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오늘날 주위의 권유나 심령의 변화를 따라 처음으로 예배당을 찾는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전에 가장먼저 느끼는 것은 교회에 다니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것일 것이다.
과거 19세기 이전에 교회라는 울타리는 가난한 사람과 부한 사람과의 경계를 오늘날처럼 극단적으로 가르지는 않았다.
물론 중세시대에 면죄부를 판매하며 교회의 교회된모습을 상실했던 시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오늘날처럼 교회가서 처음듣는 설교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설교보다는 가진것을 하나님께
내놓아야 하나님께서 축복을 베푸신다..라는 설교는 아니었다.
19세기말 서구의 교회가 산업화의 발전과 함께 물질적축복에 대한 관점이 이입된 것을 배경으로
교회관계자들은 부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이 공존하는 교회내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빈부의 이질감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러나 그러한 고민이 진정한 교회의 모습없이 물질의 유무로 사람을 판단하는 오늘날의 교회의
모습이 시작되는것을 막지는 못했다.
오늘날 한국의 교회는 부자교회와 가난한 교회로 분명하게 나누어지는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 이유는 산업이 발달하고 물질적부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면서 어찌어찌하다가 자연스럽게
발생된것이 아니라, 교회내에서 물질관의 변화에 따라 성도를 대하는 자세를 달리하는 지도자(목사)들의
잘못된 사상과 성경관과 욕심에서 발생하게 되었다.
오늘날 중대형도시의 많은 교회들이 가난한 자들이 교회에 나오지 못하게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교회에서 설교로는 모두가 동일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르짓고 있으나, 십일조를 바치지 않는자에 대한 저주와
교회내의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기위해서의 자금의 필요, 안수집사나 장로가 되기위한 조건에 있어서의 돈의 필요는
이제는 교회다니지 않는 비기독교인마저도 상세히 알고있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까닭에 교인들이 돈이 없으면 교회다니기 힘들다는 생각을 어찌 하지 않을수 있을까...
어디든 대형교회를 가면 고급차들이 즐비한 것이 오늘날의 교회이다.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교회를 다니는 성도들이
속으로 무엇을 생각하겠는가.
나는 돈이 없으니 이교회에서 대우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지 않겠는가..
이런교회의 장로들은 누구하나없이 대형차, 좋은 지위, 주요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아직도 돈이 없어도 대형교회에서 신앙생활만 잘하면 장로가 될 수 있겠지...라는 순진한 생각을 하는 형제자매가 있다면
지금 교회의 현실인식론에 대해서 한동안 설명을 해줘야 할 것이다.
결국 오늘날 많은 교회는 돈으로 시작해서 돈으로 축복의 유무를 판단하는 그런 상황이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외부의 시각에서 볼때에도 부자 교회와 가난한 교회로 분명하게 구분을 진다,
그만큼 목회자들이 그 선을 분명하게 갈라내는 목회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고,
이들은 그들의 선배들에게 이렇게 배워왔기 때문이고,
이것이 예수그리스도의 말씀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상황이라는것을 그들 스스로는 도무지 모르기 때문이다.
서울에 있는 중대형교회들은 지나친 외적인 화려함과 과시를 드러낸다.
그들은 마치 교회의 외형과 장식과 다니는 교인의 부유의 유무가 교회성장의 전부인마냥 목숨을 걸고 이것에 매달린다.
그들은 부자들이 교회에 나오기 편하게 교회시설과 설교, 여러 프로그램등을 생산해내서 가난한 자들이
교회내에 머물지 못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만드는 것이다.
설교도 특히 부자들의 입맛에 맞추는 설교를 한다.
그들의 설교에서 이미 하나님은 복권을 지점해주는 물주나 다름이 없다.
다시말하지만 결국 가난한 자는 가난한 교회로 가라고 떠미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왜 이렇게 여러가지로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가..
중산층과 부유층이 교회내에 머물게 하기 위해 가난한 교인들을 내쫓기 때문이다.
중산층과 부유층이 교회내에서 가난한자를 바라보며 그들의 가난을 하나님의 저주인마냥 비난하고 헐뜻고 험담하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상처받고 떠돌게된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들이 다니던 교회에서 떠나가된 열가지 이유중
아마 여덟아홉가지는 돈과 연결된 문제가 아니겠는가...
난개발과 도시개발과 근교개발로 새로이 들어선 신도시에는 여전히 새롭게 크고 아름다운 대형교회가 들어서고
그때문에 개발전부터 존재하던 가난한 교회들은 사라지고 부자교인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가난한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교회는 중상류층이 나오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며 실망하고,
대형교회가 생기는 것으로 자신의 교회를 빼앗기게된 가난한교회의 목사는 대형교회를 만들고 말겠다는 욕망으로
그 분노가 바뀌게 되는 상황이 지금의 상황이다. 수많은 대중들이 교회를 적개심으로 바라보고 목사들을 꼴보기
싫어하는 것은 바로 물질을 추구하며 교회내에서 빈부의 차를 많드는 수많은 부자교회들이 있기때문이다.
교회는 가난한자와 고통받는자와 멸시받는자와 천한자와 장애를 가진자들이 편하게 와야 하는데,
오늘날은 이러한 교회를 찾는것이 너무나 어렵다.
대형교회의 목사들은 어느시대이건 그 시대의 가난하고, 고통받는자들과 함께 하지 않는 교회는 결국 무너지고
쇄퇴하는 것을 교회사에서 보지 못하며 배우지 않는지 의문이들 따름이다. 그들은 도데체 무엇을 배우는가...
목회자들은 가난한자들을 돌아보아야 하고 그들의 아픔을 품어야하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참 목자의 모습인데,
오늘날의 목사는 돈과 명예가 그들스스로의 욕심과 결부하여 가난한자를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완전히
떠나고 있는것이다. 그들눈에 돈이 안되는 가난한 자들이 들어오겠는가...교회에 와서 헌금은 안하고 기도만 하다가는
늙은 여자가 그들에게 마땅찮아보이는게 아니겠는가...
부자교인앞에서 그들의 믿음을 칭찬하고 자랑하고 그들의 헌금을 금액까지 불러가며 높이는 교회에 돈없는 가난한
교인들이 같이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영적인 부유함을 잃어버리고, 육적인 부유함을 사모하는 이런 교회는 결코 주님의 교회가 될 수 없다.
거짓된 교회들이 물질의 부유함으로 참된 교회들을 몰아내고 파괴하는 것은 바로 사단이 하는 짓이다.
내가 다니는 교회가 이러한 곳에 속한교회라면 지금이라도 늦지않았으니,
잘못을 지적하고 성경으로의 변화를 촉구하고 교회내에서의 차별을 없애기위해 말과 행동을 시작해야 한다.
이러한 일들을 실천하는 사람을 결국 교회가 쫒아낸다면 그저 발털고 그곳을 나오면 되는것이다.
주님의 사랑과 말씀이 아닌 직분이나 사람들과의 관계나 교회내에서의 권위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첫댓글 맞는 말씀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