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빌어먹을 축음기는 좀 집어치워!”
그는 다짜고짜 축음기로 가서 판을 빼버렸다. 그녀는 그에게로 돌아섰다.
“이봐요, 의사 양반. 누구에게 수작질이야? 내 방에서 왜 행패를 부리는 거야?”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그가 외쳤다.
톰슨 양은 기운을 냈다. 그녀가 쏘아붙일 때 표정에 드러난 조소와 그 말 속에 가득 찬 결멸과 증오는 형언할 수 없었다.
“너희 사내놈들! 더럽고 치사한 돼지 같으니! 너희들은 어느 놈이나 다 똑같아! 모두 돼지야, 돼지!”
맥페일 의사는 숨이 턱 막혔다. 그는 비로소 모든 것을 깨달았다.
―서머싯 몸의 단편소설 〈비〉 중에서
《달과 6펜스》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서머싯 몸의 작품 〈비〉의 마지막 장면이다.
여객선을 타고 가던 데이비슨 선교사 부부와 맥페일 의사 부부는 우기 때문에 섬에서 며칠 머물게 된다. 그곳에서 활발히 영업하던 창녀 톰슨을 발견하고, 신앙심이 투철한 데이브드는 지역 총독을 찾아가 그녀를 추방시킬 것을 요구한다.
창녀 수용소에서 탈출한 전력 때문에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면 3년간 교도소에서 감금될 위기에 놓인 톰슨은 눈물로 호소하며 마음을 바꿔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신의 사도인 데이비슨은 회계하고 벌을 받아야 한다며 오히려 그녀를 설득한다.
아무리 애원해도 소용이 없자 자포자기 상태에 빠진 톰슨은 화장도 하지 않고 옷도 대충 걸친 채 불안스레 방 안을 서성인다. 밤이 되면 선교사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며 데이비슨과 함께 밤새 기도를 올린다.
마침내 샌프란시스코 가는 배가 섬에 오기로 한 날 아침, 맥페일 의사는 데이비슨 선교사의 시체를 발견한다. 선교사의 목은 귀밑에서 다른 쪽 귀밑까지 잘려 있고 오른 손에는 면도칼이 쥐어져 있다. 의심할 여지없는 자살이다.
갑작스런 선교사의 죽음에 비통해하며 집으로 돌아오니 한동안 잠잠했던 음악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어제까지만 해도 의기소침해 있던 톰슨은 화장을 짙게 하고 화려한 옷을 걸친 채 선원들과 수다를 떨고 있다. 화가 난 맥페일이 그녀를 밀치고 방으로 들어가 축음기를 꺼자, 그녀가 비웃음과 함께 경멸과 증오로 가득 찬 음성으로 외친다.
“너희 사내놈들! 더럽고 치사한 돼지 같으니! 너희들은 어느 놈이나 다 똑같아! 모두 돼지야, 돼지!”
순간, 맥페일 의사는 모든 상황을 분명하게 깨닫는다.
소설 속에 내리는 ‘비’는 인간의 욕망을 상징한다.
창녀인 톰슨의 열등감은 ‘창녀’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창녀임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것이 유일한 생계유지 수단이기 때문이다. 즉, 톰슨은 창녀라는 사실에는 열등감을 느끼지만 열등콤플렉스는 없다.
선교사인 데이비슨은 신의 충실한 사도 역할을 자청한다. 그는 선교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문란한 옷을 입고 다니는 원주민은 물론이고 교회에 나오지 않는 원주민에게까지 벌금을 물게 할 정도다.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지만 그는 열등콤플렉스를 갖고 있다. 그것은 바로 ‘욕망’이다.
톰슨은 데이비슨이 그녀의 열등감을 비난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녀가 두려워하는 것은 추방이나 감금 같은 법률적인 제제다. 반면 데이비슨은 꼭꼭 감춰놓았던 열등콤플렉스가 표출되자 수치심을 참지 못하고 자살한다.
톰슨은 자신의 열등감을 그 크기 그대로 바라본 반면, 데이비슨은 열등감을 왜곡하거나 확대해서 바라보았기 때문에 빚어진 비극이라 할 수 있다.
톰슨의 ‘이상적인 나’와 ‘현실적인 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다. 반면 데이비슨의 ‘이상적인 나’와 ‘현실적인 나’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 데이비슨은 자신의 욕망을 인정하지 못하고, 형편없는 짓을 저지른 ‘현실의 나’에게 분노해서 그를 죽여버린 것이다.
열등콤플렉스에 시달리거나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자주 욱하는 경향이 있다. 상대방이 별다른 의미 없이 한 말에도 왜곡하거나 확대 해석해서, 수치심을 불러오거나 분노한다.
“어떻게 내게 그런 형편없는 말을 할 수 있죠?”
“돈 없다고 깔보는 거야?”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여!”
이런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열에 아홉은 열등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거나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이 먼저 무시했거나 만만하게 본 것이 아니라, 평상시 내가 나 자신을 무시하고 만만하게 보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들리는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분노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가 우선이어서 종종 자해를 시도하기도 한다.
미국의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부인인 엘리너 루스벨트 여사는 이렇게 조언한다.
“남들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 남들은 그렇게 당신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지 않는다. 당신이 동의하지 않는 한 이 세상 누구도 당신이 열등하다고 느끼게 할 수 없다.”
먼저 나 자신을 충분히 존중하라. 그럼 세상 사람들이 습관처럼 흘리는 비웃음마저도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향한 것임을 깨닫게 되리라. < ‘걱정이 많아서 걱정인 당신에게, 나를 지치고 힘들게 하는 감정에서 탈출하는 법(한창욱, 정민미디어, 2019)’에서 옮겨 적음. (2019.09.08. 화룡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