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노래 ( 소리 높여 부르고 싶다.)
박두진 작사
김동진 작곡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 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후렴)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불의의 역도들을 멧 도적 오랑캐를
하늘의 힘을 빌어 모조리 쳐부수어
흘려온 값진 피의 원한을 풀으리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정의는 이기는 것, 이기고야 마는 것
자유를 위하여서 싸우고 또 싸워
다시는 이런 날이 오지 않게 하리
이 노래는 박두진 작사, 김동진 작곡 잊혀진 “6,25 노래” 다,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 ~ 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우리가 천추에 한이 되는 노래로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노래다.
6,25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 공산군이 소련제 탱크를 앞세워 남북 군사분계선 이던 38선 전역에 걸쳐 불법 남침함으로 일어난 한반도에 치욕스럽고 비극적인 동족상간의 전쟁이다.
우리는 이날은 영원히 잊어서는 안 될 날이다.
이 노래는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 뇌리 속에 잊혀진 가는 노래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상기하여 부르고 싶은 노래다,
작사자 박두진(朴斗鎭)(1916–1998)선생님은 경기도 안성(安城)에서 출생 하였다. 아호는 혜산(兮山)이고. 박목월· 조지훈과
함께 청록파(靑綠派)시인이다.
1939년 정지용 추천을 받아〈문장>에 <향현 (香峴)>〈묘지 송>〈낙엽송> 등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하였다.
우석대학,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를 거쳐서 1972년 다시 연세 대학교 교수로 근무하였다
시(詩)로는 <6,25의 노래> <청산도> <해><어서 너는 오너라> <도봉> 등이 있다.
신앙 체험을 고백하는 작품을 주로 썼고. 시집으로 <해> <청 록 집), <오 도> <포옹무한> 등이 있다.
작곡가 김동진 (金東鎭)(1913 - 2009)선생님은 평안남도 안주(安州)가 고향이다. 평양 숭실 전문학교를 졸업 하고, 목사이신
아버지 영향으로 취학 전부터 서양 음악을 접하고, 일본 고등 음악 학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 하였다.
평양 숭실 전문학교 시절에 <봄이 오면> <뱃노래>를 작곡 하였고, <가고파>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작곡 하였다.
6,25사변에 남하하여 대학 교수로 재직하였고, 서정적인 가곡 <내 마음> <목련화> <수선화> <조국 찬가> <진달래 꽃> 등 주옥
같은 가곡과 많은 군가, 교가(校歌)를 작곡하였다.
6,25 당시 우리 군인 (사진 폄)
엇 그제가 6,25 사변 74주년이다.
그리고 보니 금년도 벌써 절반이 가고, 새삼 세월이라는 보이지 않는 순간을 지나는것을 실감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1945년 8,15 해방되고, 38선 이남은 자유 민주 대한민국 국가로 탄생 하였고, 38선 이북에는 조선 인민 공산 국가 가 만들어 졌다.
북한의 김일성 인민군대는 소련제 탱크를 앞세워 1950년 6월 25일 (일요일)38선 전역에 걸쳐 대한민국에 선전포고 없이 기습 남침을 발발하여 일으킨 전쟁이 6,25 사변이다. 그때 나는 국민 학교(지금은 초등학교) 1학년 입학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미국을 비롯한 우방 유엔 연합 16개 군의 참전으로 3년여 기간의 전쟁을 치르고, 1953년 7월27일 휴전 협정이 이루어져, 아직도 휴전 상태로 74년의 세월이 흘렀다.
북한은 지금도 3대 세습 독재 왕조 국가로 자국민들의 식량문제도 해결 못 해 아사자사 속출하면서도, 핵 개발을 계속하며 협박하고, 최근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오물 풍선을 내려 보내는 한심한 작태는 공산 사회주의 독재 국가에서나 발생 할 수 있는 일인가 생각한다.
같은 민족으로 74년 동안 편지 한 장 전 할 수 없었고, 가까운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서 서로 왕래도 할 수 없는, 지구상에서 가장 먼 나라를 생각하니 가슴 아픈일 이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6,25사변은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날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6,25사변하면 먼 옛날 역사 책속에 있는 전쟁 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 가 염려된다..
오늘도 그때 전장(戰場)에서 산화한 무명의 용사(勇士)들의 영령(英靈)들은 아직도 낮선 고지 어딘가에서 그리운 고향 산천, 부모형제를 그리워하고, 그들의 피와 살은 거름되어 바위에 이끼가 되고, 나무는 장송(長松)이 되어 조국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6,25 전쟁에 참전하였던 용사 들은 대부분 돌아가시고, 생존해 계신 분들도 대게는 90세 넘은 고령으로 힘겹게 사시는 분들이 이제는 몇 분 안 남으셨다고 한다..
이 분들에게 참전 수당이라고 몇 푼 드릴게 아니고, 미국처럼 국가적 차원에서 최고의 예우를 해드려야 할 것이다.
이분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단군 할아버지 이후 세계가 인정하는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번영한 나라에서 잘 살 수 있었겠나...
우리나라는 성능 좋은 우수한 각종 무기와 비행기를 생산하고, 선진화된 기술로 만들어진 무기를 세계시장에 수출 하고 있는 일등 국가다
어떠한 정치적인 논리를 떠나, 남과 북이 한 민족으로 서로 평화 통일을 이루어, 세계에서 자랑스러운 일등 민족 국가로 지구상에 우뚝 서는 날이 오기를 기원 해본다.
6,25, 사변, 74주년이 되니 감회가 새롭고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 ~ “6,25 노래”를 소리 높혀 부르고 싶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 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https://youtu.be/N02CsbQkKx8?si=m-QEEdY3kpSDTd6R(노래 6,25 노래 합창곡)
https://youtu.be/cQJNudjZHDI?si=TxVXhz5AXijvhIHe(노래 조국이 있다)
https://youtu.be/lI4thPnNxEQ?si=uO1V6sXFOPIsGVRy (노래 나의조국)
보너스(bonus)(옛가요 :가거라 38선)
https://youtu.be/xjyB889bln4?si=AfGH5vE2bOV86fqy(노래 남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