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어렸을 때 만난 자모회 엄마들 모임은 둥지회다.
애들 중학교까지 자모회 일이라고는 회비 내는 일이 전부였다가
큰애가 고등학생이 되자
혹시라도 엄마가 성의가 없다고 미운털 박혀 불이익을 받는 불상사가 있으면 안되겠기에
솔직히 약삭빠른 맘으로 자모회에 나갔다가 어찌어찌해서 회장직을 맡게 되었다.
애들이 졸업하고 난 후에 그냥 헤어지기 싫어 나중을 기약하며
엄마모임을 만들자고 하기에
"우린 엄마에요. 항상 아이들이 편히 깃들일 수 있는 가정을 유지하자는 의미에서 '둥지회'라 하면 어떨까요?"
하는 제안에 모두 동의해서 둥지회 모임은 시작되었다.
이제 아이들이 자라니 우리 모두가 오십대 아줌마가 되었다.
우리는 가끔 만나 식사도 하고, 여행도 하고, 세상사는 이야기도 한다.
이젠 오십대 아줌마들이 되어 남편과의 갈등을 공감하며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내겐 예사로 들리지 않았다.
우리나라 아줌마들...
성에 닫혀있고, 말 꺼내기 어렵고, 문제를 덮어두다 더 큰 가정불화를 겪기도 한다는 걸 안다.
그럴 때 나는 가급적 학문적으로 또 더 지성적으로 주제넘게 무심한 척 성에 대한 직접적 조언을 하기도 한다.
내게도 솔직히 성담론은 어색한 주제다.
의사의 아내라는 건 그런 위장을 하기에 편하다.
그래서 이웃들이 행복해지기만 하다면?
난 얼마든지 철면피가 될수 있었다.
결혼 직후 성에 대한 무지로 자칫 아이를 만들 수 없는 여자인가 혼자 고민하다가
이혼을 고려하고 병원출입을 한 당사자로
성에 대한 무지도 어리석음이라 단정한다.
어릴 때 가정교육이 보수성향이 심할수록 그 부작용은 심각하지 않은가 싶다.
남자와 여자의 대화는 코드가 많이 달라 오죽하면 화성과 금성에 사는 다른 인류라고 했을까!
난 친구들이 남편과 조금이라도 트러블이 있는 것 같으면
아무 일 아닌것처럼 천연덕스럽게 성에 대한 담론을 하다가 문제해결방식을 제시한다.
오십대 남자도 갱년기를 겪는다거나,
여성의 갱년기의 문제점 해결책도 어색하지 않은 척 구체적으로 대화를 나눈다.
사실 누구보다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랐으니 나라고 편하진 않다.
허나 친구가 곤경에 처하면 내 마음에도 그늘이 생기니까
알고 있는 성지식을 나누는 것도 나눔실천 아닐까?
우습지만 그것이 내 방식의 친구사랑이다.
내가 참여하는 모임 이름은 '들꽃회, 무지개회, 둥지회, 사다리회," 처럼 모임의 성격에 따라 다르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좋은 이웃들이란 건 같다.
가까운 이웃들이 부부의 성문제로 남에게 말 못하고 속으로 곪아가는 걸 보면
남의 일이라고 모른 척 하기보단 그저 친한 이웃으로 진솔하게 함께 고민하고
전문가인 친한 의사선생님들로부터 정확한 처방을 받아 전해주기도 한다.
언젠가 나는
"여보! 오십에 애인이 생기면 기적이라는데
우리가 기적을 만나지 못할 바엔 기적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
여보! 우리 애인으로 사귈까?"
하고 내가 도발했을 때 그는 어이없어 껄껄 웃으며 애인 서약을 해야만 했다.
그 후 우린 자주 애인처럼 지낸다.
내가 밥을 하기 싫어 외식을 할 때도 ..
좀 의지하고 싶어 어리광을 피우고 싶을 때도
"애인이니까..."
하고 그는 이해를 한다.
또 그가 대자리에 누워 꼼짝않고 리모컨을 하기 원하면 나도
"애인이니까.."
하고 기쁘게 심부름을 해준다.
애인서약식을 한 건 잘한 일이다.
남편의 바람기에도
"그 사람 아직도 사랑의 감정을 느끼다니 멋지다.
내 남편에게 내가 사랑을 못해줄 바엔 한편 고맙기도 하다. "
하고 분노보다는 웃으며 이해를 하는 나이,
돌계집이 되어 남편의 애정어린 눈빛이 무서운 나이,
이 시기는 남편과 각방을 쓰고 중성이 되어 지내거나
아이들 독립하고 서로를 남은 세월 가장 멋진 동반자로 재발견하는 행복한 시기가 되는 갈림길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부드러운 여성성을 잊지 말자고 독려도 하고,
남편공략법 같은 갱년기 처방을 공유했다.
어제는 둥지회원들과 양평의 멋진 풍경을 즐기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며 하루를 보냈다.
둥지회 엄마들 모두가 행복하고 곱게 늙어
아이들의 추억을 함께 공유하는 사랑하는 이웃으로
남은 세월 기쁘게 함께 살아갔으면 싶다.
첫댓글 선생님~~~오랜만이죠? ㅎㅎ공감 되는 글~~^^ 잘 읽었습니다...저희모임 하나도 '둥지회' 있어요^^ 소화데레사와 함께,,ㅋㅋ
시간이 되어 가끔 선생님 카페 와서 글 읽다 보면 맘이 편해 져요...롤 모델이 되어 주시는 선생님께 항상 감사 드려요^^*
잘 지내지? 둥지라는 말 참 좋아, 난. 오랜만이네, 우리 언제 함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