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아,
살면서 이런 말 들어본 적 있나?
'天網恢恢 疏而不失 (천망회회 소이불실)'
노자도덕경에 나오는 말인데, 하늘의 그물은 틈이 많아 보여도 하나도 놓치는 것이 없다란 말이라네.
하느님에게서 도망쳐본 나에게 맞는 말이었지.
도망치면 칠수록 도망 나온 그곳이 더 또렷하게 보였고 멀어질수록 더 강하게 잡아당기는 것 같았거든.
숨을 곳이 없으니 편히 숨 쉴 곳도 없었어.
그때 아버지 책장에서 먼지 쌓여가던 그 책을 만났다.
청담스님이 쓰신 '잃어버린 나를 찾아'.
그 책은 함석헌, 이은상, 박종화 등 여러 명사들의 수상집들과 같은 자리에 나란히 꽂혀있었는데 그 제목에 끌려 책을 뽑았고,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던 그 책을 밤새워 읽었던 때는 스무 살의 한 겨울이었다.
그 책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어쩌면 하느님에게서 도망칠 수도 있겠구나였어.
스님이 알려주고 싶어 하셨던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배운다면... 물론 아주 어렵긴 하겠지만.
학창 시절, 한용운 선생의 시를 교과서로 배우며 대충 접한 공즉시색 색즉시공, 회자정리가 내가 아는 불교 지식의 다였는데, 잃어버린 나를 찾아야 한다는 스님의 말씀을 알아듣긴 힘들었지만, 글 속에 있는 스님이 스님이 된 계기가 내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들었다.
스님이 일제강점기 때 진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나라는 빼앗겼고 백성들은 핍박받고... 울분에 가슴이 터질 듯하여 가까운 절을 찾아 죽을 상을 하고 울분을 삭이고 있는데, 주지스님이 다가와 무슨 사연인가 물었다네.
세상 돌아가는 것이 너무 속상해서 마음이 아파 살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더니, 주지스님이 내가 낫게 해 주마 하시더라네.
'어떻게...?' 스님을 쳐다보니, 스님이 손바닥을 펴서 내밀며,
'그 마음을 여기 올려놓아라. 내가 단번에 딱 쳐서 박살을 내주마~'
'하하~ 보이지도 않는 마음을 어찌 끄집어내서 올려놓아요. 농담도 잘하시네.' 했더니,
'그렇구나. 근데 그 보이지도 않는 마음이 너를 죽게 만드는구나.' 하셨다네.
그 말에 뭔가 깨달음을 얻은 청담스님이 곧바로 출가하여 큰 스님 되셨다는 일화.
요즘에야 그 선문답의 시작이 달마대사와 그 제자인 혜가선사의 일화에서 나온 줄 알았지만, 처음 청담스님의 글에서 그 일화를 읽었을 때는 정말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그때부터 '잃어버린 나를 찾아'가 내 화두가 되었다.
이렇게 잘 느껴지는 내가 있지만, 큰 스님이 잃어버렸다니 잃어버렸나 보지.
잃어버렸으니 찾긴 찾아야겠는데...
어디에서 찾지...?
첫댓글 ㅎㅎ
이 글은 요즘 저를 대신해 올려 주신듯
새겨서 읽었습니다.
손바닥 위에 제 마음을 올려 놓고
박살을 내서 남은 잔재까지 훅훅 불어서
날려 버리고 싶습니다.
날마다 집 안을 뒤지고 무엇을 버릴까
들었다 놓았다 찾고 있는데
쉽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고
하루를 보냈는데
오늘은 이해인 수녀님 시 필사를,하고
글을 읽었고 책장을 살피고
댓글을 쓰기도 합니다.
좋은 내용의,글, 고맙습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마음을 쓰려면 또 누구에게나 어려운 것 같습니다. ㅎㅎ
이해인 수녀님 시는 정말 놀랍지요. 읽으면 읽을 수록 마음이 맑아짐을 느끼게 하니까요. 순수의 세계로 곧장 데려다 주는 것 같습니다.
낯선 길을 다니며 글 쓰고 댓글다는 것이 참 행복한 일임을 새삼 느낍니다.
청춘시절에 좋은 책들을 통해 좋은 감화를 많이받았ㄱᆢㄴ요.
그러니 좋은 생각도하고 좋은 글도 쓰겠지요.
잃어버린 나를 찾는다면 저는 불가의 심우도 십우도를 떠올리게 되데요.
아지막엔 입전수수로 끝나늘데
결국 저자거리로 들어서서 현실을 경영한다는 건데
그건 그거고, 저도 아직 무얼 붙잡고있는지,무얼 잃었는지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1990년대에 송기원이 안으로의 여행을 썼는데
주인공이 희말라야의 깊은 계곡까지 갔다가 결국은 자신을 돌아보는것으로 돌아오는데
선지식들도 그리 말하지만 문제는 다 내 안에 있긴 있는 모양입니다.
어떤 설법 중에 내가 힘들여 깨달아 얻은 것을 모든 중생들이 이미 다 가지고 있더란 말이, 결국 소는 사라지고 저자거리로 돌아가게 된다는 십우도의 뜻과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막연하게 짐작합니다.
잃어버리면 다시 찾을 수 있는 게 길이지만 나를 찾는 길은
실로 험난합니다,.어떤 것이 나인지도 애매한 게 정체성이거든요.
마음자리님의 깊은 사유에 머물다 갑니다.
잃은 줄 알면 찾기가 그나마 쉬울텐데... 잃은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잃었으니 찾으라 하니. ㅎㅎ
세상과 함께 어울려 살다 보며는
때로는, 이게 아닌데 싶을 때도 있지요.
자신을 곧게 세우고 살아 간다고 생각은 하지만,
때로는 허망함도 함께 옵니다.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는지
답조차 헷갈림 속에서 방황하지요.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라는
생각으로 살아 갑니다.
이 것도 훨씬 나이가 든 연후에 깨달아 졌습니다.ㅎ
잃어버린 나를 찾는다는 게,
굴욕적이지 않고 비열하지 않게 사는 것 만도
나를 지키는 것이
나를 찾는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하게 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잃어버린 나를 찾겠다고 돌아다닌 길들을 하나하나 회상하며 써보려고요. 길어질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청담스님의 청년시절의 담소가
새삼 떠오르네요
이글을 읽으면서.
"이놈아.그래도 씨한점은 남기고
떠나야지."
그 말씀이 거역할수없는 어머님의 바램이라
땀냄새가 구수하기까지 했다는 새각시와의
첫날밤 이야기,
새삼 청담스님을 떠올립니다.
그렇게 남긴 씨 한점, 따님도 훗날 스님이 되셨다는 이야기 들었습니다. 대처승들을 종단에서 몰아낼때는 서슬 퍼러셨다는데, 말씀을 참 구수하고 재미있게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이 뭐꼬? 화두를 들고 많은 분들이 견성하셨다 들었습니다.
방편은 수도 없이 많으니 석가도 팔만가지 법문을 설해놓고도 돌아가실 때 아무 설법도 한 것이 없다 하셨다네요. ㅎ
심우도 ,
오래 전에 읽었습니다.
다 잊었네요.
저도 큰 스님께 화두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 뭣꼬.'
달랑 세 글자요.
저는 절에 가면 마음이 편안하고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인데, 그렇다고 불교도도 아니고... 스님들과도 이야기 나누어 본 적도 없네요.
그래서 ㅎㅎ 만다라 영화 보고 화두 하나 훔쳤습니다.
오래 전
어느 하나의 문장
어느 하나의 귀절에
온 마음이 흔들렸던 시간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으니
단단해진 자신이 전혀
기특하지 않습니다.
항아리 안에
오래 전의 그 문장 그 귀절들이
소복히 담겨 있기에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 아닐까요?
'잃어버린 나를 찾아' 제목 부터가 내 안에 있는 나를 찾는 사색의 문구 같아서요.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문구가 있던 저번날에
갔던 상원사가 떠오릅니다.
길 위에 삶을 사시는 맘자리님은 왠지
'잃어버린 나를 찾는' 작업을 하고 계신건 아닌가
하는 발칙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가던 그 아름다운 숲길이 떠오릅니다.
길 위에서 나를 만나는 일은 참 행복한 일이라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