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우리가 젊을 때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간다'라는 광고카피가 있었다.
전자제품 특히 TV등을 고를 때 어느 회사제품을 고르느냐에 따라 성능이 오래 동안 좌우한다는 의미에서 지은듯 하다.
오늘 아침 한 친구가 운동으로 척추협착증이 나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병원으로 가보기 위해 9시반에 집을 나섰다.
벡스코역 계단을 내려서니 지하철이 달려오는 소리가 났다. 옛날 같았으면 뛰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다리가 불편한 지금은 안되겠다 싶어 평상시 속도로 개찰구를 들어섰다. 아직 열차에서 나오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같은 시간에 젊은 처녀가 나와 같이 개찰구를 통과하더니 반대편 계단으로 뛰어 내려가는 게 보였다. 그제서야 나도 잘하면 탈 수 있겠다 싶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악 지하철 출입문에 도달할 무렵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스케이트선수처럼 발을 먼저 집어 넣었다라면 문이 다시 열릴 수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무리할 필요가 없다싶어 도어에 양손을 짚고 말았다. 지하철이 떠나고 난 뒤 아까 젊은 처녀가 탔는지 쳐다보았더니 승강장에 보이지 않은걸로 봐서 간발의 차로 젊은이는 탔고 늙은 나는 타지 못했다.
다음 열차를 타고 수영역과 연산동역에서 환승하여 1호선으로 바꾸어 타고 부산대역까지 갔다. 4번출구 신축 아파트상가 2층에 세들어 있었다 화살표를 따라 황윤권정형외과를 찾아갔다. 병원내에는 이미 먼저 온 환자가 7~8명 기다리고 있었다. 내 순번에 되어서 의사는 내 이름을 부르더니 진료실 안으로 들어와서 상의를 벗고 나무 침대 같은 곳에 엎드려 누워라고 했다. 손을 대면서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다. 엉치뼈 주위라고 했더니 큰 몽돌을 하나 손에 들고 와서 아픈 곳을 쿡쿡 찔렀다. 그리곤 내려오라고 하더니 의자에 앉힌 후 허벅지 아래에는 약간 볼록한 나무로 만든 바렌(미술용구)으로 지압을 하고 윗쪽에는 작은 아령 끝으로 눌러 주라고 한다.
또 무렵 아래쪽에는 약간 왼쩍 아래에 보록하게 나온 뼈가 손에 만져지는데 그 아래를 죽 따라서 신경이 타고 내려가므로 그쪽을 나무 막대기 같은 것으로 찔러 주라고 하면서 발가락 앞까지 그렇게 운동으로 풀어야 된다는 것이었다.
진료실로 들어가기 전에 순서를 기다리면서 그 동안의 경과를 간단하게 말씀드리고 나서 갖고간 MRI 자료를 보여드리면서 얖으로의 계획 또는 치료전략을 한번 물어보려고 했는데 MRI 자료 갖고 왔다고 했더니 '그런 것 필요없다'고 하면서 볼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진료실 입구 위에는 '수술권하는 정형외과의 비밀'이란 새책이 나왔어요. 서점과 인터넷서점에 있습니다' 라고 붙여져 있었다. '허리 디스크 절대로 수술 하지마라'는 책을 쓴 의사도 있다. 의사도 가지가지라고 생각된다. 환자와 의사는 서로 신뢰를 가져야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소위 인술로 사람의 병을 치료한다는 의사가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진행한다면 과연 좋은 결과가 나올까 싶다. 병원을 나서면서도 '이건 아닌데....' 싶은 생각이들었다. 근본 원인을 제거치 않고 고로 인한 후유증만 고칮다고 근본 원인이 없어질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병원에서 나와서 그모레 대학친구들과 일본 오사카로 여행을 가기로 하였는데 아직 코로나 백신을 접종하지 않았음으로 일본 입국시에 PCR 음성결과서를 제출해야 하므로 검사비가 조금 싸다는 초량 씨젠 의료재단으로 가서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내일 찾으면 된다고 했다. PCR검사를 마치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연산동으로 향하였다. 초량역에서 1호선을 타자마자 사람들이 만원이라 노인석을 살펴보니 2좌석이 남아서 그리로 자리를 옮겼다. 내가 마악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데 반대편에서 키가 작은 늙은이가 벼락같이 뛰어와 내가 앉으려던 자리를 차지해 버리는게 아닌가. 그 자리 옆에도 비어 있는데도 기어히 내가 앉으려는 출입구측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닌가. 기가 막혀서 한참동안 그를 빤히 쳐다보았더니 그도 나를 쳐다보았다. 할 수 없이 가운데 빈 자리에 앉아 오면서 '간발의 차'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