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길을 걷다보면 우연치 않게 맞이한 일들로 눈물도, 웃음도 생겨나게된다
사람은 이런 경우를 두고 에피소드라 말하는 가운데 세월이 지나고보면
이 또한 추억으로 그려져 있음을 알게되며
특히 여행지에서 생겨난 에피소드일 수록 그 기억은 오랫동안 남겨진다
♣ 필리피노 자매와의 동숙(同宿)
필리핀에 도착하여 3일간을 마닐라에서 보낸후 보라카이로 이동하여
2주 동안 지내며 세계 3대 휴양지로 꼽히는 섬의 특성과 화이트 비취의 낭만을 충분히 즐긴뒤
다시 마닐라로 돌아와 말라테 거리의 호텔에 숙박지로 정한뒤 도심의 곳곳을 다니며
여행자의 기분을 충전하던 그 날도 몇번 이용한 교포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말라떼의 중심거리를 배회하다
까페에서 가벼운 술을 한잔하며 라이브 보컬의 음악에 젖어 있노라니
필리피노 남자가 다가와 한국인이냐 부터 몇가지를 묻더니
데이트할 여자가 필요치 않느냐고 말을 건네온다
문제의 말라테 페드로힐 거리의 까페
밤의 문화는 어느 나라나 비슷하겠지만
내 성격상 직업여성과는 어떠한 경우에도 이성간 접촉을 않는 것이 생활 신조이기에
망설임 없이 NO라고 하였지만
그 녀석은 끈질기게도 옆의 의자에 앉아서 갖은 이설을 펼치며 권한다
마침내 녀석의 끈기에 내가 지친 나머지
그 까페를 나올 수 밖에 없었고 아직은 이른 시간였기에
다른 까페를 찾아 시간을 보내다가 늦은시간 호텔로 돌아와 깊은 잠에 빠져 있는데
객실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깨어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가 넘었다 이 시간에....
전화를 받아보니 야간 프론트 담당이다
수화기로 들려오는 그의 말은 현지 여성이 나를 찾아왔는데 올려보내도 되겠냐고 물어온다
왠 여자라니......
이 곳에서 나를 찾아올 여성이 았을 턱이 없기에 거절한체 다시 참을 청하는데
몇분이 안되어 다시 같은 내용으로 전화가 오고 분명 나를 찾아온게 확실하단다
자세히 알길이 없는 나로선 전화를 끊고 1층 로비로 내려가자
프론트 담당이 저만치에 서있는 아가씨를 가르키며 나를 찾아온 여자라고 일러준다
멀지감치에 평범한 현지인의 차림새로 서 있는 필리피노 아가씨는
당연히 내가 알턱이 없는 사람이다
프론트 맨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어쩔 수없이 아가씨를 곁으로 다가가서
나를 어떻게 알고 찾아왔느냐 물으니
어떤 이름을 대며(지금은 기억에도 없다) 그가 보내서 왔다는 것이다
그 순간 직감적으로 몇시간전 까페에서 내게 데이트 상대를 권하던 그 녀석이 생각나
기가찬 마음에 난 필요없으니 돌아가라고 하자
그 아가씨가 내 옷깃을 잡으며 한다는 말이
오늘 밤 잘 곳이 없으니 하루밤 재워줄 수 없냐는 것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자다 일어난 내게 이런 일이..... 정말 기가찬다
어쨌던 일언지하에 거절해야겠는데
그 아가씨의 표정이 누굴 속임이 아닌 정말 심각한 얼굴이 아닌가
순간 망설여진다 그냥 내 편리대로 거절하고 돌아서려니
일편의 측은지심이 나를 갈등으로 몰아가는데
아가씨의 부탁을 들어주자니 모양새가 우습게 될 것 같고.....
한마디로 진퇴양난의 난감함에 젖어면서도 마닐라의 밤거리에서
가족단위로 노숙을 하는 것을 쉽게 목격해왔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 와중에 프론트의 담당은 계속 내 쪽을 쳐다보고 있으니
마치 내가 나쁜짓이라도 하다 들킨 기분이들어 내딴엔 불쾌하지만
어쩌겠나 결정은 내 몫으로 남겨지기에 어떤 결론이든 내려야한다
(마닐라 말라테 밤거리에서 가족이 노숙하는 이 장면을 사진을 찍으니
근처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부모가 나타나 사진을 찍었으니 돈을 요구하던 일을 경험한적이 있다)
........................!!
에라 모르겠다 물에 빠진사람을 건져주지는 못할망정 밀어넣을 수는 없지 않은가
well, follow me (그럼 따라와)
아가씨의 표정이 금방 밝아진다
프론트 담당에게 내방으로 데려가겠다고 하자
그 아가씨의 신분증을 요구하여 방문자 명단에 상세히 기재한다
※(필리핀의 호텔은 이런 규칙이 있어 투숙객입장에선 좋은 이미지를 갖게한다)
하지만 프론트 근무자는 내가 마치 콜걸이라도 데리고 올라가는 것으로 여길까봐
나 혼자 마음이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에라 모르겠다 하느님이 내 잘못중의 하나를 감해주실려고 내게 이런 경우를 안기나 보다 생각하자
그나마 호텔 룸의 침대가 Twin인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룸으로 올라와 의자에 앉은 아가씨에게 집이 없냐고 물었더니
시골에서 올라온지가 몇일 안되며 현재 마땅하게 지낼 집이 없어
까페의 언니집에 임시로 지내고 있는데
오늘은 그 언니가 남자친구와 함께 지내게되어 자리를 비켜주어야 했단다
※(중국과 캄보디아를 여행할 때도 이와 비슷한 경우를 목격한 바 있어 쉽게 이해를 하게된다)
대충 그렇게 이해하고
평소 여행시 에너지 충전차원으로 지니고 다니던 홍삼 양갱을 몇개 건넨후
빈 침대에서 자라고 일러주자 아가씨가 내게 또 다른 부탁을 해오길
실은 자기 여동생과 함께 시골에서 마닐라로 왔는데 그 여동생도 오늘 밤 잘 곳이 없어
지금 호텔앞에 있다며 함께 자도록 해줄수 없냐고 물어온다
설상가상에 엎친데 덮친다더니 이건 또 뭔 일인가 내 미치고 폴딱 자빠질 일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경우이며 내가 필리핀에 노숙자 구원이라도 하러 온 것인지...
하느님은 왜 갑자기 두배로 무거운 짐을 내게 지우시는가 으잉!
이 영감탱이 하느님아~~
아 미치겠다 작금의 이 사태를 우찌해야 좋을꼬.......
우짜겠노! 이놈의 호텔이 일본사람이 운영한다더니 "깐 이마 또 까란 말인지"......
참 기가 막힌다는 표현이 딱 알맞은 상황이다
어쩔수가 없다 아가씨를 앞장세워 또 로비로 내려간다
자매의 언니가 호텔 밖으로 나가더니 금방 동생을 데리고 들어온다
프론트의 담당에게는 아까보다 두 배의 낯뜨거운 기분으로 상황을 대충 설명한 후
자매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라서자 다른 외국인 손님이 함께 타게되어
괜히 그들에게 이상한 오해를 받을 것만 같다
이 놈의 엘리베이터 문은 와 이래 늦게 닫히노.....
룸으로 들어온 자매들에게
또 다시 질문을 던지며 오늘의 경위를 물어보지만 상황은 전과 동이다
언니는 나이가 25살로 대학교를 다니다 중퇴했고 동생은 20살.
그런데 동생은 1살배기 아이가 있고 고향집의 엄마가 키우고 있으며
그들의 집안 형편이 어려워 도시로 돈벌러 온 것이라기에
예전의 우리네도 형제 많은 집안에는 고만 고만 어려운 시절을 보내던 그 때가 연상된다
긴 말들어봐야 내가 어떻게 해줄 방법도 없는 것.
그만 자랬더니 샤워를 해도 되느냐고 물어오기에
이왕 이렇게 된일 니들 편하게 하라고 말하자 이들 자매 또 과간이다
자매가 한꺼번에 샤워실로 들어가서는 물줄기를 소리나게 틀어둔체
둘이서 뭔 말들이 그리 많은지 한 시간이 가까워도 샤워를 끝낼 것 같지가 않고
게다가 필리핀 원어인 까달로그어로 얘기를하니 내가 알아들을수도 없다
너무 오랜시간 동안 그러고 있어 나는 화장실을 이용할 수도 없기에
하는 수 없어 노크를하여 빨리 끝내라고 말하자 그제사 몸을 닦고 나온다
무슨 샤워를 그리 오래 하는냐는 내 물음에 자매의 대답을 들은 난 그들을 이해하게 된다
필리핀의 서민들 입장에선
가정집에 따듯한 물로 샤워할 시설이 없는 관계로 그런 기회가 주어지니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찜질방이나 사우나시설을 이용할 때와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난 자매가 더 측은하게 느껴져
그런줄 알았더라면 알아서 마칠 때까지 좀더 기다리며 참을걸............
아뭏튼 낯선 타국에서 참으로 낯선 경험을 하며
내 생애 다시 못볼 것 같은 낯선 자매와
꿈에도 생각지 못한 동숙(同宿과 同寢은 구분해서 이해하시길...)하던 이날 밤
난 그들 자매와 언어소통의 한계를 넘나들며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해외여행의 묘미인 현지인 생활 체험의 가이드로 채용하기로 한뒤
다음날
마닐라에서 택시로 한시간 남짓 거리에 있는 그들 자매의 고향으로 향했다
팝유 나무농장. 5년정도 자란 나무가 저 정도다
저런 모양의 집에서 삼 세대가 함께 살아간다
자매와 함께 택시로 이동한 그녀들의 고향집에서
난 또 한번의 곤욕을 치르야 했으니....
다름아닌 그들의 부모나 동네사람들로부터
내가 단순한 여행객이 아닌
딸들이 마닐라로 돈벌러 갔다가 외국인 신랑감을 데리고
고향집을 방문한 것으로 오인한 까닭에서인데
이 뒷 이야기의 전개는 글을 읽는 분들의 상상에 맡기련다....
첫댓글 오오오~~
대단한 경험 하셨네요.
필리피노의 자매..
주신글..
잘 읽고 나갑니다.
건강과 평안을 빕니다.
솔깃하게 하는 체험기 잘 읽었습니다
여행가시는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될것 같네요
오해의 연속의 경험들이 생생하게 오랜동안 추억의 페이지에 ㅎㅎ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해는 않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