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놓는 여인
도월화
작약꽃이 피는 후원이나 작은 연지가 바라보이는 방에서 수를 놓고 싶다. 한지 방문으로 비치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수틀에 검은 공단을 반듯하게 고정시키고 연 자주 색실을 수바늘에 꿰어, 한 땀마다 정성과 기도를 담아 수를 놓았으면 한다. 한 땀 바늘을 뜰 때마다 사각사각 수놓는 소리에 사랑하는 가족과 나의 염원을 담았으면 좋겠다.
어릴 적에 우리 동네 언니, 아지매들은 혼수품으로 쓰려고 수예품을 만들어 모아두곤 했다. 나는 고모를 따라 이집 저집 다니며, 언니들의 솜씨 구경하는 것이 참 좋았다. 동양자수로 화려하게 목단꽃 연꽃 무궁화를 수놓았다. 수틀에선 오색 무지개가 피어오르고 신비스런 행운이 깃들어 있어 수를 놓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 안을 듯했다.
어린 마음에도 수놓는 여인이 아름다워 보였다. 대여섯 살의 내게도 마실 다니다가 얻어 온 빨강 까망 공단 헝겊조각, 분홍 스웨터에 달렸던 색실방울, 고운 색종이 등을 모아두는 상자가 있었다. 종종 어른들이 쓰는 무거운 가위로 천이나 색종이 오리기를 하며 놀았다. 그 검은 쇠 가위는 너무 커서 거의 내 앉은 키 만 했고, 나는 두 발을 다 써서 겨우 가위를 세워서 고정시키고 앉아, 가위 놀이를 했다. 어른들은 그 모양이 기이하다고 웃으며, 내가 아무렇게나 오려 낸 것들이 무슨 작품이라도 되는 양, 침이 마르게 칭찬해주고 수예도구도 사 줬다.
새 할머니에게 수틀을 선물 받았을 때는 얼마나 기뻤던가. 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그 후에 새 할머니를 맞이한 것이다. 어머니보다 늦게 시집온 셈인, 새 할머니의 표정은 늘 차가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손아래 사람들이나, 먼저 들어온 며느리에게 기선을 제압해 둘 필요가 있으셨던 것일까. 하지만 어느 장날, 동그란 나무수틀을 사다 주실 때만은 한없이 포근하고 인자하셨다.
여학교에 들어가서 수예시간에 작품을 할 때는 사각 수틀을 썼다. 수틀이 망가질세라 조심조심 옆구리에 끼고 학교에 다녔다. 등교 길의 만원 버스 안에서 기다란 사각 수틀은 처치 곤란이었다. 앞자리에 앉은 멋진 남학생이 받아 들어 줬으면 하는 상상 따위는 해본 적이 없다고 하면, 나처럼 순진하게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만 믿어 줄는지 모르겠다. 그 때는 그저 학교 숙제니까 좋은 점수를 받고 싶은 일념으로 밤늦도록 수를 놓지 않았던가.
아들 둘이 대학생으로 자라난, 이즈음도 가끔 커다란 좌식 수틀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하고 수틀 앞에 앉아 하루 한 땀씩이라도 정성 들여 수를 놓고 싶다. 천천히 시간이 나는 대로 비단에 수를 놓아 바느질집에 맡겨서, 맞춤옷을 한 벌 지었으면 좋겠다. 그전에는 쪽빛 치마저고리를 좋아했는데, 텔레비젼에서 어떤 영화를 본 이후로는 달라졌다. 개량 한복이라기보다 한복 풍의 드레스라고나 할까, 치마를 소매 없는 야회복처럼 짓고, 저고리 대신 동색의 투명한 옷감으로 어깨에 두를 숄을 만들었으면 한다. 나이를 생각해서 색깔은 연분홍 보다는 인디언 핑크가 좋을 듯하다.
'해리스 부인 파리 가다'란 영화가 있었다. 런던에 사는 해리스 부인의 꿈은 생애 딱 한 번만 세계 제일의 디자이너, 디오르의 드레스를 사 입어 보는 것이다. 그녀는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밤낮으로 파출부 일을 했다. 주말에 친구가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해도 거절했다. 벌써 주위에서 할머니라고 불리우는, 자신의 장례식 날이 다가오기 전에 드레스를 구입하려면 긴축재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녀도 자신이 엉뚱한 꿈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 무리한 일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어차피 주말 외출에서 마시게 되는 럼주는 별로라고 스스로를 다독거린다. 그러나 맥주는 조금 아쉬워한다. 그렇게 럼주도 맥주도 사지 않고 아껴가며 수틀에 한 땀 씩 수를 놓아 가듯이 돈을 모았다.
3년 동안 450파운드를 모은 부인은 휴가를 내어 파리에 간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디오르의 핑크 빛 드레스를 구입한다. 젊고 아름다운 여인에게나 어울릴 옷을 해리스 할머니가 입었을 때의 그 놀라움을 나는 잊지 못한다. 빛나도록 아름다운 모습에 꿈이 있는 곳에 기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같은 휴가를 보내고 일상으로 돌아온 해리스 부인은 집에 그 드레스를 전시해두고, 가끔 소중한 추억 속에 묻어 둔 꿈을 은밀하게 꺼내 보며 여생을 행복으로 수놓는다. 영화 속이지만 죽을 때까지 하루에 한 땀 씩 이라도 행복을 수놓는 여인이 지혜롭고 아름다워 보였다.
나는 세계 유명 디자이너의 드레스를 사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할 열망도, 파리에 갈 용기도 없으니, 대신 비단에 수를 놓아 한복연구가에게 맡겨서 옷을 짓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바느질 중에서도 수를 놓는 일은 수필쓰기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수틀 대신 정성스럽게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글을 쓰면 보잘 것 없는 나도 수놓는 여인처럼 아름다워질까. 어릴 적 늘 냉정하던 새 할머니가 수틀 선물을 주실 때만은 인자한 표정으로 변모해 보였듯이 지혜로워질까.
나이가 들면 당연히 지혜로워 지는 줄 알았다. 살수록 그것도 아니란 것을 느낀다. 나는 왜 매번 무언가 밖에서 구하려고 할까. 내 안에서 사랑으로 차오르는 샘물 퍼 올리기를 게을리 할까. 가슴 깊은 곳에 마르지 않는 지혜의 샘물 하나 길어내고 싶다. 다시 수를 놓는다면 이제는 좋은 점수나 겉모양이 아니라, 나의 내면을 깨끗이 씻어 주는 마음의 수를 놓고 싶다. 한 땀 한 땀 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지혜와 사랑을 담아 정갈한 박음질을 해보고 싶다. 내 앞에 놓인 인생길이 가팔라서 목마를수록 심장에 거짓 없는 진실의 샘 하나 숨겨 놓아야겠다.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지혜의 샘에서 차오르는 샘물을 길러 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한다. 오늘도 나는 정갈히 삶의 수틀 앞에 앉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