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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지구
오늘 점심에 시레기국을 먹었다.
내가 농사를 지은 것이니 물론 농약은 치지 않고 시레기를 수확할 수가 있었다.
작년에는 이곳 영종도 영종 도서관 부근에 조그마한 텃밭이 있어서 농사를 지었다.
상추를 심고 치커리를 심고 들깨도 심었다.
토란도 심고 고추도 심고 가지도 심고 참외도 심고 어설픈 원두막을 지어서 박 덩굴도 올리고 수세미 덩굴도 올려서 그늘을 만들었다.
물론 호박도 심었는데 호박을 심어놓고 보니 호박이 네 가지 종류였다.
옛날에 고향에서 농사를 지을 때는 호박이 한 가지 뿐인 줄 알았는데 호박 모종을 사다 심어보니 마디 호박에서부터 따배이 호박에 이르기까지 네 가지 호박이 그리도 많이 달렸는데 하나같이 맛이 매우 좋다.
크기도 엄청 큰 것이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내 몸뚱이보다 더 크다고 할 수가 있다.
수세미도 많이 달렸는데 그것은 별로 쓸모가 없었다.
상추와 치커리도 매우 잘 길러서 이웃에 나누어주어도 다 먹질르 못하고 대부분 말라 없어졌으며 들깨도 보는 사람마다 들깨농사를 잘 지었다고 감탄을 하였다.
시장에서 파는 들깨 잎은 들깨 냄새가 나지 않지만 내가 기른 들깨 잎은 냄새가 나긴 했는데 그 옛날 우리 밭가에 심어져 있던 것만큼은 냄새가 독하지는 않았다.
참외는 다섯 포기 정도 심었는데 참외가 얼마나 많이 달리는지 350개 정도를 수확할 수 있었으니 나도 그저 놀랍기만 하다.
호박은 수도 없이 따먹었는데도 가을에는 늙은 호박을 꽤 많이 수확을 해서 아직도 여러 개가 남아있다.
박은 세포기를 심었는데 모두 37개를 수확했는데 박을 말리지 않고 박 나물로 해서 먹으니 맛이 희한한데 다 먹지를 못해서 말리기도 하였다.
옛날 어릴 때 고향에서는 제사 때나 되어야 말린 박나물을 먹을 수가 있었는데 그 당시 제사 밥 나물로는 박을 말린 것이 제일 맛이 좋고 또한 귀하기도 하였다.
그때는 박을 말린 것이 아무리 맛이 좋다고 하더라도 초가지붕에 보름달 같은 박은 먹을 수가 없었던 것이 박은 바가지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박 바가지라는 것이 워낙 잘 깨어지는 것이라서 해마다 집집마다 박을 몇 포기씩 심지만 먹을 수는 없고 바가지를 만들었는데 그래도 바가지가 모자라서 어머니께서 무명실로 깨어진 바가지를 꿰매어 쓰기도 하였다.
그렇게 박이 많이 달렸는데 박 덩굴 아래에 돌로 탁자를 만들어서 지인들을 불러서 삼겹살도 막걸리를 곁들여 구워 먹었으며 배추전도 구워서 먹고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풋고추도 얼마나 많이 달리는지 원 없이 따먹었지만 먹고 남아서 붉은 고추로 말리기도 하였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박이나 호박, 혹은 참외나 고추 이야기가 아니고 무를 심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연필을 들었다.
옛날 우리가 농사를 지을 때는 조선무와 일본 무가 있었고 풍산 갯 무가 있었는데 풍 산무는 우리 고향땅에서 잘 자라지 못하고 넓은 풍산들에서 생산되는 품질 좋은 무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 고향의 토질은 척박해서 무가 잘 자라지 못하지만 풍산들은 토질이 충적토여서 작물이 잘 자란다.
안동에서는 풍산개와 접실개가 유명한데 개라는 말은 물가의 땅을 말하는데 주로 바닷가를 갯가 혹은 갯마을이라고 하는데 안동 낙동강변의 들이 형성된 곳을 개라고 하는데 서울의 마포를 삼개나루라고 한 것을 보면 안동에서 풍산개나 접실개도 낙동강변에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나의 외가가 풍산면에 있어서 풍산 무를 먹어보았는데 맛도 좋고 크기가 사람 머리 통 만큼 컸다.
접실개 건너편이 우리 외가마을이었다.
그런데 내가심은 무는 무 뿌리를 먹으려는 것이 아니고 무 잎을 먹는 무를 심었는데 쉽게 말해서 시레기 무를 심었다.
그런데 무를 심어서 싹이 올라오니까 배추흰나비가 날아다니더니 무 잎을 애벌레가 다 먹어버리고 줄기만 앙상하게 남는다.
그래도 농약을 치지 않고 그대로 두었더니 배추흰나비 애벌레는 실컷 무 잎을 뜯어먹고는 나비가 되어서 날아가 버렸다.
그래서 가을이 되니 싱싱하고 기다란 시레기를 수확할 수가 있어서 그 시레기로 국을 끓여서 맛있게 먹었다.
옛날 우리가 농사를 지을 때는 가을에 정성들여서 시레기를 엮어서 말려놓지만 겨울에 다 먹지 못하고 봄나물이 나오면 소에게 먹여버린다.
그 당시는 시레기가 그리 종요한 것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시레기가 가격이 만만치 않다.
1킬로그램에 20000원 이상을 주어야 하니 이제 옛날에 천대받던 시레기가 지금은 귀하신 몸이 되어서 고기보다 더 비싸게 되었다.
필자가 이렇게 시시한 무 농사와 시레기를 이야기를 왜하는가 하면 사람이든, 식물이든, 동물이든 스스로 병충해를 이기는 능력이 있는데 우리 인간들은 독한 약으로 병원균만 죽이는 것이 아니고 우리 인체의 면역력과 저항력을 죽이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옛날부터 귀한 자식은 병 치례를 잘하지만 천한 집 자식은 병도 안 걸린다고 하는 말이 있다.
실제로 거지들은 쓰레가 통을 뒤져서 부패한 음식을 먹어도 식중독에 걸리지 않고 가난한 집 어린애들은 아랫도리 즉 바지도 입지 않고 맨몸으로 추운 겨울에 밖에 나가도 감기가 걸리지 않지만 부자 집 귀한 자식들은 집안에서도 옷을 두껍게 입고 있어도 감기에 자주 걸린다.
그리고 부자집 자식들은 조금만 좋지 않은 음식을 먹으면 금방 배탈이 난다.
그것은 저항력과 면역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마존 우림에 사는 원주민들이 유럽인들이 가지고 온 감기바이러스로 해서 감기에 걸려서 거의 떼죽을 당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 외손자들은 외할아버지가 외출을 하였다가 들어오면 우선 비누로 손을 깨끗하게 씻어야만 외손자들을 안아 볼 수 있었다.
그런 결과가 지금은 초등학생인데도 여름에도 에미가 내의를 벗기지 않는데 그래도 늘 감기를 싸고 산다.
그래서 병을 고칠 수 있는 양약이라는 괴물이 인체는 한없이 약하게 만들고, 병원균은 한없이 강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현대의 의학이다.
그것은 농사짓는데 진딧물을 보면 알 수가 있었는데 옛날에는 진딧물에 농약을 치면 잘 죽었는데 지금은 그 때 농약에 진딧물을 목욕을 시켜도 잘 죽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은 농약 가운데 진딧물 약이 가장 독하다고 한다.
그만큼 진딧물도 농약에 이길 수 있는 면역력을 50여 년 간 길러온 결과라고 할 수가 있었다.
실제로 필자가 군대생활을 할 때 얼굴에 빈틈이 없이 무엇이 났는데 의무대에 가서 페니실린 주사를 한 대 맞고 나니 깨끗하게 없어진 경험을 가지고 있다.
우리 아버지는 우리가 웬만큼 아파서는 병원에 가거나 약을 사주지 않았는데 우리가 병원(사실은 병원도 아니고 의원이라고 하기에도 너무도 열악한 면소재지 의원으로 유태준이라는 의사가 내과, 외과, 산부인과, 안과까지 모두 보았으니 종합병원이라고 해도 되는 곳)에 가는 것은 의식불명이 되어야 어머니 등에 업혀서 갔다.
그러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 감기인지 독감인지 심하게 앓아서 헛소리도 하고 하였는데 형님이 시골 장에 가서 빨간 통에 든 CCS라는 약을 사왔는데 그 약을 먹고는 금방 낳았기 때문에 5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 약의 이름을 잊지 않고 기억을 하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가 함부로 약을 사 먹이지 않은 것과 엄하게 원칙을 고수하신 것이 지금 필자가 살아가는데 건강상이나 정신적으로 매우 큰 자산이 되고 있어서 늘 아버지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무 시레기 이야기를 하면서 약이야기도 하였는데 현대인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거친 음식물인데 반해서 옛날 사람들에게는 단백질이 부족하고 거친 시레기 같은 섬유질 음식은 과잉 섭취를 하였으니 옛날에는 시레기가 천대를 받았지만 지금은 식생활의 변화로 시레기가 사람들 건강에 매우 중요하게 되었다.
현대에 모든 성인병, 그러니까 비만이나 고혈압, 당뇨병이나 변비 이런 것들이 섬유질을 섭취하지 못해서 생기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통상적으로 시레기보다 소고기가 더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단백질은 과잉섭취를 하고, 섬유질은 섭취를 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는 소고기보다 시레기가 더 좋을 수도 있다고 할 수가 있다.
예를 들면 물에 빠져서 익사직전에 있는 사람에게 금덩어리를 주면 좋아할까 아니면 고무풍선을 주면 좋아할까를 생각해 보면 물에 빠진 사람이 정신병자가 아닌 이상 금덩어리보다 고무풍선을 훨씬 더 좋아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몇 년 전에 지리산 실상사에 갔었는데 마침 도법스님이 계셔서 도법스님의 설법을 들을 수 있는 행운을 가졌다.
그때 필자는 짐짓 똑똑한 체 하고 도법 스님에게 “스님 금강석보다 그냥 흙이 더 좋은 것이 아닙니까?
흙은 농사도 지을 수가 있고, 둑도 만들고, 집도 지을 수가 있자만 금강석은 그런 것들을 하지 못하니 흙이 금강석보다 좋은 것이지요?”
도법 스님의 대답은 “쓰임에 따라서 다르다.”
역시 훌륭한 스님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필자의 질문은 물에 빠진 사람이 고무풍선을 좋아한다고 그래서 고무풍선이 금덩어리보다 더 났다. 라는 바보 같은 말을 하였다.
만약에 열사람에게 돈을 10만원씩을 주고서 마음대로 쓰라고 하였을 때 그 열사람이 10만원을 쓰는데 모두가 다르게 쓸 것이다.
그런 경우 그 돈 10만원을 가지고 옷을 산 사람이 밥을 사먹는 사람보고 왜 옷을 사지 않고 밥을 사먹느냐고 책망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은 제각각 형편도 다르고, 시각도 다르고, 취향도 다르기 때문에 왜 옷을 사지 않고 밥을 사느냐고 그러는 사람은 금강석보다 흙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필자처럼 바보라고 할 수가 있다.
시레기 무를 심었는데 배추흰나비 애벌레가 다 뜯어먹은 것을 이야기 하다가 이야기가 옆으로 빠졌는데 필자가 무를 심어놓고 잎을 벌레가 뜯어먹어도 약을 치지 않은 것은 우선 필자가 농약에 오염되지 않은 시레기를 먹어서 좋고, 그리고 그 애벌레나 나비를 새들이 잡아먹을 수 있고, 그 새들을 또 매나 독수리들이 잡아먹으면 그 독수리는 살아서나 죽어서 또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될 수 있고, 식물의 비료가 될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물과 공기와 토양을 오염시키지 않아서 좋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것 뿐만도 아니다.
농약을 사는데 돈을 들일 필요도 없고, 농약을 치느라고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고, 농약 치느라고 독한 농약을 마시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농약을 칠 때와 치지 않을 때의 손익 계산서를 살펴보면 하늘과 땅차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텃밭의 무 몇 포기를 심고 가꾸는데도 거기에는 철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필자가 터득한 것은 우리가 농사를 지어도 몽땅 나 혼자 먹는 것이 아니라 새도 먹고, 벌레도 먹고, 멧돼지도 먹고 일부는 쥐도 먹으며 공생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들은 바에 의하면 인도에 어느 외국인이 여행을 갔는데 호텔방에 바퀴벌레가 있어서 종업원을 불러서 호통을 치니 종업원이 하는 말이 이 지구는 사람만이 살라는 지구가 아닙니다. 라고 인도인다운 말을 하더란다.
여기에서 그 종업원의 말은 매우 의미심장한 말이며 그래도 호텔방에는 바퀴벌레가 있으면 안 되는 것이라고 따지는 사람은 똑똑한 사람이 아니고 바보스러운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다.
우리는 남북 전쟁 후에 원인 모르게 쥐들이 엄청 많아서 아마도 그 때 우리나라에서는 쥐약을 처음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는데 그 때 집집마다 쥐약을 놓아서 쥐를 잡았는데 그 후로 지가 몇 배가 불어난 일이 있었다.
그 원인은 쥐약을 먹고 죽은 쥐를 고양이가 먹고 또 죽게 되니 사실은 고양이 한 마리가 쥐를 수십 마리 혹은 수백 마리도 잡아먹을 수 있는데 쥐약을 놓음으로 해서 쥐 한 마리에 고양이 한 마리 그러니까 쥐와 고양이가 1대 1로 희생되니 고양이가 이기겠는가?
아니면 쥐가 이기겠는가?
쥐약이 아니면 수십 대 일 혹은 수백대일로 쥐가 희생이 되어서 고양이가 살도록 조물주가 만들아 놓았는데 인간이 쥐약을 사용해서 조물주가 만들어 놓은 질서를 파괴를 하여 버려서 재앙이 닥치게 된 것이다.
이 지구상 모든 재앙은 인간의 탐욕으로 조물주가 설정한 섭리를 거스르는데서 오는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남북 전쟁 후에 쥐가 그렇게 많게 된 것은 전쟁으로 물론 고양이도 많이 죽게 되었겠지만 산에 여우가 거의 멸종이 되다시피 하였으니 쥐가 그렇게 번성을 하였을 것이라는 짐작이 간다.
여우가 주로 쥐를 잡아먹는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보게 되는데 여우는 땅속이나 눈 속에 있는 쥐까지 잡아먹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전쟁 전에는 필자가 등하교 길에 산에서 여우를 자주보고 노루도 자주 보았는데 전쟁 후에는 노루도 여우도 전혀 보지를 못했다.
그때는 늑대도 자주 출몰을 하여서 늑데가 돼지를 물어갔다는 것은 이야기 거리도 안 되고 늑대가 아기를 물어갔다는 소문 정도가 되어야 이야기 거리가 되었다.
그 당시는 여름에는 마당에 멍석을 깔고서 모든 가족이 저녁으로 감자나 칼국수를 삶아먹고 마구 쏟아질 듯 하고 덕지덕지 달라놓은 듯한 밤하늘의 수많은 별을 쳐다보다가 잠이 들곤 하였다.
그러니 늑대가 밤중에 와서 아기를 물어가기도 하였는데 그런 일이 반세기 조금 넘는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그 때는 저녁을 먹고 멍석에 누워있으면 밤하늘에 허깨비가 울면서 날아가는데 허깨비가 우는 소리는 해액 해액 하면서 울었다.
그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매우 나쁘고 엄청 무섭기도 하였다.
어두운 밤하늘에 허깨비가 날아가는 것을 보면 무슨 솜뭉치가 날아가는 듯이 보였다.
어른들 말에 의하면 허깨비는 아기가 죽은 귀신이라고 하며 그래서 아기는 개를 무서워한다고 해서 허깨비가 날아가면 온 동네 모든 집에서 워어리, 워어리 하고 개를 부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허깨비라는 것이 아기가 죽은 귀신이 아니고 왜가리나 백로가 날아가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워어리는 안동지방에서 개를 부르는 소리인데 허깨비가 밤에 날아갈 때뿐만 아니라 아기가 방에서 똥을 싸면 개를 불러서 일차적으로 개가 먹도록 하여서 초석 자리에나 아가에게 묻은 똥만을 닦으면 되어서 아기가 똥을 싸면 문을 열어놓고 워어리 워어리 하고 개를 부르곤 하였다.
그렇게 하다가 어느 동네에서는 개가 아기 불알을 따먹었다는 소문도 들을 수가 있었다.
안동에서는 돼지를 부를 때 똘똘 하면서 부르고, 닭은 부를 때 구구하며 부르고 고양이를 부를 때는 왜누, 왜누하고 불렀는데 이상하게 말이나 혹은 소는 부르는 말이 없었다.
이런 토속적인 정겨운 우리말이 사라져가고 온통 미국말이 우리나라를 점령하고 있고, 우리 백의민족은 결혼도 하지 않고 출산도 하지 않으니 시골의 그 많은 학교들이 텅텅 비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삼천리금수강산을 지금 접수하고 있는 중이다.
필자가 어릴 때는 시골 옹천장에 흰 두루마기와 검은 갓을 쓴 어른들이 발 디딜 틈이 없이 시골장에 꽉 찼는데 그 많던 어른들은 모두가 어디로 가버리고 그때의 어린 소년이 벌써 여든을 바라보는 그때의 아버지가 아니라 할아버지의 연세만큼이나 되어버렸다.
우리는 무분별한 미국을 숭배하고 우러러보며 우리의 조상들이 물려준, 우리의 어머니가 가르쳐 준 정겨운 우리말을 너도나도 쓰기를 거부하고 미국 말, 미국 글을 쓰려고 모든 사람들이 지금 환장을 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 중앙아시아의 우리 동포들이 우리기 사는 이 땅을, 우리가 사용하는 우리말을, 우리가 사용하는 우리글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우리는 반드시 그것을 알아야 한다.
또다시 이야기가 산만해지고 엉뚱한 데로 전개되었는데 지금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가 사람뿐만 아니리 조물주가 만든 모든 생물과 공생하자는 취지로 장황한 말을 하여 보았다.
그런데 지금 자본주의 시대에는 끝없는 경쟁으로 인간들끼리도, 같은 동족끼리도, 동료들끼리도, 이웃끼리도 네가 죽어야 내가 사는 사회기 되어서 사회는 점점 살벌해지고 있다.
실제로 필자가 직장 생활을 할 때 진급을 하니 같은 학교를 나온 몇 안 되는 동문중의 한사람이 필자의 진급을 배 아파 하고, 항의하는 꼴을 본 적이 있다.
우리는 가능하면 모두가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2019년 3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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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촌사람님~~맞아요.지구위의 동식물은 공생해야 합니다.
서로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촌사람님 촌이야기 잘보고 갑니디ㅡ
고맙습니다.
선배님
쫌 줄여주세요
너무 길~~~~어~~~~~요
못 읽으면 넘어가지 웬 요구냐~~이러시지 말아주세요
선배님 글
읽고싶어서 드리는말씀입니다
미안합니다. 다음부터는 짧게 하겠습니다.
저는 쓴 글을 책으로 만드려고 하니 길게 써도 400페이지
정도를 쓰려면 여러번 써야 되어서요.
@촌사람 고맙습니다 선배님 ~~~요즘은
읽으며 내려오다보면
위에 읽은 건 다 잊어버리거든요 ㅜㅜ
선배님 편한밤 되세요
@온유 저는 옛날 젊을 때도 그랬습니다.
읽고나면 몽땅 잊어버립니다.
감사합니다.