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안국화축제
한자문화권의 행정구역 단위 중 하나인 里지만 오랜 세월 접한 때문인지 '광안리'란 이름은 친숙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洞 아래에는 '리'가 없고 대신 '통'이 있으니 전국에 40개 '리'밖에 없다. 우리가 요즘도 자주 듣게 되는 서울의 수유리, 화양리, 미아리, 망우리, 당인리와 부산의 광안리, 대천리, 거제리 등이 대표적이다. 신혼 초에 직장도 집도 모두 부산 서면에 있었고 난 그 지명이 혼란스러웠다. 읍면동 순서인데 집은 초읍에 있었던 것. 서면로터리를 지날 때마다 난 서면과 초읍 지명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줄곧 했었다.
구미시청에 근무하는 조카가 금년말에 정년퇴임을 한다기에 그때 연락하면 직접 찾아가서 퇴임을 축하하겠다고 했는데 지난 6월 '장천면장'으로 발령을 받았다고 한다. 누가 지어낸 것인지 모르지만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속된 말이 떠올랐다. 조카는 "요즘은 세상이 바뀌어 퇴임식 같은 건 안 한다."고 했다. "그럼 더 잘됐네. 부부가 부산 여행을 한번 다녀가면 좋겠다"고 했더니 의논해 보겠다고 한다. 삶의 종착역에 거의 닿은 지금, 난 지명도 알쏭달쏭한 勿禁읍에 살고 있다.
광안해변 국화전시장 자리는 코로나 이전 청보리밭으로 관광객을 불러들인 곳이다. 장소가 협소하지만 꽃 종류를 다양하게 전시한 때문인지 탐방객은 이어졌다. 주말로 다가온 '부산불꽃축제' 준비에 매달리느라 국화꽃에 물을 제대로 주지 못했는지 시든 꽃도 더러 보였다. 보통 비구니나 수녀는 혼자 출타를 하지 않는 편인데 오늘 난 국화꽃과 광안바다를 배경으로 혼자서 셀카를 찍는 중년의 수녀를 만났다. 그는 표정도 꽃처럼 예쁘게 미소를 지으며 몇 컷 찍고는 서둘러 꽃밭을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