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디모데전서 6장 11-12절. 이런 사람이 되게 하소서13-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말이 성경 신구약을 통털어서 73번 나옵니다. 그 중 구약에만 71번 나오고 신약에는 단 두 번 밖애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도 디모데전서에 한 번 나오고, 디모데후서에 한 번 나옵니다. 그러면 구약에 71번 나오는 데 그 가운데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칭호를 가장 많이 들은 사람이 누구일까요?
힌트를 준바면 1번은 모세, 2번은 사무엘, 3번은 엘리야, 4번은 엘리사입니다. 이들 가운데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칭호를 가장 많이 들은 사람이 누구일까요? 답은 엘리사입니다. 71번의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칭호 가운데 엘리사에게 불리워진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칭호가 무려 26번이나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고 사람들은 그에게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칭호는 자신이 자신에게 쓰는 말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그를 보고 쓴 말입니다. 그러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엘리사를 보면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엘리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리우도록 만들었을까요? 오늘은 엘리사의 행적과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서 여러분들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릴 수 있을까?’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엘리사는 어느 정도 부잣집에 사는 사람의 아들이었습니다. 엘리야가 엘리사를 찾아갔을 때 무려 소 열 두 겨리로써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열 두 겨리는 무려 스물 네 마리입니다. 얼마나 밭이 크면 열 두 겨리로 밭을 갈고 있었을까요? 그런 그가 엘리사를 통해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자 소들을 다 버려두고 엘리야에게 가서 인사를 하고 “집에 가서 작별인사를 드리고 오겠습니다”하고는 집으로 돌아가 한 겨리의 소를 잡습니다. 소 두 마리를 잡아 잔치를 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동네 사람들에게 먹이고 그리고는 엘리야 선지자를 따라나섰습니다. 이는 자기의 결심이 얼마나 확고한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고릴 f 먹으면서 엘리사의 앞날을 축복해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따라나서서 한 일이라고는 엘리야의 발을 씻는 종노릇을 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우실 때까지 계속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오늘날의 대부분의 젊은이들 같았으면 “선지자가 될거리고 부르더니 이게 뭐야! 완전히 종으로 부려먹고 있잖아!”하고 말하면서, 그리고 인생의 회의를 느끼면서 자기 집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오늘날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위한 인내가 없습니다. 그리고 낮은 자리에 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낮은 자리를 선택하셨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는 있지만 자신 역시 그 낮은 자리에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대단한 줄로 알고 살아갑니다. 궂은 일은 서로 안하려고 합니다. 궂은 일을 시키면 “그걸 왜 내가 해야해요?”하면서 행하기를 거부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늘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종으로서 섬기면서 사셨습니다. 그러면서 제대로 된 보수 한 번 받으신 적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그 당시의 세상에서 도저히 고칠 수 없는 병을 고치셨어도 예수님은 그들에게 보수를 요구하신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오늘날 그런 능력이 일어나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교묘한 방법으로 헌금을 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를 위해 활용합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청렴결백한 것처럼 보이고자 애를 씁니다. 하나님과 사람들을 속이는 것입니다.
그당시 치료받고 예수님께 감사의 예물을 제대로 드린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개의지 않으셨습니다. 진정한 보상은 이 땅이 아니라 하늘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종의 자세입니다. 이런 예수님에 대하여 빌립보서 2장 6-8절을 보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하면서 예수님이 얼마나 낮은데까지 내려가셨는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낮은 자리까지 내려가신 에수님을 죽음에서 살리시고 가장 높은 자리에 앉히셨습니다. 그 뒤인 빌립보서 2장 9-11절까지를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하면서 모든 영적 세계와 육적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이름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게 하시면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여러분 가장 높은 자리를 얻을 것을 아시는 분이 이 세상의 그 몇푼의 돈에 마음을 빼앗기겠습니까? 그런데도 오늘날의 교인들이 천국에 들어갈 것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작은 돈에 마음이 움직이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는 진정으로 천국을 아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믿음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마음을 갖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물질이 있어도 감사, 없어도 감사합니다. 있으면 있는대로 쓰고 없으면 없는대로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삽니다.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의 삶을 책임지시는 공급자요, 능력있는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갈 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아주 높은 자리로 끌어 올리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셨던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모든 세상의 주가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자리를 순종한 아들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아는 그리스도인,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 땅에서 부당한 취급을 받아도, 또 낮춤과 비웃음을 당해도, 오늘 당장 먹고 마실 것이 없어도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들을 행합니다. 오직 하나님 만을 바라보면서 모든 것을 인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역시 그런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시길 축복합니다. 여러분도 엘리사처럼 오랜 인내와 겸손함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종노릇을 하던 엘리사를 이스라엘 나라 전체를 돌보며 섬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엘라사로 하여금 엘리야의 뒤를 이어 아스라멜 민족에게 생명을 불어 놓는 선지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엘리사 선지자에게는 항상 하나님의 영감이 함께 하였습니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 하였습니다. 그리고 함께 살았습니다. 그의 기도 생활은 모든 날을 하나님을 구하며 함께 살았지만 때로는 갈멜산에 가서 정기적으로 기도하고 오기도하였습니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께 매여 있었지만 어떤 특정한 형식이나 방식에 매여 있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경건하게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구했을 뿐입니다.
그의 영혼은 깨끗하고 맑았습니다. 어쩌면 오늘 본문인 디모데전서 6장 11-12절은 마치 엘리사 선지자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똑같은 모습을 보게 합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이것들을 피하라”고 하셨는데 이것들은 앞의 1-10절까지 전했던 말씀 내용과 연관이 있습니다. 이 부분을 보면 교만과 다툼과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만한 마음과 다툼과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피하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버리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깨끅한 심령으로 주님을 섬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깨끗한 심령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엘리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어떻게 쓰임을 받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그는 정말로 많은 일들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행했습니다. 그 가운데 아람과의 전쟁에서도 역시 이스라엘 나라의 빛이었으며, 길잡이였고, 구원이었습니다.
엘리사는 나라를 위해 많은 기도를 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엘리사에게 나라에 닥칠 어려움에 대하여 미리 말씀해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열왕기하 6장 8-9절을 보면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알려주는 전쟁에 대한 정보가 나옵니다. “그 때에 아람 왕이 이스라엘과 더불어 싸우며 그의 신복들과 의논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아무데 아무데 진을 치리라 하였더니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은 삼가 아무 곳으로 지나가지 마소서 아람 사람이 그 곳으로 나오나이다 하는지라”
아람왕은 자기 신복들을 불러 놓고 작전을 짭니다. “우리가 아무데 아무데 진을 치고 이스라엘을 공격하자” 그런데 공격을 해보면 어떻게 알았는지 이스라엘 왕과 그 군사들이 아람 군대를 기다렸다고 기습 공격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한 두 번이지 이스라엘에 쳐들어갈 때마다 그런 일이 생겼습나다.
이스라앨을 공격할 때마다 이미 올 줄을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이스라엘로부터 기습공격을 당하자 아람왕은 마음에 번민이 생겼습니다. 이렇게도 생각해보고 저렇게도 생각해보다가 아람왕은 “우리 신하들 가운데 첩자가 있는 것이 틀림없어 그렇지 않고야 어떻게 적들이 미리 알고 방비를 하고 있겠어”하고는 모든 신하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는 “너희 가운데 이스라엘 첩자가 있으면 솔직하게 말하라”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신하들이 말합니다. “왕이시여 우리 가운데 배신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가운데 선지자가 있어서 왕이 침실에 들어가셔서 생각하는 것까지 다 압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왕은 “그러면 선지자만 잡으면 끝나겠구나”하고는 “당장 사람을 보내서 엘리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고 와라”하고 명령했습니다. 왕의 말을 들은 첩자들은 가서 엘리사가 어디에 있는 지를 찾아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도단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를 잡기 위해 군대를 도단으로 파병했습니다. 목표는 엘리사를 사로잡거나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가서 밤에 몰래 엘리사가 있는 집을 군사와 말과 병거로 애워쌓습니다. 엘리사 한 사람을 잡기 위해 엄청난 군사력을 동원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엘리사는 자기의 신변보호를 왕에게 요청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람왕이 군사를 보내 자기를 잡아 죽이려고 하는데도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기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나 그것을 구하는 기도를 자기를 보호하는데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아침에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 하나가 일찍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는 얼굴이 파랗게 사색이 되어서 방안으로 다시 뛰어들어가 엘리사에게 말했습니다.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그러자 엘리사는 전혀 놀라지도 않은 평안한 모습으로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그리고 나서 하나님께 그 사환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그러자 하나님은 그 사환의 눈을 여셨습니다. 그러자 그 사환은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하나님은 엘리사의 기도로 인해 청년의 눈까지도 여셔서 영적인 환상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육신의 눈으로 보던 아람 군대보다 더 무시무시하고 많은 군대가 엘리사를 호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사 한 사람을 지키시기 위하여 하늘의 수많은 천군천사를 동원시키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그만큼 크고 귀하게 생각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든지 지켜주시며 보호하십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에게 있어 귀한 존재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입니다.
엘리사는 한 두 사람이 아닌 그 당시의 왕이나 왕의 신하나 또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엘리사가 사람들이 불러 주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귀하게 여겼거나 사람들이 자신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러주기를 원했던 것은 아닙니다. 엘리사는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가 중요시 여겼던 것은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시는 것이었으며 자신 또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살기를 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영적인 삶에 대하여 디모데전서 6장 11-12절을 통하여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하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고자 한다면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라야 합니다. 또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영생을 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를 위해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평범한 사람이 이렇게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비범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17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결코 가볍게 취급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이 하나님을 알려줌으로 인해 경외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배우게 하라고 누누이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31장 12절을 보면 “곧 백성의 남녀와 어린이와 네 성읍 안에 거류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에게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
하나님은 남녀노소는 물론 타국인들에게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침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을 경와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백성들에게 가르치라고 하신 이유는 그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감동하심 가운데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말씀은 교훈을 주고 책망하며 바르게 하며 의로 교육하게 합니다. 이로인하여 하나님의 사람은 온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선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를 세상의 빛으로 보내시며, 또한 소금으로 쓰셔서 영광을 드러내시기에 합당한 사람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엘리사는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혔던 엘리사나 여러분들 모두가 모든 불의를 버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영생을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신의 사람인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렇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성경에 엘리사 외에도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세, 사무엘, 엘리야, 수많은 이름모를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살았습니다. 그들 모두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따라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드러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있었고 또한 하나님이 그들과 언제나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 역시 이 시대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고 싶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에 하나님을 알게 하며 하나님의 뜻을 알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면서 살고 싶지 않으십니까? 만일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세상에 드러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고자 한다면 언제나 하나님 앞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질 때까지 하나님 앞에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펼쳐 놓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시길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실 것을 믿고 기대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인내로써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찾아오실 때가 옵니다. 때로는 그 시간이 오래 걸리고 지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지?’ 하는 의문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사탄이 여러분의 영혼에 귀에다 입을 대고 “그렇게 기다려봐야 아무 소용도 없어.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낫지 시간 낭비야”라고 말할지라도 모릅니다. 또는 다른 수많은 해야할 일들이 하나님을 기다리고 있는 그 시간에 생각날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간 이전에 할 일을 다 해놓고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구하며 기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그 어떤 일들도 하나님의 임재하심 가운데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것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말씀을 듣게 될 때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친밀한 사랑이 얼마나 깊은 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확신으로 세상에 나가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확실히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는 성령께서 표적과 기사를 통해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구하십시오, 하나님을 기다리십시오. 하나님이 명하시는 것을 듣고 순종할 준비를 갖추고 하나님을 기다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임하셔서 자신의 영광을 보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을 세상에 전하게 하실 것입니다. 지금은 엘리사처럼 많은 경건하고 헌신된 하나님의 사람들이 필요할 때입니다. 이 복이 우리 제석교회 여러분들 모두에게 임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되며 선을 행하며 사시게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