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4월 9일 오후 4시 반쯤이었다. 제 43기 국제전도폭발임상훈련의 훈련생인 의정부 성결교회 최 목사님과 인천 교회 김 목사님을 모시고 남산 공원에 노방 전도를 갔다. 4월인데도 날씨가 흐렸다 개였다 하며 바람이 불어 을씨년스러웠다. 공원 여기저기 서성대대는 사람들이 보였다. 전도 대상자를 찾다가 파란색 잠바를 입고 의자에 앉아 있는 한 남자를 발견하였다.
“실례합니다. 옆에 앉아도 되겠습니까?” “앉으세요.” 그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대상자의 왼쪽에 앉고 최 목사님은 오른쪽에 앉았다. 김 목사님은 앞에서 대상자를 포위하듯 서 계셨다.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복음을 전할 준비를 했다. “선생님, 경상도 분이신 것 같은데 실례지만 고향이 어디십니까?” “경북 점촌입니다.” “어 동향 분을 만났네요. 반갑습니다.” 악수를 청하며 나이를 물었다. “연세는 어떻게 되셨는지요?” “쉰한 살입니다.” “제가 한 살 더 먹었네요. 퍽 젊어 뵈십니다. 선생님, 아주 중요한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데 들어 주십시오.” “시간이 없지만 고향 선배님의 청이니 거절할 수가 없군요. 말씀하시지요.” 승낙을 받고서 한 시간 동안 열심히 복음을 전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잘 이해하고 눈물을 흘리며 죄를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했다.
‘김영기’라고 이름을 밝힌 그는 아주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다. 자신은 건실한 중소 기업 사장인데 회사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남산 공원에 올라 마지막으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며 담배 한 대 피우고 자살하려던 순간 우리 일행을 만났다는 것이다. 나는 다시 물었다. “사장님, 혹 사업에 어려움이 있으십니까?” “아니오.” “그럼 가정 문제십니까?” 이번에는 최 목사님이 물으셨다. “아닙니다. 말씀드리지요. 저는 월남전 때 참전 소대장이었는데 어느 날 상부의 전투 명령을 받고 소대원들을 인솔해 명령 받은 지점으로 가고 있는데 저의 생각은 딴 길로 가는 것이 유리할 것 같아 명령을 어기고 가는데 매복한 베트콩들의 기습 공격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보니 도망친 저만 살고 소대원들은 전멸했습니다.” 소대장인 자기가 소대원들을 죽였다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후 잠이 들면 밤마다 전우들의 원망 어린 얼굴들이 나타나 두렵고 무서워 더 이상 고통을 참을 수가 없다고 했다.
“죄책감 때문에 더 이상 하루도 못 살겠더라구요. 사업을 열심히 해서 돈도 벌 만큼 벌었습니다. 제가 없어도 가족들이 사는 데 어려움은 없을 겁니다. 소대원들을 죽인 사실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지금까지 숨겨 왔지만 고통을 면하는 길과 전우들에게 속죄하는 길은 죽음을 택하는 길밖에 없다고 결단하고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선배님 일행을 만나 복음을 듣게 하시고 생명을 연장시켜 주시니 감사합니다. 선배님, 약속합니다. 예수 잘 믿고 사회 사업에 힘쓰겠습니다.” 가까운 교회에 출석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돌아왔다. 훈련생 최 목사님이 기뻐하시며 기적을 보았다고 하셨다. 김 목사님도 복음의 능력을 보았다고 고백하셨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교회로 돌아왔다. 그리고 50여 명의 목회자와 훈련자들 앞에서 최 목사님이 감격의 모습으로 성령께서 역사하신 노방 전도 현장 보고를 했다. 그 순간 듣는 사람 모두가 박수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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