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2.3.연중 제4주간 월요일 히브11,32-40 마르5,1-20
복음 선포자의 온전한 삶
“구원자 주님을 갈망하는 사람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이자 우리의 빛이시다.”
(Jesus is our salvation and our light)
“희망하는 것은 하느님께 방향을 돌리는 것이다.”
(To hope is to turn around to God)
새벽 교황청 인터넷을 열었을 때 교황님 강론 제목이 신선한 깨우침이었습니다. 사람은 섬이 아닙니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습니다. 더불어의 삶에 더불어의 여정에 더불어의 구원입니다. 예수님 중심에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공동체 삶이어야 합니다. 예전 수도원을 찾았던 분들과의 문답이 생각납니다. 수도원의 주변환경이 좋다며 이구동성의 찬탄과 더불어 주고 받은 대화입니다.
“아, 여기가 천국입니다.”
“환경이 좋아서 천국이 아니라, 서로의 관계가 좋아야 천국입니다. 주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자연환경과의 관계가 날로 좋아지고 깊어질 때 그 어디나 천국입니다. 아무리 환경이 좋아도 고립단절의 혼자의 삶이라면 거기가 지옥입니다. 제가 몸담아 살고 있는 여기 ‘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의 상호보완의 수도공동체’는 저에겐 최고의 스승입니다. 수도공동체에 늘 감사하며 배우는 마음으로 삽니다.”
그렇습니다. 지옥이나 천국은 장소 개념이기 보다는 관계 개념입니다. 환경은 좋지 않아도 서로 섬기며 화목하게 지내면 거기가 천국입니다. 오늘날 세상을 보십시오. 국내 안팎이 온통 치열한 싸움터입니다. 국내 상황을 봐도 분열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 격화된 시위현장을 보면 심리적 내전 상태요 제정신들이 아닙니다.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사람들이 많지 않아 보입니다. 곳곳에 더러운 영이 들린 광신의 미친 자들이 널려 있는 모습입니다. 옛 현자도 공부할 것을 강조한 가르침에 공감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구도자요 수행자로 살아야 함을 배웁니다.
“책을 읽는 것은 지식을 얻는 것을 넘어 자기 자신을 정리하고 다듬는 과정이다.”<다산>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워진다.”<논어>
끊임없이 배우며 생각하며 실천해야 온전한 지성인의 지혜로운 삶이겠습니다.
여전히 대두되는 물음이 “어떻게 살아야 하나?”입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의 실현이 목마르게 절실한 현실입니다. 오늘 복음과 제1독서 히브리서 말씀이 우리에게 좋은 가르침이자 깨우침이 됩니다.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의 상태가 너무 비참합니다.
공동체로부터 떠난 고립단절된 삶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깨닫습니다. 더러운 영에 들린자의 치유과정과 공동체로의 복귀 과정이 깊은 묵상감입니다. 복음의 더러운 영에 들린 미친자의 구제불능의 적나라한 묘사가 충격적이요 바로 이런 상태가 지옥입니다.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 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
흡사 구원자 주님을 찾는 울부짖음이요, 몸부림치고 발버둥치는 모습처럼 보입니다. 공동체로부터 고립격리되어 그 마음 중심 자리에 예수님이 자리잡지 않아 더러운 영에 사로잡힐 때 누구나의 가능성입니다. 오늘 히브리서에서 이와 흡사한 그리스도 예수님 이전의 불완전한 믿음의 사람들의 비참한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어떤 이들을 석방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고문을 받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을 당하고 결박과 투옥을 당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돌에 맞아 죽기도 하고 톱으로 잘리기도 하고 칼에 맞아 죽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궁핍과 고난과 학대를 겪으며 양가죽이나 염소 가죽만 두른 채 돌아 다녔습니다.
그들에게는 세상이 가치 없는 곳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믿음으로 인정을 받기는 하였지만 약속된 것을 얻지는 못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내다보셨기 때문에, 우리 없이 그들만 완전하게 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역시 구원자 주님을 찾아 헤매는 목마르고 굶주린 모습들처럼 보입니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님 없는, 예수님 이전의 비참했던 믿는 이들의 현실을 살펴봤습니다. 바로 이런 삶의 현장에 말씀이 사람이 되신 분, 수난과 죽음과 부활로 하늘에 오르신 분,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그 삶의 한복판 중심에 우리와 함께 살려 오신 것입니다.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예수님의 호령에 더러운 영들은 돼지떼와 더불어 사라졌고, 더러운 영에 들렸던 이는 제정신이 들어 예수님과 함께 있고 싶다 하였으나, 예수님은 허락하지 않고 본래의 가족 공동체로 복귀시키며 자기 삶의 자리에서 복음 선포자가 될 것을 명령하십니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공격이 최선, 최고의 방어입니다.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각자 공동체 삶의 자리에서 적극적 복음 선포의 삶을 살 때, 그대로 하느님 나라 공동체 꿈의 실현이요 마귀들의 영원한 퇴출이니 저절로 영육의 건강입니다. 이래야 현대판 더러운 영이 들린 극단의 광신자나 맹신자가 되지 않습니다.
유비무환입니다. 처방이나 치유보다는 예방이 백배 낫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항구히 열렬히 사랑하여 삶의 중심에 모시고 주님과 일치되어 사는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이 주님을 모시고 영적승리의 온전한 삶을, 복음 선포자의 적극적 삶을 살게 하십니다.
“예수님,
당신은 저의 모두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희망,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요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당신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아멘.
- 성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 프란치스코 수사
첫댓글 하루하루가 감사요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당신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