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도(獐島)는 전남 보성군의 유일한 섬이다.
‘꼬막’ 조개의 주산지인 섬으로 면적은 2.5㎢이다.
해상 날씨가 좋지않아 한 번 연기한 끝에 무사히 입도하였다.
이제는 꼬막 캐던 노인들도 늙어서 시간마저 쉬어가는 섬이 되었다.
고흥과 여수 사이 바다를 칭하는 여자만에 속해 있는 섬이다.
조수간만의 차가 심해 썰물 때면 갯벌이 장도 연안까지 드러날 정도로 넓게 펼쳐진다.
장도라는 섬 이름에 노루 장(獐)가 들어가 있다.
육지 쪽에서 바라본 섬의 형태가 노루와 비슷해서 그렇다.
길다고 해서 생긴 이름 장도(長島)가 아니다.
상진항
전주에서 아침 6시에 출발하여 약 2시간 만에 상진항에 도착했다.
전남 보성의 상진항은 운항하는 여객선이 장도행밖에 없는 자그마한 항구다.
장도사랑호
수심이 얕고 갯벌이 넓어 매일매일 여객선의 출항 시각이 달라진다.
뱃삯은 편도 3천원인데 직원이 배 안에서 직접 받아간다.
객실은 비좁았지만 바닥이 따뜻하고 이불까지 깔려 있었다.
신경선착장
8시 40분에 출항한 '장도사랑호'는 약 30분 만에 장도에 닿았다.
마을 사람들은 무료로 운행하는 버스를 탔지만 우린 해변을 따라 걸어갔다.
섬 산책길은 단순하고 소박하다.
길 이름이 '꼬막길'과 '뻘배길'로 붙여져 있다.
쌍둥이 우물
예전부터 식수로 사용하던 신경마을 우물이 맨처음 나타났다.
12가구 중 6가구가 쌍둥이를 낳았을 정도로 마을에는 쌍둥이가 많았다고 한다.
주민들은 마을에 유달리 쌍둥이가 많은 이유를 이 우물의 신비로운 힘이라고 믿었다.
신경백사장
'꼬막길'은 쌍둥이우물에서 해변을 따라 걸어가도록 안내한다.
신경백사장은 물놀이보다는 뻘배 작업을 준비하는 공간으로 사용된다.
크고 작은 조개껍데기로 뒤덮여 있어 해수욕을 즐기기에는 좋지 않은 조건이다
대촌마을(大村)
대촌마을은 155년경에 여양전씨(驪陽全氏)가 처음으로 정착하였다.
마을의 이름은 장도에서 제일 크다 하여 대촌(大村)리다 한다.
집들이 크고 말끔하게 단장된 것으로 보아 꽤 부유해 보였다.
대촌 당산나무
대촌마을에는 두 그루의 당산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두 그루 중 하나는 30여 년 전에 당제를 지낼 때 불이 붙어 전소해 버렸다.
지금은 마을 앞 언덕에 있는 당산나무만 쓸쓸하게 서 있다.
장도 갯벌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기름진 갯벌을 자랑하고 있다.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풍요로운 갯벌이 있어 벌교 꼬막의 약 80%가 생산된다
이 지역 꼬막들은 양질의 갯벌이 내어놓은 미생물을 먹고 자란다.
그러기에 영양이 풍부하고, 내장에 모래를 담고 있지 않아 식감도 부드럽다.
벌교초등하교 장분교장
벌교초등학교 장도분교장은 2020년 3월 1일 폐교되었다.
학교 건물의 규모로 보아 학생 수가 꽤 많았으라라 추측된다
밀양박씨 열부기적비
새터마을 입구 쪽에는 정자가 있고 그 뒤로 열녀비가 세워져 있다
밀양 박씨의 남편이 나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
본인의 허벅지 살을 칼로 잘라 국을 끓여 병을 간호하였다고 한다.
목섬(코끼리섬)
태종실록에 코끼리를 전라남도 보성 장도로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목섬은 코끼리가 마지막 머물렀던 곳으로 알려진 것은 장도의 부속섬이다.
목섬까지는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 나있어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
코끼리에 대한 기록
장도에 남은 코끼리의 흔적은 최근 부수마을에 그려진 코끼리 벽화뿐이다
조선 태종 11년(1411년) 일본 왕실은 인도네시아 코끼리 한 마리를 보내왔다.
코끼리는 자신에게 침을 뱉고 비웃던 조선 관리를 밟아 죽이고 만다
그렇다고 일본 천왕의 친교 선물을 죽일 수는 없었다.
태종은 코끼리를 순천부의 작은 섬 장도로 귀양을 보내라는 어명을 내린다.
누렁이무덤(소무덤)
목섬 기슭에 최근 누렁이 무덤(소무덤)이 생겼다.
윤정수 할아버지는 밭갈이를 위해 누렁이를 데리고 거의 매일 목섬을 출입했다.
그런 누렁이가 2018년 하늘나라로 떠나자 목섬 기슭에 묻어주었다.
뻘배(널배)
갯벌에서 꼬막을 채취할 때 이동 수단으로 사용되는 도구는 뻘배라고 부른다.
꼬막 양식을 하는 이들에게 뻘배는 꼭 있어야 할 어로용 기구이다.
이제는 뻘배를 사용하지 않는듯 해안가 여기저기에 널부러져 있었다.
배금백사장
풍화된 바위와 갯벌이 조화를 이루어 길게 이어진 백사장이다.
바다와 산, 섬, 갯벌, 바위 어느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조화롭게 이루어졌다.
백사장 입구에는 갈대가 무성하게 우거져 있어 운치가 있었다.
어느
이름 모를 거리에서
예고 없이
그대와 마주치고 싶다
그대가
처음
내 안에 들어왔을 때의
그 예고 없음처럼...............................................................구영주 < 헛된 바람> 전문
부수마을 게스트하우스(1)
부수마을은 장도의 끝에 위치한 마을이다.
‘부수마을 게스트하우스’는 장도의 유일한 식당이다.
그러나 1~2명의 식사는 해줄 수 없다고 해서 도시락을 준비했다.
부수마을 게스트하우스(2)
게스트하우스 앞에는 다양한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장도의 상징인 노루와 '부수'라는 마을 이름 글자가 화려하였다.
뻘배도 놓여져 있었는데....이젠 뻘배가 박물관으로 가야할 운명인듯 하였다.
부수마을 벽화
부수마을의 벽에는 다양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마을 이름의 상징인 노루, 코끼리, 뻘배 등의 그림이 범상치 않았다.
할머니들이 게스트 하우스 안으로 들어와서 쉬라고 권하였지만....
하방금 전망대
'하방금'은 아래쪽에 있는 방금, 즉 배를 대는 곳을 의미한다.
이곳에 서면 여자만의 풍요로운 바다와 금당도가 눈에 들어온다.
전망대에는 보라색 상징물과 초승달 모형이 설치되어 쉬어가기 좋다.
화려한 이정표
장도에는 화려한 이정표가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그래서 길을 잃어버릴 위험은 없다
화려한 색깔로 만든 이정표가 섬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 같다.
북두름산(해발76m)
북두름산 정상은 뒷동산 수준이지만 바다와 어우러진 조망이 끝내준다.
마을 북쪽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산세가 완만하여 트래킹 코스로 적합하며, 여유 있게 산책하기에도 좋다.
부수마을의 논과 밭
마을 바깥쪽으로 가면 제법 넓은 논과 밭이 펼쳐진다.
경운기 정도는 거뜬하게 다닐 수 있는 포장도로가 나 있다.
연로하신 분들이 이렇게 넓은 농토를 어떻게 경작하는지 걱정스럽다.
사랑호 버스
장도의 유일한 대중교통 ‘사랑호’ 버스다
여행객들과 주민들을 위해서 무료로 운행하는 셔틀버스다.
부수마을에서 13시 40분에 버스를 타고 선착장으로 이동하였다.
태백산맥 문학거리
성진항에서 승용차를 타고 벌교로 이동하였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이 되었던 곳들이 남아있다.
벌교는 소설 '태백산맥'과 꼬막의 힘으로 살아간다는 인상을 받았다.
홍교(虹橋) 보물 제304호
영조 4년(1728) 대홍수로 뗏목다리가 유실되었다.
이듬해 선암사 두 스님의 지휘로 공사에 착공해 6년 후에 홍교를 완공했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무지개형 돌다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답다.
김범우의 집
홍교가 바로 내려다보이는 마을 언덕에 소설 속 ‘김범우의 집’이 있다.
이 집은 실제 대지주였던 김씨 집안 소유다.
대문과 중문을 차례로 지나야 본채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큰 집이다.
아래채 담장은 허물어지고 창호지는 구멍이 숭숭 뚫린 채 방치돼 있어 폐가처럼 보인다.
조정래 작가는 이 집 문간방에 친구가 있어 자주 드나들었다고 한다.
김범우는 이념대립의 현장에서 좌우 어느 쪽에도 손을 들 수 없어 괴로워하는 인물이다.
현부자네 집
소설에서 ‘김범우의 집’과 대비되는 집이 ‘현부자네 집’이다.
이곳에서는 간척으로 새로 생긴 중도 들녘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본래 박씨 문중 소유인 이 집은 한옥에 일본식을 가미한 특이한 구조다.
소화의 집
현부자네 집 바로 옆에는 ‘소화의 집’이 있다.
1988년 태풍으로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는데 2008년에 복원되었다.
나는 '태백산맥'의 등장인물 중에서 소화에게 가장 애틋한 정이 간다.
소화(素花)는 '하얀 꽃'이란 의미를 가진 새끼무당이다.
그녀는 정하섭과 은밀하고 위험하지만 지고지순한 사랑을 나눈다.
올해도 하얀 찔레꽃이 피면 소화가 생각나겠지...^-^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
65세가 넘었다고 무료로 입장시켜 주어서 기분좋았다.
태백산맥 원고 뭉치와 작가가 집필과 현지답사 때 사용했던 소장품이 전시돼 있다
'태백산맥'을 두 번이나 읽었는데....다시 한번 더 읽고 싶어졌다.
외서댁 꼬막나라
벌교읍에는 꼬막집이 수없이 많았지만 이 집에 이끌려 들어갔다
'태백산맥'을 읽은 사람이라면 '외서댁'이란 이름이 얼마나 도발적인지 안다. ㅠㅠ
외서댁은 빨치산인 강동식의 아내로 나온다.
청년단 감찰부장 염상구가 외서댁을 겁간하며 내뱉은 말이 외설적이다.
"흐흐흐. 내 눈이 보배는 보배여. 보기 존 떡이 묵기도 좋드라고.
외서댁을 딱 보자마자 가심이 찌르르 허드란 말이여.
고 생각이 영축읎이 들어 맞어뿌렀는디, 쫄깃쫄깃헌 것이 꼭 겨울 꼬맛 맛이지"
꼬막정식
여자만의 꼬막은 ‘벌교 꼬막’으로 통한다.
벌교 꼬막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된 것은 소설 태백산맥의 영향 때문인 듯하다.
실제로 태백산맥에서는 벌교 꼬막의 맛을 감칠맛 나게 묘사하는 구절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외서댁 꼬막나라에서 꼬막정식과 막걸리를 마시고 벌교 비지니스호텔에 묵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