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도력
가장 무거운 위탁, 가장 큰 영광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빌 1:29)
https://youtu.be/heRe8CjRTs0
2. 오늘의 성경 /마 21-23장
https://youtu.be/m0gbCMlPltk
3. 오늘의 증언
https://youtu.be/d9z7nExUv94?list=PLhuKCEBVU716nRiKxPgWef1UgZ7KLo9VT
4. 오늘의 교과
https://youtu.be/HrmYgHslBBE
교회를 위한 기도
교회의 아픈이들과 낙심한 이들을 위해서
온 성도가 주의 사랑으로 하나되게 하소서
사역반의 활성화를 위해
살아있는 예배, 변화되는 생활을 위해
10월 18일 행복잔치를 위해
10월 20-24일 전도회를 위해
삼육서울병원 120주년 기념관 건축을 위해 기도합시다.
https://youtu.be/vqO09o_iYhk?list=RDvqO09o_iYhk
□ 말씀묵상
마태복음 21장
중심구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마 21:42-43)
내용개요
1-11절: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심
12-17절: 성전을 정결하게 하시고 병자들을 고치심
18-22절: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과 기도의 능력
23-27절: 종교 지도자들의 권위 논쟁과 요한의 세례에 관한 질문
28-32절: 두 아들의 비유 (말과 행실의 순종)
33-46절: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와 모퉁잇돌의 심판 경고
관찰
예수님은 겸손한 왕으로 입성하신 뒤 성전에서 매매하는 상을 엎으시며 기도하는 집으로 회복시키신다. 잎만 무성하고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말리신 후, 성전에서 권위를 따져 묻는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두 아들과 악한 포도원 농부 비유를 통해 참된 회개와 순종이 결여된 그들의 위선을 직격하신다.
해석
외형적인 종교적 특권이나 혈통은 구원을 보장하지 못한다. 하나님 나라는 직분이나 지식을 자랑하는 자가 아니라, 말씀에 인격적으로 반응하여 '열매'를 맺는 자들의 것이다. 종교적 기득권층이 버린 모퉁잇돌(그리스도)은 참된 신앙의 기준이자 심판의 반석이 된다.
적용
말만 앞세우고 순종하지 않는 큰아들의 모습이 내 안에 있는지 돌아본다. 잎사귀만 무성한 종교적 형식주의를 버리고, 하나님께서 삶의 자리에서 찾으시는 실질적인 회개와 사랑의 열매를 맺는 데 집중한다.
마태복음 22장
중심구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 22:37-40)
내용개요
1-14절: 혼인 잔치의 비유와 예복을 입지 않은 손님
15-22절: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의 세금 바치는 문제 논쟁
23-33절: 사두개인들의 부활에 관한 궤변적 질문과 반박
34-40절: 한 율법사의 가장 큰 계명 질문과 하나님·이웃 사랑 선포
41-46절: 그리스도가 누구의 자손인가에 대한 다윗 시편 논증
관찰
혼인 잔치의 초대를 거절하고 종들을 죽인 자들이 심판을 받고 사거리의 모든 사람이 초대받지만, 예복을 입지 않은 자는 쫓겨난다. 이어 바리새인, 헤롯 당원, 사두개인, 율법사가 차례로 정치적·신학적 올무를 놓으려 질문하지만, 주님은 하나님의 것과 가이사의 것,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 가장 큰 사랑의 계명을 명쾌히 밝혀 그들의 입을 막으신다.
해석
하나님 나라 초대는 은혜로 주어지지만, 부르심에 합당한 삶(그리스도로 옷 입는 의의 예복)을 요구한다.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을 수단 삼아 하나님을 시험하려 했으나, 율법의 본질은 지적 논쟁이나 세속적 권력 유지가 아니라 전심을 다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있다.
적용
하나님께 드릴 마음과 헌신을 세상적인 계산과 타협하지 않는다. 머리로만 율법을 따지고 타인을 정죄하는 습관을 멈추고, 오늘 내 곁에 있는 이웃을 내 몸처럼 돌아보며 하나님을 향한 중심의 사랑을 실천한다.
마태복음 23장
중심구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 23:23)
내용개요
1-12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교만과 외식을 경계하심
13-15절: 천국 문을 닫고 교인 하나를 배나 지옥 자식 만드는 화 선포
16-22절: 성전과 제단을 무시하고 헛된 맹세를 일삼는 눈먼 인도자들
23-24절: 십일조는 드리되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버린 화 선포
25-28절: 겉은 깨끗하나 안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한 회칠한 무덤의 화
29-36절: 의인과 선지자들을 죽인 조상들의 악을 채우는 자들을 향한 심판
37-39절: 예루살렘을 향한 탄식과 암탉이 새끼를 모으듯 품으려 하신 예수님의 눈물
관찰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말은 본받되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경고하시며, 칠중의 화(Woe)를 선포하신다. 그들은 남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자신은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으며, 사람에게 보이려고 종교적 치장을 일삼고, 사소한 규정은 집착하면서 하나님의 성품인 정의, 긍휼, 믿음은 저버렸다.
해석
외식(위선)은 하나님을 섬기는 척하며 실상은 자기 영광을 취하는 가장 위험한 죄악이다. 하나님은 외면의 경건한 껍데기가 아니라 속사람의 정결함을 보신다. 그러나 주님의 이 엄중한 질책 이면에는 암탉이 새끼를 날개 아래 모으려 하듯 백성을 향한 긍휼과 찢어지는 비통함이 담겨 있다.
적용
남을 가르치려 들기 전에 내 삶의 이중성과 영적 교만을 점검한다. 사람들의 시선과 칭찬을 의식하는 위선적 동기를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공의와 긍휼, 진실한 믿음으로 살아간다.
묵상을 돕는 예화
19세기 말,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가 겪은 일화입니다.
몹시 매섭고 시린 겨울날, 길을 걷던 톨스토이에게 동사 직전에 놓인 한 남루한 거지가 떨리는 손을 내밀며 애원했습니다.
"나리, 제발 몇 푼만 적선해 주십시오. 며칠을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톨스토이는 다급히 코트 주머니와 바지 주머니를 샅샅이 뒤졌습니다. 그러나 그날따라 지갑은 물론 동전 한 닢, 먹을 것 하나 가지고 나오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손에 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깨달은 톨스토이는 미안함과 안타까움에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얼어붙어 트고 피가 맺힌 노인의 앙상한 두 손을 자신의 따뜻한 두 손으로 꼭 감싸 쥐었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여, 나를 용서해 주시오. 지금 내 수중에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소."
그 순간, 빈손으로 돌아설 줄 알았던 거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리고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아닙니다. 당신은 제게 그 어떤 금화보다 큰 것을 주셨습니다. 저를 '형제'라고 불러주셨고, 제 차가운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태어나서 이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제 평생 가장 귀한 구제를 받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율법 조항과 십일조, 규례의 잣대로 타인을 평가하고 소외시켰지만, 정작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외면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종교의 본질은 화려한 겉치레나 말의 잔치가 아니라, 메마른 영혼의 손을 가슴으로 맞잡아주는 '긍휼'과 '사랑'의 실천입니다.
오늘의 기도문
모든 위선과 거짓을 꿰뚫어 보시는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겉모습만 그럴듯하게 치장하고 정작 주님이 찾으시는 회개와 사랑의 열매는 맺지 못했던 저희의 완악함과 영적 교만을 고백하며 회개합니다.
말로는 순종한다 하면서도 삶의 자리에서는 제 고집대로 살았던 위선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사람의 시선과 평판에 얽매여 껍데기뿐인 신앙생활에 안주하지 않게 하시고,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며 내 곁의 연약한 이웃을 내 몸처럼 돌보는 참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의 예복을 입고, 오늘 하루 공의를 행하며 긍휼을 베풀고 겸손히 주님과 동행하는 신실한 발걸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