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림(君臨)하는 법조계를 세상이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 것 같다.아는 대법관을 사석에서 만난 적이 있다. 젊은 시절부터 서로 격의 없이 지내는 가까운 사이였다. 점잖은 태도를 취하는 다른 판사와는 달리 그는 마음이 열려있는 편이다.
“대법관 생활이 어때?" 내가 물었다.
“요즈음 협박을 받느라고 피곤해” “어떤 협박?” “내가 맡고 있는 사건의 당사자가 계속 협박 메시지를 보내는 거야. 자기는 이미 이 세상에 살지 않기로 결심을 했는데 이왕 저승으로 가는 길에 대법관님하고 같이 갔으면 좋겠다는 거야. 가면 혼자 가지 왜 같이 가자고 하는지 모르겠어. 신경이 쓰여서 전문가한테 물어봤어. 협박한 사람이 진짜로 행동할 가능성이 있느냐고 말이지. 그랬더니 가능성이 있다는 거야. 가슴이 서늘했지. 그래서 신변 보호 요청을 했어. 내가 퇴근할 무렵이면 경찰차가 우리 아파트 앞에 와 있어.”
“영 기분이 안 좋겠네?” “전에는 퇴근 후면 집 근처 한강 고수부지를 산책하고 그랬는데 요즈음은 못 걸어. 어디 나다니지도 못해. 대법원에서 밥도 구내식당에서 먹고 아예 늦게 퇴근해. 차가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하면 그놈이 있나 없나 주위를 살피고 우리집 문까지 뛰어가는 내 모습이 한심하다니까. 조그만 몽둥이를 주머니에 넣고 다녀. 정말 화가 나. 기회가 되면 그놈을 막 패주고 싶다니까.”
“왜 그런 이상한 놈의 타겟이 된 거야?” “나만 그렇지 않아. 내 옆방의 김 대법관도 소송 당사자가 아파트를 찾아가 난동을 부렸어. 대법관들이 많이 당하니까 아예 그걸 전담하는 민원 담당관을 두었다니까.”
“그 원인이 뭔 거 같아?” 내가 보기에 그는 반듯한 대법관이었다. 판사생활을 하면서 남에게 척을 질 사람이 아니었다.
“독재정권 시절의 권위주의가 없어지면서 사회적으로 필요한 권위조차 무너진 것 같아. 대법원 앞에서 샌드위치 패널을 두르고 일인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북적여. 관련된 대법관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려는 행동일 거야.”
검은 법복은 권위의 상징이었다. 법관은 인간의 생명까지 박탈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거대한 성 같은 존재였다. 나는 그 성벽이 허물어져 내린 걸 보는 것 같았다.
검찰도 권위는 이미 바닥까지 떨어진 것 같다. 정권의 시녀 노릇을 한 검찰은 이미 ‘공공의 적’이라는 소리를 듣고 개혁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검찰청 내에서 쇠파이프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부장검사도 있었다. 부산에서 변호사를 개업한 검사 출신한테서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법률사무소를 차렸더니 경찰서에서 바로 전화가 오더라구. 나보고 너 평생 검사 노릇할 줄 알았지? 하고 비웃더라구. 한번은 법원에 갔다가 나오는데 문에서 두 놈이 기다리고 있다가 내 양 어깨쭉지에 손을 넣어 나를 달랑 들고 내 사무실로 가는 거야. 바닥에 휘발유를 뿌리고 다 태워버리겠다고 하더라구. 그래서 무릎을 꿇고 사정사정하면서 빌었어.”
그가 무슨 잘못을 그렇게 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정이 떨어졌는지 법률사무소 문을 닫고 서울로 올라왔다고 했다.
돈 귀신이 피리를 부는 대로 춤을 추는 변호사 사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나의 이웃 사무실에서 법률사무소를 하던 한 변호사가 갑자기 이사를 한 적이 있다. 한참 후에 그가 내게 이런 고백을 했다.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소방차가 여러 대 출동해 있는 거야. 내 사무실에 불이 난 거지. 십년 전 내가 민사소송을 담당했던 사람이 갑자기 와서 불을 싸질러 버렸다는 거야. 소송을 할 때 아무 말 없던 사람인데 왜 십년 후에 와서 그렇게 했는지 난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
그는 부장판사 시절 강직한 법관으로 이름이 나 있었다. 협박을 받은 대법관이나 내가 아는 검사나 변호사나 그런 일을 당할 어떤 나쁜 짓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은 같은 직업군에 있는 다른 사람의 업보를 대신 진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엉뚱한 사람들이 당하기도 했다.
사법부도 몸보신을 하는 것 같다. 재판이 진행되지 않는다. 검찰 경찰도 마찬가지다. 고소를 해도 수사가 되지 않는다. 국민들이 각자 주관적 잣대로 모든 걸 잰다. 군중들이 모이면 선동에 이끌린 구호가 정의가 된다. 부자와 빈자가 그리고 좌파와 우파가 서로 다른 법을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과 운명의 결정권을 대법원이 가지고 있는 형국이다. 형사 사건으로 기소된 야당 대표들이 감옥으로 가느냐 아니면 대통령이 되느냐가 대법원에 달려 있다. 여당과 야당 지지자와 반대파 어느 한쪽은 대법원의 결정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담당 대법관들은 도망가고 싶을지도 모른다.
변호사 생활을 사십 년 가까이 했다. 법조인들이 밑바닥에서 밟히며 사는 사람들과 어두운 터널을 동행할 마음이 있었던 것인지 물어보고 싶을 때가 많았다. 우선 나 자신이 부족했다. 세상이 법조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압축된다. 불공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투명 인간들의 한이 폭발하는 것 같다. 법조계가 거대한 담벽을 치고 불통하면서 그 안에서 자기들 본위의 규칙과 언어로 군림하는 걸 세상이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