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똥파리란 영화를 봤는데 너무 깊은 감명을 받아서 한번 글을 올려봅니다. 영화보기를 좋아하긴 해도 영화에 대한 지식이 워낙 없어서 단순한 독후감 수준이 될 것 같지만요...
별로 공감되지 않을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고,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마구해서 영화가 끝날 땐 눈물이 흐르고 다리에 힘이 풀리게 하는 건 감독의 힘일까요, 이야기의 힘일까요, 아니면 배우의 힘일까요? 뭐 주연, 감독, 각본이 양익준이라고 하니 굳이 따지는 건 무의미하겠습니다만, 아무튼 오랜만에 가슴속에 오랫동안 남을만한 영화를 봤네요. 안 보신 분들에겐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영화 내용이 다수 포함되 있으니 영화 안 보시려는 분들이나 이미 보신분만 스크롤 내려주세요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주인공에 대해 이렇게까지 연민을 느꼈던 적은 개인적으로 "레슬러"의 '더 램' 랜디 로빈슨 이후 처음인것 같습니다. 영화가 처음에 좀 당황스럽고 불편하게 시작하더군요. 다짜고짜 여자를 패는 남자를 밟아버리는 양아치, 그러더니 오히려 자기가 여자얼굴에 침을 뱉고 밟아버립니다.
온갖 쌍욕에 "인간 쓰레기"란 문자 그대로 행동하는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하긴 쉽지 않을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사전정보 0%인 상태인 영화를 고른 것이 후회가 들더군요.
그런데 영화내용이 전개되면서 정말 제멋대로 막 살아가는 주인공인데 어느새 상훈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되더군요. 정말 쌩뚱맞게 그지없게 시작된 여고생 연희와의 만남, (정말 쇼킹하게 이 배우 나이가 25이더군요. 고등학생처럼 생겼는데) 증오하는 아버지, 그리고 이복누나와 조카 형인이의 관계를 그리면서 상훈의 인생에 조금씩 색채를 더해가면서 어느 순간 그를 너무나도 안타깝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정말 쓰레기인데, 동정의 여지가 없는 폭력배면서, 수많은 가정을 파괴하고, 무수한 상훈과 연희와 형인이같은 가엾은 아이들을 만들어내는 놈인데 (과거, 연희 어머니의 포장마차를 부수면서 연희 가정이 파탄나게 만든 원인 중 하나를 제공하기도 했죠), '이제 좀 그만했으면, 조금만이라도 행복해졌으면' 하고 염원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폭력이나 조폭을 절대 미화하지 않습니다. 미화는 커녕 그 추한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죠. 아무한테나, 심지어 경찰한테까지 발을 들이대는 상훈을 처음보는 누구도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 모습이 추하긴 해도 애처롭고 안타깝습니다. 어린 조카 형인에게까지 육두문자를 쓰지 않으면 대화가 불가능해보이는 쌩양아치지만, 일하는 엄마 때문에 혼자인 형인을 위해 되도 않는 아빠노릇을 하려 애쓰기도 합니다. 결코 가까이 지내려 하지 않는 이복누나지만 깡패짓해서 번 돈을 꾸준히 갖다 주기도 합니다. 그토록 증오하는 아버지이지만 자살시도를 한 아버지를 병원에 득달같이 업고 가기도 합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정형화된 영웅심리나, 자상함 같은 것이 떠오르는게 아니라, 그저 상처를 입은 한 소년이 몸부림을 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절로 눈물이 나오더군요. 세상이 X같아서, 너무 안타까워서..
이 영화에서 제 뇌리속에 박힌 장면이 세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포장마차에서 상훈과 연희가 술을 마시다 상훈이 연희 이름 가지고 놀리는 부분입니다. "한연희, 두년이, 세년이, X년이, 하하하" 영화에서 유일하게 상훈이 웃음을 짓는 장면입니다.
두번째는 상훈 아버지의 자살소동 이후, 그리고 연희는 약간 돌은 아버지가 칼을 들고 설치는 것을 피한 이후, 둘이 한강둑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상훈은 연희에게 "부모님한테 잘해라"라고 이것저것 평소 때처럼 욕을 하곤 연희 무릎을 베고 눕고, 상처를 안고 살아가던 두 사람은 눈물을 흘립니다. 영화에서 상훈이 유일하게 눈물을 보이는 장면이죠.
마지막은 상훈, 연희, 형인이 놀러가는 장면입니다. 신난건 연희와 형인 분이고 상훈은 담배만 뻑뻑 피워대고 그냥 따라다니는 것처럼 보여도 이 세사람이 가족처럼 행복의 한자락이나마 연출하는 것을 보고 "정말 이 사람들이 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란 생각이 더욱 간절하게 들더군요.
하지만 이 영화는 마지막에 제 뒷덜미를 잡고 현실로 끌고 오더군요. 깡패짓을 그만두고 연희와 형인의 유치원 재롱잔치에 가려던 상훈은 부하이자 연희의 남동생인 영재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그리고 상훈과 같이 그만두고 고깃집을 차린 친구 만식을 방문하고 돌아오던 연희는 포장마차를 때려부수는 영재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 모습에서 상훈을 떠올립니다.
정말 감명깊게 봤는데 글재주가 없어 표현을 못하니 안타깝네요. 아무튼 가슴에 직접 꽂히는 영화였습니다
첫댓글 똥파리 참 흥미롭게 봤습니다. 와이프는 어찌나 울던지 ^^;; 류승완의 죽거나 나쁘거나 보다 다큐적이면서 더 리얼한 세계를 보여줍니다. 억세게 불운한 주인공들이 얽히고 얽혀서 마지막에 맞이하는 결말은 관객들을 멍하게 만들더군요. 주목할만한 작품이고 향후 행보가 궁금해지는 감독입니다.^^
독립영화라는 사실이 안타깝네요... 좀 더 상업영화 타이틀이었으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내용이었을텐데(불편함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뭐... 상업영화였다면 이런 좋은 영화가 아니 나왔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