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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따는 소년들
장 욱 순
한밤. 공원은 고요하기만 하다. 나무도 풀도 모두 잠이 들고, 그네며 시소도 깊은 잠에 파묻혀 있다 회전목마랑 허니문카도 고달픈 듯 몸을 늘어뜨리고, 벤
치에도 지금은 아무도 없다. 너무도 조용해서 쓸쓸하기까지 하다.
다만 멀고먼 공중에 높이 떠 있는 달빛만이 이 공원으로 환하게 쏟아진다. 달빛은 공원의 구석구석까지 어루만지고 지나간다. 달빛이 공원의 동쪽 문 옆에 있는 벤치에 와 머물자, 이상한 종이쪽지를 한 장 발견했다. 달빛은 더욱 밝게
쏟아진다.
그 종이쪽지에는 누군가 이렇게 낙서를 해놓았다.
〈인류 최초의 월인.
닐 암스트롱, 에드윈 E 올드린.
45억 년의 비밀을 캐다.
아폴로 11.〉
쳇! 장난이 너무 심하군!
그 벤치는 날마다 하얀수염 할아버지와 두 어린이가 와서 노는 자리이다. 어린이는 물론 석이와 철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석이도 철이도 아홉 살짜리 개구
장이 친구돌이다. 지금 그들은 국민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지만 둘이 다 학교만 갔다오면 이 공원으로 나온다.
공원에 나와서 그네도 타고 시소도 탄다. 어떤 때는 회전목마도 타고 허니문카도 탄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것들보다는 하얀수염 할아버지로부터 여러가지
이야기를 듣는 것이 제일 재미있는 일이다. 하얀수염 할아버지도 석이와 철이 때문에 날마다 공원엘 빠짐없이 나온다. 하얀수염 할아버지는 하루라도 이 꼬마 친구들을 못 만나면 궁금증이 나서 근심을 한다. 석이와 철이도 하얀수염 할아버지가 나오지 않으면 조바심을 한다.
하얀수염 할아버지는 이 세상 모든 일을 모르는 것이 없다. 옛날에 일본, 중국, 미국 같은 데로 돌아다니며 공부도 많이 했고 고생도 많이 했다는 하얀수염 할아버지. 하얀수염 할아버지는 외국말도 잘하고, 안데르센의 동화로부터 아폴로 이야기까지 어쩌면 그렇게도 잘 아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석이와 철이는 하얀수염 할아버지를 제일 좋아한다.
그러니까 일 주일 전. 그날도 석이는 학교에서 돌아와 책가방을 팽개치듯 벗어던지고 공원으로 달려갔다. 철이도 벌써 와 있었다. 그런데 언제나 그 파란벤치에 비스듬히 앉아 있는 하얀수염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석이가 벤치 가까이 갈 때까지 철이는 혼자서 무엇인가 열심히 보고 있었다.
만화책이다. 만화에 정신이 팔려서 석이가 오는 줄도 모르고 있다. 석이는 쪼
르르 철이 옆으로 달려가서 바싹 다가붙어 철이가 보고 있는 만화를 같이 본다.
그들은 하얀수염 할아버지가 늦게 나올 때는 대개 만화를 보든가 그네나 시소를 타기도 한다. 그런데 둘이서 만화책 한 권을 가지고 함께 볼 때는 항상 말썽이다. 철이보다 석이가 빨리 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철이가 공부를 못하는 찌어리도 아니다. 석이만큼은 못한다고 하더라도 저희 반에서 열째 안으로는 거뜬히 들어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만화를 볼 때는 석이를 당해낼 수가 없다. 석이는 글자는 읽지 않고 그림만 슬슬 보아
넘기는 것만 같다. 그러나 어떻게 된 것인지 거기에 나오는 말 한마디도 잊어버리지 않고 다 알고 있다. 그래서 만화를 같이 볼 때는 늘 말썽이 난다. 철이는 저도 모르게 기가 죽고, 석이는 잘난 체하게 된다.
이날은 「깐돌이」라는 만화를 보고 있었다.
“빨리 좀 넘기자.”
석이가 답답한 것을 참다 못해서 만화책을 빨리 넘기라고 재촉을 한다. 그러나 철이논 아무런 말도 없이 열심히 만화만 보고 있다.
“빨리 넘기라니깐.”
“관도오.”
“에이 느림보.”
“빨리만 보면 제일인가.”
“그러엄.”
이렇게 티격태격하는데 어느새 하얀수염 할아버지가 와서 빙그레 웃고 있었다.
“허허허------ 그놈들, 아주 귀엽단 말이야------”
하얀수염 할아버지는 혼잣말처럼 하면서 파란 벤치 위에 앉았다.
그러자 철이와 석이는,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서 양쪽 옆으로 바싹 다가앉는다. 하얀수염 할아버지는 두 어린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굵은 목소리로,
“허허허, 오늘은 좀 늦었구나. 그런데 철이는 만화책 보는데는 아무래도 석이
를 당할 수가 없나보지?”
하고 철이를 쳐다본다. 그렇지 않아도 철이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받치는데 할아버지까지 곯려주는 것 같아서 더욱 어쩔 줄을 모른다.
철이는 얼굴이 바알갛게 달아가지고,
“체! 만화책만 잘 보면 제일인가?”
하고 코방귀를 뀐다.
“하기는 그렇지. 그렇지만 철이가 석이를 이길 만한 게 무엇이 있나?”
할아버지는 속으로 은근히 철이의 마음끝을 돋구어놓는다. 석이는 우쭐해서 철이를 깔보는 듯 버티고 있다.
“있어요.”
철이가 자신있다는 듯 큰소리로 외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그래 무엇이 있나?”
“넓이뛰기요.”
“넓이뛰기? 그것 참 좋구나.”
할아버지는 넓이뛰기를 해보라는 눈으로 석이를 바라본다. 그러나 석이는 가슴이 뜨끔했다. 정말 넓이뛰기는 얼마 전 학교에서 해본 일이 있는데 철이를 당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안한다고 할 수도 없게 되었다.
“좋다, 하자.”
석이는 손에 침을 탁탁 뱉으면서 두 팔을 휘두르며 일어섰다. 그래서 하얀수염 할아버지가 심판을 보시고, 두 어린이는 넓이뛰기 시합을 하게 되었다.
땅바닥에 줄을 긋고, 그 줄에 두 발을 모아서 나란히 갖다댄다. 그리고서 두 팔을 휘두르면서 힘차게 굴러서 뛰는 것이다.
“자, 그럼 철이가 먼저 뛰어요.”
할아버지의 지시에 따라서 시합은 질서있게 진행된다. 철이는 져서는 안된다는 듯 이를 악물고 눈을 꼭 감으면서 힘차게 뛰었다. 아닌게아니라 넓이뛰기는 꽤 많이 나간다. 철이가 뛰어간 자리에 줄을 직 그었다.
“이젠 석이 차례.”
석이도 철이에게 질까보냐는 듯 깊은 숨을 들이쉬더니 팔올을획 흔들면서 껑충 뛰어나간다. 석이가 뛰어간 자리에도 할아버지가 줄을 긋는다. 철이가 뛰어
자리와 맞추어본다. 석이보다 철이가 한 5센티미터쯤 더 멀리 뛰었다. 세 번씩 뛰어보아도 넓이뛰기는 석이가 한번도 철이보다 멀리 뛰지를 못했다.
그렇게 되니까 이번에는 석이 쪽에서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오른다. 분한 모양이다. 어떻게 할 줄을 모른다. 그러더니 침을 퉤퉤 뱉으면서,
“또 하자. 이번에는 달리기 하자, 달리기.”
큰소리로 외치면서 달려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철이도 지지 않겠다는 듯 싱글싱글 웃으면서,
“좋다. 뭐든지 덤벼라. 덤벼.”
하고 팔을 휘젓는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허허허, 오늘은 운동시합이 벌어졌구나. 자, 그러면 내가 또 심판을 봐야지.
여기서 출발해서 저쪽 공원 서쪽 문 옆에 있는 고목나무를 돌아오기다.”
이렇게 말하면서 출발선을 긋는다. 석이와 철이는 누가 시키기도 전에 출발선에 와서 준비를 했다.
“차렷! 하나, 둘, 탕! 하면 출발하는 거다.”
“옛!”
철이와 석이외 대답은 똑같이 나왔다. 그들은 할아버지를 쳐다보지도 않고 저쪽에 있는 고목나무만 똑바로 쳐다보면서 대답을 했다.
“차렷! 하나, 둘, 탕!”
드디어 출발신호가 났다. 어찌된 일인지 출발에서 석이가 두 발짝은 앞섰다.
고목나무 있는 데까지 그 두 발짝 차이로 석이가 앞서고 철이가 뒤따랐다. 그런데 나무를 돌아오다가 그만 철이는 넘어질 뻔하는 바람에 약 5미터나 뚝 떨어졌다. 석이는 결승점에 들어오면서,
“아아··----”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손을 높이 들었다. 철이도 끝까지 뛰었다. 그러나 석아에게 떨어진 것이 분한 탓인지 얼굴이 푸르락붉으락하면서 입에서 거품을 내밀었다.
“다시 해요. 다시 해요.”
철이가 다시 하자는 바람에 석이는 할수없이 또 뛰었다. 그러나 두번째도 역시 석이가 출발부터 빨랐다. 세번째도 다시 했으나 결국은 달리기는 석이를 당
할 수가 없었다.
“에이, 씨름하자, 씨름.”
철이는 아랫바지를 걷어올리면서 씨름은 자신이 있는 듯 이렇게 외치며 덤빈다.
“좋다. 뭐든지 덤벼라, 덤벼.”
이번에는 석이가 철이보고 덤비라고 으시댄다. 아까는 그렇게도 의기양양하던
철이가 기가 푹 죽었다.
“씨름도 좋지만 좀 쉬었다 하려므나.”
하얀수염 할아버지는 그들의 노는 모양이 기특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여 흐뭇했다. 철이와 석이는 아직도 씨근덕거리면서 벤치 위에 앉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벌써 해가 기울었다. 아직 어두워오지는 않지만 공원에 모였던 사람들도 하나씩 둘씩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씨름은 내일 하는 게 어떠냐?”
할아버지가 두 어린이를 보면서 상의를 했다. 그러자,
“안돼요. 오늘 일은 오늘 해야 돼요.”
고 냐선 것온 역시 철이다. 철이는 아직도 달리기에서 진 것이 덜 풀렸다. 그러나 석이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아무렇게 해도 좋다는 눈치다. 그러나 진 사람이 바짝 서둘고 나서니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자 그러면 져 잔디밭으로 가자.”
하얀수염 할아버지는 석이와 철이를 데리고 잔디밭으로 갔다.
석이와 철이는 서로 씨름하는 자세로 마주 불었다. 왼손으로 상대편의 허리께로 허리디를 움켜잡고, 오른손은 적당히 기술을 부릴 수 있도록 자유롭게 놓아 두었다. 할아버지는 두 사람의 등에 손을 얹고 있다가,
“시이작!”
하연서 풍을 탁 치고 빨리 물러섰다.
두 사람의 씨름이 시작된 것이다. 석이도 철이도 그리 만만치 않은 적수들이다. 적당히 발을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시간을 끈다. 아무도 결정적인 공격을 가하지 못한 채 자꾸만 지쳐가고 있다. 때때로 철이가 오른발을 석이의 가랑이 속에 들이밀면서 공격을 가하려고 해도 좀처럼 석이가 들어주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석이는 오히려 철이의 왼쪽 바짓가랑이를 날쌔게 잡아채어 공격을 가한 철이 쪽이 더 버틀거리고 말기가 일쑤다. 그렇지만 석이가 먼저 공격을 펴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철이가 자신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다. 얼마 동안 이렇게 서로 꼬나보면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시간이 흘렸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대로 손에 땀이 흐르고, 그들은 그들대로 지쳐서 온몸에 땀 범벅이 되었다. 이제는 저녁 어스름이 깔리고 하늘엔 어느새 반달이 살짝 나와서 걸렸다. 두 어린이의 씨근덕거리는 숨소리는 저녁 공기를 타고 더욱 숨가쁘게 들린다.
할아버지는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힘내라! 힘내!”
하면서 두 주먹을 폈다 오므렸다 그들을 빙빙 돌고 있다. 이제는 끝장이 나려는지 그들은 갑자기 벌떡 일어서면서 서로 배를 맞대고 끙끙거리면서 꼿꼿하게 섰다. 그렇게 꼿꼿하게 배를 맞대고 선 채로 잔디밭을 빙빙 돌더니 드디어 펑! 하고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두 사람이 한꺼번에 넘어져서 누가 밑으로 들어갔는지 잘 알 수가 없었다. 한참 있다가 씨근거리면서 먼저 일어서려는 것은 철이 였다. 철이는 비오듯 흐르는 땀을 양손으로 쓱쓱 문지르면서 그저 씩식하면서 일어선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인지 석이는 일어날 줄을 모른다.
할아버지는 어쩐지 겁이 나서 석이를 안아서 일으키려고 하니까,
“노세요, 노세요, 응아---”
분함을 참지 못하여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석이의 성격을 잘 알기 때문에 이런 때는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석이는 길게 울지는 않았다. 그런데 울면서도 철이를 이길 다음 시합은 무엇으로 활까? 하고 생각하면서·울었다.
석이는 그때, 하늘에 살쩍 걸려 있는 반달을 보았다.
----옳지! 저거다!
석이는 울음을 뚝 그치고 벌떡 일어서면서 외쳤다.
“또 하자. 이번에는 달 따오기다.”
“뭐? 달 따오기?”
“그래, 저 달을 따온단 말이야.”
“히히히, 저 달을 어떻게 따와?”
“그럼 네가 진 거지 뭐. 나는 따올 수 있어!”
석이는 자신만만했다.
철이는 어이가 없어서 할아버지를 쳐다보면서 힘없이 웃는다. 그러면서 할아버지에게 응원을 요청한다.
“할아버지, 저 달을 어떻게 따와요? 그건 거짓말이죠?”
“글쎄, 석이가 따온다면 철이도 같이 시합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기권이니까 철이가 지는 거란 말이야.”
할아버지의 말이 끝나자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다시 철이가 석이를 보고,
“너 정말 따올 수 있어 ?”
“그러엄.”
어쩐지 석이의 그러엄 하는 소리가 갑자기 힘이 없어진다. 사실 석이도 얼떨 결에 한 말이지 깊이 생각한 말이 아니다.
철이가 기권을 해주었으면 좋겠으나 판세가 그렇게 돌아가지는 않을 것 같다.
“좋아, 그럼 나도 따온다.”
철이가 같이 시합을 하겠다고 선언을 했다.
“정말?”
“그러엄, 정말이지.”
“좋다.”
“좋다.”
“허허허, 정말 석이나 철이나 모두 장한 친구들이야. 허허허…”
할아버지는 만족한 웃음을 웃으면서 한손으로는 철이의 손을 한손으로는 석이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두 어린이를 뜻있게 쳐다보면서,
“음, 그러면 약속은 된 것이지?”
“예!”
“허허허··-”
한바탕 웃고 나서 정색을 하고 똑똑한 말씨로,
“이제 이 하얀수염 할아버지는 누가 먼저 저 달을 따오는가 잘 지켜볼 것이다.”
이렇게 두 어린이에게 다짐을 했다. 두 어린이도 힘있게 대꾸한다.
“예, 좋아요.”
“할아버지가 심판을 잘 해주셔요.”
“암, 그야 염려할 것 없지. 잘 해드리고말고------”
두 어린이는 할아버지의 양손에 매달려서 공원을 나섰다. 비록 반달이지만 달빛은 더욱 밝게 비추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석이는 커다란 고민속에 파묻히게 되었다. 얼떨결에 희떠운 소
리를 쳤으나, 사실 달을 어떻게 따온단 말인가? 밤이 새도록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면서, 아무리 궁리를 하여도 달을 따온다는 것은 될 수 없는 일만 같다.
--햇! 공연히 희떠운 소리를 쳤지------
이제는 후회가 되었으나,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약속을 취소할 수도 없고, 참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묘한 방법이 나서지 않는다.
이튿날 석이는 일찍 공훤으로 나갔다. 공원에는 벌써 할아버지가 와 있었다.
할아버지는 무엇인가 종이쪽지에 열심히 글을 쓰고 있었다.
“할아버지, 안녕하셔요?”
“오오냐, 그러지 않아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앉으려므나.”
할아버지는 벤치를 가리키면서 석이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할아버지, 정말 큰일났어요.”
“큰일났으면 작은 일로 나누어서 두 번 치르지.”
할아버지는 시치미를 뚝 떼고 농담을 한다. 그러나 석이로서논 아무래도 보통
일이 아닌 것이다.
“농담은 그만두셔요. 제가 먼저 달을 따오기로 하고서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뾰족한 수가 생기지 않으니 어떻게 하면 좋죠?”
“글쎄다. 낸들 뭐 멋들어진 방안이 서지 않누나---”
“할아버지는 알고 계실 거야.”
“허허허, 참 녀석두------잘 연구해보면 묘안이 있을 법도 하다만------”
“히히히, 할아버진 좋은 수가 있을 거야. 철이 오기 전에 빨리 가르쳐주셔요,
“예?”
“아니 제가 먼저 달을 따오겠다고 뺑뺑대더니 그럼 대포만 쐈단 말이냐?”
“대포가 아녀요·그때는 씨름에 진 것이 분해서 앞뒤도 생각하지 않고 큰소리를 쳤어요.”
“허허, 그게 바로 대포가 아니고 뭐야.”
“어쨌든 달만 따오면 되잖아요.”
“하기야 그렇다만------”
석이는 할아버지의 그 힘없이 대답하는 태도에 더욱 안타까왔다.
이때 철이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할아버지, 안녕하셔요?”
“오오냐, 어서 오너라.”
철이는 언제나처럼 가볍게 인사를 하고서 석이와도 웃음으로 인사를 나눈 뒤에 할아버지 옆에 가서 정답게 앉았다.
“철이는 언제 달을 따오는가?”
“석이는요.”
“석이는 석이고, 철이는 언제 따오는가 말해봐요.”
“아직 말할 수 없어요.”
“흥, 정말로 달을 따을 수 있는 건가 아닌가?”
석이도 철이의 대답이 나올 때를 기다리고 있다. 철이는 석이와 할아버지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확실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거린다. 할아버지와 석이는 벌써 철이의 눈치를 알아냈다. 물론 달을 따올 자신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마침 석이가 옆에 있으니까 자신이 없다는 말을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한참 동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할아버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석이와 철이는 지금부터 내 말을 자 들어라.”
할아버지는 나직한 목소리로 조용하고 심각하게 말머리를 꺼냈다. 철이와 석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하얀수염 할아버지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린다.
“달을 따온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석이와 철이 두 사람의 간단한 시합이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의 문제요, 지구 전체 온 인류의 문제요, 나아가서는 전 우주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중요하고, 또 크고 어려운 문제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그렇게 간단히 해결할 수 있겠니? 나도 이 일만은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반드시 이룩되도록 힘을 기울일 작정이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계속되자 석이와 철이의 얼굴에 환하게 꽃이 피고 입이 함박만하게 벌어졌다.
“그러니까 지금부터는 두 사람이 경쟁을 하려고 생각하지 말고, 두 사람의 힘을 합해서 달을 따오려고 노력해야 한다.”
“여예!”
철이나 석이는 똑같이 대답이 나왔다.
그리고 어깨가 훨씬 가벼운 것 같으며 무엇인가 뚜렷한 자신은 없으나 저절로 안심이 된다. 둘이서 시합을 한다는 생각이 깨끗이 없어진 것온 아니지만, 할아버지의 말이 재미가 있었다.
“달을 따오려면 우선 달나라에 가야 한다. 마침 내일 미국의 세 우주인이 한국을 방문하는 날이니까 한번 만나보기로 하자.”
“어떻게 만나요?”
“그야 뭐 어려울 게 없지------그런데 석이와 철이는 내일 학교에서 돌아올 때 약 한 달쯤 쉬겠다는 결석계를 내야 할 것 같다.”
“왜요?”
“달나라에 가려면 한 달은 걸려야지.”
“야! 정말이죠, 할아버지?”
“그러엄, 정말이고말고. 아무한테도 다른 말은 하지 말고, 학교에는 결석계를 내고, 집에는 부모님들께 여행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내일 낮 열두시에 이곳으로 모인다.”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조용하면서도 딱딱하고 빈틈이 없었다. 석이와 철이는 날아갈 듯 기쁘고 한편 궁금증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자, 오늘은 그만 돌아가서 일찍 쉬기로 하자.”
할아버지는 다른 날과 달리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먼저 일어서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간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앉았던 바로 그 자리에 종이쪽지가 한 장 놓여 있었다. 할아버지가 빠뜨리고 간 모양이다.
석이와 철이는 그 쪽지를 펴보더니 알 수가 없다는 듯 고개를 이리 갸우뚱 저리 가우뚱 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그 맨 끝줄이 이상한 것이다.
----쳇! 장난이 너무 심하군!
이것은 틀림없이 하얀수염 할아버지의 글씨이다. 이 맨 끝줄에는 무슨 곡절이
숨어 있는 것만 같다.
“철이야, 우리도 그만 가자. 이 쪽지는 그 자리에 그대로 놔두고 가야 될 것
같아.”
“글쎄, 혹시 할아버지가 이것을 찾으러 오실지도 모르니까---”
“그래, 그래.”
이렇게 해서 그 쪽지는 벤치 위에 그대로 놓여 있게 되고, 철이와 석이는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지금 벤치 위에 놓여 있는 그 쪽지를 공원을 비추던 달빛이 발견한 것이다.
이튿날.
석이와 철이는 정각 열두시에 공원에 나왔다. 할아버지도 열두시 정각에 나왔다. 할아버지는 다른 때는 늘 허름한 옷을 입었는데 오늘은 신사복에 넥타이까지 매고 구두가 번쩍번쩍했다. 물론 석이와 철이도 새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지금부터 우주인 환영에 나간다.”
석이와 철이, 그리고 하얀수염 할아버지, 이렇게 세 사람은 공원 문을 나섰다. 문앞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할아버지는 방향을 시청 쪽으로 틀었다.
1969년 11월 3일 인류 중에서 가장 처음으로 달을 밟은 미국 세 우주인(암스트롱, 콜린즈, 을드린)이 한국에 오는 날이다. 서울은 지난 7월에 아폴로 11호가 달에 닿을 때처럼 흥분속에 파묻혔다. 김포에서 서울 시청에 이르는 길목 곳곳에 〈웰컴 아폴로〉라는 환영 아치가 서 있고, 수만의 환영 인파가 길가를 메웠다.
이 환영 인파 속에 철이, 석이, 하얀수염 할아버지도 끼어 있었다. 미국 대통령 전용기인 미 공군 넘버 1기가 세 우주인을 태우고, 예정대로 12시 13분 김포공항에 닿았다.
그들은 김포에서 시청 앞까지 화려한 카퍼레이드를 벌이면서 한국민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석이와 철이도 할아버지를 따라서 우주인들을 열렬히 환영했다. 세 사람은 계
속 우주인들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우주인들이 기자회견을 할 때는 먼저 가
서 뒤에서 기다렸다. 우주인들이 식사를 할 때는 그 옆방에 가서 그들도 식사를 했다. 하루 종일 쫓아다니다 보니까 밤 열시 반 경 숙소로 들어갔다. 워커힐 더글라서 하우스. 암스트롱은 103호실, 콜린즈는 104호, 을드린은 105호실이었다.
우주인들은 제각기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밤 열한시.
할아버지는 105호실 문을 똑똑 두들겼다. 방안에서 들어오라는 소리가 났다.
문을 열고 석이와 철이, 그리고 할아버지, 이렇게 세 사람이 들어갔다. 막 잠자리에 들려고 하던 을드린은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이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조용히 하라고 말하면서 그를 안심시켰다. 올드린은 17년 전 한국 전선에 참전한 바 있는, 한국으로선 고마운 친구이다. 그가 한국말을 조금 할 수 있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할아버지는 우선 자기 소개를 한다.
“밤중에 죄송합니다. 저는 한국 우주과학 연구소에 있는 백 박사입니다. 그리고 여기 한국의 두 꼬마우주인을 소개합니다. 이쪽은 동석이, 저쪽은 철수라고
합니다. 그저 석이, 철이, 이렇게 부르지요.”
“예, 예, 저는 올드린입니다.”
올드린은 잠시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어찌할 줄을 모르고 쩔쩔맨다.
“시간도 없고 하니 간단히 용건만 말씀드리죠. 대단히 거북한 청이 있어서 왔
읍니다.”
“예, 예, 무슨 부탁인지 어서 말씀하십시오.”
올드린은 피로한 듯 어서 말을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백 박사 할아버지는 침착하고 더욱 또렷하게 말을 꺼낸다.
“그런 게 아니라, 먼저 약속을 해주십시요. 우리의 부탁을 들어준다고------”
“말씀도 들어보지 않고 어떻게 약속을 합니까?”
“당신이 성의만 있으면 충분히 들어줄 수 있는 문제이니까요.”
“그렇다면 좋습니다. 약속하지요.”
“고맙습니다. 당신은 17년 전에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를 도와준 고마운 친구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는 당신을 국빈으로 대접하고 훈장까지 주었읍니다. 나는 다만 한 가지만 부탁합니다. 우리 두 꼬마우주인을 미국으로 데리고 가서 이번 15일에 발사하는 아폴로 12호에 같이 태워서 달나라에 다녀오도록 주선을 해주시고, 훈련까지 시켜주십시오.”
할아버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을드린은 눈을 크게 뜨고 펄쩍 띈다.
“안됩니다. 안됩니다. 그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약속 취소합니다.”
“약속은 일방적으로 취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당신의 성의만 있으면 충분
히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아닙니다. 안됩니다. 이건 너무합니다. 백 박사님, 용서하십시오. 약속 못 지
키겠읍니다.”
“약속을 못 지키고 썩은 신사라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는 조금 노력하여 약속을 지키고 양심있고 믿음성있는 신사 에드윈 E 을드린이란 이름을 남기는 것이 좋을 겁니다. 자 밤도 늦었으니 이만 돌아가겠읍니다. 내일 일본으로 가실 때 석이와 철이를 동행할 각오를 하십시오.”
세 사람은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서 밖으로 나왔다. 올드린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마치 도깨비에 홀린 사람처럼 정신을 빼앗겼다. 이제는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도 없고, 정말 너무도 갑자기 너무도 큰 고민이 생겼다.
두 어린이와 할아버지는 열두시가 다 될 무렵 할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다.
할아버지의 방에는 맛있는 음식이 차려 있었다. 세 사람은 우선 음식을 먹어가면서 다음 일을 상의했다.
할아버지는 매우 만족한 얼굴로 석이와 철이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
했다.
“내가 아까 올드린 씨에게 미리 써가지고 간 편지를 놓고 왔다. 그러니까 내일부터 석이와 철이는 올드린 씨가 하자는 대로 하면 된다. 다만 아폴로 우주선 속으로 들어간 뒤에는 제각기 정신을 차리고 자기가 할일을 똑똑히 알고서 민첩하게 행동해야 한다. 자, 이 주머니를 받아라.”
할아버지는 석이와 철이에게 각각 작은 주머니를 하나씩 주었다. 주머니를 주면서 설명을 했다. 석이가 가지고 갈 주머니에는 한 장의 태극기와 몇 통의 편지가 들어 있다. 편지는 겉봉에 뜯어볼 장소, 또는 전해줄 시간과 줄 사람 등이 똑똑하게 씌어 있다. 석이가 할일은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이 편지를 뜯어 보든가, 받을 사람에게 전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 편지 속에는 석이와 철이가 해야 할 일들도 적혀 있으니까------그리고 철이의 주먹 속에는 아주 작은 녹음기와 사진기가 들어 있다. 철이는 적당한 때마다 사진을 찍고 녹음을 해두면 되는 것이다.
녹음기와 사진기를 어떻게 만진다는 것을 다 배웠다. 그렁저렁 그들온 새로 한시가 다 돼서야 잠이 들었다.
다음날 철이와 석이는 일찍 일어났다. 모든 준비를 하고서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린다.
“할아버지, 다녀오겠읍니다.”
“할아버지, 다녀오겠읍니다.”
“오냐, 걱정 말고 부디 훌륭하게 일을 마치고 돌아오너라.”
“예, 학교와 집에도 별일 없도록 잘 부탁드립니다.”
“글세 염려 말아요.”
할아버지는 오른손을 번쩍 들어서 흔든다. 두 꼬마우주인도 손을 흔돌면서 택시롤 몰고 제2한강교 쪽으로 달린다. 그들이 김포공항에 닿은 것은 9시 20분, 조금 있자니까 미국 우주인들이 나온다. 멀찍이서부터 올드린은 손을 번쩍 혼들면서 인사를 한다.
석이와 철이도 가볍게 인사를 하고 올드린이 안내하는 대로 비행기에 올랐다.
이제부터는 을드린이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들은 일본까지 방문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앞으로 열흘만 있으면 아폴로 12호률 발사하게 되는 것이다. 그 사이에 최소한도로 우주복을 입고 우주선 속에서 어떻게 활동하고, 월면에 가서는 어떻게 움직여야 하며, 우주선의 장치 중에는 적어도 어느 정도는 조정할 수 있는 것을 배워야 한다. 물론 석이나 철이가 직접 조종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알아는 두어야 한다. 그래서 올드린은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꼬마우주복을 마추고 또 석이와 철이는 우주훈련에 정신을 못 차리게 바빴다. 열흘이란 눈 깜박할 사이에 흘렀다. 드디어 발사하는 날이 돌아왔다.
석이와 철이는 긴 잠에서 깨어나 마지막 신체검사를 하고 쇠고기와 계란 등으로 식사를 끝마쳤다. 이때가 발사 5시간 22분 전, 콘래드와 고든, 빈 동은 여덟 시간의 잠에서 이제 막 깨어날 때다.
“지금쯤 콘래드 등 세 우주인들도 마지막 신체검사를 하고 식사를 시작할 거야. 자, 우리는 이제 준비가 완료되었으니 우주선으로 가자.”
올드린은 자기의 차를 대고 어서 타라는 듯 이렇게 말했다. 석이와 철이는 주
머니를 찰 챙기고 올드린의 차에 올랐다.
“내가 우주선을 점검하러 가는 체하고 갈 테니 내 뒤를 재빠르게 따라와서 선실로 빨리 들어가도록 해.” 기 ;
“예, 예·-----”
“선실로 들어간 뒤에는 몇번씩 주의시켰지만, 이것이 본래 삼인승인데 약간 여유는 있지만 매우 위험하니까 정말 주의를 해야 한다. 그리고 일단 들어가서
는 콘래드 등이 들어와서 발사될 때까지 내가 숨어 있으라는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예정대로 발사되지도 않고 자칫하면 목숨까지 위험한 일이니 부디 주의하여 무사히 돌아오기 바란다.”
“예, 예, 고맙습니다. 올드린 아저씨, 아저씨의 뜨거운 은혜는 성공을 하고 돌아와서 갚겠읍니다.”
l 석이와 철이는 올드린의 결사적인 협조로 아폴로 12호 우주션 안으로 아슬아슬하게 올랐다. 이제부터는 두 어린이의 기지에 달렸다. 그들은 배운 대로 미리 정한 자리에 가서 납작 엎드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세 우주인들이 들어오 않고 있다. 정말 이때의 시간은 퍽도 긴 것 같다.
이윽고 세 우주인이 선 내로 들어온다. 석이와 철이는 죽은 듯이 엎드려서 아무말도 못하고 있다. 이때 들키기만 하면 10년 공부가 모두 허사가 되는 것이다.
철이와 석이는 간이 콩알만해져서 숨소리까지 마음대로 내지 못한다.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금방 온몸에 땀이 흥건히 배었다.
드디어 발사.
1969년 11월 15일, 한국 시간으로 새벽 1시 22분, 미국 케이프 케네디에서 닉슨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폴로 12호가 역사적인 출범을 한다.
“꽝…··”
---천지가 뒤흔들리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어느새 아폴로 12호는 약 12분 후에 지구 궤도에 진입했다.
이때, 지금까지 망설이고 엎드려 었던 석이가 벌떡 일어서면서,
“미안합니다. 청하지도 않은 손님이 여기 왔읍니다.”
하고 말하자,
“으아앗.”
우주인은 놀라서 혼을 빼앗긴 사람들처럼 나동그라졌다.
“핫헛핫------우주인들이 원 이렇게도 담이 약해서야, 쯧쯧쯧----”
아주 일부러 어른스럽게 말을 건네면서 할아버지가 주신 편지 제1신을 꺼냈다. 석으로부터 편지를 받아든 사람은 찰스 콘래드, 곧 리처드 고든과 앨러빈 등 세 우주인은 그 편지를 열심히 읽어본다. 편지의 내용은,
〈세 우주인께
당신들의 장도를 축하하오며, 한국의 두 꼬마우주인을 소개합니다. 동석이와 철수. 이들은 당신을 해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한국인과 전 인류
를 위해서 당신들과 같이 탔을 뿐입니다. 서로 협력하면 무사히 돌아을 수 있으나, 서로 외심하고 해치려고 하면 다같이 불행을 부를 것입니다. 훌륭한 성과 얻고 무사히 귀환하기를 손 모아 빕니다.
69년 11월, 코리아 우주과학 연구소 하얀수염 씀.〉
편지를 원어본 세 우주인은 겨우 안도의 빛이 보인다. 석이와 철이는 미소로 인사를 다시 했다. 그들도 미소로 인사를 받았다. 석이는 곧 둘째번 편지를 전
했다. 세 우주인은 둘째번 편지를 보더니 다시 얼굴이 싸늘하게 변하는 것 같았다. 둘째번 편지의 내용은 석이와 철이가 여기 탔다는 사실을 당분간은 비밀
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
이때 지상 관제소로부터 연락이 왔다.
판제소 아폴로 12, 아폴로 12.
콘래드 여기는 아폴로 12호다.
관제소 여기는 지상관제소다. 방금 당신들이 굉장히 놀라는 소리를 지른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는가?
콘래드 아무 일도 없다. 지상에선 들리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공중에서 벼락을
친 모양이다. 모선 실내에 전기가 잠깐 나갔었다.
관제소 여기서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네만…… 그밖에 특별한 일은 없는 가?
콘래드 아무 일도 없다. 모두가 순조롭게 잘 운행되고 있다.
관제소 오케이, 당신들의 연료 전지도 아주 좋은 것 같다.
콘래드 기분 좋다. 안심해라.
콘래드는 두 꼬마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여기서는 눈 깜박
하는 사이에 영영 지구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고를 저지를 수도 있는 것이다. 지상관제소와의 연락이 끝나자 콘래드는 석이와 철이를 힐끗 쳐다보며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 철이와 석이도 콘래드가 하는 식으로 눈으로 찡긋 인사를 했다.
아폴로 12호는 벌써 지구 궤도를 벗어나서 시속 4만여 킬로의 속도로 일로 달을 향하여 돌진하고 있는 것이다.
철이가 가지고 있는 녹음기의 스위치는 벌써부터 열려 있다. 이것은 우주선 속에서나 또 표면에 가서 작업을 할 때도 아무리 작은 소리까지 모두 그대로 녹음이 되는 것이다.
아폴-로 12호는 l9얼, 달의 〈폭풍의 바다〉에 도착할 예정이다. 콘래드와 빈은 모선과 자선의 연결터널을 타고 착륙선으로 들어갔다. 이때 석이와 철이도 그들의 뒤를 따라서 착륙선으로 건너갔다. 고든은 홀로 사령선에 남았다.
모든 기계는 순조롭고 착륙선은 달의 서쪽 〈폭풍의 바다〉에 예정된 시간에 나비처럼 살짝 내려앉았다.
여기서 석이는 세번째의 편지를 전했다. 세번째 편지의 내용은 무사히 안착했음을 축하한다. 월면작업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특별히 주의할 것은 석이와 철이가 지상의 TV방영에 비치지 않도록 특별히 주의를 해달라 이런 내용이었다. 콘래드는 편지를 엄어보고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콘래드와 번이 월면으로 나간 뒤에 석이와 철이도 천천히 월면으로 나갔다. 철이와 석이는 언제나 그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들을 살피면서 따로 일을 했다. 콘래드와 빈은 월진계 등 여러가지 계기의 설치에 들어갔다. 그사이에 석이와 철이는 월면에 태극기를 꽃았다.
“쓰러지지 않게 단단히 세워야 돼.”
철이가 석이를 보고 하는 말이다. 석이는 긴장된 얼굴색을 풀지 않온 채,
“걱정 말고, 철이는 저 사람들이나 잘 살펴봐.”
이렇게 말하면서 눈을 크게 떴다. 태극기룰 안전하게 꽂은 뒤에 석이와 철이는 태극기를 향하여 뜻깊은 경례를 했다. 그리고 1969년 11월 지구의 작은 나라 한국의 두 꼬마우주인 동석이와 철수가 이곳에 다녀간다는 글월이 담긴 표지를 그옆에 남겼다. 그리고 월석도 캐고 사진도 찍고 여러가지 일을 했다.
약 7시간 반 동안의 어려운 월면작업이 모두 끝났다. 이제 콘래드와 빈은 적당히 짐을 꾸려가지고 착륙선으로 올라가려고 하는 참이다. 그런데 석이와 철이는 벌써 착륙선에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이때 석이는 네번째의 편지를 콘래드에게 전했다.
〈콘래드 씨.
정말 모든 인류를 위해서 당신은 장하고 보람있는 일을 했읍니다. 그리고 우리 한국의 두 꼬마우주인을 잘 살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알려드릴 것은 벨기에의 유명한 군사전문가 베르너 장군은 당신들의 우주여행을 대단히 비난하고 있읍니다. 아니 비난이 아니라 그것이 어쩌면 가장 정확하게 본 것인지도 모르지요. 다시 말하면 달에 핵무기 발사기지를 설치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당신들이 달에 간 임무 중에 가장 중요한 임무의 하나가 바로 그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극비리에 묻혀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한국의 이 백 박사도 그런 것쯤은 알고 있는 터입니다. 부디 우리 두 꼬마우주인을 잘 데리고 오시오. 그렇지 않으면 당신들의 비밀이 더욱 많이 폭로
될 것입니다. 고마운 분에게 불쾌한 말을 드려서 미안합니다. 그렇지만 나와 두 꼬마우주인은 항상 당신네가 우리의 정 깊은 우방이라는 것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이만.
69년 11월, 코리아 우주과학 연구소 하얀수염 씀.〉
콘래드는 편지를 다 얽고 힘없이 착륙선으로 들어왔다. 빈도 뒤따라서 들어왔다. 착륙선은 예정대로 달 표면을 박차고 올을랐다. 사령선으로 향해서 오르는 것이다. 아폴로 12호는 모든 것이 예정대로 별 틀림없이 진행되었다. 모선과 자선이 도킹, 달의 궤도률 벗어나 지구로 향하여 엄청나게 빨리 달려오고 있다.
석이는 이제 할아버지가 준 마지막 편지를 보았다. 그것은 석이와 철이 자신
에게 준 것이었다.
〈두 꼬마 우주인에게.
정말 너희들은 멋지게 일을 했다. 말이 시원스레 통하지 않아서 많이 불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일은 순조롭게 되었으며 이제 무사히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 과연 달을 따오는 사람은 누구일까? 석일까? 철일까? 정말 기다려 진다. 녹음 테이프와 사진을 잘 보관하여라. 그것들은 앞으로 미국과의 외교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아폴로 12호는 태명양 사모어 동남쪽에 착수하게 되는데 너희들은 호네트호에 오르지 말고 우리나라 배에 오르게 될 것이다. 그럼 만날 때까지 편히 쉬어라.
하얀수염 할아버지로부터.〉
철이와 석이는 편지를 다 읽어보더니 흐뭇한 마음에서 편안한 자세로 들어갔다. 아폴로 12호는 쉬지 않고 지구로 날아오고 있다.
한편 서울에서는 그들이 돌아오기까지는 보도관제가 철저히 되었기 때문에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사람 없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학교대로 집에서는 집대로 난리가 났다.
그러나 하얀수염 할아버지를 비롯해서 파학연구소와 정부 고위층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일단 돌아온 후에는 대대적인 환영잔치롤 벌일 작정에다.
각 신문들은 아폴로 12호가 회수되는 날 우리 정부에서 중대발표가 있겠다고 예고했다. 그러자 온 국민들은 이 중대발표에 대해여 관심을 쏟지 않을 수가 없었다.
드디어 아폴로 12호가 돌아오는 날이다. 사모어 남쪽에 우리 정부에서 마련한 해군 회수함이 미국의 호네트호와 나란히 기다리고 있었다. 온 세계의 신문기자들, 방송기자들, 모든 보도진들이 들끓고 온통 난리가 났다.
예정대로 아폴로 12호는 태명양 물위에 내려앉았다. 조금 있다 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은 꼬마우주인이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은 놀라서 혼이 달아났다. 또다시 꼬마가 나온다. 한국 해군함은 빨리 쫓아가서 두 꼬마우주인을 올려서 태웠다. 두 꼬마는 물론 석이와 철이었다. 석이와 철이는 손을 높이 들어서 코리아 만세를 불렀다. 석이와 철이가 나온 뒤에는 콘래드, 고든, 빈 이렇게 모두 밖으로 나왔다. 그들은 물론 미국함 호네트호에 실렸다.
몰려들었던 세계의 보도진들은 미국함보다도 한국에 더욱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철이와 석이는 아무도 만날 수가 없었다. 그곳에선 한국 우주과학 연구소에서 나간 백 박사가 모두 맡아서 척척 대답해 보냈다.
석이와 철이가 서울에 돌아오기까지는 그로부터 약 일 주일 후이다. 그동안 신체검사도 다시 하고 휴식도 충분히 취했다. 서울의 신문들은 〈달을 따오는 꼬마우주인〉이란 제목으로 대문짝만한 활자를 써서 톱 뉴스로 며칠을 두고 떠들었다. 온 세계에서 축하전보가 날아오고 편지도 수백 통이 날아왔다.
미국을 비롯해서 몇몇 나라들은 두 꼬마우주인과 하얀수염 할아버지를 초청한다는 초청장도 날아왔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아폴로 11호 때 달 암석연구를 위하여 한국의 과학자들에게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던 것을 크게 뉘우치고, 11호 때의 암석과 12호 때의 암석을 같이 보내주겠다고 연락이 왔다.
우리 정부에서는 석이와 철이가 가지고 온 녹음 테이프, 사진, 달 암석 등을 잘 간수할 수 있도록 하얀수염 할아버지를 도와주기로 했다. 그리고 대통령께서는 석이와 철이, 하얀수염 할아버지를 초청하여 저녁식사를 나누고, 나라에서주는 특별히 공이 많은 훈장을 주었다. 석이는 대통령께서 직접 훈장을 목에 걸어주실 때 너무도 감격해서 눈물이 나을 뻔했다. 그리고 정부에서는 올드린 씨에게 감사장을 보내기로 했다.
이제는 그 바쁜 스케줄도 어지간히 지났다. 석이와 철이는 오랜만에 하얀수염
할아버지와 함께 공원에 모였다.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주고받느라고 시간가는 줄도 몰라 벌써 날이 어두워졌다.
“할아버지, 달 따오기는 누가 이겼어요?”
“글쎄다, 누가 이긴 것일까?”
“제가 이긴 거죠?”
“아녀요, 제가 이긴 거예요.”
둘이는 서로 이겼다고 야단이다.
“아무도 이겼다고 할 수 없구나. 달이 저렇게 그대로 떠 있는걸------”
할아버지는 공중에 여전히 높이 떠 있는 달을 가리키면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석이가 호주머니에서 밤알만한 월석을 내보이며,
“여기 달을 따왔어요. 지난번에 가지고 온 달 암석을 조급 남겨둔 거예요.”
하고 말했다. 그러니까 철이도,
“저도 여기 있어요. 달요, 달---”
하고 석이와 똑같이 월석을 내민다.
할아버지는 양손에 월석을 받아들고,
“허허험, 그놈들 참 영리하단 말이야. 둘이 다 이겼다. 다 이겼어.”
하면서 두 꼬마우주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신다.
달빛이 더욱 환하게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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