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 2016. 6. 24~25(무박)
● 산행지 : 육백산 - 추암 해변
● 산행코스 : 강원대-육백산-이끼폭포-무건리
● 산행거리 : 약 16.42Km
● 산행시간 : 약 6.49h
● 누구랑 : 다산(45명)
● 회비 : 37,000원 뒤풀이(1만원)
● 준비물 : 삶은계란 6개, 크림슨포도, 자유시간2, 물 1,000cc
● 날씨 : 바람
공교롭게도 육백산에서 육박전을 치른 것은 아니었지만 버스를 타러가는 쟈철 안에서 히말라야를 트레킹 중인 문재인씨가 페북에 올린 글을 섭득했다. - 참군인 김영목 대령을 추억하며(하단부 첨부)
그렇게 우연하게도 6. 25일 새벽 4시 해발고도 800이라는 강원대 도계 캠퍼스에서 출발, 미처 헤드렌턴을 챙기지 못했으나 월광도 밝고 5시 이전에 여명이 밝아오기에 주저없이 달라붙었다.
고지대라선지 기온이 싸늘해 닭살이 돋아올라 고바이가 힘든지 모르고 오히려 몸을 뎁히기 좋게 느껴졌다. 육백산을 지나 2시간여 같이하다 앞으로 내뺐다. 엊그제 비가 내려 시계도 깨끗하고, 키가 큰 잎깔나무 가지를 시원하게 흔드는 바람을 폐가 뻥 뚫리도록 마음껏 들이켰다. 무건리 이끼폭포로 향하는 산길(육백지맥)도 편안하고 평지가 많아 놀러온듯 싶다.
지천인 산딸기를 따먹으며 최대한 늦춘다고 했는데도 도저히 본대를 볼 수가 없었다.
혹시 걱정하지 않으실까 길 가운데에 나뭇가지를 꽂아두고, 나무를 걸어두기도 하고, 내리막길에 하트모양의 박석을 나무에 기대 옮겨 두는 것으로 정상적으로 진행했음을 표시해 두었다.
화전민 가옥을 지나면서는 일부러 군불을 때며 집수리를 하고 있는 아저씨에게 말을 걸어두기도 하였다. 서울에서 왔는데 뒤에 일행이 40명 오고 있다고....
클레식님이 나눠준 지형도와 내가 진행하는 트랭글 지도와 일치 여부만 확인하면 될 일이었으니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지만...
간소하게 준비한 먹거리였지만 원래 산행중에 많이 먹는 스타일이 아닌지라 주최측에서 배급한 틈실한 김밥으로 아침 요기는 충분했고, 이끼 폭포를 지나 흙길을 한참 걸어나오다 시장기가 느껴져 길섶에 앉아 준비해간 계란 6개 흰자만 해치웠다.
이번 산행은 14Km를 산행하며 땀을 한방울도 흘리지 않은 희귀한 산행으로 기억될거 같다. ㅋㅋㅋ
산행 마치고 산앤들님 준비해주신 담근술과 과메기 안주로 꿀맛같은 뒤풀이를 대신하고 더이상 술을 먹지 않는 성공한 산행을 만들 수 있어 더 좋았다. 전날 야근 마치고 오후 늦게까지 응봉외벽에서 매달리다 순대국 한그릇 사먹고 출발한 산행이라 부족한 잠을 버스안에서 떼우느라 정신이 없어 옆에 앉아계신 산우님과 얘기할 기회도 없었고... (원래 말을 잘 못하기도 하지만...)
무건리 폐교터(66년 개교, 94 폐교, 졸업생 89명 배출)를 지나 내리막길 0.5Km 이끼폭포에는 사진기자 세 명이 열심히 카메라를 조무르고 있었다.
수량만 조금 많았었더라면 싶었는데 엊그제 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그려지지 않았다.
무건리 이끼폭포가 있는 곳은 성황골이고 정식이름은 용소폭포이다. 2단폭포 옆에 폭포를 용소굴이라 한다.
추암해변으로 이동해 식사도 하고 해수욕도 하고 회도 먹을거라 기대했는데 술을 먹지 말라는 하늘의 도우심인가 막상 추암 해변가는 재개발로 변모를 시도 중이라 횟집을 찾지 못하고 등대인 양 태고적 촛대만 그자리에 외로이 서있다.
강원도 삼척 도계 석탄물이 흐르는 산간벽지가 고향인 친구들을 떠올려본다. 남석이, 재운이, 종석이.... 그리고 도계에서 초교를 졸업하고 아빠 고향인 우리 동네로 전학온 철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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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66년, 대한민국의 자주국방을 생각합니다.
- ‘참군인’ 김영옥 대령을 추억하며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면서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미국 역사상 최고의 전쟁영웅 16인 중 한 사람. 유색인으로는 유일하게 워싱턴 대통령, 그랜트 대통령, 아이젠하워 대통령, 맥아더 장군 등과 어깨를 견준 세계적 전쟁 영웅, 고 김영옥 대령의 첫 평전입니다. 출국 전날 저자 한우성씨가 사인까지 해서 직접 준 책이라 그대로 짐 속에 넣어 가져 왔습니다.
그의 성의 때문에 읽기 시작했는데, 재미도 있고 몰랐던 내용도 많았습니다. 지금 저는 네팔의 랑탕지역을 걷고 있는데 지진 피해가 극심해서 많은 롯지와 가옥이 무너졌고 그나마 운영 중인 롯지도 대부분 전기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해가 진 후엔 헤드랜턴 불빛에만 의존해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는데도 손에서 놓을 수 없습니다.
저자 한우성 씨는 퓰리처상 후보에 오른 적도 있는 재미언론인으로, 현재 <김영옥평화센터>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가 얼마 전 제게 감사인사를 하고 싶다며 만나자는 요청을 해왔습니다. 과거 노무현 정부가 김영옥 대령에게 우리나라 최고 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한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계 미국인인 김영옥 대령은 미군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전설적 영웅입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전선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습니다. 전역 후 한국전이 발발하자 부모님의 나라를 위해 분연히 다시 미군에 입대해 한국으로 달려왔습니다. 인종 차별이 극심했던 당시의 그가 미군 사상 최초의 유색인 야전 대대장이 되어 한국전에서 남긴 전공은 유럽전선 못지않게 참으로 눈부셨습니다. 휴전선의 중부와 동부를 60km나 북상시키는데 역할한 사람이 바로 그였습니다. 그같은 전공으로 미국정부로부터는 특별무공훈장과 두 번의 은성무공훈장 등 최고 수준의 상훈을 받은 것은 물론, 이탈리아와 프랑스 정부로부터도 십자무공훈장과 레지옹 도뇌르 등 최고 훈장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유독 한국정부로부터는 무공훈장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김대중 정부가, 그의 미국한인사회 봉사활동을 공적으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을 뿐입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그 연유를 알아보니, 역대 정부 때마다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한국전에 대한 훈포상은 전후에 다 종결했기 때문에 이제와서 추가 훈포상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군의 방침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납득할 수 없는 이유였습니다. 조국을 위한 헌신을 기리는 훈포상에 어떻게 종결이 있으며 무슨 시효가 있겠습니까? 나중에라도 공적이 발굴되거나 확인되면 언제라도 훈포상하는 것이 국가의 도리일 것입니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는 군을 설득해 방침을 바꾸도록 한 후, 그가 암투병으로 병상에 있던 2005년 10월 우리나라 최고훈장인 태극무공훈장 수여를 결정했습니다.
그는 병상에서 대한민국의 배려에 감사하다는 편지를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가 세상을 떠난 후 훈장이 수여됐지만, 태극무공훈장 수여 결정 사실을 알고 대한민국에 감사하며 세상을 떠날 수 있게 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책의 저자 한우성 이사장은 그런 저간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노무현 정부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당시 청와대에서 제가 관심을 갖고 도와줘 고맙다는 인사를 한 것입니다.
김영옥 대령이 한국전 때 중부전선에서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의 중상을 당해가며 혁혁한 전공을 세우던 그 시기, 우리군 일부 고위 지휘관들은 전투마다 연전연패해 전선을 무너뜨리고도 당시 태극무공훈장을 받았습니다. 그 중에는 자신이 지휘하던 사단과 군단이 궤멸되고 군단 지휘를 부하에게 떠넘긴 채 전선을 무단이탈한 지휘관도 있었습니다. 그런 지휘관 중 일부는 전쟁 후 참모총장, 국방장관 등으로 승승장구하며 우리군을 이끌었습니다. 자신들의 무능으로 우리군의 작전권이 계속 미군에게 넘어가 있는데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작전권을 미군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미국 정부와 전시작전권 환수를 합의하자 퇴역 장성들을 규합해 반대성명을 내는데 앞장선 이도 있습니다.
한국전 종전 후 60년 넘는 세월동안 우리 군이 외쳐온 목표는 한결같이 자주국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얼마나 실천적인 노력이 있었을까요? 아직도 작전권을 미군에 맡겨놓고, 미군에 의존해야만 하는 약한 군대, 방산 비리의 천국. 이것이 지금도 자주국방을 소리 높여 외치는 박근혜 정부의 안보 현 주소입니다. 김영옥 대령은 한국전 종전 후에도 미 군사고문으로 한국에 와서, 우리 군의 전시 동원 계획을 정비하고 국군 미사일부대를 창설하게 하는 등 우리 국방력 신장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과연 우리들 자신은, 우리 군은, 또 역대 정부는 그런 노력을 얼마나 했을까요?
한국전 종전 후 지난 60여년간 외쳐온 자주국방의 구호가 부끄러운 2016년의 6.25입니다.
*추신-저자가 제게 부탁한 일이 하나 있습니다.
김영옥 대령이 태극무공훈장을 받고 국내에 점차 알려지면서 2011년부터 초등학교 5학년 국어교과서에 그의 삶이 수록돼 우리 아이들이 배우게 됐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2015년 교과서에서 빠졌고 올해도 마찬가지인데, 그 연유를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교육부 관계자들이 이 글을 보고, 그 이유와 앞으로의 방침을 설명해주면 고맙겠습니다. 국회 교문위에서도 관심을 갖고 살펴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화전민이 일구는 손바닥만한 땅뙈기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는 육백산...
응봉산 갈림길을 지나 제선충 피해지역을 지날무렵까지도 체감기온이 싸늘해서 늦가을 날씨였다면 믿을 수 있을까?
2단폭포 바로 옆에 용소굴로도 폭포수가 떨어진다.
우측 나무가 있는 곳에 독사가 살고 있다고 어느 분이 카메라로 실물을 찍어 올렸단다.
용소굴의 이무기일까 아니면 이끼를 보호하려고 도계읍에서 풀어놓은걸까? ㅎㅎㅎ
이끼폭포 1단 바위가 이끼보다 더 미끄러웠던거 같다.
저 아저씨처럼 줄을 잡고 올라서야 2단 폭포를 볼 수 있다.
석회암을 채광하던 폐탄광...
접근금지라인이 쳐져있는 조그마한 동굴로 들어가 안쪽을 다 둘러보고 출입구쪽으로 나가니 밖에서 잠겨있다.
관상용 클레마티스와 큰꽃으아리와 다르게 으아리꽃의 크기는 작지만 향기는 진하다.
한때 애국가 첫 화면을 장식했던 추암 촛대바위...
물만난 고기처럼 폼생폼사 바다소리님...^^
동해시의 재개발사업으로 해변가 어지럽게 널려있던 횟집들이 산뜻한 현대식 건물로 뒤바뀌는 중이다.
첫댓글 와우 대박 멋져요
저또한
존경하는 김영옥대령님스토리의 비하인드에 세세한얘기 잘 보고 갑니다
퐁라라님 오늘 무척 즐거웠습니다~^^~
저도 반가웠습니다. ^^
이끼가 멋있군요. 잘봤습니다. ^^
네~~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이끼가 벌써 색이 바래고있는거 같네요..매년 찾는곳인데 어서 가야겠습니다
내려오면서 대여섯 분에게 어떻드냐고 질문을 받았네요.^^
핸폰에서 메이를 선택해 그렇게 보일겁니다.^^ 이끼는 짙푸른데 수량이 딸려서~^^
전 그냥~~ 신기해서 넋을잃고보느라 색을 자세히는 못보았습니다 잘 보존되기만 바랄뿐입니다~^^
김영옥대령님 스토리 잘읽었습니다~~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올리셨네요.. 수고많으셨습니다^^@^^
그 내용 중에 전작권을 미군에 넘기게된 무능한 유재홍장군이 나옵니다.
아버지 유승렬 또한 일본 육사출신으로, 나고야에서 나고자라 한국말을 못해 통역을 데리고 다녔는데... 본관을 살펴보니 강릉유씨 입니다.
6.25개전초기 의정부북방을 맡은 사단장, 중공군 남하시 청천강전투의 패전, 한국전사 3대 패전(쌍령전투, 칠전량전투, 현리전투)중 하나인 현리전투의 주역이죠.
선대들이 피땀 흘려 지킨 아름다운 산야.. 그런 의미있는 날의 멋진 산행이었네요. ^^
어제는 김구선생이 서거한 날이었구요... 오늘은 또 어떤 과거가 담겨있을까요? ^^
안계신다고 다들 걱정했지만 전 믿고 확신했습니다 진정한 산꾼이시기에....
감사.. 따로 크게 걱정하시진 않을거라 봤습니다.^^
클대장님 훗날 '한국의 명산' 책 하나 엮으셔도 충분할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