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호 여우 누이뎐>은 납량특집으로 KBS에서 이승기와 신민아를 주연으로 하는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현대판과 함께 야심차게 준비한 구미호 시리즈 중 사극버전이다.
대부분의 구미호는 영화판이나 단막극 형태의 구미호 버전을 내 놓았지만 구미호 시리즈에서 유래를 찾아 보기 힘든 16부작으로 만들어 졌다.
KBS 여우 누이뎐은 SBS의 현대 강남 개발 비화를 담은 <자이언트>를 넘고, MBC의 여성주의 사극인 <동이>를 뛰어 넘겠다고 선언한 상태이다. 일단, 구미호는 여성들의 입맛에 맞는 구성을 가지고 있다.
김유정은 <동이>에서 주인공 천동이의 아역 배우로 몇 명 안 되는 성인배우(한효주)를 죽이는 전문배우답게 어린 구미호 연이를 나비를 따라갈 때는 천진난만한 어린이역을 소화했다.
다친 어미 구미호 한은정을 안고 울 때는 천상 아이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어미를 살리려 장터로 나가 봉변을 당하는 장면에서는 어미를 구하고 말겠다는 표독(?)스러움으로 임팩트 있는 출발을 하였다.
서신애는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신세경의 동생으로 엉뚱하면서도 착하기만 한 역에서 최초의 악역을 시도하고 있다. 서신애의 악역은 둥근 얼굴을 심술보로 변환하는데 성공했지만 무언가 부족한 면을 노출하였다. 서신애를 보고 있노라면 강부자의 어릴적 모습이 서신애의 모습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앞으로 서신애가 악역을 어떻게 소화 해 낼지 궁금해진다.
구산댁인 구미호 한은정은 자신의 모습을 본 나무꾼(정은표)에게 “누구에게도 자신을 만났다는 것을 이야기 하지 말라”하고 풀어준 후 나무꾼을 찾아가 백년해로를 맺고 딸 연이를 낳는다.
하지만, 약속을 잘 지키고 있던 남편이 구미호가 인간이 되는 마지막 10년째 되는 바로 전날 구미호(한은정)에게 10년 전 자신이 10년 전에 구미호를 만났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 났다는 이야기를 한다.
요즘 같은 현대사회라면 현명한 구미호는 남편이 말을 하는 도중에 이야기 소재를 돌려놓았을 것이다. 연이를 어떤 학원에 보내야 한다거나, 입술로 남편의 입을 막아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구미호는 남편을 말릴 생각을 하지 않고, 남편의 첫사랑이 누구인지 궁금하다는 듯이 듣고만 있다가 그때 만난 구미호가 자신이고 남편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죽이려 한다. 처음부터 너무나 착한 여우는 남편을 두고 어린 연이만을 데리고 떠난다. 그런데 구미호는 딸에게 구미호와 나무꾼에 대한 이야기를 구구절절 해준다.
구미호는 지킬필요가 없고 남편만 지키면 되는 약속인 것이다. 너를 죽여버리겠다고 하다가 꼬리를 흔들어 결혼을 하고 자신은 지키지 않는다는 설정부터 남자는 절대 모르는 여성 만의 언어와 행동를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정이 무엇인지“라는 말은 구미호가 남편을 살려주기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착하지 않는 구미호였다면 처음부터 나무꾼을 죽여 버렸을 것이다. 물론, 나무꾼을 죽이면, "10년 공부 도로 아미타불"로 인간이 될 수 없다는 금제가 걸려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놓아 주었겠지만 말이다.
구미호는 나무꾼이 거짓말을 하던 약속을 지키지 않던 상관없이 나무꾼과 인연을 만들지 않으면 나무꾼이 약속을 지키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굳이 나무꾼에게 시집을 가서 이놈이 약속을 지키나 안지키나 감시를 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남편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죽일 듯이 덤비지만, 결국엔 딸의 아버지이고, 남편인 남자를 놓아주고 만다. 한없이 착하기만 구미호이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은 구미호를 괴수로 만들어 버렸을까?
사실 구미호에 관한 설화를 살펴보면 천년을 산 여우가 인간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마지막 날을 넘기기 못하고 인간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인간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쓸쓸히 죽어간다. 그런데 구미호의 이야기는 다름이 아닌 우리네 누이들의 삶의 축소판이다.
연애시절 여우같던 아내가 백년해로하자는 남편을 만나 사랑을 하고 아이들을 낳지만, 사랑의 힘은 얼마 가지 못하고, 남편이 결혼 초에 한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콩깍지가 풀이는 시간은 딱 3년이다. 점차 열 받은 여우가 호랑이로 변해서 남편을 쥐어짜듯 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남편과 헤어지고 만다.
옛날 어머니들은 시집가는 딸에게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장님 3년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10년를 채우고 나면 비로소 인간으로 살만하다는 뜻일 것이다. 여자는 인간이 아니고 단지 여우처럼 꾀를 내어서 살아야 10년후에 인간이 된다는 뜻이다.
남편들인 남자들은 여우인 아내에게 처음에 약속했던 일들을 잘 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연애시절엔 천사 같은 아내가 결혼 3년차에는 여우로 변하고, 3년이 지난 후 부터는 호랑이로 변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부부가 10년을 넘기고 나면 “정”으로 사는 것이지 사랑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구미호 전설은 이야기하고 있다. 구미호는 10년을 살아야 비로소 인간으로 부부로 살만한데, 영양가도 없는 결혼 초 약속에 억매이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아내가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여자가 10년을 철없는 남자와 살면 성불할 수 있다는 말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런데 여우 누이뎐은 여우같은 여자가 구미호에서 사람이 되든, 호랑이가 되는 것은 남편하기 나름이란 뜻도 되지 않을까?
이전의 대다수 구미호 버전은 구미호가 인간이 되기 위해서 인간의 간이 필요한 악역이었지만, 여우 누이뎐에서는 자신의 자식의 삶을 위해서라면 다른 인간들의 목숨까지 빼앗을 정도로 겉 다르고, 속 다른, 동물보다 못한 인간의 욕망에 희생되고 배반당한 구미호를 그려 나가고 있다.
어쨌든, 구미호 여우 누이뎐은 제목에 <여우 누이뎐>들어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구미호(한은정)가 또 다른 남편을 만나 반인반수인 연이 말고도 새로운 인간 남동생이 생긴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고, 남동생(남자)의 관점에서 자신의 반인반수 여우 누이인 연이의 삶을 조명하는 드라마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남성이 여성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에 대한 보고서 같은 드라마이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동물보다 못한 추악한 인간에 대한 구미호 가족의 고발 보고서 같은 느낌이다. 토끼같은 여자아이들이 여우가 되고, 결혼후 구미호에서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의 누이들의 이야기이다.
첫회 총평을 하자면 스토리에 비해서 구미호와 호랑이 등 CG와 구미호 음성 더빙은 어설프다는 느낌을 지워버릴 수 없다. 인간에서 구미호 바뀐 후 구미호의 얼굴은 너무나 한가지의 표정 성격만 부여되어 있다. 무서움, 슬픔, 아픔, 고통, 기쁨, 분노 등 희노애락의 다양한 표정이 없다.
아무리 좋은 시나리오라도 작품을 만드는 제작자에 의해서 승패가 결정된다. 요리사가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같은 요리라도 맛이 달라지는 것처럼 같은 대본, 같은 배우를 두고 제작자가 다르면 전혀 다른 영상과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시나리오는 전체적으로 신선하고, 완성도가 높은 것 같다. 여우뎐이 공언한대로 자이언트를 제치고 사극 동이를 뛰어 넘을지 모르겠다. 동이는 단순히 일개 궁녀의 벼락 출세기를 억지 영웅화하는 드라마라면, 여우 누이뎐은 메시지가 명확한 모든 여성들이 겪는 성장통을 이겨내는 인간 성장 드라마이다. 심은하의 <M>을 뛰어 넘는 납량극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