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범어사 끝물단풍
금정산은 梁山 다방 쪽에서 시작하여 장군봉을 거쳐 고당봉으로 연결된다. 한창 생이 푸르렀던 시기에 직장 산악회에서 이 코스를 탄 적이 있다. 산을 오르는 코스를 재다가 해가 떨어지는 시각을 감안하여 가장 수월한 범어사로 향했다. 이맘때쯤 끝물단풍을 만날 수 있으리란 기대감 때문이다. 평일이라 절을 찾은 탐방객은 많지 않았다. 부산에 중국 관광객이 많은 것은 범어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중국인 청춘남녀 대여섯이 돌담 계단을 무대로 짧은 동영상을 촬영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오호, 원더풀! 뷰티풀"을 연호하며 엄지척을 보이자 카메라 삼각대에 붙어섰던 청년이 고맙다며 목례로 화답했다. 출연한 젊은 여성 둘은 탤런트로 보였다. 청년에게 내 사진도 한 장 부탁했더니 정성껏 찍어주었다.
절까진 차로 올랐겠지만 휠체어에 아버지를 태우고 금강계단 마당으로 경사진 언덕을 오르는 아들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휠체어 아버진 다리가 불편한 게 아니라 치매와 같은 정신질환으로 보였다. 캐나다에서 온 노부부와 딸은 모두 운동화를 신고서 종루 앞 돌팍에 걸터앉아 쉬고 있었다. 남자는 관광지도를 펼쳐서 부인과 다음 행선지를 찾는 모양인데 눈이 밝은 젊은 딸은 스마트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고목 은행나무 두 그루 중 수령이 더 오래된 주차장 옆 우람한 나무는 잎이 서리를 맞은 것처럼 말라버려 탐방객은 일주문 쪽 은행나무로 몰려 사진을 찍고 있었다.
중국인 할매들 칠팔 명은 의외로 사진을 찍으면서도 조용했다. 나무 밑에 바짝 붙어선 그들을 내가 들어 카메라 앞으로 칠팔 미터 불러내어 폰카메라 화상비율도 1:1을 16:9로 바꾸어 파란 하늘 풍광까지 넣어 몇 컷 찍어주었다. 중국인 청년이 내 사진을 찍어준 걸 난 할매들을 찍으므로 갚았다. 대웅전 앞 계단을 국화로 장식하여 불자들과 탐방객들을 맞고 있었다. 현직 때 금정구청 민방위 강사로 범어사를 몇 년 오갔는데 지장전 옆 민방위 강의실로 사용하던 건물엔 '서지전'이란 팻말이 나붙었고 그곳에서 어린이 법회를 한다는 안내문도 보였다. 고당봉 오르기를 포기하고 경내를 몇 번 돌면서 이삭줍기식으로 끝물단풍을 카메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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