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는 만원 관중이 들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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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리지 않은 입장권이 꽤 많이 남아있다는 얘기가 들렸다. 2년 전과 달리 빈 좌석이 여럿 눈에 띌 것이란 의견이 신뢰를 얻기 시작했다. 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올해는 2년 전에 비해 열기가 크게 식은 것 같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이런 예측은 모두 빗나갔다. 2년 전에 비하면 지지부진하던 입장권 판매는 맨유가 한국에 들어오는 순간 판세가 뒤바뀌었다. 맨유가 TV와 지면을 통해 한국 입성을 알리자 경기 입장권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결국 경기 당일 서울 월드컵 경기장은 그야말로입추의 여지 없는 만원 관중이 들어차 장관을 연출했다. 가장 싼 4등석 입장권이 한 장에 4만원이나 하던 FC서울-맨유 경기 입장권은 그렇게 거의 전량 구매자를 찾았고, 경기가 끝난 뒤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FC서울의 세뇰 귀네슈 감독은 “(FC서울 감독 부임 이래) 상암 경기장이 꽉 차는 건 처음봤다”고 술회하기에 이른다. 홈 구장 감독이 번외 경기를 통해 만원 관중을 처음 목도하게 만든 것. K-리그의 현실과 맨유의 위력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장면이다.
맨유에 관대한 한국 축구
사실, 맨유의 2009년 여름 서울 투어는 출발부터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 맨유 측은 한국 축구의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제멋대로 짠 방한 일정을 일방적으로 공개했다. 아직 상대팀도 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는 몇월 몇일에 한국에서 경기할 것"이라고 못박은 것이다. 문제는 이 일정이 K-리그 스케줄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이 ‘택일’한 일정(7월20일)은 K-리그와 맞물렸고, 당연히 K-리그 사무국 측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당시 K-리그 측은 “맨유는 이번 방한에 대해 연맹과 어떠한 상의도 한 적이 없다”고 밝힌 뒤 “맨유가 결정하면 K리그가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K-리그의 선언은 공염불로 끝나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K-리그 연맹의 단호한 의지가 맨유의 거만한 태도에 일침을 가할 수 있을거라고 기대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모든 것은 맨유의 뜻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맨유는 FC서울을 상대로 정했고 아시아 투어 방문 순서를 살짝 변경해 경기 일정을 24일로 바꾸었지만 25~26일로 예정된 K-리그 일정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하지만, 한국 축구에 대한 어떠한 책임감이나 소명 의식 없이 단순히 돈을 벌러 날아오는 맨유의 일정은 예정대로 진행되었고 '친절한' K-리그는 맨유의 상대인 FC서울의 해당 라운드 경기 일정을 변경하는 '관대한' 조치를 내려 맨유-서울 경기를 ‘배려’했다. (K-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팀들이 AFC챔피언스리그 참가를 위해 빡빡한 리그 일정을 소화해도 배려에 무관했던 전례와는 매우 대조적인 풍경이다.)
'배려'를 '거드름'으로 갚는 유랑 스포츠단
그러나, 원칙을 깨고 리그 일정을 바꿔주면서까지 불러들인 맨유의 태도는 시종일관 거만했다. ‘팬들’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예정된 일정은 수시로 변경되었고 각종 미디어의 인터뷰 요청은 번번이 거절당했다. 경기 전 날에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 30분 늦게 등장하거나, ‘골프 라운딩 시간이 길어졌다’며 한국 미디어 파트너와의 인터뷰 약속을 뒤늦게 취소하는 해프닝은 시작에 불과했다. 경기 직전의 몸풀기 시간을 지키지 않은 것이나, 일반적으로 각종 경기가 끝난 뒤 마련되는 믹스트존-인터뷰룸 운영조차 거부한 채 경기 종료와 함께 '이만 총총' 서둘러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모습은 '무례'의 한 단면이다. 맨유는 그들이 '친선 경기'를 하러 온 팀이 아니라 개런티를 받고 '공연'을 펼치러 온 팀이라는 것을 자인한 셈이다.
물론, 맨유가 ‘아시아 팬’들을 위해 투어를 나섰다는 말이 허울뿐인 변명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얘기다. 맨유가 한국까지 날아온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돈이다. 한 번의 방문으로 벌어들일 일시적 수입도 중요하지만, 그들에게 더욱 큰 모티프는 스폰서 챙기기와 팬층의 확대다. 그리고, 2년 전의 경험을 통해 그 효과를 확신한 맨유는 이번에는 좀 더 표독하게 돈벌이에 나섰다. 경기 전 날 행사의 대부분은 팀에 매년 막대한 돈을 안겨주는 각종 스폰서가 마련한 자리가 전부였다. 스폰서십과 무관하게 진행된 몇 안되는 행사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최소 1만원 이상을 지불한 팬들에게만 공개한 ‘유료 훈련쇼’일 것이다. 영국 현지에서는 캐링턴 훈련장의 문을 꼭꼭 걸어잠근 채 선수들의 훈련 모습을 철저히 보호하는 맨유지만, 아시아로 건너오자 '돈'이라면 선수들의 훈련장까지 공개할 수 있다는 '상인'의 마인드를 장착했다. 단순한 '팬'이 아닌, 즉 적잖은 돈을 ‘기꺼이’ 지불하는 소비자들에게라면 성심성의를 다하는 것. 명문 스포츠 구단에서 인기 유랑 스포츠단으로의 변신은 이렇게 극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7월 26일 예정이던 서울-광주戰이 5월 30일로 앞당겨지자 서울 서포터들이 성남전에서 응원 보이콧을 선언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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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아까운' 스포츠 vs '비싸도 기꺼이' 공연
한국 축구가 맨유에게 관대한 이유도 어쩌면 이 지점에서 발견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한국인들에게 맨유 방한은 ‘스포츠’ 행사가 아닌 ‘공연’과 같다. 후미진 좌석의 표값이 4만원이라면 국가대표팀 A매치 입장권보다 비싼 가격이지만, 맨유 투어의 값비싼 입장권은 “뮤지컬 표 값에 비하면 싸다”는 말 한 마디로 거부감을 지워낸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것이 아닌' 유랑 스포츠단의 10만원짜리 표가 미친듯이 팔려나간 이유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게 '축구'가 아닌 '그 무엇'이라는 가설에 설득력을 더한다. 대표팀 축구가 '태극 마크'로 상징되는 애국심과 경쟁심리에 불을 붙여 흥행에 성공해왔다면, '맨유'를 향한 한국인들의 관대한 태도는 그들이 갖는 유명세와 박지성을 통해 얻어낸 친근감, 그리고 '축구'와 '유럽'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높은 수준의 브랜드 가치와 무관하지 않다. '축구'를 보려는 게 아닌, 맨유에 속한 여러 선수들을 직접 보고, 또 그 자리에 있었음을 주변인들에게 '과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은 거액을 기꺼이 지불하는 것이다. 맨유는 한국인들에게 단순한 축구팀이 아닌 그 이상의 가치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K-리그는 어떠한가. 단순명료하게 답하자면, 맨유와 K-리그는 경쟁상대가 아니다. 축구 실력이나 마케팅 따위를 말하는 게 아니다. 둘은 같은 카테고리에서 경쟁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란 얘기다.
우리는 왜 K-리그에 야박한가
혹자는 말한다. K-리그는 외면하는 관중이, 국가대표 경기장도 점점 찾지 않는 관중이 다른 나라 축구팀의 방한에 이리 열광하는 것이 야속하다고.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K-리그는 언제 어디서 열리는 지, 아니 몇 개의 팀이 뛰고 있는 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지만, 맨유에 관해서라면 루니나 퍼거슨은 물론 마케다나 오셰이까지 ‘어디서 들어본듯한’ 게 우리네 현실이다. 맨유 친선 경기가 공중파 TV를 통해 중계되고, 당일 모든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K-리그가 언론의 외면을 받는다며 푸념하지만, K-리그 브랜드의 수용자층이 협소한 현실에서, 자국내 대체제인 프로야구와의 경쟁에서도 밀리는 현실에서, 반전을 기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꾸준하고 적극적인 미디어 노출과 경기장 분위기의 전환도 고려해볼만한 대안이다. 경기력이나 스타 선수의 유무 자체가 우리가 K-리그에 야박한 가장 큰 이유는 될 수 없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일부 동남아 리그의 활황은 어찌 설명할텐가.) 단기적 수익을 노리는 중계권료 협상을 보다 융통성있게 운용하도록 변화를 주는 것도 괜찮은 선택일수 있다. 맨유에 어떤 선수들이 있는 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K-리그가 무엇이고 언제 어디서 열리는 지 알릴 수 있는 통로를 최대한 많이 확보해야 한다.
지난 주말, MBC-ESPN의 K-리그 중계를 위해 전주에 다녀왔다. KTX와 무궁화호를 갈아탄 뒤 도착한 전주역에는 ‘축구’와 관련된 흔적이 전무했다. 택시에 올라타 ‘전주 월드컵 경기장’을 외치니, 택시 운전대를 잡은 지 2년 여 정도 되었다던 기사님은 “월드컵 경기장에 손님 태우는 것 처음”이라며 “오늘 무슨 일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날 경기장의 풍경이다. 전북과 울산의 K-리그 경기는 꽤 많은 관중이 들어찬 채 진행됐다. 중간중간 무거운 소나기가 휩쓸고 지나갔지만, 눈짐작으로 2만명 안팎 정도가 되어 보이는 관객들은 올 시즌 상승 곡선을 그리는 중인 전북 선수들의 플레이를 꾸준히 주목하며 자리를 지켰다. 무언가를 보기 위해 2만 명이 한 곳에 모이기란 결코 쉽지 않다. 문제는, 이러한 일들이 '아무도 모르게' 벌어진다는 것이다. '야구보다 썰렁한 축구장'이라는 케케묵은 주제의 보도가 여전하고, 주말이면 단 한 경기도 TV를 통해 생중계로 볼 수 없는 기묘한 현실, 게다가 타이틀 스폰서십도 없이 진행되는 K-리그를 '프로축구'라 부를 수 있는 당위성을 찾기란 쉽지 않다.
맨유에게 관대한 한국 시장의 기묘한 분위기를 타박하기 보다는, 맨유를 통해 '축구'가 스포츠로든 공연으로든 지역 발전을 위한 매개로든 어쨌든 폭발적 성공의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 필요하다. 스무 살도 채 되지 않는 후보 선수가 생중계되는 TV 카메라 앞에서 버릇없는 골 세리머니를 펼치는 데도 실없이 웃으며 환호하는 짓을 2년 후에 또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면 관대한 미소 뒤에 절치부심을 담아내야 한다. 우리 모두의 노력과 관심이 맨유 유랑단을 통해 불이 붙는다면 그네들에게 쏟아부은 수십억의 돈도 아깝지 않지 않겠나. 이 난국에도 여전히 순정을 다 바치는 서포터들과, 소리없이 늘 경기장을 찾아주는 관대한 팬들을 위해서라도 상생하는 발전 방안의 마련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긱스옹 멋지네요..뒷통수를 갈겨줬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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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신랄한 비판이네요 ㅎㅎ 볼만한듯..
첫댓글 딱 핵심만 짚어서 정확한듯 이런독설가도 필요하죠
목구멍에서 하고 싶어서 근질근질햇던 말들이 여기 다있네.
딱 내심정이다
하려고 해도 '극성' 맨유팬들이 무서워서 못하는 말들...
그런사람들을 빠 라고 하죠
'극성' 맨유팬들 때문에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 말들을 서형욱 해설위원이 속 시원히 해주네요^ㅡ^
극성 맨유팬들도 아니죠. 그저 우리나라 선수가 뛰니까 관심가지고, 박지성 이적하면 또 나몰라라할 냄비팬들...
뒷통수를 갈겨줬어야 했는데..
진짜 밥맛 떨어진다 박지성 그냥 이적하자
삭제된 댓글 입니다.
FC박지성
에효 씁쓸하네요... 저걸 허락해준 k리그연맹은 또 얼마나 받았을까나.....
연맹 진짜... 챔스 진출팀 경기일정 조정은 안해주나요?
아...속시원하다..
하지만 저기 온 사람들 중 상당수는 k리그를 보러 가지는 않죠..ㅠㅠ 서형욱 말대로 저런 사람들을 축구장으로 모이게 해야하는데;
으따 말 한번 잘하네ㅎㅎㅎ
맨유는 정말 퍼포먼스로 아시아 투어를 오는거죠 -_-a;; 그만큼 '맨유'라는 브랜드를 굉장히 잘 키워나갔던 결과이기도 하고... 레알과 맨유가 왜 전세계적으로 그렇게 인지도가 높고 인기가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그리고 박지성 선수 때문에 맨유 팬이 많아진 만큼 이유도 없이 맨유를 까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남들이 다 좋아하니 나는 뭔가 다르다는 듯 맨유 얘기만 나오면 비판적으로 나오는 사람들도 꽤 많죠... 그게 쿨해 보인다고 생각하는 건지... 잘못 된건 비판하고 잘한건 칭찬하는게 정상인데...
전 콥이라 맨유 깝니다.
글과는 다른 내용일수도있지만 거드름태우던 맨유유랑단에게 독설을 가할수도있지만 그 경기를 보러갔던 팬들을 욕하는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주저리주저리 써봐야 다들 아시는 내용일테고... 아 왠지 괜히 욕먹을만한 댓글쓰는듯 ;;;
진짜 말 잘 했다.
인기 유랑 스포츠단으로의 변신 ㅡㅡㅋㅋㅋ
긱스옹 급호감(?)
내가 볼땐 맨유 까는 사람이 훨 많아보이는구만 뭘.. 극성인걸로 따지면 리버풀팬들이 더 심한거 같은데 댓글들 보면..
제가 본 글들은 왜 극성 맨유 팬들이 더 많을까요..............
아 진짜 잘쓰네 역시
공교육의 문제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