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시계 또는 일구(日晷)는 태양의 일주 운동을 이용하여 시간을 알 수 있게 만든 장치이다.
해시계는 인간이 만든 가장 오래된 시계로, 원시시대부터 나무 그림자를 보고 시간을 측정하였고, 중세 유럽에 기계 시계가 출현·보급될 때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해시계의 종류에는 수평식과 수직식의 두 가지가 있다.
중국의 해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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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의 길이를 재는 식의 해시계( Gnomon)는 그 지역의 시간만을 측정할 수는 한계가 있었다.
또한 태양의 움직임이 복잡하게 변하기 때문에 유용성이 떨어지는 문제도 생겼다.
그래서 막대기를 지구의 자전축과 평행이되게 기울이는 방법을 쓰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선다이얼 (Sun dial)의 시초이자 시계 역사의 시초가 되었다.
그 예로 고대 이집트에서는 오벨리스크가 그노몬으로 쓰였는데, 지침(指針)은 지축에 평행하게 기울어지도록 하였다.
이러한 선다이얼은 계절에 관계 없이 같은 장소에 그림자의 위치가 일정한 곳에 오지만, 그림자의 길이는 늘 변했다.
선다이얼은 기원전 1500년경에 이집트 해시계가 가장 오래된 것이지만, 이를 먼저 발명한 것은 아마도 바빌로니아인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후 그노몬은 기원전 6세기 초에 그리스에 소개되는 등 차츰 동·서로 전해졌다.
그러나 밤이나 날씨가 궂은 때 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렇지만 17세기 까지만 해도 기계로 된 시계보다도 오히려 더 정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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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부일구(仰釜日晷)
아래의 앙부일구는 해의 그림자를 이용해 시간을 표시하는 일종의 시계이라도고 할 수가 있지만
위와같이 단순한 시계가 아니라
오늘날 지구의 좌표계로도 사용되고 태양계의 모형도로도 활용되는 다목적의 우주모형도인 셈이다.
한반도에서 사용된 실물 자료로는 경주에서 출토된 7세기 경의 해시계 파편이 가장 이른 시기에 해당된다.
이 유물은 원반모양의 시반을 24등분하여 자시ㆍ묘시 등의 24시를 새기고, 그 중심에는 시표인 막대기를 세웠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 크기는 반지름 33.4cm이며, 현재 자시부터 묘시까지만 남아 있다.
이후 조선 세종 때 제작된 앙부일구·정남일구·천평일구·현주일구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앙부일구는 외국과는 다른 조선 초의 독특한 형태로 일본에도 전해졌다.
앙부일구
앙부일구(仰釜日晷)는 1434년 조선 세종대왕 16년 이후로 제작·사용된 해시계로, 과학·역사·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5년 8월 9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845호로 지정되었다.
앙부일구는 장영실, 이천, 김조 등이 초기의 제작에 참여하였으며, 이때 제작된 앙부일구는 남아 있지 않아 18세기에 제작된 것을 보물로 지정하였다.
보물로 지정된 휴대용 앙부일구는 주머니에 넣을 수 있을 만큼 작은 크기로 강건이 제작한 것이다. 이외에는 자격루,혼천의와 같은 장영실의 발명품이 있다.
앙부일구의 제작과정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은 해설이 일반적이다.
앙부일구는 원나라의 〈천문지(天文志)〉「앙의(仰儀)」를 참고하였다고 한다.
오목한 화로 크기의 둥근 가마솥 시계판 모양 해를 우러르고 있다고 해서 앙부일구라는 이름을 붙였다.
오목한 지구의처럼 생겨 시각선, 계절선을 나타내는 데 효과적이다.
청동을 재료로 하여 주물을 부어 만들고 글자와 선은 흑색칠 바탕에 은상감(銀象嵌)을 하여 뚜렷이 보이게 하였다.
4개의 발은 수평을 맞추기 위하여 수평기준장치를 십자(十字)의 형태로 하였다.
시판은 동지(冬至) 쪽에서 시작하여 하지(夏至)에 이르기까지 24절기를 13선의 위선(緯線)으로 긋고 이에 수직으로 시각선(時刻線)을 그었다.
위도에 따라 그림자의 길이를 달리하기 위해, 영침(影針), 즉 그림자바늘은 당시 한양에서 사용하던 북극출지(北極出地) 37도 20분에 맞춰서 비스듬히 꽂아서 사용하였다.
당시의 시간은 12간지로 표현을 하였으며, 시간의 단위가 12이기 때문에 2시간이 한 묶음의 시간이었다.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12지신을 그림으로 그려 1434년 11월 2일(음력 10월 2일) 혜정교(惠政橋)와 종묘 앞에 설치를 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사라져 세종시대 앙부일구는 남아있지 않다.
그 후 조선시대 말까지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어 궁궐과 관공서, 사대부 가옥에 이르기까지 널리 보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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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의 앙부일구의 천문학적 의미
결론적으로 세종대왕의 앙부일구는 우주의 모형도이고
태양계의 구조이며 동시에 소우주인 인간의 물리학적인 구조모형도입니다.
세종시대의 이향의 앙부일구는 그당시의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일반적인 해시계와는 다양한 차원에서 다릅니다.
특히 앙부일구는 우주 모형도이고 지구의 좌표계이며 태양계의 구조와 크기 운동을 정확하게 모형화한 것입니다.
아래는 한성(서울)의 좌표는 현재 미국의 나사에서 측정된 좌표입니다만..
그 당시에 이미 이수치를 정확하게 계산하고 활용합니다.
좌표 37° 34′ 36″ N, 126° 58′ 27″ E
지구를 서울중심으로 보고 그 시간대롤 정한 것입니다.
아래의 해설은 현대인이 보는 그당시의 앙부일구를 해설한 것인데요.
참고하세요.
앙부일구는 천구상에서 일정한 주기를 갖고 회전하는 태양의 운행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기구였다.
따라서 해 그림자가 드리워진 절기선과 시각선의 눈금을 읽으면 별도의 계산 없이 그때의 시각과 절기를 곧바로 파악할 수 있는 간편한 기구이다.
앙부일구는 한양의 위도를 정확하게 측정하고 영침을 한양의 북극고도에 맞추어 설치함으로써 한양을 기준으로 한 국가 표준시계라는 점에서 그 특징을 찾을 수 있다.
다음으로 앙부일구는 지구의 자전축 방향인 북극에 맞추어 천구적도좌표계와 일치하도록 설치함으로써 지구의 자전운동으로 인해 나타나는 태양의 일주운동의 변화량을 측정하는 천문시계였다.
다음으로 주목해야 할 점은 세종 때 앙부일구를 만들어 혜정교 옆과 종묘 남쪽에 설치하였다는 사실이다.
그곳은 일반인들이 왕래하는 대로변이었다.
따라서 앙부일구는 백성들이 직접 보고 시간을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공중시계이자 실제 태양계의 모형도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세종 때 앙부일구에서는 지평환 부분에 시각을 글자로 표시하지 않고 12지신의 동물그림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이는 글자를 모르는 백성들로 하여금 시간을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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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세종 때 처음 만들었으며 이후 조선말까지 계속해서 만든 대표적인 해시계로 공중용으로 설치해놓는 것과 작게 만들어 휴대할 수 있는 것이 있다(→ 한국과학사). 이 오목형 해시계는 일본에도 전해져 많은 유물이 남아 있으나 중국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증보문헌비고 增補文獻備考〉 상위고 의상에 의하면 세종의 명으로 정초·정인지 등이 고전을 연구하고, 이천(李蕆)과 장영실이 공역을 감독하여 1434년(세종 16)에 앙부일구를 비롯한 여러 천문의기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김돈(金墩)의 앙부일구명에는 "무릇 시설 중에서 시간에 관한 것보다 더 중대한 것은 없다. 밤에는 경루가 있으나, 낮에는 시간을 알기 어렵다. 구리를 부어서 그릇을 만들었는데 모양이 솥과 같다. 지름에 둥근 송곳을 설치하여 북에서 남으로 마주 대하게 했으며, 움푹 팬 곳에서 휘어져 돌게 했고, 점을 깨알같이 찍었다. 그 속에 도(度)를 새겨서 반주천을 그렸다. 시신을 그린 것은 무식한 백성을 위한 것이며, 시간이 정확하고 해 그림자가 명백하다. 길가에 놓아두니 구경꾼이 모여든다. 이로부터 백성도 이것을 만들 줄 알게 되었다"고 앙부일구에 대해 적고 있다.
공중용 앙부일구는 2개를 만들어 종묘 남쪽 거리와 혜정교에 돌로 대를 쌓고 그 위에 설치하여 일반 백성들이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이때의 앙부일구는 현존하지 않는다. 다만 18세기 전후의 작품들이 현존하여 궁중유물전시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이 2기가 현재 보물 제845호로 지정되어 있다. 앙부일구의 재료는 보통 청동이지만, 자기나 돌을 깎아 만든 것도 있다.
공중용 앙부일구는 보통 30~40cm 정도의 크기이다. 앙부일구는 그림자를 만들기 위해 끝이 뾰족한 막대[影針]를 쓰는데 이것도 보통 청동으로 만든다. 영침의 길이는 앙부일구 지름의 절반이 된다. 영침의 끝을 앙부일구의 중심에 오도록 하며 그 방향은 천구의 북극을 향한다. 앙부일구의 안쪽면에는 절후선이라는 13개의 위선이 있고, 시각선이라는 여러 개의 경선이 그어져 있다. 시각선과 절후선은 항상 서로 직교한다. 절후선의 가운데 있는 춘추분선은 천의 적도면과 일치하는 대원이 되며 나머지 12개의 절후선은 적도에 평행하다. 태양의 고도가 여름에는 높아지고 겨울에는 낮아지므로 절후선에 닿는 그림자의 위치로 시간뿐만 아니라 그해의 절기를 알 수 있다. 청동으로 만든 앙부일구에서는 절후선이나 시간을 나타내는 글씨를 칼로 홈을 파고 은으로 상감했다. 앙부일구의 영침의 위치는 관측 지점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대개는 윗면이나 옆면에 한양북극고도 또는 북극출지의 도수로서 표시하고 있다.
휴대용 앙부일구로 유명한 것은 1874년(고종 8)에 강건(姜健)이 납석으로 만든 것이 있다. 4~6cm 정도 크기의 직육면체 상자에 반구를 파고 그 안에 영침을 세웠다. 또한 방향을 쉽게 정할 수 있도록 자침을 설치한 것이 특징이다. 이밖에 청동제나 상아로 만든 앙부일구가 상당수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