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5: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 이러한 격언 구절은 막 4:25에서도 사용되고 13:12에서도 비슷하게 사용된다. 특히 마가복음에서는 달란트 비유와는 전허 다른 내용에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이 구절은 독립적으로 전해져 사용되는 격언구임을 알 수 있다.
실로 예수께서는 비유를 마무리짓는 결론적인 말을 대중이 익힌 사용하고 있는 격언구로 맺으신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기 일에 성실하게 충성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종말적 심판의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명료하게 보여주고 계신 것이다. 정녕 영적 세계에서도 물질적 세계에서처럼 빈익빈 부익부현상이 분명 나타날 것이다
[마 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이 무익한 종 - 이 말은 '유익하다라는 단어에 부정 접두어 '아'를 붙여 '유용하지 않은', '쓸모없는'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실로 능동적으로는 선한 일에 매진(매진)하지 않고, 수동적으로는 주인이 맡긴 일에 소홀히 하는 종은 그 주인에게 아무 쓸모없는 자인 것이다
이처럼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 외에도 소극적으로 하나님을 위해 아무 일을 하지 않는 것은 곧 하나님께 페역한 죄가 된다. 바깥 어두운 데로 - 이 구절은 앞의 21절과 23절에서 착한 종에게 했던 '주인의 즐거옴에 참예할지어다'라는 말과 반대적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 '바깥 어두운 데'는 주인과 영영한 관계 단절을 암시하는 동시에 어둠의 세력인 사단이 거할 최종적 심판 장소로 익혀 알려진 표현이다.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 이와 같은 구절은 종말에 관한 비유를 제시한 24:51외에 8:12 ; 13:42, 50 ; 22:13 등에도 자주 사용되는 것으로서 끔찍하고도 영원한 징벌을 나타내는 상투적 문구임을 알 수 있다.
[마 25: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인자 - 이 말을 직역하면 사람의 아들 된다. 예수께서는 본문에서 명백히 자신을'인자'와 동일시하지는 않았지만 전체 문맥상 종말의 때에 심판주로 구속주로 임하시기로 약속된 당신 자신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하셨다.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 - 심판의 주께서 최후의 순간 재림하실 때의 모습을 장엄하고 화려하게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특별히 '영광으로'란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신적 광휘가 충만한 예수가 오시는 모습을 바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붙여진 형용구이다. 그리고 '천사들과 함께' 온다는 사실은 예수 재림의 장면이 전우주적인 성격을 지닌 장엄한 것임을 암시한다
한편 본문의 말씀은 주께서 수난당하시기 전 단지 3일전에 하신 말씀이라는 사실에서 우리는 이 예언적 메시지가 지니는 신적 탁월성과 차고 넘치는 기대감을 엿볼 수 있다. 이 표현은 예수께서 심판자로서 뿐 아니라 왕으로서오실 것을 확실히 제시하고 있다. 특히 그의 '보좌'는 하나님의 모든 권세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행사될 것을 가리킨다
[마 25: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모든 민족을(판타 타 에드네) - 똑같은 구절이 24:14과 28:19에도 나온다. 여기 '모든 민족'은 유대 민족을 포함하여 이방 세계의 모든 민족까지 가리키는것으로서(행 17:26) 보편적 심판의 의미를 주고있다. 따라서 종말적 심판이 보편적 심판이라는 것은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모두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맡이다.
실로 천국 복음은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전파되었기 때문에 모든 민족은 왕 앞에 서야 한다. 모으고 - 수동태로서 번역하면 '모여지고'가 된다. 이는 모든 인류를 주 앞으로 모으는 추수꾼 천사의 사역이 역력히 암시된 표현이다.
목자가 양과염소를 분볕하는 것같이 - 종말적 심판의 때에, 열처녀 비유나 달란트 비유처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과 그례지 못한 사람을 구분한다는 것을 비유의 서두에서 밝히고 있다. 여기서 양과 염소는 낮에 풀을 뜯을 때는 무리에 구분없이 섞여 지낸다. 그러나 특히 일교차가 심한 기후인 팔레스틴에서는 잠을 잘 때에 목자들이 양과 염소를 구별하였다.
왜냐하면 양들은 추위에 강하지만 염소는 추위에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염소는 따뜻한 곳에서 잠을 자도록 하였다. 또 낮에도 서로 구분되기는 하는데 왜냐하면 팔래스틴 염소들은 대부분 검은 계통인데 반해 양들은 흰색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짐승인지라 저회들끼리 무리를 이룬다. 여기서는 목자가 직접 무리를 구별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묘사는, 앞에서 '모든 민족'을 심판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으로 보아 양과 염소를 심판의 대상이 되는 모든 민족으로 보아야 한다.
[마 25: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양은 그 오른편에,염소는 왼편에 - 양의 무리는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양분함로써 심판의 명료성을 보여 주고 있다. 즉 제 3의 자리가 없다는 말이다. 정녕 최후 심판의 순간에는 옳거나 틀린 것만 있을 뿐이다.
또 여기서는 오른편에는 양을 세우고 복받은 자로 칭찬하고 왼편에 선 염소를 저주받은 자로 경멸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오른편'을 의로운 자리로 표현하고 '왼편'을 저주받은 자리, 곧 불의한 자리로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묘사는 구약시대 떠부터 '오른편'을 위엄과 영광과 존귀와 생명의 자리로 이해해 온 사실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왼편'은 저주와 사망, 미련함, 힘의 상실로서 이해되어 왔다. 따라서 심판의 때에 오른편에 선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한다는 말이 되고 왼편에 선다는 것은 영영한 멸망에 떨어지게 됨을 나타낸다.
한편 본문의 이같은 구분에 대해 몇 가지로 나누어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1) 염소보다 더 가치있고 값비싼 짐승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2) 양이 흰색인 반면 대부분 검은색으로된 염소를 대비시켜 선과 악, 생명과 멸망을 상정적으로 대비하고자 했을 것이다
.(3) 하나님을 목자로 보고 그의 벡성들을 양떼로 보는 당시의 유목민적 사고를 빌어왔기 때문인 것이다. (3) 염소는 풀밭을 못쓰게 만들고 나무를 상하게 하여 초목을 죽게 만드는 경우가 많아 염소를 왼편에 세워 불의한 점숭으로 구분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