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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신앙과 본원(本願) 사상 5
"모든 중생들이 불성을 깨닫기 전에는, 나는 결코 진정한 깨달음을 갖지 않겠다"
정희수 / 위스콘신대 불교학 박사과정, 본지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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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원사상은 모든 대승경전이 공유하고 있는 자기부정과 무차별의 보살적 이상을 표현하는 중심적 주제이다.
법장(法藏, Dhamakara) 의 신화를 중심으로 하여, 아미타불이 된 대승보살의 본보기는 보편적 구원역사를 확보해 온 불교의 실천적인 모형이다. 본원(本願, the primal vow)은 달마 카라 보살이 불성을 획득하기 이전에 모든 중생들을 구원하겠다고 한 깊은 기원을 일컫는다. 스즈키 다이세츠는 그의 영역본 「敎行信證, 주1) 에서 이 본원을 궁극적인 기도라고 번역하여, 중생구원을 위한 넓고 깊은 기도라고 설명하고 있다.
1) 고고신쇼(敎行信證)는 일본의 정토진종의 창건자인 신란의 저작으로, 정토신앙의 교리적 내용을 진술하고 있다.
본원은 산스크릿어로 모든 것들의 이전에 존재한 기도"라는 의미의purva pranidhana 이다. 이 기도는 모든 중생들에게 구원의 빛을 연 계기가 되었으며, 동시에 모든 중생들이 보살로서 그 기도를 실천하고 수행할 수 있는 이중적 기능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선재한 구원의 기도로서 암흑의 무명을 깨고 인간 해방의 힘을 자비로서 표현하였으며, 동시에 깨달은 모든 중생이 보살로서 자신을 현현하여 무제악적으로 다른 중생들의 구원을 성취하는데 도구가 되는 적극적인 염원이 이 본원사상에는 깃들여 있는 것이다.
"먼저 선재한 기도"는 궁극적인 상징으로서 모든 인간에게 스스로의 무지를 깨치고 깨달음의 해방을 경험하도록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II.
승개(僧鎧, Samghavarman) 의 번역본 무량수경에는 이 본원이 48개의 내용으로 기술되고 있으나, 번역본과 출전에 따라서 그 본원의 숫자가 다양하게 다르다. 보디류치(菩提流支, Bodhiruci) 의 무량수여래회(無量壽如來會)도 48개의 본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각기 출전에 따라서 24원, 36원의 한역본이 있으며, 산스크릿 본문은 47개의 원을 가지고 있으며 티벳 역본에는49개의 본원이 소개되고 있다. 그 본원의 숫자는 다양하며, 그 내용도 각기 다른 것을 미루어 볼때 본문비평(本文批評)을 통한 문헌의 역사를 고찰해 볼 수도 있다. 이런 연구결과로 24개의 본원을 가진 본문이 가장 오래된 원문이며36이나 48개의 원으로 구성된 본문은 후기에 편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개 현존하는 무량수경 역본의48개의 본원은 비교적 후기의 편집적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본원을 그룹별로 구분하여 내용적 특징을 기술하면 세 가지의 구분이 가능하다: 1불성에 관한 본원들,② 불토에 대한 본원들, 그리고 ③ 정토에 있는 존재들에 관한 본원들로서, 이미 정토에 왕생한 사람들과 미래에 왕생하기를 원하는 존재들에 대한 본원으로 대변된다고 볼 수 있다. 48개의 본원 중에서도, 정토 불교사 속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인 열 여덟번째 원을 취급하여 승개의 번역본은 이렇게 기술한다.
"내가 불성을 얻을 때에, 만약 모든 중생들이 시방세계를 통하여, 지극한 마음을 성취하고, 기쁜 신앙과 나의 땅에 왕생하기를 원하여, 나의 이름을 열번까지 부르면서 그곳에 태어나지 못한다면 나는 결코 최상의 깨달음을 얻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지극한 마음을 지심(至心) 으로, 기쁜 신앙을 신요(信樂)로,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마음을 욕생(欲生)으로 보며 이를 믿음안에서 성취하게 되는 원심(願心)의 내용으로 설명한다.
"나의 이름을 열번까지 부르면"이라는 내용에서 소위 아미타불의 이름을 부르는 명호(名號)가 정토신앙의 실천에 한가지 핵심이 되기에 이른다. 이는 정토신앙의 핵심이 되는 염불신앙(念佛信仰)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종교적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들 중의 하나로서의 본원(本願)은 초월적 차원의 상징이다. 무엇보다도 맨 먼저 선행한 기도인 본원은 영적인 창조성(Spiritual Creativity)의 표현이라고 보겠다. 본원의 구조는 정토신앙의 포괄적이고 절대적인 구원의 이상을 드러내는 것으로 중요한 입지를 차지한다.
보살(Bodhisatva)은 다른 이웃들이 자기와 함께 깨달음을 획득하기 전에는 기필코 깨달음을 받아 들이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이 본원은 여기서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공동적 운명을 대변하여 철두철미 함께" (togethemes)라는 공동체성을 강조한다.
가네코 다이에이는 "정토불교에서 구원의 의미"라는 논고에서 주2) 「대승불교는 특별히 "이웃들과 함 께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기를 추구하는" 원리에 관한 동질적인 선언에 속한다. 2) Kaneko Daiei, "The Meaning of Salvation in Pure Land Buddhism", The Eastern Buddhist, I - 1 (Sept, 1965) pp. 50 -51
유마경에서 우리는 읽는다. '나, 유마는 나의 이웃들이 고통당하기 때문에 아픔 가운데 있다:」 이 보살의 선언은 어떤 한계나 국경없이 모두에게 함께 경험되어져야 할 인간해방의 기치를 들고 있는 것이다. 서구의 유신론적 종교들이 하느님의 심판과 구원받는이 그리고 그 범주에서 제외 되는이들 등의 구분과 한계에 대하여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면, 이와는 달리 대승보살의 구체적 자비실천은 결코 어떠한 경계와 범주를 설정하거나 전제하지 않는 보편적 구원의 성취를 선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본원사상은 구원의 공동체성을 강조하고 있다. 모든 중생들이 함께 통전적으로 받아드려야 하는 공동체적 구원의 이상을 강조하므로서 정토신앙은 구원의 통전성(統全性, Wholeness) 위에 서 있음을 중시하고 있다고 보겠다. 깨달음과 해방의 논리에서 이 보살의 이상은 하나됨의 현실화된 초월을 강조하므로서 무차별지(無差別智)의 세계, 탈이분적 세계를 지양해 보이는 상징력이 있는 것이다.
본원사상은 무엇보다도 의지(意志)의 우선성을 제안한다고 보겠다. 달마카라의 의지적 결정을 통한 소원이 보살의 이상으로 변형의 힘을 가지고 인류의 구원사에 작용한 예를 볼때, 우리들의 결정과 자기 위임을 떠난 어떠한 우리의 꿈과 희망은 현실화 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수긍하게 된다. 반면에 자기 구원의 횡재를 박차는 보살의 선언은 철저하게 자기위임이 주어지는 한 이상과 꿈은 실현 가능한 것이라는 명제를 보여주고 있다. 이 본원은 모든 실재의 전이해가 되어 모든 것의 의미와 근원적 존재의 의미를 구조화한다. 원심(願心)은 이러한 내적인 대전제를 성취하는 운반체이며 모든 이웃을 구제하기 위한 기도와 소원을 창출하는 원력(願力)을 심화해 가는 주체인 것이다.
이 보살의 본원이 추상적인 것으로 우리들에게 보일지라도 내적인 과정인 원심(願心)은 지극한 마음으로, 기쁜 믿음을 통하여 정토에 왕생하려는 기도를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아미타는 중생들에 반하여 서 있는 전적인 초월적 타자가 아니다. 아미타는 외적으로 중생들을 초월한다는 의미에서 단순히 초월적이지 않다. 아미타불은 모든 중생들 속에 내재하며, 달마카라라고 불리웠던 보살의 형태를 입기도 한다. 달마카라 보살이 구원을 성취했을때에, 아미타불은 동시에 내재적이며 우리 모든 중새들에게 초월적인 분이 되셨다. 아미타불에 의한 구원은 전적인 타자에 의한 타율적인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달 마카라의 본원의 깊이를 사람이 깨 닫게 되는 순간에 구원은 성취되는 것이다. 본원의 깊이를 깨닫는 것은 근본적으로 스스로 자존하는 것들을 아는 깨달음의 지혜를 얻는 것을 의미한다" 주3) 주3) Soga Ryojin, "Dharmakara Bodhisattva", The Easter Buddhist, 1-1 (Sept. 1965), pp.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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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소가료진의 유식학적인 견해를 통한 법장(法藏, Dharakara) 보살에 대한 이해의 한 국면이다. 본원의 깊이를 깨닫는 것을 구원 성취의 결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의 일치, 내적인 불성과 외적인 본원의 결합이 즉시적인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아미타불의 원력(願力)의 힘을 상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정토신앙에서 본원은 주관과 객관의 일치, 이웃과 이웃, 중생과 중생들의 일치(Unity)의 입장에서 풀어진 깨달음과 인간해방을 가르 치고 있다고 보인다. 불타와 중생들의 관계, 보살과 중생들의 관계는 구원의 가능성과 성취에서 연속적인 연계와 일치를 보여주고 있음을 이 본원사상은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1992년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