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정책과 햇볕정책에 대한 비판[편집]
일각에서는 햇볕정책과 같은 시기에 이루어진 대북 원조는 1999년 제1연평해전, 2002년 제2연평해전 발발로 인해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북측에 5억달러가 송금된 대북 송금 사건에 대해서도 현대의 대북 7대 사업권 구입을 위한 송금액 중 일부가 정상 회담의 대가로 북측에 현금이 건네진 것으로 밝혀져 햇볕정책에 투명성이 부족했다는 주장이 있다.[1]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막바지에 다다랐던 6월 29일 발발한 제2연평해전에 대한 처우도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제2연평해전이 발발했음에도 국가안전보장회의를 4시간 30분여만에 여는 등의 늦장 대응을 했다.[2] 발발 다음날인 30일엔 월드컵 결승전이 열리는 일본 사이타마로 출국하여 결승전 경기를 관람했지만 부상당한 해군들이 입원해 있던 국군수도병원은 박지원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만을 보냈을뿐 직접 방문하지는 않았다. 교전 이틀 후 국군수도병원에서 합동영결식이 열렸을때조차 김대중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으며 국무총리, 국방부 장관, 합참의장 등 내각과 군의 핵심 인사들마저 참석하지 않았다. 이러한 까닭에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제2연평해전을 ‘잊혀진 전쟁’으로 부르며 당시 김대중 정권의 처우에 분노하고 있다. 이러한 김대중 정부의 행보에 대해선 당시 남북관계의 원만한 유지를 위해서 였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3]
사실 영결식에 고위 인사가 참석하지 않은 까닭은 다음과 같다. 당시 국방부 측의 해명과 총리실의 해명을 들여다보면 해군참모총장보다 상위의 직급이 참여하는 것은 관례상으로도, 의전상으로도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총리 쪽은 출국한 대통령의 대리로 업무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참석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뿐만 아니라, 국방부의 해명자료에 나타난대로 해군참모총장의 상급자인 국방장관은 사전조문을 갔으며, 총리를 포함한 다른 상급자들 또한 관례대로 사전조문을 했다.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사전 조문으로 박지원 대통령비서실장을 대리로 보냈다. 7월 2일 돌아온후 국군수도병원에있는 부상자들을 방문했고, 김 전대통령은 조문 행사에는 위와 같은 이유로(이전의 교전으로 인한 전사자 발생시에도 각 군 참모총장이 영결식을 주도하였고, 대통령이 참석한 경우는 없었다.) 직접 참가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승전 관람의 논쟁에서는, 당시 정부 내부 회의에선 이미 승리한 전투이고 추가 도발 징후가 없으며 폐막식 참가를 안하는 경우 외국에 불안감을 주고 대외 신임도가 하락할 터인데 이는 오히려 북한의 농간에 휘말리는 것이라는 보고가 나왔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 의견에 따랐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이를 두고 의도가 좋았든 말든 안보관을 흔들어 놓았을 뿐 득본 것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는 바, 이는 가치관에 따라 계속 대립할 수 밖에 없는 문제다. 다만 그동안 있었던 여러 국지 도발의 경우 여러 정권에서 알게 모르게 지나간 경우가 많으므로 김대중 정부에만 유독 안보관이 어쩌고 하는 것엔 좀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저들 영혼에 신의 가호가 있으라
능수화 가슴에 보석물이 가득이로고
수국꽃 가슴엔 다이아몬드가 소복소복이로고
팔손이 너른 잎에도 눈물인가?????
거미줄에도 빗방울이 소복소복이로고
무
무궁화야 무궁화야 영원히 무궁화로다.
나리꽃이 후줄근하구나!!!!!
수련이 애타게 임을 기다리는고야
오늘 저여인 모셨으니 횡재로다. 나를 가슴에 꿈꾸고 있겠지~~~~~~
신발형제는 어쩌면 저렇게도 앙증맞을까??????
뉘를 위해 저리도 간절할까????? 고맙습니다요.
첫댓글 연평굴욕 상세하게 밝힌 한뜻 잘 읽었다 젊은 청춘들이 산화한 그 분노 잊지말자
우리는 국가의 안위를 다시 생각하는 좋은 교훈을 얻었다.힘이 있어야 한다.바른 지도자가 필요한 현실이다.좋은 글 잘 보았다.
이젠 글에다 사진에다 두 가지 다 했구나. 좋은 글 좋은 사진 올리느라 수고했다. 한뜻!
아이고 참 좋다. 그 여인 사진 찍는 것도 모르고 자던가? 업고 가도 자겠다. 글, 사진 다 좋다.
한뜻 수고했다 사진 하나하나에 숨은뜻이 있구나 고맙다 또 다음주에 만나자 건강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