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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빛과 흑암의 역사'는 평소 제 공부에 많은 참고가 되고 있는 사이트입니다. 저는 지난 달 '드러 냄'이란 책을 출간한 적이 있는데 이 책의 내용을 '빛과 흑암의 역사' 회원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어 몇 회에 나누어 글로 올립니다.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드러 냄' 1회차
드러 냄
에베소서 5: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드러내라
I. 글을 시작하면서 –
1. 들어 가는 글
‘웰컴 투 동막골’이란 영화가 있었다. 개그맨 임하룡이 인민군 전사로 나온 6.25 전쟁 소재 영화이다. 영화에서 나오는 동막골은 강원도 첩첩 산중 어느 골짜기에 있던 마을이다. 이 산간 마을에 살고 있던 수 십호 주민들은 6.25 전쟁이 일어 난 줄도 모르고 살다가 어느날 인민군과 국군 패잔병이 공교롭게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마을로 흘러 들어 와 그 때에야 비로소 전쟁이 난 줄 알게 된다.
바깥 세상은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고, 정부는 서둘러 부산으로 피신했고, 전선에서는 연일 인민군의 탱크 아래 젊은 학도병들이 붉은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고, 국군은 연방 패퇴하고 있으며, 피난민 행렬은 끝이없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이 마을 동막골에 살던 사람들은 전쟁의 포성 한번 들은 적이 없고, 또 난리의 소문 한번 들은 적 없이, 그저 모내기하고, 논에 물꼬 터러 다니고, 소 몰고 꼴 베러 다니고, 밤이면 모여들 앉아 짚신 삼고 옛날 얘기해 가며, 그저 매일 매일 평화스런 삶을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영화 동막골 얘기를 서두에 꺼내는 요점은 이것이다. 동막골 사람들에게 전쟁이 없었다고(?) 해서 6.25 전쟁이 없었던게 아니다. 오늘 이 시대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모르고 있다고 해서, 내가 잊어 버렸다고 해서 미국의 카탈리나 태풍과, 아이티의 지진이 일어 나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내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해서 소말리아의 기근과 호주, 미국의 가뭄이 없는 것도 아니다. 또 내가 그런 사실에 무지, 무관심 하다고 해서 오늘날 이슬람 국가들에서 자행 되고 있는 기독교 핍박의 사태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 세상은 오늘 현재에도 처처에 기근이 있고 가뭄이 있고, 또 곳곳에 지진이 있고 어떤 나라에서는 지금도 매일 기독교인이 박해를 받아 순교하는 일이 벌어 지고 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마태 복음 24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고 계시는 바, 마지막 때인 것이다.
오늘날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교인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또 거듭난 성도인지 아닌지의 여부에 불문하고 성경 중 선지서와 계시록의 내용에 대해 무관심한 편이다. 흔히 말세지말이라 불리워지는 이 긴박한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분별하는 영적 혜안을 가지고 이를 키워 나가려는 자세가 부족할 뿐 아니라 오히려 계시록이나 선지서, 또 마지막 때의 징조와 사탄의 음모에 대해 누군가가 얘기할라치면 이단을 경계하는 눈초리를 보이며 아예 그런 얘기는 꺼내지도 못하게 하는 완고함까지 있다.
또, 그간 범람해온 3류 소설류의 재림론, 특히 환란전 휴거설에 너무도 깊이 물든 나머지 “ 환란이 오기 전에 휴거되어 올라 갈텐데 무슨 걱정?” 이냐고 반문하는 성도가 없느냐 하면, 마지막 시기에 대해서는 ‘그 시기는 아무도 모른다’는 고정관념하에 - 예수님이 말씀하신 “깨어 있으라”는 경고는 무시한 채 - 숫제 그 징조조차도 알려고 들지 않는 편협한 성경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현재의 세계 정세가 수 천년 전에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자들에 의해 쓰여지고 하나님께서 직접 보내신 선지자들에 의해 선포된 말씀대로 즉, 성경적으로 흘러가고 있음에 대해 무관심하다. 그날 그날의 일상에 묶이고 돈 벌기에 바빠서 ‘말씀’과 ‘예언’이 역사 속에서 꾸준히 성취되어 왔을 뿐 아니라 지금 이 시각 현재에도 전 지구적으로 ‘성경의 시간표대로’ 세상 속 사건들이 이루어져 나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극히 둔감하고 무지하다. 즉, 현재 일어나고 있는 세계의 정치 경제 상황에는 아주 해박한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이런 국제 상황들이 성경과 어떻게 매치 (match) 되고 연결되는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사람들이 많다. 이 책은 이런 세상속의 사건과 성경을 한데 묶어 해석하려는 시도 이다.
오늘 이 시간, 이 글을 쓰고 있는 주후 2012년 6월은 성경 말씀에 비추어 볼 때, ‘말세에 고통 하는 때’에 해당한다고 생각된다. 공중권세 잡은자의 하수인인 ‘정사와 권세와 악한 영들과 세상 어두움의 주관자’들은 자신들의 계획을 지난 수 천년간 착착 진행 시켜 온 끝에 이제 거의 그 음모와 계획은 최종 완성 단계에 이르러 있다고 보여진다. 심지어 사탄의 회당들은 이제 자신들의 계획과 음모를 꽁꽁 숨기기는 커녕 무엄하게도 하나님의 ‘예언과 역사속 성취’라는 창조주적 역사, 즉,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사역을 흉내내어 이제 공공연히 그 계획을 사전에 의도적으로 누설하고 난 뒤, 실행에 옮겨 나가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하여 이 책의 제목은 “드러 냄” 이다.
먼저의 이유는 ‘저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마수를 드러 내었기 때문에 ‘드러 냄’이고 또 다른 하나의 이유는 이런 사실 즉, 저들의 음모와 현재까지의 진행 상황과 그리고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환란에 대해 성도 여러분에게 알리기 위한 나의 ‘드러 냄’이다. 세번째로 이 책의 제목이 ‘드러 냄’인 까닭은 에베소서 5:11 절에서 사도 바울이 말한 바, 너희는 드러내라고 하신 성경 말씀 때문이다.
에베소서 5장 8절 – 11절
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드러내라)
5장 11절 말씀 중 ‘책망하라’ 고 되어 있는 구절은 개정개역과 개역한글 성경에서만 이렇게 번역되어 있는데, 그러나 영어 성경을 보면 이 구절은 “expose them” 으로 되어 있어 원문의 뜻은 책망하라가 아니고 ‘드러내라’고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Have nothing to do with the fruitless deeds of darkness, but rather expose them. (NIV 영어 성경) 에베소서 5:11
한편,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말고도 심지어 NASB 에서도 이 구절은 드러낸다, 폭로한다는 뜻의 “expose them” 으로 되어 있고
(NASB) Do not participate in the unfruitful deeds of darkness, but instead even expose them;
또, 공동번역에서는 “ 열매 맺지 못하는 어둠의 행위에 끼여 들지 말고 오히려 그런일을 폭로하십시오” 라고 되어 있다.
한편, 이 시대를 사는 우리 성도에게 저들의 음모와 열매 맺지 못하는 행위를 ‘드러내는 것’은 단순히 드러내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에베소서 5장 11절의 말씀 앞 구절인 10절을 보자.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먼저 저들의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주를 기쁘시게 한다. 둘째, “저들을 드러내는 것” 이 또한 주를 기쁘시게 한다.
성경은 어떤 하나의 사건, 교훈, 예시, 예언, 장차 이루어질 일, 이 모든 것을 단 일회 언급에 그치고 지나가지 않는다. 모든 예언은 이중, 삼중으로 예시, 예표되어 있고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 상호간 연결된 맥락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선지서의 말씀이 시편에 연결되고, 예수님과 바울, 베드로 등 사도들에 의해 재해석되고, 구약의 하나의 사건은 이미 이루어 진 것처럼 보이지만 또 말세에 일어날 일을 예표하는 이중계시로 되어 있으며 이런 맥락에서 구약의 말씀 구절은 신약 시대에 들어와서도 신약 기자들에 의해 무수히 반복, 인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 구절, ‘저들을 드러내는 것’은 주후 60 - 62년경에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에베소 교회에 대해 써 보낸 서신에 나와 있는 명령이지만 35년 여가 지난 AD 95년 무렵에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서 주님께 받은 명령, 즉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낸 서신 중 바로 그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 내용에 다시 한번 언급 된다.
요한계시록 2장 1 – 3 절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놀랍지 않은가? 바울이 개척하고 목회한 그 교회, 에베소 교회에 대해 예수님께서30년 후에 ‘그의 거짓된 것을 드러 낸 것’ 즉, 30여 년간 사도 바울의 명령을 충실히 지켜 온 것에 대해 칭찬하고 계시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예수님께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칭찬 받기 위해서라도 ‘드러내야’ 한다. – 우리 인생의 목적 중 이보다 더 보람 있고 가치있는 것, 즉, 마지막 날 주님과 하나님 앞에 칭찬 받는 것 이외에 또 무엇이 있겠는가? –
따라서 이 책 ‘드러냄’ 의 구성과 순서는 의의로 간단하다.
첫째, 이 책의 1장을 통하여 나는 오늘 이 시대 주후 2012 년은 성경에서 말하는 바, ‘마지막 때’ 그리고 ‘말세에 고통하는 때’에 해당하는 시기임을 증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나는
1) 먼저 1948년의 이스라엘의 독립은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이 말하는 바, 이 모든 재난이 시작되기 전에 마지막 때의 시작을 알리는 하나의 상징적 사건 즉, 무화과 나무에 싹이 나는 징조로 해석한다.
2) 오늘 이 시대는 이미 계시록 6장에 나오는 일곱 봉인이 떼어지고 있는 시대 즉, 일곱 봉인 중 넷째 인이 떼어져 청황색 말이 등장하고 있는 시대로 본다. 즉, 나는 계시록의 일곱 봉인은 먼 훗날 어느날 벌어 질 미래의 사건이 아니고 18세기 이후 오늘날까지의 인류 역사를 통하여 이미 벌어 지고 있는 사건으로 해석하고 오늘 이 시대를 청황색 말이 뛰고 있는 시기로 보고 있다.
3) 오늘 이 시대가 마지막 때이라면 이 시대에 벌어 지고 있는 역사적 사건들은 또한 예수님이 마태복음 24장에서 말씀 하신 바, 재난의 시작 무렵에 있어야 할 여러 징조 즉, 자칭 그리스도의 출현과 미혹, 민족과 민족, 나라와 나라와의 전쟁, 그리고 기근과 지진, 온역 등 각종 자연 재해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어야 하는 줄 알고 있다. 따라서 나는 이 시대는 정확히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 난리와 난리가 있고 민족간 그리고 나라간 전쟁이 벌어 지고 있으며 처처에 기근과 지진과 온역이 있음을 각종 언론의 보도 기사와 통계자료, 그리고 역사적 사실을 통하여 검증하고자 한다.
둘째, 이 책의 두번째 장에서 다루고자 하는 내용은 오늘날 이 시대는 ‘개신교의 박해’를 눈 앞에 둔 절박한 시기 즉, 세계적으로 개신교에 대한 박해가 점점 더 거세어져 가는 시기일 뿐 아니라 계시록의 다섯째인이 떼어 질 때 나타나는 “죽임을 당한 영혼” 들이 다수 출현할 순교의 시기라는 점에 대해 증명하는 순서이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은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라’ 하시고 곧 연이어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하며, 이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는 마지막 때에 사람들이 믿는 성도를 핍박하고 미워하고 잡아 죽일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또 계시록 6장에서 넷째 인 의 청황색 말을 탄 자는 ‘그 이름이 사망이고, 음부가 그 뒤를 따르고,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 고 되어 있다. 이 두 장면에서 보건대 넷째 인 청황색 말이 역사에서 출현한 그 다음과 또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은 다음에 닥쳐올 세계적, 지구적 사건은 복음을 믿는 성도에 대한 박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이 두 번째 장을 통하여 오늘날 역사속에서 실제 일어나고 있는 기독교도 특히, 개신교 성도 핍박에 대한 다양한 사례들을 제시함으로써 이를 증명하고자 한다.
셋째, 세번째 장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이 모든 음모가 이루어지는 배후 세력에 대한 고찰 이다. 먼저 오늘날, 개신교에 대한 박해는 이슬람 국가, 공산 국가, 로마 가톨릭이 절대 권세를 가지고 있는 남미 등의 나라에서 주로 이루어 지고 있지만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이제 이러한 개신교에 대한 박해는 이들 전통적인 지역을 벗어나 영국, 호주, 미국을 비롯한 종래의 개신교 자유국가에서 더욱 교묘히 자행되고 있는 전세계적 추세라는 점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세계 모든 나라의 롤 모델이 되고 있는 나라, 미국이 어떻게 이런 개신교 박해 국가가 되고 있나 하는 의문 즉, 미국의 변질과 타락의 현상과 미국의 제국주의적 허와 실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또, 이 세 번째 장에서는 오늘날 미국을 비롯하여 세계를 움직이고 조종하고 통제하는 최종의 배후세력 즉,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를 해부하고 그들의 음모와 현재까지의 진행 상황과 앞으로의 계획을 드러 내는 내용을 담고자 한다. 오늘날 세계 각지, 처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계적인 사건, 사고들은 천재지변을 제외하고는 – 어쩌면 천재 지변을 포함하여 - 대부분 ‘저들’ 사악한 세력에 의해 모의되고 계획되고 조종되어 저질러지는 일이다.
따라서 이 장에서는 저 불법의 세력을 해부하여 1) 큰 음녀 바벨론인 미국의 변질과 타락에 대해 살펴 보고 2) 이들 몸통을 움직이고 있는 목 부분에 해당하는 소수 엘리트 집단인 금융 자본과 그 전위 세력인 각종 단체를 밝혀 내고 최종적으로 이들이 획책 하는 바, 세계 단일 정부의 음모 즉, 신세계질서의 운동을 고찰해 보는 내용을 담고자 한다. 다시 말해 이 모든 일의 배후에는 악의 세력이 있을 뿐 아니라 또한 이 모든 일이 일어나게끔 허락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 내지 간섭이 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우리 모두가 이 시대에 가지고 있어야 할 성경적 역사관에 대해 풀이 하고자 하는 책이다.
다만 한 가지, 이 서문을 통해 미리 밝혀두고자 하는 것은 이 책이 계시록 강해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계시록의 모든 내용을 강해하고 해석하려 시도하거나 노력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몇 가지를 소개하려는 책이다. 드러내고자 하면 알아야 한다. 알아야 드러낼 수 있다. 우리는 먼저 알고, 또 이를 주위에 알려야 하고, 드러내어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단 한 가지 선(善)이 있다. 지식이다. 단 한 가지 악(惡)이 있다. 무지다.”
거듭 말하거니와, 내가 이 책을 통하여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오직 한 가지, 오늘날 이 시대는 ‘마지막 때’ 이며 이미 우리는 일곱 봉인 중의 네번째 인이 떼어져 청황색 말이 뛰는 종교전, 자원전, 에너지 전쟁의 와중에 살고 있다는 점, 그리고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나오는 ‘죽임 당한 영혼’이 조만간 출현할 시대 즉, 참된 그리스도인에 대한 핍박이 일어날 때를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2. 아주 특별한 이야기
유대인과 이스라엘
우리 그리스도인들 즉, 대부분의 성도들은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구약적 역사에 아주 해박하다. 일년에 한 두 번 이상 성경을 통독하는 성도분들도 많고 적어도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그 주요 등장 인물에 대해서는 아주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또 신약 성경을 통하여 예수님이 이 땅에 처음 오셨을 때의 이스라엘과, 또 바울과 베드로가 활동하던 사도행전 당시의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아주 잘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풍부한 지식에 반하여 현대의 이스라엘, 그리고 오늘 현재 이 시대를 살아 가고 있는 유대인에 대해서는 아주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거나 적은 지식밖에는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아브라함도 알고 모세도 알고 요셉도 알고 여호수아도 알고 다윗, 솔로몬, 다니엘, 이사야, 예레미야 등등 구약에 나오는 모든 주요 인물들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인물들에 연관된 사건, 성경 말씀을 줄줄 외다시피 한다. 신약의 인물들도 마찬가지이다. 열두 사도를 비롯하여 스데반, 빌립, 엘리사벳, 니고데모, 나사로 등등 신약 성경에 나오는 누군가의 이름만 들어도 그에 관련된 해당 구절을 즉각 떠 올릴 정도로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에 관한 한, 대단히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대단히 안타깝고도 이상한 현상 중 하나는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성경의 이스라엘과 오늘의 이스라엘, 유대인을 아주 별개라고 생각하고 있거나 아니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유대인과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성경에 나오는 그 유대인, 이스라엘이 아니고 흡사 다른 민족 또는 전혀 새로운 다른나라처럼 잘못 알고 있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다.
예컨대 오늘날 ‘유대인’ 이라 하면 – 불신자이거나 믿는 성도이거나 간에 – 맨 먼저 떠 올리는 이미지는 머리가 좋아 노벨상을 휩쓰는 사람들, 금융 자본가, 미국의 정재계를 주름 잡는 세력, 언론, 금융, 영화계를 지배하는 세력, 또는 심지어 세계정부 수립을 통하여 인류를 박해 하려는 악의 세력 등등 부정적 이미지가 대부분이다. 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런 유대인에 대한 이미지가 전적으로 틀린 것이라거나,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런 이미지에 부합되는 유대인은 일부 특정 소수의 세력일 뿐, 대다수의 유대인은 오늘날 이스라엘 땅에서 경건히 살아가고 있는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이라는 점을 지적해 두고자 하는 것이다.
한국의 국제 위상이 많이 높아져 이제 한국은G 20의 개최국으로, 세계 경제 10위권의 선진국으로 발돋움해 나가고 있다. 그런데 어떤 외국 사람이 한국을 북한과 혼동하여 (아직도 호주의 먼 시골 지역에 가면 이런 부류의 무식한(?) 사람들이 더러 있다.) 한국은 미사일이나 펑펑 쏘아대고 국민은 매일 굶어 죽게하는 독재국가라 생각하고 모든 한국 사람을 한 부류로 혼동하여 니들 코리언은 모두 악질적 공산주의자야 라고 매도 한다면 여러분은 그 무식함과 그 무지함에 분노(?)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가 이스라엘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거의 이런 경우와 흡사한 형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이 글의 핵심과 주제는 오늘 이스라엘 국가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은 성경에 나오는 그 이스라엘 민족, 유대인이요 오늘 이스라엘 땅 (혹은 팔레스타인 땅) 에 존재하고 있는 현대 이스라엘 국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수 백번 예언하신대로 ‘흩어진 이스라엘을 불러 모아’ 다시 그 땅에 심어 놓은 약속의 나라, 즉,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된 결과로서 ‘돌아 온 이스라엘’이라는 점이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데릭 프린스 목사님의 설교 ‘왜 이스라엘인가 Why Israel? 를 통하여 받은 영감이다. 데릭 프린스 목사님은 영국 출신으로서 주로 이스라엘 땅에서 활동하고 계신 분인데 이스라엘에 관한 아주 영감 넘치는 설교와 말씀으로 유명하신 분이다. 아래에 소개하는 내용은 이 데릭 프린스 목사님의 ‘왜 이스라엘인가’ 라는 설교를 요약 발췌한 것이다.
왜 이스라엘인가 ?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인이라는 단어는 구약성경에 2,500번 이상 등장한다. 이스라엘을 이해하지 못하면 성경을 이해할 수 없다. 신약 성경에는 79번 나온다. 유대인이라는 말은 구약에 84번 나오고 신약에는 192번 나온다. 반면 크리스천이라는 말은 신약에3번 나온다.
나는 이스라엘 민족이 독특한, 아주 독특한 민족이라는 것을 먼저 강조하고 싶다. 세상 어느 민족도 이스라엘 민족과 같지 않다. 다윗은 역대상 17:21-22 에서 이스라엘의 특별함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땅의 어느 한 나라가 주의 백성 이스라엘과 같으리이까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려고 나가사 크고 두려운 일로 말미암아 이름을 얻으시고 애굽에서 구속하신 자기 백성 앞에서 모든 민족을 쫓아내셨사오며, 주께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영원히 주의 백성으로 삼으셨사오니 여호와여 주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하나님께서 어느 한 민족을 다른 민족의 억압으로부터 통째로 구원해 내신 민족은 이스라엘 민족 뿐이라고 다윗은 말하고 있다. 이것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출애굽기 19장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 하신다. 출19: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이스라엘을 제외하고 세상 그 어느 민족에게도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지 아니하였다.
한편, 사도 바울은 오직 이스라엘만이 갖고 있는 특성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로마서 9: 4-5 ;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졌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자신의 아들로 입양하셨다. 또 이스라엘이 순종하는 한, ‘영광’이란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임재가 이스라엘과 함께 하였다. 언약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간에 맺어진 것이다. 율법과 약속과 제사장적 제사의 특권은 하나님께서 오직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주신 것이다. 모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며 이 모든 것들 중 가장 중요한 사실로 메시야, 즉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다른 어떤 민족이 아니라 유대인,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이 땅에 오셨다.
계시록을 보면 아주 놀라운 말씀이 있다. 나는 이 대목에서 한 없는 감동을 받았는데 이런 나의 감동이 여러분에게 전달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장면의 배경은 하늘이다. 사도 요한이 한 두루마리를 보았는데 이 두루마리는 펴 볼 수 없게 봉인이 되어 있었다. 아무도 그 두루마리의 봉인을 뗄 자가 없어 두루마리를 볼 수 없게 된 요한이 슬퍼하고 애통해 할 때에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 요한계시록 5장 5절 라고 말한다. 유대 지파의 사자가 누구인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을 뭐라고 칭하는가? 다윗의 뿌리라 말씀하신다. 요한이 계시록을 쓴 것은 예수님께서 승천 하신 후, 수 십년이 지난 시점이다. 하늘로 도로 올리워 가신지가 수 십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예수님을 ‘유다의 사자’, ‘다윗의 뿌리’ 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메시야 예수는 한 때 잠깐 유대인이셨던 것이 아니고 영원히 유대인이시다. (계시록 22장 즉 계시록의 마지막 장 16절에서는 예수님이 직접 자신을 가리켜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고 말씀하고 계신다)
유대인에 대해 예수님이 하신 말씀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말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요한 복음 4: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 구원이 어디서 온다고 하시는가? 유대인에게서 온다고 한다. 유대인이 없었다면 구원도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와, 그리고 한글로 쓰고 있는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은 유대인이 아니고 이방인이다. 그러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영적 축복은 어느 한 민족 때문에 가능해 진 것인데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 민족이다. 그들 이스라엘 없이는 믿음의 조상도 없고 선지자들도 없고 사도들도, 성경도, 구원자도 없다. 이 다섯 가지가 없었다면 여러분과 내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지난 2,000 년간을 통해서 우리는 이들 유대인 즉, 이스라엘 민족에게 겸손하고 감사하기는 커녕, 우리와 우리의 교회는 유대인들을 핍박하고 조롱하고 박해하였다. 그들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 받았는데도 말이다. 참으로 우리는, 특히 유럽 즉, 서구인들과 서구 교회는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 말로 표현하기 부끄럽고 참혹한 짓을 수도 없이 저질러 왔다.
한편, 유대 민족이 다른 민족과 다른 또 하나의 특성은 유대 민족의 역사 전체가 예언을 통하여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다른 어떤 민족도 그렇지 않다. 수 천년전에 그 민족의 역사가 미리 기록되어 있고 그 기록에 따라 실제로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민족은 이스라엘 민족 밖에는 없다. 이스라엘에 관한 모든것이 성경에 예언으로 미리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이스라엘에 관한 예언을 16단계로 나누어 살펴 보자. 처음의 세 단계는 아브라함이 받은 것이다. 1.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할 것이다. 2. 큰 부와 재산을 가지고 이집트를 탈출 할 것이다. 3. 가나안 땅에 들어 가 그 땅을 소유할 것이다. 이 세가지는 모두 성취되었다.
다음, 신명기로 가 보자. 4.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서 우상숭배를 할 것이다. 5. 예루살렘에 나의 처소, 성전을 건설할 것이다. 여러 선지서에 또 예언 되어 있기를 6. 앗수르가 북 이스라엘을 포로로 잡아 갈 것이고 7. 남 유다는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 갈 것이며 8. 바빌론에 의해 제1성전이 파괴 될 것이고 9. 소수의 남은 자가 바빌론으로부터 이스라엘 땅에 귀환할 것이다. 이 역시 역사속에서 이미 성취되었다.
신약에 들어 와 예수님은 10. 제2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파괴되리라 하셨고 11. 열방 가운데 유대인들이 흩어지리라 하셨다. 12. 이방인들에 의한 이스라엘 민족의 핍박과 박해가 있으리라 하셨고 (역사를 통하여 실제 일어 났다.) 또 무수히 많은 선지자들에 의해13. 열방으로부터 이스라엘이 귀환해서 돌아올 것이 예언되고 있다. (1948년 5월 이스라엘이 고토 유대 땅에서 이스라엘을 새로이 건국하였다.)
예언 16개 중 13개는 이미 이루어졌고 이제 3개의 예언이 남아 있다. 14. 열방이 예루살렘을 대적하여 모임. 15. 이스라엘에게 초 자연적인 계시가 주어져 하나님께로 돌아 오게 하실 것임. 16. 영광과 능력 가운데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심.
16개 중 13개의 예언이 이미 이루어 진 상황에서 나머지 3개의 예언이 추가로 이루어 질 것을 믿는 우리를 광신적이라거나 미쳤다고 주장하는 그 사람들이 더 이상한 것이다. 다시 말해 성경이 13개의 사건을 미리 예언하였다면 다른 3개의 예언도 우리는 아주 유심히 살펴 보아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 정치 분야에서 가장 민감한 이슈는 이스라엘 땅, 즉 팔레스타인이라고 부르는 지역에 관한 갈등이다. 이 이스라엘 땅을 팔레스타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오류이며 성경적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이라고 하는 말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땅이라는 말이다. 이런 팔레스타인이라는 단어는 AD 65년 경 로마가 예루살렘을 에워 싸고 성전을 파괴하기 전까지는 있지도 않았던 지명이다. 즉, 로마가 유대인을 쫓아내고 유대인들이 다시는 그 땅, 유대 (Judea) 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도록 할 저의를 가지고 바꾼 이름에 불과하다. 나의 아내는 내가 팔레스타인 이라고 부를 때마다 화를 내며 팔레스타인이라는 단어를 절대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다. 그러나 때로 사람들이 너무 무지해서 어쩔 수 없이 이 땅을 거론할 때 부득이 이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을 사용해야 할 때가 있다.
이제 이 땅에 대해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놀라운 계획을 나누어 보았으면 한다. 성경적으로 이 땅은 가나안 땅이라고 불리워 왔으며 신약에 들어와서는 유대, 이스라엘 땅이라고 불리워 졌다. 이것이 이 땅의 성경적 이름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고 계신지를 보자. 창세기 17:7-8 “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이 땅이 누구의 땅인가에 대해서는 더 이상 논란할 거리가 없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허락하신 모든 언약, 말씀, 맹세, 영원한 약속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나안 땅을 주면서 하신 말씀이다.
또한 성경에는 마지막 때에 유대인들이 이 땅,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말씀, 즉,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수 많은 구절들이 있다. 그 중 하나를 먼저 보면 예레미야 30: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아가게 할 날이 오리니 내가 그들을 그 조상들에게 준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니 그들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여호와 께서 말씀하시니라” 이 구절에서 말하는 그 땅은 어떤 땅인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조상에게 준 땅, 즉, 가나안 땅, 오늘날 우리가 거룩한 땅이라고 부르는 그 땅이다.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면’, 이스라엘과 유다의 자손들을 포로생활과 이방에서의 피난 생활에서 빼내어 그들의 조상에게 준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노라고 말씀하신다.
성경 말씀 중 내가 가장 흥미롭게 생각하는 한 구절을 소개한다. 유대인의 고토로의 귀환을 아주 단계적으로 설명하고 계신 부분이다. 에스겔 36:16 - 19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7: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그들의 고국 땅에 거주할 때에 그들의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나니 나 보기에 그 행위가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의 부정함과 같았느니라 18: 그들이 땅 위에 피를 쏟았으며 그 우상들로 말미암아 자신들을 더럽혔으므로 내가 분노를 그들 위에 쏟아 – -- -”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들의 땅에서 죄로 그 땅을 더럽힘으로 말미암아 벌을 받는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그 땅에 있는 동안 저지른 죄와 우상숭배에 대하여 징계하시는 것이다. 그 다음 단계이다. 19: “그들을 그 행위대로 심판하여 각국에 흩으며 여러 나라에 헤쳤더니 ---” 하나님께서 징벌로 그들 이스라엘 민족을 각국에 흩어 버리신다. 정작 그 다음 말씀이 아주 흥미롭다.
20: “그들이 이른 그 여러 나라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말미암아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라 21: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22: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23: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뭐라고 하시는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 진 것’ 때문에 개입하시는 것이라 하신다. 이런 하나님의 역사(役事)에 대한 근본적 동기를 이해하지 못하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마음을 알 수가 없다. 이스라엘을 도로 구원해 내시는 이유가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까닭도 물론 있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더럽힌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내 이름을 아낀다” 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다음 상황으로 넘어 가 보자.
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1948년에 독립하고 다시 건국된 오늘날의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유대 민족은 전 세계 100여 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돌아 온 유대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수 만명은 소위 이스라엘의 ‘나르는 융단’ 작전을 통해 “비둘기 같이 날아”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 온 사람들이다. 유대인들은 2천년 동안이나 전 세계에 흩어져 살았는데도 여전히 유대인적 특성을 가진 한 민족, 구별된 민족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것이 기적이다. 그에 더해 1945 년 이전의 온갖 국제법의 장애와 다른 국가들의 방해와 질시와 폭력 아래에서 이렇게 많은 백성을 도로 불러 모은 것 자체가 기적인 것이다. 2천년 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히브리어를 도로 회복한 것도 기적중의 기적이다. 많은 유대인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이런 사건들은 전체적으로 기적이다. 사람이 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겠다 선언하셨고 실제 그렇게 하신 일이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을 그들의 땅으로 돌아 오게 하시되 먼저 그들로 회개하게 한 후 돌아오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먼저 돌아온 후 그 다음에 회개하게 만드실 것이라 말씀하고 계신다.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먼저, 하나님은 말씀, 즉 맑은 물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뿌리신다. 지금 현재의 이스라엘 민족들은 맑은 물에 푹 잠겨 있는 것이 아니라 살짝 젖기만 한 상태이다. 이 점, 유대교는 중세와 근세의 가톨릭 교회와 같다. 가톨릭의 신부, 사제들이 성경을 직접 읽지 못하는 신도들에게 성경 지식을 전해준 것처럼 오늘날 이스라엘인들은 랍비가 가르쳐주는 성경 지식을 그저 비판 없이 받아 들인다.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은 변화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직접 읽기 시작한 것이다. ( 1948년 당시 데릭 프린스 목사가 예루살렘에서 히브리어를 공부하고 있을 때, 프린스 목사는 일년에 잘 해야 한 명 정도의 이스라엘 그리스도인을 만나 볼 수 있었다고 하는데 오늘날은 어딜 가든 그리스도인 유대인을 만나볼 수가 있다고 한다. 또 프린스 목사가 알고 지내는 히브리대학 종교학과 교수는 “ 예전에는 학생들이 신학적 논쟁을 배우려 하였는데 지금은 예수를 알고 싶어 합니다.” 라고 말하고 있다 한다. )
여러분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의 주권을 이렇게 정의한다. ‘하나님 께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시간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시며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으신다.’ 이사야 11:11-12 말씀이다. “11: 그 날에 주께서 다시 그의 손을 펴사 그의 남은 백성을 앗수르와 애굽과 바드로스와 구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 섬들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 12: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치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들을 모으시며 땅 사방에서 유다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리니” 11절에서 말하는 ‘그 날’ 은 마지막 때이다. 또 이 장면에서 돌아오게 하시는 것은 바빌론에서의 귀환 즉, 일부 소수의 사람들만 돌아 오게 하시는 상황이 아니다. 마지막 때에 그야말로 ‘열방으로부터’ 돌아 오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주전 586년에 이스라엘이 포로로 바빌론에 잡혀가기 전부터 예언된 말씀이며 과연 오늘날 이 마지막 때에 이스라엘은 세계 100여개국 이상의 흩어진 나라들로부터 돌아 와 이스라엘 나라를 다시 세웠다.
이스라엘의 귀환과 회복은 다른 한편, 열방을 향하여 흔드는 하나님의 깃발이다. 우리는 이 깃발, 하나님이 흔드시는 깃발에 주목해야 한다. 깃발은 멀리서도 볼 수 있도록 만든 것으로 보통 간단한 기호, 표식을 그 위에 표시하고 있다. 이 깃발은 모든 열방이 볼 수 있게 하나님이 만드셔서 흔들어 나부끼게 하는 깃발이다. 인구 육백만명의 조그만 나라, 아주 작은 한 치 땅을 영토로 가진 나라가 끊임없이 뉴스에 등장하고 세계를 들썩거리게 한다. 이것은 깃발이다. 무슨 글씨가 씌여 있는 깃발인가? 내 개인적인 해석으로는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시는 분이시다” 라는 메시지가 적혀 있는 깃발이라 생각한다.
하나님이 언약을 지키시는 분이라는 사실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아주 중요하다.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예수님의 피로 맺어진 언약 관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깨고 지키지 않는 분이라면 우리 성도, 우리의 교회와의 언약도 깨뜨릴 수 있는 분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시는 분이시다. 한번 언약한 것은 3,000년, 4,000년이 흘러도 그대로 지키시는 분이시다. 이것이 바로 감동이고, 이것이 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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