다. 이렇게 이름을 언급한 것은 인신 공격이 아니다. 이미 시행된 권징을 알리며 우리에게 그것으로 교훈을 주는 것이다. 그들을 사탄에게 내어주었다는 것은 제명 출교를 가리킨다.
교회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이지만, 교회 밖은 사탄의 세계이다. 요한일서 5: 19는 우리가 하나님께 속하지만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하여 있다고 말했다. 내가 그들을 사탄에게 내어주었다는 말은 사도의 권위를 보이며 권징을 집행한 자가 그 자신임을 증거 한다. 이와 같이 오늘날 목사와 당회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통해 주신 영적 권위를 소유하고 있고 이 권위를 가지고 권징을 시행하게 된다.
권징의 목적은 그들로 비난하지 않는 것을 배우게 하기 위함이었다. 징계를 받다는 원어(파이듀도시)는 영어성경들의 번역대로 ‘배우다, 가르침을 받다’는 뜻일 것이다(KJV, NASB, NIV).
그들은 바른 진리를 비난하고 참된 믿음을 비방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충성된 종들을 비난했을 것이다. 그런 자들은 좁은 길보다 포용주의를 좋아하고 타협적인 길을 기뻐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제명 출교의 권징을 통해 비난하지 않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어떻게 바울은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를 사탄에게 내주었는가? 이 말은 바울이 그들을 교회 공동체에서 내쫓는 출교(黜敎)의 징계를 시행했다는 의미이다.
그 목적은 그들을 포기하였음이 아니다. 그들로 하여금 회개에 이르도록 교정하기 위함이었다. 즉 그들이 더 이상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 죄를 짓는 악한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방지함으로써 그들에게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돌이킬 수 있는 회복의 기회를 준 것이다.
이처럼 교회의 올바른 징계는 그 대상자들로 하여금 자기 잘못의 심각함을 깨닫게 하여 회개에 이르도록 하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오늘날 우리는 참 믿음에서 떠난 배교와 변절을 본받지 말고 그런 죄악에 떨어지지 말아야 한다.
둘째, 우리는 영적인 선한 싸움을 잘 싸워서 이겨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죄성과 사탄과 세상의 악의 풍조와 싸워 이겨야 한다.
셋째, 우리는 믿음과 착한 양심을 잘 지켜야 한다.
특히 이 배교와 타협과 혼란의 시대에, 우리는 성경말씀 묵상과 기도로써 선한 싸움을 싸우며 착한 양심을 가지고 믿음 곧 성경적 믿음을 지켜야 한다.
첫댓글 은혜의 말씀 감사합니다.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