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각기동대SAC 1기를 너무나도 재미있게 본 뒤로 네트의 가능성을 새삼 흥미롭게 보고 있는 저는,
인터넷이 과연 그런 비슷한 역할을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상당히 궁금해지더군요. 그리고 1기 21화에서 암수트에 대고 화를 풀어 버리는 쿠사나기의 열렬한 팬
이 되어 버려서, 현실에는 그런 멋진(?) 사람이 없나 자꾸만 비교하기도 하구요. ㅎㅎ
2기가 방영된다는 소식을 듣고 열심히 구할 방법을 찾다가 최근에야 다 봤습니다(과연 네트는 광대하더군요 ^^;;).
딱 보고 느낀 바는, '1기에 비해 어렵다'였습니다. 1기는 큰 흐름이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 한 번 보고 이해가 됐는데, 2기는 그렇게 안 되더군요. 소재가 '난민'이라는 다소 정치적인 성격을 띈 문제여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런 쪽에 관심이 좀 있어서 그리 낯설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생각을 좀 해 보니, 이해가 쉽게 안 됐던 건 다른 이유 때문이었죠. 소재와 주제가 상당히 괴리가 있었습니다.
2기는 난민 문제로 시작해서 난민 문제로 *끝나는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 말하고 있는 것은 그게 아니었죠. 제가 보기엔 난민 얘기는 stand alone complex를 좀 더 확대하고, 국제 사회에서의 일본의 지위를 확인하기 위한 도구로 쓰인 것 같습니다. 난민 얘기가 주제였다면 실제로 난민의 생활상과 일본 국민, 정부와의 마찰 과정이 자세히 드러나야 했지만, 그런 내용은 잠깐 스쳐 지나가는 걸로 그친 대신에
그들의 지도자와 정부, 외세의 관계가 더 크게 부각되기 때문이죠. 물론 이것 말고도 영웅이라는 존재와 혁명의 가치, 사회 체제에 대한 점검도 포함되겠지만 그런 것들은 주제라고 말하기에는 무게가 좀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먼저 stand alone complex는 1기에서 이어지는 이번 시리즈의 주제입니다. 1화에서부터 중국대사관을 점거한 테러리스트들이 '개별11인'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죠. 이들의 이름을 보면 SAC의 두 가지 측면이 드러납니다.
첫째는 말 그대로 따로 노는(stand alone) 모습이죠. 이후에도 계속되는 개별11인의 모습들은 같은 목적을 위해 움직이지만 함께 활동을 하지는 않습니다.
둘째는 이미 언급했듯이, 같은 뜻을 위해 움직인다는 거죠. 11화에서 모인 개별 11인의 활동을 들어 보면 다양하게, 같은 목적을 향해 움직였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8화에서 고다가 TV에 나와서 열변을 토하는 기자를 보며 "이런 감염예도 있군"이라면서 흥미 있어 하는 장면도 그런 예가 되죠. 9화에서 고다가 말하는 '사상 유도'라는 것도 SAC의 효과이고, 15화에서 타치코마들이 '인간들이 지나치게 개체성을 추구하다가 몰개성에 빠진 걸로 보인다'고 말한 것도 SAC의 결과입니다. 결정적으로 22화에서 바트가 고다에게 한 말 - ‘범인은 모르는 사이에 쿠제를 돕게 된 것이 아닐까?’는 SAC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범인(고다)은 자신이 쿠제를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상황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건 침묵하고 있는 쿠제이고, 따라서 범인이 그의 모방자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물음이죠. 동기 있는 자와 모방자의 구분이 불가능해지는 순간입니다. 또 26화에서 타카쿠라 관방장관은 체포되기 직전에 재미있는 말을 합니다. 고다가 자기 움직임과 관계가 있는지도 몰랐고, 자기는 완전한 stand alone상태(개별적으로 행동했다는 뜻)였을 뿐이라고요.
1기에 비교한다면 2기에서는 좀 더 개별적으로 나누어진 – 그러나 결과를 보면 같은 방향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15화에서 타치코마 하나가 장황하게 설명한 것이죠.
‘인간이 현실화 시키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네트의 실체가, 인간 개인 내부의 신경 레벨의 네트와 인류 전체의 네트 양 극단(?)에서 자신의 의지와 괴리된 무의식을 (전체의 총의로서) 형성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타치코마 자신들이 AI를 위성에 두고 있음으로 느끼는 주체와의 괴리감이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자기 고스트 심층의 무의식과 자신의 존재를 훨씬 벗어난 공동체의 무의식이 있는데 그 두 무의식은 자신의 의식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것이 타치코마의 괴리감과 비슷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인간은 육체와 정신이 따로 노는 거야?’라는 질문도 던지구요.
그런데 2기에서는 1기와는 달리, SAC에서 벗어난 예를 인간에게서 찾습니다(1기에서는 사람에 근접해가는 타치코마들이 SAC에서 벗어난 존재를 말하죠). 바로 쿠제라는 존재죠.
“난 원래 난민을 해방시키려 했다. 그렇기 때문에 개별11인도 생긴 거야. 하지만 녀석들과 함께 행동하면서 사상의 차이를 느꼈다. 바이러스가 듣지 않은 건 그때문이겠지.”
그가 ‘개별11인’ 바이러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의지’ 때문이었습니다. 정확히 몇 화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쿠사나기는 그렇게 인정했죠. 자신이 향해야 할 곳을 정하고 그곳으로 움직이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자는 SAC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혹은 오히려 SAC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있습니다. 1기에서 타치코마를 내세워 말했던 ‘호기심’과 대비해서, 혁명가가 내세울만한 가치라고 하겠군요.
그런데 이 주제는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1기와는 달리 비중이 많이 줄어듭니다. 그 자리를 쿠제라는 인물의 혁명과 쿠사나기와의 로맨스
, 국가 체제에 대한 의문, 그리고 미국과의 국가적인 관계가 차지해 버리는 바람에 의미가 많이 퇴색해 버렸죠. 1기에서 끝부분에 아라마키가 말한 것처럼 '보조기억장치가 없이는 따라갈 수 없는(그만큼 난해한)' SAC에 대한 성찰이.. 2기에는 없죠. 2기에서는 직접 말해 주는 것은 중반까지로 끝나기 때문에, 보다 감성적인 부분에 무게가 실리는 것 같습니다.
두 번째, 난민이라는 소재 자체에서부터 국제 사회에서의 일본의 지위가 주제로 드러납니다. 3, 4차 대전(?)을 겪은 후에 아시아 난민을 수용한 일본의 상황이, 난민을 거부한 중국, 경제력 파탄으로 어려움을 겪는 미국 등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는가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니까요. 14화의 미국무장관 방국, 25, 26화의 핵잠수함과 CIA요원처럼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사건은 많지 않지만, 총리는 계속해서 외국의 압력에 대해 언급하고 자신들이 보유한 방사능제거 기술과 경제력을 이용해서 우위를 차지하려고 하죠. 타치코마들조차 20세기에 미국과 체결한 군사조약(?)에 대해서 언급을 하면서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 떠듭니다. 이 주제는 고다와 타카쿠라가 가지고 있던 마지막 카드를 통해서도 잘 드러납니다. 미국의 핵미사일을 빌린 그들의 행태는 어쩌면 감독이 현재 일본의 친미 세력에 대해 느끼는 바를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일단 여기서 접고 나머지 얘기는 조만간 또 올리죠.
장황한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ㅡ_ㅡ
<2005/3/30>
첫댓글 2기 3화까지 보다가 너무 힘들어 글올라오면 읽고 보려고,,덮어두었어요,,진짜 어렵더군요,,정말 1기는 암것도 아닌것 같았어요^^
거기서 난민은 우리나라 사람도 포함이죠 반도(우리나라)는 핵전쟁으로 초토화된걸로 나오니까요...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